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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R용사는 마왕에게 무릎을 꿇었다-52화 (52/150)

〈 52화 〉 감당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 * *

무엇이든 이야기를 해보라는 마왕의 선언.

이에 대해서 나의 머릿속에는 순간적으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으나,

결과적으로 내가 선택하기로 되어 있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나에 대해서 ‘소중한 사람’이라는 표현을 해준 마왕.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난 이 안에 담겨 있는 의미가 또렷한 애정을 의미한다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함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한 나라의 군주로서 수많은 이들의 위에 선 존재인 마왕.

그런 그녀에게는 가까운 측근부터 시작해서 소중한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었으며,

어쩌면 마왕이 이야기하는 소중한 이라는 의미는 나를 그러한 수많은 이들 중 한 명으로 본다는 뜻일 지도 몰랐다.

부정적인 감정은 없지만, 그렇다 해서 연인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긴밀한 사이까지는 아니라는 뜻.

물론 이 말은 해석하기에 나름이었으나, 이와 관련해서 난 이 기회에 보다 명확하게 나와 마왕의 관계를 확정 짓고 싶다는 욕망을 지니고 있었다.

한 번의 키스나 한 번의 육체적 관계 이상으로,

내가 마왕의 마음 속에 특별한 존재로 자리 잡을 수 있는 방법,

동시에, 혹여 있을 지 모르는 다른 ‘경쟁자’ 들을 사전에 배제해 놓을 수 있는 방법.

이와 관련해서, 난 가장 확실하면서도 명확한 길을 선택하기로 결심을 하였고,

그 결과.

난 결심이 섬과 동시에 그대로 마왕에게 말 하였다.

나와 연인의 관계부터 ‘시작’을 해달라는 고백을 말이다.

“…연…인…?”

그 직후,

이런 나의 고백에 대해서 한 순간 멈칫하는 기색을 보이는 마왕.

확실히 무엇이든 이야기를 해보라 하였지만, 그런 그녀에게 조차도 연인 이라는 단어는 제법 크게 와 닿을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녀에 대한 나의 호감도가 일정한 수준을 넘지 않았다면 그대로 아웃.

설령 어느 정도 호감을 지니고 있다 해도, 한 나라의 군주라는 자리에 앉아 있는 입장에서 그녀는 다른 누군가와 사귄다는 사실 그 자체에 대해 부담을 지니고 있을 수 도 있었다.

경우에 따라선, 아무리 이런 상황에서의 부탁이라 해도 그것은 조금 곤란하다는 이야기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상황.

그러나… 다음 순간,

난 이러한 실패의 가능성을 최대한 낮추기 위해서.

곧바로 마왕이 깊이 생각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재빠르게 말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다 해서 제가 지금 당장 폐하께 진지한 관계가 되어 달라 요청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서로를 가볍게 알아보자는 의미로… 일종의 조금 특별한 친구 같은 것으로 받아 들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특별한… 친구…? 아. 그. 그렇군, 인간들 사이에 연인이란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인가?”

나의 말에 약간 혼란스러운 듯한 감정을 담아 질문을 하는 마왕.

이에 대해서, 난 ‘연인 이라는 건 그렇게 심각한 게 아니에요.’ 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가벼운 표정을 지으며 눈 앞에 있는 그녀에게 말했다.

“네, 물론 그 중에는 추후에 좀 더 진지한 관계로 발전시켜 가는 경우도 있지만. 시작은 어디 까지나 가볍게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친구로서 연인을 맺는 일 또한 인간들 사이에선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다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나거나 마음이 맞지 않으면 다시금 가볍게 헤어지는 식으로 말이지요.”

“흐음…”

실제로 귀족들은 몰라도 평민들 사이에선 현대처럼 자유연애가 일상화 되어 있는 이 세계였다.

애초에 대놓고 NTR을 처 해주시는 쌍년들이 나타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배경이 깔려 있었기 때문.

물론 소위 말하는 높으신 귀족 나리들 사이에서는 고전적이면서 고지식한 연애를 고집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굳이 여기서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는 상황..

그렇게, 연인이라는 말에 담겨 있는 독기를 최대한 빼놓으면서…

아니, 빼놓은 것처럼 보이게 만들면서.

난 눈 앞에 있는 마왕님의 반응을 예의 주시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친구라… 하지만 그래도 일단 연인이라는 것은…음…”

한 눈에 봐도 기존의 상식과 나의 말 사이에 약간의 혼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보이는 마왕의 태도.

이에 대해서 난 좀 더 몇 마디를 덧붙이는 것으로 그녀의 등을 밀어줄까 하는 생각을 하였으나.

이 부분에 대해선 일단 그녀가 생각을 하도록 내버려 두기로 결정했다.

여기서 공연히 입을 잘못 털었다간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는 상황.

그녀의 판단이 흐려져 있는 이 상황에서 이를 너무 밀어붙일 경우 자칫 거부감을 유발시킬 위험이 있었다.

그렇게 마왕의 눈치를 살피며 짙은 긴장에 사로 잡힌 채 침묵을 유지하는 나.

그리고…

1초가 마치 수 시간 같이 길게 느껴지는 그 짧은 순간이 지나간 뒤,

마왕은 나를 보면서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아… 알았다. 어찌 되었든 그대가 이를 원한다면 이를 받아들여주는 것이 올바른 일이겠지.”

“아…!”

“그… 그럼 오늘부터, 그대는 짐의 연인 이다. 아… 앞으로 잘 부탁 하마.”

“ㄴ…네! 부… 부족한 몸이지만, 앞으로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폐하!”

얼굴을 붉히며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마왕의 모습.

이에 대해서,

난 순간적으로 눈 앞에 있는 이 아름다우면서도 귀엽다는 감정이 피어 오르게 만드는 여인을 강하게 끌어 안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을 살짝 혀를 깨물면서 억지로 눌러 참으며.

난 뛸 듯이 기쁜 감정을 정말 힘겹게 삭히며 스스로를 달래기 시작했다.

‘지금은 이제 겨우 쌀을 씻고 밥을 올려 놓은 상황 벌써부터 솥뚜껑을 열어선 안돼. 서두를 필요 없이 앞으로 차근차근, 나의 페이스대로 마왕과의 관계를 가깝게 만들어 나가면 되는 거야.’

비록 친구라는 말을 조금 강조해 주긴 했지만 그럼에도 연인이라는 이름의 울타리는 여러모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나에게 합법적으로 마왕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뜻.

앞으로 그 길을 최선을 다해 갈고 닦아 나갈 생각을 하면서,

나의 입가에는 그대로 진한 미소가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어떻게해서든, 그녀의 마음을 손에 넣고 말겠다는 각오와 함께.

*

“그래서… 정말로 용사의 그 말에 홀랑 넘어가 고백을 받아들여 버리셨다 그것입니까?

눈 앞에 있는 마왕을 보면서 참으로 복잡하기 그지 없는 표정을 지어 보이기 시작하는 벨제뷰티.

이에 마왕은 마치 엄마한테 혼나는 아이 같은 모습으로 슬슬 부하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무엇이든 요구하라는 말을 한 사람은 바로 짐이었으니까.”

“하아…”

“하.. 하지만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은가? 이건 어디까지나 특별한 친구라는 의미에서 연인이 된 것일 뿐이다. 벨제뷰티 네가 걱정하는 그런 것은 결코 아니란 말이다.”

“.... 그래도 일단 연인은 연인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되면 용사가 마왕폐하와 손을 잡고 걸어도 뭐라 할 수 없겠지요.”

“그야… 그렇지만…”

벨제뷰티의 말에 제법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는 마왕.

그렇게 뒤늦게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은 듯한 마왕을 보면서 벨제뷰티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다 서로 껴안기도 하고, 키스도 하고, 나중에는… 음음.. 아무튼. 일단 연인이 된 이상 이제 이런 행동을 하려 들 텐데. 폐하께선 감당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 그건 뭐… 내 쪽에서 적당히 거절을 하면…”

“그렇게 거절을 했다가 용사가 마음의 상처를 입고 폭주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애초에 마왕폐하께서 걱정하셨던 대로 말입니다.””

“…으음…”

벨제뷰티의 연이은 팩트폭격에 그녀답지 않게 상당히 허둥거리고 있는 듯한 마왕의 모습.

현존하는 최강 마족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벨제뷰티는 정말로 이 친구를 어디서부터 교육시켜야 할지 막막하다는 기분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다른 쪽에는 제법 유능하며 어떤 부분에 있어선 최고의 자리에 올라와 있는 존재인 마왕.

그러나, 그런 그녀 조차도 이런 식의 연애 분야에 대해선 경험이 거의 전무한 상황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친구처럼 가볍게 시작하자’ 는 식으로 고백을 걸어와 버린 용사를 상대하기란 어쩌면 처음부터 쉽지 않은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마왕님도 바보가 아닌데, 어쩌다 이런 얕은 수에 휘말리신 건지..’

그 사실에 대해서 문득 무언가가 떠오를 것도 같았지만 일단 벨제뷰티는 이러한 사실을 반사적으로 무시해 버렸다.

지금 중요한 것은 어쨌든 마왕과 용사는 이것으로 ‘연인’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특별한 친구 어쩌고 하는 탈을 쓰고 있다 해도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절대로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벨제뷰티도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 시점에서 폐하와 용사를 갈라 놓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어…’

차라리 아무 관계도 아니었다면 모를까. 어쨌든 정식으로 연인이 된 이상 이를 억지로 갈라놓으려 한다면 부작용이 아주 심각할게 뻔했다.

현재 마왕국에서 가장 강력한 전력 이라 할 수 있는 용사와 마왕의 관계가 악화될 경우 기껏 잡은 승기를 놓치게 되는 최악의 불상사까지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이쪽에서 이 상황을 최대한 이용하는 수밖에 없겠어. 어차피 우리들의 원래 기조를 생각하면 이것도 나름 기회라 할 수 도…’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최종 목표는 마왕이 용사의 마음을 완벽하게 사로잡고 그를 확실하게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것.

생각하기에 따라서 이번 일은 그러한 목표 달성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며,

이와 관련해서 벨제뷰티는 일단 재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비록 예상치 못하게 이쪽에서 기습을 당하긴 했지만… 어디 두고봐, 마지막에 가선 반드시 네 녀석의 목에 목줄을 채우고 말 테니까.’

그렇게 나름대로의 계획을 짜면서, 저 간악한 술수를 쓴 용사에게 한방 먹여줄 궁리를 하는 벨제뷰티.

그러나, 현재 그녀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이 순간그녀의 앞에서 살짝 살짝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것을 억지로 눌러 참고 있는 마왕의 모습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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