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 역시 처음부터 눈치 채고 있었군
* * *
처음 보는 미녀와 함께 나타난 마왕국의 재상 벨제뷰티.
이 순간, 그녀는 평소 약간 까칠한 느낌이 드는 인상과 달리 무언가 재미 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동생이 조금 긴장한 나머지 약간의 무례를 저지른 것 같은데...”
앞쪽에서 안절 부절 못하고 있는 마족 여성의 어깨를 부드럽게 끌어 안으며 이야기를 하는 벨제뷰티.
이어서 그녀는 마치 꿀이 떨어지는 것 같은 농밀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아무래도, 그 유명한 용사님을 만나게 된 터라 제법 긴장을 한 모양입니다. 부디 이 아이의 실수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괜찮습니다. 이 정도 일은 딱히 문제 될 것도 없습니다.”
솔직히 무례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단순하게 말을 걸었을 뿐인 만큼, 난 가볍게 이를 넘어가 주었다.
물론 팔콘제국의 깐깐한 귀족들 중에는 이만한 일에도 온갖 지랄을 떠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 입장에선 그럴 이유도 없었고 그런 성격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나의 반응을 보면서.
벨제뷰티는 끌어안아주고 있던 그녀를 품에서 놓아준 뒤, 생글생글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에스더 입니다. 저의 친척 동생으로 왕궁 파티에는 오늘 처음으로 나온 몸이지요.”
“바… 반갑구… 습니다. 에스더라 합니다.”
나를 보면서 살짝 경직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그 에스더라는 이름의 여성 마족.
솔직히 외모만 보면 오히려 벨제뷰티쪽이 연하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드는 외모를 지니고 있는 그녀였지만,
애초에 엘리사라는 완벽한 예시가 있는 만큼 난 마족들 중에는 외모와 실제 나이에 괴리가 상당히 큰 사람들이 제법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일단 소개를 받은 입장에서. 난 그대로 에스더를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하였다.
“용사… 엘런 세이비어라 합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에스더양.”
“으음…”
나의 인사에 대해서 빳빳한 느낌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에스더.
이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난 한눈에 봐도 그녀가 바짝 긴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었다.
‘날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긴장하고 있는 건가? 뭐 확실히 이래저래 용사라는 이름을 달고 한 일이 적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에스더의 반응을 보면서 나도 마족들 사이에서 제법 유명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였다.
“어머, 그러고 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실례했습니다. 지금부터 전 친위대의 일원으로서 마왕 폐하의 호위를 맡으러 가야 해서, 지금 바로 물러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 아.. 아니… 자 잠시만.”
갑자기 회중 시계를 꺼내보며 다급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벨제뷰티.
그와 동시에, 그녀의 곁에 있던 에스더의 얼굴에는 순간적으로 당혹감이 깃들기 시작했으나 벨제뷰티는 그대로 달아나듯 그곳을 떠나면서 기분 좋은 목소리로 한 마디를 남겼다.
“그럼 에스더, 이 언니는 일하러 가볼 테니 용사님이랑 잘 놀고 있으렴. 나중에 보자.”
“네? 그.. 그게 무슨..”
“저.. 저기?...”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나에게 에스더를 맡겨버리는 벨제뷰티.
그녀의 이런 태도에 난 갑작스럽게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무슨… 뜬금없이 나타나서 이런 식으로 동생을 나한테 던져놓고 간다고?’
차라리 평소에 친했던 사람이라면 모를까, 늘 나를 향해 경계심을 내보이던 그녀의 이런 행동에 대해서 난 여러모로 의문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약간 미묘한 느낌으로 에스더와 둘이 남게 된 상황에서 내가 혼란에 빠져 있던 그때…
“…저기…”
“ㄴ…네?”
다음 순간, 그대로 조심스럽게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하는 에스더.
이어서 그녀는 그대로 나의 옷자락을 잡은 뒤 이를 살짝 잡아 당기며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잠시… 따라와 주실 수 있겠습니까? 잠깐이면 됩니다.”
“…뭐.. 그러지요.”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 채, 간절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부탁하는 에스터.
이에 난 여러모로 의문과 경계심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일단은 그녀의 부탁에 따라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일단 지금 이 상황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위해선…
정확히 말하면, 벨제뷰티가 왜 이런 상황을 꾸몄는지 알기 위해선 우선 호랑이 굴로 들어가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일단 저 벨제뷰티가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일을 했을 리가 없는데, 대체 속셈이 뭐지?’
그렇게 여러모로 의문을 느끼면서 난 일단 옆에서 나와 함께 걷고 있는 에스더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한눈에 봐도 무언가 긴장한 태도를 내보이고 있는 한 명의 아름다운 미녀.
솔직히 마왕과 연인이 아니었다면 남자로서 제법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문득 나의 머릿속에는 그녀의 이런 미모와 방금 전 벨제뷰티의 태도와 관련해서 한가지 가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설마… 이건 그것인가? 이런 미녀를 곁에 붙여주는 것으로 나와 마왕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들려는…’
정황상 마왕은 나와 그녀의 관계를 그녀가 신뢰하고 있는 측근인 벨제뷰티에게 이야기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줄곧 인간인 나를 경계하고 있던 벨제뷰티의 입장에선 여러모로 달갑지 않은 일일 터.
그런 점에서 봤을 때 벨제뷰티는 어떻게 해서든 나와 마왕을 떼어놓으려는 생각을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으며, 이를 위해서 자신의 가문 사람이자 상당한 미인인 에스더를 내 곁에 가져다 놓을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간질… 이라고 보기엔 당장 마왕이 바로 앞에 앉아 있었던 만큼 조금 많이 허술했어, 그렇다면 역시 회유나 협박 쪽일 가능성이 높으려나? 이만한 미녀를 붙여 줄 테니 알아서 마왕과 헤어지라는…’
물론 자세한 이야기는 나와 함께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하고 있는…
짐짓 소심함을 연기하고 있지만.
실상은 이런 일에 동원될 정도로 능구렁이 같은 면모를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조만간 들을 수 있을 터.
그렇게 내가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며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고 있던 그때,
마침내 에스더는 발걸음을 멈춘 뒤 그대로 천천히 나를 돌아보았다.
이 순간우리들이 도착한 장소는 마왕성의 외진 곳에 위치한 한 작은 정원이었다.
주변에 다른 사람의 모습은 일체 보이지 않은 채,
그저 작은 들벌레 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는 조용하기 그지 없는 장소.
그곳에서.
에스더는 달빛을 받으며 숨막힐 듯한 미모를 발산하면서 그대로 나를 보며 말했다.
“…이쯤이면 되겠지. 주변에 보는 눈도 없으니..”
방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어조로 이야기를 하는 에스더.
이에 난 더 이상 남들 눈치가 볼 필요가 없는 곳에서 그녀가 비로소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층 더 진한 경계심을 지닌 채 말했다.
“확실히 여기라면 서로 부담 없이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요, 그럼… 무슨 사정이 있길래 이런 장난을 치고 있는지. 어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과연… 처음부터 눈치 채고 있었다는 건가? 역시 용사다운 통찰력이로군.”
나의 말에 무언가 조금 기쁜 듯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는 에스더.
이에 난 마치 대전을 앞두고 플레이어를 칭송하는 보스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 대단할 건 없습니다. 당장 벨제뷰티님이 저에게 동생을 맡길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부터 여러모로 틈이 많았으니까 말이지요.”
“그런가?... 그래도 혹 이 모습을 보면서 조금은 흔들리거나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유감이지만 이래 보여도 임자가 있는 몸으로서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는 짓을 벌일 만큼 줏대가 없지는 않습니다.”
미인계를 시도하려 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에스더의 말에 대해서 난 단호하게 대꾸하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NTR을 극도로 혐오하는 나에게 있어서 이 시점에서 연인 관계를 맺은 마왕을 배신하는 짓은 결코 할 생각이 없었다.
설령 상대가 아무리 대단한 미인이라 해도, 이에 넘어가서 사랑을 배신하는 추잡한 짓거리는 나의 신념이자 인생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짓.
그때…
그렇게, 네년의 유혹 따위에는 넘어가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을 하는 나를 보면서.
에스더는 어째서인지 적의나 불쾌감을 표하는 대신...
그대로 살짝 얼굴을 붉히며 작게 웃음을 지어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짐의 걱정은 한낱 기우였던 것 같구나.”
“…네?”
다음 순간, 무언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기묘한 느낌이 드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에스더.
이에 대해서 난 한 순간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했으나…
그런 나의 반응에 대해 신경 쓰지 않은 채 에스더는 미소가 담긴 얼굴을 한 채 말을 이어나갔다.
“미안하다 용사여,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잠시 동안 그대까지 속이는 결과를 만들고 말았구나. 하지만… 이 또한 앞으로 우리의 관계를 위해서 필요한 작업이었으니 너무 불쾌하게 생각하지는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니 그게 무슨…?!!!”
에스더의 입에서 나온 말을 통해 무언가를 인식하기 시작한 나.
그 직후 난, 뒤늦게 깨닫게 된 한가지 사실에 대해 진한 혼란과 당혹감을 느끼면서,
그대로 조심스럽게 운을 띄우는 느낌으로 에스더에게 말을 걸었다.
“저.. 저기..…마… 마왕… 폐하?”
“응? 왜 그러느냐 용사여?”
‘헐 씨발.. 진짜였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