〈 75화 〉 이걸 맞고 무사하지는 못하겠지
* * *
“과연 제법이다. 나의 일격을 그 정도 피해 만으로 받아내다니.”
“칫…”
갑옷에 손상을 입은 채 서 있는 용사의 모습.
이를 바라보면서 냐단은 기세 등등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지만, 내심 자동적으로 살짝 혀를 차고 있는 중이었다.
‘칫… 직격 으로 맞았다면 제법 타격을 입혔을 텐데, 그 찰나의 순간에 회피를 해버린 건가?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역시 만만한 녀석은 아니야.’
어지간한 상대였다면 방금 전 일격으로 끝장이 났겠지만, 역시 용사는 그 이름 값을 하듯 호락호락 당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냐단은 딱히 이 상황에 대해 낙심하거나 하지 않았다.
방금 전 그녀가 한 일은 그저 첫 번째 수를 놓은 것일 뿐.
진짜 전투는 사실상 지금부터 시작이라 할 수 있었다.
“한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뭐지?”
갑작스럽게 질문을 거는 냐단.
이에 용사는 투박한 느낌이 드는 목소리로 대꾸를 하였고,
그런 그를 보면서 냐단은 약간의 진심을 담아 질문을 던졌다.
“넌 그 사람, 엘리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엘리사?”
냐단의 질문에 살짝 의외라는 듯한 반응을 내보이는 용사.
이에 용사는 의문이 담긴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 이야기가... 여기서 왜 나오는 것이지?”
“그건 내가 그녀를… 음음… 내가 그녀의 친구이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네놈이랑 그녀가 제법 가깝게 지내는 것 같은데, 친구로서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 해도, 전투중에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군.”
“대답이나 해라. 그리 오랜 시간이 널리는 것도 아닐 텐데?”
대답을 피하려는 용사의 말에, 완고한 태도를 유지하는 냐단.
이에 용사는 작게 한숨을 내쉰 뒤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느낌으로 대답을 해주었다.
“친구 라고 생각한다. 그리 특별하지는 않은… 흔하게 있는 친구 중 한 사람.”
“친…구?”
용사의 말에 살짝 의미심장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는 냐단.
그런 그녀를 바라보면서, 용사는 더 이상 대화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태도를 보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대답이 되었으면 계속 하도록 하지. 여기서 더 이상 시간을 질질 끌 생각은 없다.”
그 말과 함께 그대로 대검을 바로잡으며 공격을 준비하는 용사.
그러나…
그런 용사를 보면서, 이 순간 투구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냐단의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깃들기 시작했다.
‘이겼다.’
*
용사에게 말을 건 그 순간,
냐단은 대화를 하면서도 끊임없이 승리를 위한 계산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었다.
‘현재 녀석과 나 사이의 거리는 약 5m, 이 정도면…’
녀석과의 거리를 측정한 직후 마법을 사용해 은밀하게 가루를 흩뿌리기 시작하는 냐단.
그녀가 사용하는 공격 방식인 분진 폭발은 평소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가루 입자를 생성해 상대를 감싼 뒤 이를 기폭 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단, 폭발이 일어나기 직전의 상황에 한해선 순간적으로 가루의 밀도를 높여야 하기에 한 순간 가루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으나, 이것을 인지한 순간은 이미 점화가 시작된 상황.
그렇게 냐단은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보이지 않는 죽음의 손길을 듬뿍 깔아두기 위해 용사와 짧은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이 완료됨과 동시에 그대로 대화를 중단하는 용사의 행동.
그 직후,
“원한다면!”
“!”
냐단은 그런 용사의 공격을 기다리는 대신 오히려 이쪽에서 기습적으로 용사를 향해 돌진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큭!”
훅!
다음 순간, 그녀가 휘두른 검을 막는 대신 몸을 뒤로 빼면서 회피를 선택하는 용사.
정황상 그는 냐단과 검을 맞부딪힌 순간 폭발이 발생하는 것이라 예측을 하고 있는 듯 보였으며, 이는 실제로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했다.
분진 폭발을 유발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약간의 불씨가 필요했으며, 방금 전 냐단은 이를 위한 수단으로 용사와 그녀의 언월도가 맞붙는 상황에서 발생한 불씨를 이용하였다.
그런 점에서, 지금 이 순간 보이지 않는 가루들의 늪에 빠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용사가 그녀의 공격을 회피한 것은 제법 현명한 선택이라 할 수 있었으나…
이 순간, 냐단의 입가에는 자동적으로 가소롭다는 감정이 담긴 미소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유감이지만, 꼭 무기를 부딪히는 것 만으로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아니거든.’
애초에 이 순간 그녀가 준비한 가루들은 이곳에 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위치는 용사가 그녀의 공격을 회피하면서 물러난…
냐단이 예측하고 있던 바로 그 지점이었다.
그것을 확인한 직후, 손끝에서 마법을 방출해 용사에게 날리는 냐단.
단순하게 보면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하는 작은 마력 탄환을 발사한 수준이었으며 이것에 적중해 봤자 용사에게는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마력탄 자체의 위력에 한정된 것일 뿐.
실제로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 발생한 현상은,
절대로…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
콰광!!
마력 탄환으로 인해 점화되면서 다시금 들려오는 요란한 폭발음.
방금 전과는 달리 제법 거리가 있는 만큼 이번 폭발은 안전을 위해 힘 조절을 할 필요가 없었다.
아울러
어지간한 상대는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산산조각으로 죽임을 당할 정도의 공격.
그것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면서,
한 순간 경기장 안쪽은 검고 붉은 연기가 자욱하게 하늘을 뒤덮기 시작했다.
마치 한 송이의 꽃과 같이 피어나는 죽음의 연기.
그렇게 눈 앞에서 발생한 찬란한 폭발의 장면을 지켜보면서,
냐단은 자동적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 부터 우러나오는 본능적인 설렘이라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확실히.. 싸움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런 기분만큼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니까.’
전투와 투쟁…
그런 것들로 인해 발생하는 스트레스로 인해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걸 가장 싫어하는 냐단 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 냐단은 언제나처럼 눈 앞에 발생하고 있는 폭발을 바라보며 황홀함과 설렘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모든 것을 집어 삼켜버리는 죽음의 화염.
그것을 바라보면서 냐단은 오싹오싹한 황홀함을 느끼며 그대로 승리를 확신하였다.
‘방금 전과는 달리 정확히 들어 갔다, 이걸로 게임 끝. 제 아무리 대단한 녀석이라 해도 이걸 맞고 무사하지는 못하겠지.’
거기다 단순한 공격을 날린 것이 아닌, 한 순간 당혹감에 휩싸여 뒤로 물러나고 있던 용사에게 정확하게 꽂아 넣은 일격.
이런 상황에선 아무리 용사라 해도 이를 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정도 화력이면 최악의 경우 죽지는 않아도 치명상이겠지.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냥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좋겠지만…’
비록 친구라는 표현을 쓰긴 했으나 엘리사와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 용사.
이와 관련해서 냐단은 혹여 발생할지 모르는 불상사를 제거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살기 등등한 표정을 지은 채 눈 앞의 화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어?”
“후…”
다음 순간 그대로 경기장 안의 연기가 사라지면서 나타난 용사의 모습.
방금 전 구겨졌던 갑주가 거의 넝마가 되었으며,
몸 곳곳엔 그을린 자국 같은 것이 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
그의 몸에 특별한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그만한 폭발을 맞고도 멀쩡히 걸어나오고 있는 용사의 모습.
이를 본 순간,
냐단의 얼굴에는 자동적으로 진한 당혹감이 깃들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이런? 방금 전 그걸 맞고 멀쩡할 리가 없는데… 대체… 대체 어떻게..’
자신의 진심이 담긴 공격을 직격으로 받았음에도 이쪽으로 멀쩡하기 그지 없는 용사의 모습.
그러나, 그녀가 여기에 대해 무언가 생각을 하기도 전.
용사는 그대로 검을 들고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큭!”
다급하게 언월도를 바로잡아 그대로 놈의 공격을 방어하려 하는 냐단.
그런데…
깡!!
“어?”
다음 순간 느껴지는 묵직한 충격.
방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격통과 저릿한 감각이 그대로 냐단의 몸을 휩쓸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게? 어.. 어떻게 이런?’
방금 전 격돌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일격.
단 한 번의 격돌이었음에도 말 그대로 단순히 힘에서 밀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냐단은 한 순간 지금의 이 상황이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짙은 혼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훅!
이어서, 그대로 다시 한 번 냐단을 향해 날아오는 용사의 일격.
여전히 방금 전 일격으로 인한 충격이 가시지 않은 이 상황에서,
냐단은 저것을 방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재빨리 몸을 피하였다.
그리고…
쾅!!!
그대로 용사의 일격이 떨어짐과 동시에 발생하는 어마어마한 폭발
냐단의 분진 폭발에 비견되는 충격파가 그대로 일대를 휩쓸었으며,
이에 냐단은 전력을 다해 몸을 뒤쪽으로 빼면서 동시에 가슴 한켠이 서늘해지는 감각을 느끼기 시작했다.
‘만약 저걸 그대로 맞았다면 지금쯤 나는….’
상상을 뛰어 넘는 용사의 초월적인 완력.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것이 아닌, 단순히 마력을 담아 검을 휘두르는 것 만으로도 그녀의 마법에 비견되는 힘을 낼 수 있다는 사실에,
냐단은 비로소,
눈 앞에 있는 이 녀석이…
그녀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괴물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설마… 속이고 있던 것은 나 뿐만이 아니었단 말인가?’
PS: 샤뮤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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