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 존재감이 흐릿한 친구 녀석
* * *
황금 갑주를 걸친 채 눈에 띄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인물.
친위대 사천왕중 한 명인 냐단의 모습에, 엘리사의 부하들은 살짝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설마 이런 곳에서 냐단님을 만나 뵐 줄이야.”
“저기.. 기왕 이렇게 된 거 한 번 식사라도 권유해 볼까?”
회사로 치면 평소 눈 여겨 보고 있던 직장 동료에게 말을 붙이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마족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일반적인 마족들 사이에서 친위대나 군단장은 현재로 치면 연예인 이상의 위상을 지니고 있는 존재라 할 수 있었다.
나라를 대표하는 영웅이자, 힘의 상징과 같은 존재.
그런 만큼, 엘리사의 부하들은 이 순간 자신들의 눈앞에 보이는 냐단에게 진한 관심을 내보이며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저.. 저기!”
“안녕하십니까 냐단님!”
“너흰….엘리사의 부하들?”
그들의 말에 무뚝뚝한 어조로 대답을 하는 냐단.
비록 황금 갑주로 전신을 감싸고 있었지만 그자에게서 들려오는 명확한 목소리를 통해서 난 그자의 성별이 여자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한편, 자신들의 말에 대답해준 냐단을 보면서 엘리사의 부하들 중 제법 적극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마족은 살짝 긴장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네 그렇습니다 냐단님. 보시다시피 저희는 지금 엘리사님과 함께 순찰을 진행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렇군. 엘리사. 거기 있었구나.”
그 말과 함께 슬쩍 이쪽에 서 있는 엘리사를 바라보는 냐단.
이에 엘리사는 순수하게 친구를 만났다는 사실에 살짝 반가움이 담긴 미소를 지어 보였으며, 여기에 대해서 냐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변을 하였다.
그리고 그 직후, 그런 냐단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에게 말을 걸었던 마족들은 약간의 기대가 담긴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이렇게 냐단님을 만나 뵙게 되어 참으로 영광입니다.”
“사실 안 그래도 지금부터 저희는 식사 시간을 가지려 하고 있었습니다.”
“혹 괜찮으시다면 저희와 함께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제법 적극적으로 자리를 함께 하자는 권유를 하는 엘리사의 부하들.
그러나,
그런 그들의 제의에 대해서 냐단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미안하군, 난 바로 왕성으로 가 봐야 한다. 추후에 기회가 되면 그때 자리를 갖도록 하지.”
“아…네.”
“아쉽군요... 그러면 다음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깔끔한 목소리로 제안을 거절한 뒤, 그대로 엘리사를 슬쩍 바라보는 것을 끝으로 사라지는 냐단.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무뚝뚝한 태도를 내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엘리사의 부하들이 조금 씁쓸한 기분을 느끼기 시작하던 그때였다.
“시도는 좋았지만, 상대가 썩 좋지 않았어.”
“엘리사님?”
“그게 무슨…?”
약간의 위로를 담아 이야기를 하는 엘리사.
그녀의 말에 엘리사의 부하들은 의문이 담긴 표정을 지어 보았으며, 그런 그녀들에게 엘리사는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저 녀석은 낮을 좀 많이 가리는 성격이거든, 친구인 나 같은 경우는 안 그러지만 평소에 다른 사람하고 어울리는 걸 많이 부담스러워 하는 경향이 있어.”
“아… 네.”
엘리사의 말에 아쉽다는 반응을 보이는 마족들.
이어서 엘리사는 약간 덤이라는 느낌으로 부연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냐단 요시야. 330살 독신. 친위대 중에서 가장 성실한 성격의 녀석이지만 그렇다 해서 딱히 눈에 띄는 열정을 보이지는 않는 녀석이야. 나쁜 녀석은 아니지만 낯을 잘 가리는 성격 탓인지 굳이 남들하고 어울리려 하지도 않고, 어떤 일에 잘 흥미를 보이지도 않는 말하자면 존재감이 흐릿한 놈이라 할 수 있지.”
“그렇군요.”
친구라는 말이 장식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듯 엘리사는 그녀의 약력을 줄줄 읽어주었고,
이를 들은 다른 마족들은 그제서야 지금의 이 상황을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뭐라고 할까… 저렇게 번쩍이는 황금 갑주를 입고 다니면서도 눈에 잘 안 띄었던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아쉽습니다. 그래도 친위대 사천왕 중 한 분으로서 개인적으로 동경하고 있던 분이었는데.”
“그나마 내가 있어서 인사라도 하고 간 것이지, 아니었으면 그대로 뿅 증발해 버렸을 거야. 하여튼… 여러모로 곤란한 친구라니까.”
그렇게 쓴웃음을 지어 보이며 이야기를 하는 엘리사
그렇게 냐단에 대한 이야기가 끝난 직후, 마족들 그대로 식사를 하기 위해 흩어지기 시작했다.
한편, 그렇게 짧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냐단이라는 마족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난 조심스럽게 엘리사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저분도 일전에 본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왕성에서 슈드와 싸웠었지요?”
“슈드라면 그 마도국의 마녀를 말하는 것이지? 아마도 맞을 거야. 나도 아멜다를 상대하느라 바빠서 정확히 보지는 못했지만.”
“제가 알기로 마도국에서도 슈드 급의 마법사는 세 명이 채 안 된다 들었는데 그런 자와 맞붙을 정도라면 역시 보통 강자가 아니겠지요.”
“확실히 보통은 아니지, 우리 친위대 사천왕 중 순수하게 무력만 따지만 저 녀석이 최강일 테니까. 거기다 듣자 하니… 의외로 저 녀석도 이번 나르실 선별전에 나온다고 했던 것 같아.”
“그렇군요… 경우에 따라선 어쩌면 저희들의 대전 상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게. 아마도 분명 그렇게 될 것 같아.”
그 말과 함께 나름 비장한 각오를 내보이는 엘리사.
한편, 그녀의 이런 태도와 별개로 이 순간 난 방금 전 마지막으로 느껴졌던 저 냐단이라는 마족의 기척을 다시금 떠올리기 시작했다.
‘뭐라고 할까.. 한눈에 봐도 나를 썩 좋아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말이지… ’
순간적으로 느껴졌던 적개심과 유사한 감각.
비록 투구로 인해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난 그것이 절대로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딱히 저 녀석하고는 특별한 접점도 없었지만… 그래도 일단은 주의해야겠어. 단순히 마족으로서 인간을 싫어하는 것일 지도 모르니까.’
*
“하아….”
엘리사 일행의 시선에서 벗어나 인적이 드문 골목 안으로 들어간 냐단.
그 직후, 그녀의 입에선 그대로 무거운 한숨 소리가 흘러 나왔다.
황금 갑주에 감싸진 터라 명확한 상태를 알 수 없는 그녀의 몸.
그러나…
이 순간 냐단은 무언가 감정을 억누르는 듯 몸을 떨고 있었다.
숨소리를 거칠었으며, 몸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그녀가 크게 동요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명확하게 보이는 불안정한 감각 속에서.
이 순간, 냐단의 마음 속에는 두가지의 격렬한 감정이 꿈틀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 중 한가지를 억누르기 위해 늘 지니고 다니던 펜던트를 꺼내는 냐단
그 안에는…
방금 전 그녀가 봤던 그 사람의 작은 초상화가.
엘리사의 초상화가 담겨 있었다.
‘위험했어… 엘리사… 역시 오늘도 너무 치사할 정도로 예쁘잖아…’
방금 전 정말로 우연히 만나게 되었던 그녀의 작은 은백색 친구.
그녀의 모습을 수 없이 떠올리면서, 냐단은 떨려오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이었다.
‘아아.. 엘리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넌 역시 최고야… 그 반짝이는 붉은 눈동자며 백옥 같은 피부. 어쩌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그 눈길로 나를 바라본 순간 하마터면 심장이 멎을 뻔 했어…’
단순하게 보면 그저 평범한 친구 사이일 뿐인 엘리샤와 냐단.
그러나, 냐단에게 있어서 엘리사라는 존재는 절대로 평범한 친구로 여길 수는 없는 존재였다.
과거, 일개 군관이었던 시절 우연히 마주하게 된 엘리사.
당시 이미 친위대 사천왕의 일원이었던 그녀를 본 순간, 냐단은 한눈에 그녀에 대한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아무것도 관심이 없이 황량하기 그지 없던 그녀의 삶에 한 송이 꽃봉오리가 피어난 것 같은 감각.
그러한 감정은, 늘 무미건조하기 그지 없단 냐단의 삶에 한가지 목표를 안겨주게 되었다.
무슨 수를 써서든 그녀를…
저 엘리사라는 이름을 지닌 미의 결정과 같은 존재를 차지하고 말겠다는 목표를 말이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서 냐단은 그리 관심이 없었던 전투 훈련과 출세의 길에 전력을 다해 매진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그녀 스스로도 알지 못하고 있던 천부적인 재능이 발현된 결과,
냐단은 어느 순간 친위대 사천왕의 일각이자 줄곧 동경해 왔던 엘리사와 자연스럽게 ‘동료’로서 친해질 수 있는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렇게, 줄곧 원하던 대로 엘리사의 친구가 되는 데 성공한 냐단.
비록 그녀가 지니고 있는 소심한 성격으로 인해서 아직 적극적으로 어필을 하고 있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다리가 놓여진 시점에서 일은 반쯤 성공 했다고 냐단은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자주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하고 단 둘이 어울려 놀기도 하는 만큼 이미 엘리사와 친구를 넘어선 무언 가라 해도 손색이 없는 관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던 냐단.
그러나.
요 며칠 사이에,
그렇게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던 냐단의 계획에는 정말로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들어서고 말았다.
‘용사… 어디서 굴러 쳐들어왔는지 모르는 돌멩이 따위가 감히 나를 방해하다니..’
어느 순간부터 엘리사의 곁에 나타난 존재인 용사.
그와 함께 있는 엘리사의 모습을 본 순간, 냐단은 단번에 인식할 수 있었다.
현재 엘리사의 마음 속에는, 용사에 대한 사랑이라는 감정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줄곧 엘리사의 몸과 마음을 함락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던 냐단에게 있어서 이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상황.
실제로 방금 전에도 저 더러운 용사놈이 엘리사와 노닥 거리를 꼴을 보면서 냐단은 속이 뒤틀리는 듯한 분노를 느꼈으며, 이를 억누르기 위해 전력을 다해 그곳을 벗어나야만 했다.
그러나, 이처럼 감정을 억누르는 것은 어디까지나 미봉책일 뿐.
이와 관련해서 냐단은 이 순간도 저 더러운 용사놈에 대한 분노의 칼날을 드륵 드륵 갈며 응징의 기회를 엿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기회는…
조만간 다가오게 될 나르실 선별전이라는 최고의 무대가 될 예정이었다.
‘딱히 스트레스가 쌓이는 싸움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난 한번 진심으로 붙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아. 용사… 반드시 네놈의 그 더러운 콧대를 짓밟아 주고 말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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