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 절대로 의심하는 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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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속행을 주장하는 자와 신중을 논하는 자.
그들 사이에서, 난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지금의 저희들은 쉽게 군을 움직일만한 상황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 며칠 간의 강행군 끝에 병사들의 피로는 심하게 누적되어 있고, 부상을 입은 자들 또한 많습니다.”
“으음…”
“그야 그렇긴 하지만…”
평소 늘 부딪혀 왔던 사이인 일라이어스 때와는 달리, 일전에 자신들의 편을 들어주었던 내가 이런 식으로 말을 하는 사실에 대해서, 그들은 일단 어느 정도는 유연한 태도로 나의 말을 경청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사실에 속으로 안도하면서, 난 계속해서 내가 할 말을 이어나기 시작했다.
“반면 적들은 독이 오른 쥐처럼 당장이라도 고양이를 물어 뜯을 준비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때 어설픈 공격을 하는 것은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단.”
“단?”
이어진 나의 말에 약간의 호기심을 내보이기 시작하는 마족들.
특히, 일라이어스의 경우 의외로 이들 중 가장 눈에 띄는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정황상 현실적인 이유에서 반대를 하고는 있었지만 사실 그녀 역시 지금의 이 상황에 대해 상당히 아쉬워하고 있던 것은 마찬가지인 듯싶었다.
‘그런 점에선 역시 여러모로 유능한 사람이라니까, 감정을 억누르고 냉정하게 상황을 볼 줄 알다니… 의외로 저런 게 쉽지 않은 일인데 말이지.’
그렇게 단순히 머리가 좋을 뿐 아니라 이런 면에서도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인내심을 지니고 있는 그녀에 대해 본래보다 한층 높은 평가를 내리면서,
난 자동적으로 일라이어스의 얼굴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단, 아무리 그렇다 해도 지금의 이러한 흐름을 그냥 포기하는 것은 역시 아까운 부분이 있습니다. 모처럼의 대규모 승전인 만큼, 이로 인해 저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는 반면 저들은 크게 위축되고 궁지에 몰려 있지요. 이런 상황에서 전 조금 다른 방식의 공격을 제안하는 바 입니다.”
“다른 방식의 공격?”
“그게 무엇이지? 어서 말 해 보게.”
나의 말에 여러모로 진한 기대를 내보이기 시작하는 마족들.
솔직히 지금 이 자리에는 삼손과 같이 용기만을 앞세우는 자들도 있었지만 나 이상으로 머리가 좋은 이들 또한 적잖이 있었다.
그러나,
나 같은 경우, 본래부터 현대의 전쟁사 쪽에 관심이 많았으며 그 외에도 이런 저런 잡지식과 잔머리 덕분에 이 분야에 대해서 더 좋은 수단을 찾아낼 수 있었다.
모름지기 지식이란 결국 시간의 흐름의 결과로 발전하는 것.
직접 전투뿐만이 아니라 현대전에서 통용되는 각종 전술들을 파악하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는, 이런 상황에서 써먹을 수 있는 아주 좋은 수단이 존재하고 있었다.
‘때때로는 말이 칼보다 무서울 때가 있는 법이지. 이럴 때는 역시 그 방법이 아주 잘 먹혀 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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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자신이 생각한 계획을 이야기하고 있는 용사와 이를 경청하고 있는 마족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는 마족들 중 단 한 사람은 용사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 말이 아닌, 그의 시선 끝에 있는 사람에 집중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설…마?’
이 순간, 일라이어스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약간 즐거운 듯 이야기를 하고 있는 용사의 모습.
이를 지켜보면서 그녀는…
엘리사는 자신의 마음 속에 피어나고 이는 복잡 불안하기 그지 없는 감정에 자동적으로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현재 용사가 고백을 한 ‘애인’이 누구인지를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던 엘리사에게 있어서, 용사의 일거수 일투족은 당연히 주요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점에서,
어째서인지 자신의 어머니를 향해 시선을 보내고 있는 용사의 모습은 당연히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는 일이었다.
‘에이 설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겠지. 어떻게 많고 많은 사람들 중 마마가 그런...’
이 세상에서 그녀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자부할 수있는 존재인 어머니 일라이어스.
그런 그녀가 줄곧 적대해 왔던 존재인 용사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엘리사 본인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자신의 어머니께 시선을 보내고 있는 용사의 모습은 여러모로 마음에 걸렸다.
‘그러고 보니… 싸우면서 친해 진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서… 설마 정말…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면서 점점 더 복잡한 기분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엘리사.
정말로 그럴 일은 없겠지만… 상황에 따라선 자신의 경쟁 대상이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 어머니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여러모로 혼란스럽기 그지 없는 기분을 안겨주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 속에 가시지 않은 불안은 지닌 채,
이와 관련해서 엘리사는 기회가 되면 한 번 조사를, 아울러 이제는 그녀의 ‘동료’가 된 레베카와 상담을 진행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절대로 마마를 의심하는 건 아니야. 이건 어디까지나 마마를 믿고 있으니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조사를 하는 것뿐이라고… 확실하게 마마를 믿을 수있도록…’
*
엘프 교국의 성기사인 아멜다.
불과 얼마 전까지 용사파티의 일원이었으나, 이제는 본래의 성기사 직으로 돌아간 그녀.
그리고 이 순간, 막 바다를 건너 다시금 마왕국에 도착한 아멜다는, 그녀가 가지고 온 칙서를 꺼낸 뒤, 이는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엘프 장수들과 병사들에게 읽어주기 시작했다.
“그럼, 교황 성하의 명을 전하겠습니다.”
선명한 인장이 찍혀 있는 포고문.
그것을 손에 든 채, 아멜다는 마음 속의 긴장을 억누르며 차분하면서도 큰 목소리로 그 내용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현 시간 부로 마왕국 내에 위치해 있는 종족 연합군에 대한 철수가 결정되었으며 이에 따라서 나 교황은 마왕국 내에 있는 모든 엘프들에 대한 귀국을 명하는 바이다. 모든 장수들과 병사들은 이에 응하여 속히 귀국해 엘프 교국의 수호에 전념하라.”
“큭…”
“하아…”
그녀의 선언이 끝남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한탄의 소리.
그도 그럴 것이, 비록 대놓고 묘사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교황의 이 칙서는 사실상 이번 원정의 완벽한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생해서 손에 넣은 영토를 모조리 포기하고, 사실상 패잔병으로서 돌아가는 처치가 된 종족 연합군과 엘프 교국의 병사들.
이미 현 상황이 최악이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던 만큼 이 선택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은 그들도 잘 알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조금이라도 기대를 지니고 있었다.
신의 뜻을 받들고 있는 위대한 교황이라면 이런 위기 속에서도 좋은 해결책을 내주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말이다.
다른 종족들에 비해 가장 신앙심이 투철했으며, 때문에 이번 전쟁에서 가장 큰 의욕과 기대를 내보여 왔던 엘프들이었던 만큼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무언가 대단한 전술 같은 것이 아닌, 단순한 퇴각을 선언한 교황의 칙서는 그들에게 실망 만을 안겨 주게 되었다.
그렇게 엘프 병사들은 짙은 패배감에 사로잡힌 채 짐을 해산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는 기쁘게 받아들여야 할 지도 몰랐다.
그러나, 투철한 신앙심을 지니고 있던 대다수는 오랫동안 이어진 그들의 노력이 이렇게 끝나버렸다는 사실에 그저 허망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물러나야 하다니..”
“신께서 선택하신 성스러운 군대가 어찌…”
“저 마왕과 마족들을 확실하게 뿌리 뽑을 기회였는데…”
한탄을 내뱉으며 짐을 싸기 위해 움직이는 엘프병사들.
한편,
그들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성기사 아멜다는 내심 그들 이상의 진한 안타까움과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나 때문이야… 내가 그때 용사님을 확실하게 도와드렸다면 이렇게 비참하게 패배하지는 않았을 텐데… 정말로 모두가 원하던 대로 전쟁을 끝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마음 속으로 한탄을 하면서 무거운 발걸음과 함께 자신의 막사로 돌아가려 하는 아멜다.
그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포기 하거라.”
“하… 하지만 장군님! 저들을 이대로 버려두고 떠날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저들에게 퇴각령이 떨어졌다는 소식이라도 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대로 놔두었다간 다 죽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너무 위험한 일이다. 당장 아직도 아군이 살아 있는지도 모르고, 결정적으로 그곳까지 가는 길은 모두 마족들의 영역이 되어버린 지금 소식을 전한다 해도 그들이 탈출할 방법은 없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더 이상 희생을 늘릴 수는 없어.”
“장군님!”
“큭…”
절망적인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병사들.
이에 대해서, 아멜다는 조심스럽게 그쪽으로 다가가 그들에게 질문을 하였다.
“저기.. 무슨 일이시지요?”
“아.. 아멜다님. 그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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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에 병사들이 말입니까?”
“네, 소식에 따르면 아직 그곳에는 저희 엘프 병사들 400여명이 주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지금으로선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녀석들이 꼭 그곳에도 소식을 전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려서…”
“제발 부탁 드립니다. 분명 아직 살아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적은 가능성이라 해도 그들은 저의 동표들이며 친우들입니다. 정 안 된다면 저희들 만이라도 보내 주십시오. 목숨을 걸고서라도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간절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한 무리의 병사들.
동료들을 위해 목숨을 걸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그들을 보면서,
아멜다의 마음 속에는, 과거 그녀가 하지 못했던 일에 대한 기억이…
용사를 위해 목숨을 걸고 나서지 못했던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녀는 이런 일에서라도 그에 대한 보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이내 이러한 생각은 그녀로 하여금 한 가지. 결단을 내리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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