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 용사의 이름을 모독하고 있는 짝퉁!
* * *
환호성을 내지르며 흥분의 도가니에 사로잡힌 마족들
그 사이를 은밀하게 지나면서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그는 조심스럽게 경기장의 상황을 둘러보았다
‘역시,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방비가 매우 삼엄해… 이래가지고선 정공법으로 들어가는 건 어림도 없겠어.’
그나마 통상 적으로는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마왕성에 비하면 양반이긴 했다.
그러나,
이 순간 경기장의 귀빈석에 위치해 있는 마왕의 주변에는 만만치 않은 실력을 지닌 강자 두 명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뜬 채 대기하고 있었다.
거기다 주변에 배치되어 있는 호위병들 또한 하나같이 보통 실력자가 아닌 듯 보이는 만큼, 함부로 접근 했다간 정말 아무것도 못해보고 썰려나갈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아울러, 전대 용사인 엘런조차 썰어버린 마왕의 전투력까지 고려하면 상황은 더욱 암담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검은 로브를 쓰고 있는 그와 그의 동료들은 안 그래도 쥐꼬리만한 가능성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최대한 머리를 굴려 작전을 세워둔 상황이었다.
‘상황은 시합이 분위기가 좀 더 무르익은 후가 되겠지만… 그래도 혹 무슨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 최대한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그렇게 최대한 평범한 관중인 척 위장을 한 상태로, 검은 로브를 쓴 그는 일단 눈 앞에서 벌어지기 시작한 시합을 바라보았다.
“본선 1차전은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신 친위대 사천왕의 냐단님과 요즘 명성이 자자한 검은 용사의 대결 입니다!”
마법으로 확성 된 목소리로 선수들을 소개하는 마족.
그의 말을 들으면서, 로브를 쓴 그는 자동적으로 살짝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이 순간 그의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 것은 경기장 한복판에 서있는 완전무장을 한 두 전사의 모습이었다.
한쪽은 번쩍이는 황금 갑주를 착용한 채 언월도를 들고 있었으며,
다른 한 쪽은 검은 갑주로 전신을 감싼 모습으로 거대한 대검을 들고 있었다.
한 눈에 봐도 누가 검은 용사라 불리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장면.
그러나, 그런 사실과 별개로 이 순간 그는 눈앞에 보이는 저 검은 갑주를 보면서 자동적으로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검은 용사라니... 마족들 중에서 우리처럼 용사를 따라 한 존재가 있다는 건가? 이름만 들으면 일종의 가짜 용사인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는 저 검은 용사라는 자의 모습을 바라보며 저 따위 짝퉁은 진정한 용사에 대한 모독이라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종족 연합 내에서,
용사란 마왕을 처단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마왕국에 침투한 최고의 전사를 의미하며 용사 파티란 그런 용사를 도와 거사를 달성하는데 주력하는 자들을 말한다.
물론, 관점에 따라선 단순히 뱀의 머리를 자르는 것을 목적으로 한 암살자를 거창하게 부르는 말이라고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신의 선택을 받은 용사라는 존재의 이름은 절대로 가볍지 않았으며, 실제로 일반 시민들 중에는 용사가 마왕의 목을 치고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일종의 신앙 같은 것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마왕의 목을 치기 직전까지 갔던 용사 엘런은 대륙의 영웅이라 할 수 있겠지. 비록 그 더러운 배신자들 때문에 실패하긴 했지만…’
팔콘 제국에선 용사 엘런이 마왕을 상대로 졸전을 펼친 결과 패배했다고 공식적으로 선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엘프 교국은 모든 것은 용사파티에 속해있던 자들의 더러운 배신 때문이라는 공표를 한 상황.
그리고 이러한 두 세력의 다른 의견과 관련해서 검은 로브를 착용하고 있는 그와 그의 동료들은 엘프 교국의 말이 옳다는 확신을 지니고 있는 상황이었다.
‘용사 엘런님이 마왕을 상대로 졸전을? 그럴 리가 없지… 그 분의 강함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이야기를 절대로 함부로 할 수 없을걸?’
과거 엘런이 얼마나 강한지를 직접 경험했으며,
동시에 그의 인품이 어떠한지 또한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로브를 착용하고 있는 그는 엘런이 절대로 마왕에게 허망하게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을 지니고 있는 중이었다.
‘지켜봐 주십시오 용사님. 저희들이 반드시 당신의 유지를 이어 대륙의 평화를 가져오고 말겠습니다. 반드시 저 사악한 마왕의 목을…’
그런 생각을 하면서 혹 기회가 된다면 저 가짜 용사의 목도 취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또한 함께 지닌 채 그는 일단 저 짝퉁의 실력이 어느 정도 인지 조용히 지켜보기로 하였다.
‘상대는 친위대 사천왕 중 한 명이라 했지? 누가 이기든 딱히 상관은 없지만… 기왕 이면 용사의 이름을 모독하고 있는 저놈을 아주 곤죽이 되도록 밟아 줬으면 좋겠는걸?’
*
눈 앞에 서 무기를 들고 서있는 용사 엘런을 차가운 표정으로 응시하는 냐단
본선 시작부터 제법 만만치 않은 녀석과 맞붙게 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냐단은 오히려 일이 더 잘 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회복 마법이 있다고 하지만그래도 역시 기왕이면 만전의 상태로 붙는 것이 더 좋겠지. 감히 겁도 없이 나의 엘리사를 탐내려는 놈을 철저하게 응징하기 위해선…’
용사가 상당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으며 지난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다는 사실은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터에선 자주 소문이 부풀려지기 마련인 만큼 그녀는 이것을 그리 믿을만한 이야기라 여기고 있지 않았다.
아울러 다른 친위대 동료들 보다 우월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는 입장에서,
냐단은 제 아무리 잘난 용사라 해도 자신이 질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마왕님한테 쪽도 못쓰고 당해버린 녀석... 물론 어느 정도 힘을 숨기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래봤자 그분과 어느 정도 맞상대를 할 수 있는 내가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어.'
그렇게, 방심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지만 동시에 딱히 위축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을 지닌 채.
냐단은 그대로 자신의 언월도를 바로 잡은 채 이쪽을 향해 검을 겨누고 있는 남자를 보며 말했다.
“각오해라. 용사.”
“덤벼라.”
서로 간에 피차 긴말은 필요 없는 상황.
짧은 대화를 끝으로 두 사람은 그대로 각자의 무기에 마력을 흘려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팍!!!!
다음 순간 그대로 서로를 향해 돌진하며 무기를 휘두르는 두 사람.
어마어마한 힘이 정면으로 격돌하면서, 경기장 중심부에서는 순간적으로 엄청난 풍압이 일기 시작했다.
“이... 이 무슨…”
“단순히 무기를 부딪힌 것 만으로 이렇게…’
관객들조차 느낄 정도로 강렬한 힘의 충돌.
기괴한 소리를 내면서 불꽃이 튀고 있는 두 사람의 무기.
순수하게 힘과 힘으로 맞붙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 장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들이 차기 시작했다.
그때.
“! 저… 저기 봐!”
“냐단님이 밀리고 있어!”
한 순간 힘의 균형이 무너지는 듯 보이면서 뒤로 밀려나기 시작하는 냐단.
이에 친위대의 일원인 그녀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던 많은 마족들의 얼굴에는 순간적으로 당혹감이 깃들기 시작했다.
그때…
“후후훗…”
“!”
짧게 웃음을 흘리는 냐단.
그와 동시에, 용사는 뒤 늦게 무언가를 눈치 챈 듯 그대로 황급히 몸을 뒤로 빼려 하였다.
그러나 그의 반응에 앞서 냐단이 준비하고 있던 수가 움직이는 것이 더 빨랐다.
겉보기와는 달리,
냐단이 노리고 있는 것은 처음부터 이런 정직한 공방이 아니었기에…
“늦었다.”
콰과광!!!!
다음 순간, 냐단의 외침과 동시에 갑작스럽게 발생한 요란한 폭발.
이에 경기장 중심에선 순간적으로 흙먼지가 뿜어져 나왔으며, 이를 지켜보고 있던 관중들은 순간적으로 당혹감에 휩싸이게 되었다.
“큭!...”
“뭐… 뭐야?”
“폭발?”
검을 부딪히던 두 사람 사이에서 발생한 예상 밖의 사태.
그러나, 이 순간 이를 지켜보고 있던 엘리사는 입가에 살짝 쓴웃음을 지어 보이기 시작했다.
“하아.. 역시 이렇게 되는 건가? 하여튼 악취미라니까 저 녀석.”
“방금 그 폭발은.. 분진 폭발인가?”
“응? 어떻게 알았어?”
엘리사의 말에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질문을 하는 샤뮤엘.
이에 대해서 엘리사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지으며 대꾸를 하였다.
“그냥 추측. 방금 전 폭발이 있기 직전. 냐단의 주변에 무언가 가루 같은 게 휘날리고 있었던 것이다.”
“으음… 과연…”
엘리사의 경우 냐단의 능력을 알고 있는 만큼 쉽게 알아 볼 수 있었지만, 샤뮤엘의 경우 단순한 눈썰미 만으로 이를 한번에 파악해낸 상황.
이에 엘리사는, 샤뮤엘이 자신보다 어린 나이 임에도 친위대 이상의 고위 직으로 여겨지는 군단장의 자리에 있는 데엔 역시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며 그녀에 대한 경계심을 한 층 더 높이기 시작했다.
샤뮤엘이라는 여자가 저 저리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완벽한 조형을 이루고 있는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대진표에 따르면 마마하고 붙은 다음 이 녀석과 승부를 벌이도록 되어 있었지… 거기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주의해야겠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금 경기장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엘리사.
그 직후, 그녀의 눈에는 연기 속에서 모습을 내보이기 시작한 용사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록 그 찰나의 순간 회피를 하여 피해를 줄이긴 했지만, 갑옷이 어느 정도 파손된 것으로 보아 피해가 아주 없지는 않은 상황.
그렇게 일단 시작하면서 한 방 먹은 용사의 모습을 보면서, 엘리가는 자동적으로 마음 속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꼭 이겨달라고… 가능하다면. 다른 사람이 아닌 네 손으로 나를 쓰러뜨려 주었으면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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