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 우리 모두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 * *
컴컴한 어둠이 깔린 시간.
검은 로브를 뒤집어 쓰고 있는 한 인물은 조용히 제루살렘의 도로를 가로질러 몸을 숨겼다.
그 직후, 그자가 도착한 장소는 한 어두운 지하실
그곳에는 그를 포함해 네 명의 사람들이 은밀하게 몸을 숨긴 채 대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조금씩 색깔은 다르지만, 하나같이 로브를 뒤집어 쓴 채 모습을 감추고 있는 그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막 방으로 들어온 인물은 짙은 안도감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물었ㄷ.
“다들 별 일은 없었지?”
“물론, 추적당하는 일도 없이 아주 깔끔하게 들어왔어.”
검은 로브를 착용하고 있는 자의 말에, 입구를 지키고 있건 회색 로브를 눌러쓰고 있는 인물은 문을 걸어 잠그며 대답했다.
목소리를 낮춘 채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그들.
비록 이곳을 사방이 꽉꽉 막혀 있는 지하의 밀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사람은 혹여 누군가에게 그들의 소리가 세어나가지나 않을까, 주의에 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중이었다.
“수고했어, 여기까지 무사히 와주었구나.”
“그러는 너야 말로 혼자서 고생 많았어, 그 동안 적진 한복판에서 정보 수집 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다 이 아이템 덕분지. 이 녀석 덕분에 위험할 때마다 마족으로 위장을 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목소리를 낮춘 채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는 동료.
그 직후,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적갈색 로브를 착용하고 있는 이는 작게 헛기침을 한 뒤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고, 조사한 일은 어떻게 되었지? 오는 길에 느낀 것이긴 하지만 무슨 행사가 있다 들은 것 같은데.”
“응, 맞았어. 지금 이곳 마왕국은 무슨 나르실 인가 나실인 인가 하는걸 선별하는 대회를 진행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이야. 특히 이전엔 승전까지 한 직후라 분위기가 더욱 달아올라 있다고 해.”
“나르실이라.. 들어 본 적이 있어요. 마왕국 최고의 전사를 선출하는.. 일종의 무술대회 같은 것이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일행의 대회에 청색 로브를 착용하고 있는 자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고, 여기에 대해서 검은 로브를 쓴 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맞았어. 하지만 단순한 무술대회가 아니라 사실상 축재라 봐도 무방하겠지. 당장 이 앞에만 해도 노점상들이 즐비하게 깔려 있고 다른 지역의 고위 마족들도 관광을 위해 몰려오고 있는 중이니까.”
“과연… 어쩐지 경계가 많이 허술한 듯 보였는데 다 이유가 있었군요.”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도시 안까지의 이야기이고, 실질적으로 우리의 목표물에 대한 경계는 더욱 강화되었지만 말이야.”
검은 로브를 쓴 사람의 말에 그곳에 있던 이들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직후, 무리의 대장인 적갈색 로브차림의 인물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상관 없다. 다들 알겠지만 우리들은 지금 전 대륙의 마지막 희망으로서 이 자리에 모여 있는 몸.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반드시 거사를 성공시켜야만 해.”
“물론. 대륙의 평화를 위해서 반드시 그렇게 해야겠지.”
“설령 저희 모두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전대 용사님인 엘런 세이비어님의 유지를 이어서… 반드시 마왕의 목을 치고 말겠어.”
결연한 각오를 담아 한 마디씩 하는 이들.
이에 적갈색 로브를 착용하고 있는 자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자신의 앞에 펼쳐 있는 도시의 지도를 보며 말을 이었다.
“정보에 따르면 마왕은 평소 방비가 철저한 이곳 마왕성에 머무르고 있지만, 대회 중에는 여기 있는 투기장에서 친히 경기를 지켜보도록 되어 있다고 들었다. 우리에게 있어선 사실상 유일한 기회라 할 수 있지.”
“하지만 조심해야 해. 아무리 경비가 허술해 졌다 해도 마왕을 지키고 있다는 친위대는 만만치 않은 강자라 들었어.”
“거기다 투기장 안에는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괴물이 있을지도 모르지. 상황에 따라선 시작도 하기 전에 붙잡힐 지도 몰라.”
“말하지면 이것도 일종의 도박이라는 뜻이군요. 저희 들의 목숨을 걸고 마왕의 목을 따기 위한 도박…”
냉정하게 말하자면, 도박 중에서도 특히 위험도가 높은 일이라 할 수 있는 마왕에 대한 암살 시도.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 그들은 이미 이 위험한 판에 올인을 하기로 결정을 한 상황이었다.
종족 연합이 붕괴되고 내전의 기운이 명확하게 느껴지고 있는 지금,
사실상 더 이상 뒤돌아볼 곳이 없는 상황에 처해있는 그들에게 있어선,
지금 이 순간.
오직 이것만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할 수 있었다.
*
대회장에 모인 수 많은 사람들.
콜로세움을 연상시키는 원형 투기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수천에 달하는 마족들을 보면서, 난 마음 속으로 살짝 긴장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거… 생각했던 것 보다 대단한 걸? 이야기로 들었던 것 보다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야.”
“뭐, 그렇지. 본래부터 마왕국의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였고, 거기다 승전이라는 상황까지 맞물리면서 분위기가 더 달아올라 있으니까. 그럼 점에서 보면 확실히 40년 전 마지막 대회 때 보다 더욱 달아오르는 느낌이 드는 구나.”
나의 말에 당연하다는 목소리로 상당히 오래 전의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엘리사.
이를 보면서, 난 새삼스럽지만 그녀의 나이가 겉보기와는 달리 매우 많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인지할 수 있었다.
‘뭐 당장 우리 마왕님 나이도 엘리사보다 더 많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조금 당혹스러운 건 어떨 수 없다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난 다시 한번 관중석을 가득 메운채 바글바글 몰려 있는 마족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솔직히, 이 순간 난 승부 자체에 대한 우려나 부담은 거의 지니고 있지 않았다.
당장 마왕국 최강자인 마왕조차도 이길 수 있는 전투력을 소유하고 있는 지금의 나였다.
압도적인 완력과 마나의 량. 그리고 이 세계에 온 직후부터 지극히 익숙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전투에 대한 기술과 감각까지.
비록 이 몸 안에 담겨 있는 정신은 온전한 내가 맞았지만, 전투에 대한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은 용사의 그것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만큼 이번 선별전에서 내가 패배할 요소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나, 이러한 측면과는 별개로 역시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받으며 전투를 치른다는 것은 여러모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전쟁터에서도 수많은 적들의 주목을 받긴 했지만, 그것과 이것은 또 전혀 다른 느낌.
나에게 막연한 기대와 흥분이 담긴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여러모로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이런 일에 긴장을 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부담이 되는 건 어쩔 수 없구나.’
그러나, 이런 감정과 별개로, 난 딱히 저들의 기대에 부응해주는 멋진 시합을 보여주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온 힘을 다해서 눈 앞에 있는 상대에게 검을 휘두른다.
힘을 보여주고 이를 인정받기 위해 나온 자리인 만큼,
소위 말하는 ‘팬 서비스’나 화려한 ‘연출’ 같은 걸을 보여줄 여력 따위는 나에게 없었다.
‘뭐, 어떻게 보면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는 것이야 말로 팬 서비스가 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의 시선은 그대로 대회장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특실 쪽으로 향하였다.
그 직후 나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마왕의 모습.
일전에 연회 때와 같이 면사포를 쓰고 있는 그녀는 경기장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난 다시 한번 마음 속으로 앞으로의 일에 대한 각오를 다지기 시작했다.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지. 애인으로서… 마왕을 실망시키지 않을 만큼 완벽한 승리를 거머쥐고 말겠어.”
그런 생각을 끝으로, 난 그대로 대회장에서 시선을 돌린 뒤.
이 순간도 나의 뒤쪽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대기실이라 할 수 있는 장소에 앉아 있는 한 무리의 전사들.
그 중 몇몇은 나나 엘리사와 같이 이미 어느 정도 검증된 실력으로 본선에 자동 입장한 이들도 있었지만,
이 중에서 적잖은 수는 사전에 진행된 예선을 통과하고 이 자리에 오른 이들이었다.
‘원작에선 이름조차 없던 녀석들도 많이 있네. 그나마 군단장들이나 친위대 들은 어느 정도 실력을 가늠이라도 해 볼 수 있겠지만… 과연 저 녀석들을 어떨까?’
소위 말하는 은둔 고수란 어디에든 있기 마련이었으며, 이는 이 개인의 무력으로 수천에 달하는 힘을 낼 수 있는 이 세계에서 도욱 두드러진 현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만에 하나의 위험에 대한 부분에 대한 부분을 염두 해 둔 채.
나의 시선은 그대로 벽쪽에 막 게시된 대진표가 있는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어디보자… 내 1차 전 상대는… 처음 보는 신입인가?”
대진표에 나와 있는 이름을 살펴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엘리사.
확실히 그녀의 상대에 대해선 원작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은 거의 다 알고 있는 나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나도 신입… 재미있을지 모르겠다.”
그 직후, 언제 나타났는지 알 수 없는 느낌으로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또 다른 인물의 무미건조한 목소리
그곳에는 이모티콘….
아니, 군단장 샤뮤엘이 ●△● 한 표정을 지은 채 대진표를 올려다 보고 있는 중이었다.
‘확실한 실력자들은 일부로 신인을 붙여주는 건가? 여기에도 일종의 시드 같은 룰이 있는지도 모르겠네.그러면 어쩌면 나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난 계속해서 내 이름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네 첫 상대는 나다. 용사.”
“…!”
다음 순간 나의 뒤쪽에서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
그곳에는, 일전에 보았던 그 황금 갑옷 차림의 친위대 사천왕.
냐단이 기세 등등한 기척을 발산하며 서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