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 더 이상 욕보이지 마라!
* * *
눈 앞에 보이기 시작한 갈릴리성의 모습.
그곳을 바라보면서 아멜다와 그녀를 따라온 백 여명의 병사들은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위험한 고비를 몇 차례나 넘기긴 했지만. 다행히 별 탈은 없었네.’
‘의외로 마족들의 방비가 허술하긴 했지. 주요 통로나 성 이외의 지역은 거의 순찰을 돌지 않았으니까.’
대규모 군세의 이동이 아닌 자잘한 이동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이던 마족들의 모습.
이에 대해서 아멜다와 병사들은 마족들이 지난 승리에 도취되어 긴장이 풀어져 있는 것이 아닌 가 하는 추측을 하게 되었다.
‘어차피 자잘한 녀석들이 돌아다녀 봤자 전세를 바꿀 수는 없다 뭐 그런 것인가?’
‘단순하게 병력이 조금 부족해 보이는 듯 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역시 아무래도 그건 아니겠지…’
물론 이와 관련해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없었으며,
실제로 어느 정도 완화되어 있는 방비 불구하고 제법 아슬아슬했던 순간이 있었던 만큼 그들은 행군을 하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하지만.
드디어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갈릴리 성이 보이고 있는 이곳에 도착한 순간,
그들은 자동적으로 살짝 긴장이 풀어지는 기분을 느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여전히 제법 거리가 있었지만, 그들의 눈에는 바람에 펄럭이고 있는 종족연합의 깃발이 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단언 할 수는 없지만 높은 확률로 아직 갈릴리 성은 마족들의 손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다행이군요, 아직까지 무사한 듯 보입니다.”
“잠시만… 그래도 혹 모르니, 일단은 상황을 좀 살피고 움직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만에 하나 적들의 기만술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지요.”
“아…네.”
“알겠습니다. 아멜다님.”
가능성은 낮았지만,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는 태도를 보이는 아멜다.
이에 병사들은 확실히 여기까지 와서 마지막까지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의 말에 동의를 하였다.
“좋습니다. 허면 제가 직접 다녀오도록 하지요.”
“네? 아.. 아멜다님께서 직접 말입니까?”
“위험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확실치는 않지만 만약 정말로 저것이 적들의 함정이라 한다면…”
혹시나 하는 우려의 감정을 담아 이야기를 하는 병사들.
그러나,
그런 그들을 보면서 아멜다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여기 오기 전부터 각오하고 있었던 일. 거기다 만약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이 중에서 가장 전투력이 뛰어난 제가 가는 것이 대처를 하기에도 용이할 것입니다.”
“으음…”
“그건 그렇습니다만…”
확실히 용사파티의 일원이었던 아멜다의 실력이라면설령 저들이 함정을 파놓았다 해도 이를 역으로 털어버리고 나올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애초에 여기까지 오면서 겪었던 아슬아슬한 위기를 모면한 것도 아멜다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매우 어려웠을 터.
그렇게 병사들은 아멜다의 의사를 존중하기로 결정했고, 그런 그들을 보면서 아멜다는 진지함이 담겨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두 시간 이내로 제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때는 무슨 일이 있는 것으로 알아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허면 그 동안 저희들은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네, 그럼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혹 무슨 일이 생기거든 바로 퇴각하도록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아멜다님.”
그렇게 명확한 상황 파악을 위해 떠난 아멜다와 잠시 이 자리에서 대기하게 된 병사들.
대기라고는 하지만 상당히 먼 거리를 쉬지 않고 달려온 여파로 인해 그들은 짙은 피로감 속에 잠시 휴식을 취하는 양상을 보일 수 밖에 없었다.
“후… 그래도 어찌어찌 여기까지 오긴 했군.”
“그러게나 말일세. 이제 남은 것은 갈릴리에 있는 병사들과 함께 돌아가는 것 뿐이겠지. 솔직히 거기서부터 진짜 어려운 일이겠지만.”
본래라면 못 해도 1000여명에 가까운 병력이 주둔하고 있도록 되어 있는 갈릴리 성이었으며,
설령 그 사이에 전투가 있거나 해서 병력이 줄었다 해도 최소 수백에 달하는 병력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만한 자들과 함께 퇴각을 하는 것은 분명 여기까지 왔던 것 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 될 터.
그렇게, 엘프 병사들은 휴식과 더불어서 이어질 상황에 대한 우려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때…
투둑!
“!”
“어?”
다음 순간,
그들의 귓가에 들려오는 작지만 또렷한 소리.
수풀 사이에서 무언가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는 듯 한 소리에, 병사들은 그대로 다급하게 무기를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적...인가?”
“아,아마도..."
“제길… 하필이면 이럴 때…”
또렷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들의 귓가를 찌르는 듯이 들려오는 소리.
그리고 엘프라는 종족의 특성상 더욱 또렷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기척을 통해서, 그들은 알 수 있었다.
이 순간, 이 근처에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그들의 ‘적’ 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어떻게 하지? 아무래도 녀석들 바로 이 앞에 있는 것 같은데…”
“일단 진정해. 괜히 경거망동 했다간 오히려 낭패를 보는 수 가 있으니까.”
불안에 떨면서도 어떻게든 서로를 다독이며 냉정함을 유지하려 하는 엘프 병사들.
그러나,
그들의 이런 태도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모여있는 100여명의 엘프 병사들은 그대로 온 몸이 빳빳하게 굳어 있는 듯 한 기분을 느끼면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차라리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모를까.
이런 숲 속에서 적들의 기척을 감지하는데 익숙한 엘프들에게 있어서 근처에서 느껴지는 적들의 존재는 너무나 도 명확하게 와 닿고 있는 중이었다.
못해도 수백 에서 수천은 되는 듯이 느껴지는,
살의를 발하고 있는 무수한 적들의 움직임.
그 생생하게 느껴지는 감각 속에서 무기를 든 손에 힘을 쥔 채,
엘프들은 점점 더 팽팽해지는 긴장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제길...정말로 함정이었다는 건가?'
'위험해. 놈들의 포위가 점점 두꺼워지고 있어. 이대로 가다 간 꼼짝없이...'
그때.
“!야.너도 느꼈지?”
“!... 으…응!”
다음 순간, 그들의 감각을 속에서 또렷하게 인지 되고 있는 적진의 움직임.
그와 동시에,
그곳에 있던 엘프 병사들의 시선은 그대로 한곳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사방을 에워싸고 있는 듯 느껴졌던 ‘적’들의 존재.
그것은 한 순간 한 방향을 기준으로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마치 보다 빽빡하게 주변을 에워 싸려는 과정에서 우연치 않게 포위망에 구멍이 생긴 듯한 느낌.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결단 빠른 병사들은 다급한 목소리로 옆에 있는 동료에게 말했다.
“뛰자.”
“ㅁ…뭐?”
“뛰자고!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어!”
“아!”
그 말과 함께 그대로 수풀을 해치고 나무를 뛰어 넘으며 앞으로 달려나가는 엘프 병사와 그의 뒤를 따르는 나머지 사람들.
그들은 그대로 마치 구멍 뚫린 새장에서 순식간에 빠져 나가는 새 때와 같이 재빠르게 그곳을 벗어나 앞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워낙 급하게 움직인 탓에 나뭇가지에 몸이 긁히고, 일부는 다리를 삐기까지 한 상황.
그러나 이 순간 엘프 병사들은 이런 자잘한 것들을 신경 쓰거나 다른 무언가를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여전히 그들의 뒤쪽에선 적들이 내뿜고 있는 흉흉한 기척이 느껴지고 있었으며. 아슬아슬하게 그들을 집어 삼킬 듯한 기세로 빠르게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은 일단 이 악마의 아가리와 같이 느껴지는 적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이 정답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렇게 얼마나 달렸는지 확신할 수 없을 정도의 사간이 지난 직후. 간신히 자리에 멈추어 선 엘프들.
다행히 그들의 주변에는 더 이상 방금 전과 같은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 대가로 그들은 자신들의 목표였던 갈릴리 성의 영역에서 서의 완전히 벗어나 버렸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들에게는 한 발자국 뒤늦게 서야 비로소 인지하게 된 사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잠시만!그러고 보니 아멜다 님은?”
“! 큭..."
*
“큭…”
자신의 주변을 완전히 에워싸고 있는 마족들.
그리고, 그녀의 그림자에서 솟아나 그녀의 목덜미에 칼날을 겨누고 있는 한 여성 마족.
은빛으로 빛나는 머리칼에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고 있는 소녀의 외형을 지닌 그녀는, 입가에 차디찬 미소를 지은 채 아멜다를 보면서 말했다.
“오랜만이군, 그 사이에 때깔이 더 더러워진 걸로 봐서 고생을 좀 했나 보지?”
“ㄴ…넌… 설마… 예전에 마왕성에서 그…”
여전히 그림자에 반쯤 동화된 상태로, 일전에 본 적이 있는 초록빛 단검을 들이밀고 있는 그녀의 모습.
이를 통해서, 아멜다는 자동적으로 그녀의 목숨 줄을 쥐고 있는 이 여자가 누구인지 인식할 수 있었다.
과거 마왕 성에서 그녀와 잠시 맞붙었었던 마왕의 간부들 중 한 사람.
짧은 접전이었지만,
그 당시 아멜다는 이년을 상대하면서 자신이 무력적으로 우위에 다는 것과 잘 하면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였으나.
지금의 경우는 그런 그녀조차도 인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사방에서 무기를 겨누고 있는 마족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녀가 손가락 하나 까닥하는 그 순간, 곧바로 목을 날려 버릴 것이 분명한 이 마족 소녀의 칼날.
이런 상황에선, 아무리 최상금 성기사 중 한 명인 그녀라 해도 방법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제길…”
쨍그랑.
그렇게 진한 분노의 감정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들고 있던 검을 떨어뜨리는 아멜다.
이어서 그녀는 강제적으로 바닥에 무릎이 꿇려졌고, 곧바로 그녀의 입에선 진한 절망의 감정이 담긴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죽여라. 구차하게 목숨을 연명하고 싶은 생각 같은 것은 없다.”
단호함이 느껴지는 아멜다의 말.
그러나,
그런 그녀를 보면서 그 마족 소녀는 단검을 휘두르는 대신 부하들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 뭐… 뭘 하는 것이냐? 그만 둬라! 더 이상 욕보이지 말고 어서 날 죽이란 말이다!”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치는 아멜다.
그런 그녀의 말을 완벽하게 무시한 채 마족 병사들은 곧바로 아멜다의 몸을 단단히 포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모습을 내려다 보면서 심상치 않은 시선을 보이기 시작하는 마족 소녀.
이에 아멜다는 본능적으로 무언가 이 뒤에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그 소녀.
엘리사의 입가에는그대로 진하디 진한 미소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마치 먹이를 집어삼키기 직전의 뱀과 같은.
그러한 섬뜩하기 그지 없는 미소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