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지옥의 밑바닥에서 후회를 외치다
* * *
성기사 아멜다.
그녀의 삶에는 스스로가 정한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겨지는 것에 대해서 저항하지 않고 순응한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자신은 그저 단물을 빠는 데에만 집중하도록 한다.
그것이, 아멜다라는 엘프가 지니고 있는 삶의 방심이었으며,
그녀의 마음 속에 담겨 있는 이러한 룰은 그녀라는 존재가 중대한 선택을 할 때마다 줄곧 하나의 길을.
순응과 타협이라는 이름의 길을 선택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처음으로 신의 부름이라는 것을 받고 성기사가 되었을 때도.
주변 사람들의 기대를 받으며 용사 파티에 들어갔을 때도.
토라레가 알려준 세속적 즐거움의 파도에 휩쓸렸을 때도.
그리고.. 용사를 버리자는 동료들의 의견이 나왔을 때도.
그녀는 언제나, 주변 사람들의 뜻에 거스르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녀의 소소한 이득을 취하는데 집중해 왔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렇게 늘 흐름에 순응해 타협만을 하는 삶을 살아 왔던 그녀는…
대세라는 흐름 속에서 개인의 보신만을 추구해 왔던 그녀의 삶은..
이처럼 예기치 못한 암초에 걸린 채 그대로 한 순간에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치지지직!!!!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녀의 가슴 팍을 지지는 뜨거운 쇳조각.
태어난 이래 단 한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최악의 고통 속에서 아멜다는 괴로움에 찬 비명을 토해내었다.
생살이 타 들어 가면서 발생하는 끔직한 소리와 지독한 냄새.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처참하기 그지 없는 감각.
그 속에서 괴로움을 토하고 있는 아멜다를 보면서..
그 사람은.
아멜다도 익히 알고 있는 제국의 장군, 아킬레스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비 따위는 둘 필요도 없다. 이년은 그 동안 거짓된 교리로 수 많은 이들을 속이고 착취해온 사악한 교황의 시종. 지금까지 저지른 죄악의 대가를 확실히 치를 수 있도록 하라.”
“네! 장군님!”
그 말과 함께, 다시금 뜨겁게 달군 인두를 가져오기 시작하는 병사.
이를 보면서, 아멜다는 그대로 공포에 떨며 천천히 고개를 젓기 시작했다.
“시.. 싫어… 그만.. 이제.. 이제 제발 제발 그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가슴 위에 떨어지는 뜨거운 인두.
지방으로 이루어진 그녀의 소중한 그곳이 최악의 방식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상황
이에 아멜다의 입에선 다시금 고통에 찬 비명이 토해지기 시작했으나.
.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일말의 자비심 조차 내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들이 이런 짓을 하는 것은 아멜다로부터 어떤 자백을 받아내거나.
그녀에게 어떤 행동을 강요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이 아멜다를 고문하고 있는 이유는 그저 그녀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서..
이제는 사실상 적이 되었다 할 수 있는 엘프들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을 표출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중단될 기미도, 약화된 기미도 보이지 않은 채 끝없이 이어지는 고문.
그 속에서 아멜다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고통에 찬 비명과 눈물을 쏟아내는 것.
그리고…
이미 지나가버린 그녀의 과거들에 대한 의미 없는 후회를 하는 것 뿐이었다.
*
“허어어억… 허어억… 허어어어억…”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조차 없을 정도로 이어진 가혹한 고문.
실제로는 약 나흘간 이어진 그것이 잠시 중단된 채, 아멜다는 수갑이 채워진 몸으로 홀로 독방애 내던져 졌다.
뿌연 빛 만이 들어오는 좁고 칙칙한 장소.
그곳에서 아멜다는 여전히 가시지 않은 고통 속에서 숨을 헐떡이며 텅 빈 얼굴을 내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순간. 아멜다를 괴롭히고 있는 가장 큰 고통은,
온 몸을 갉아 먹고 있는 육체의 고통도.
한치의 앞도 보이지 않는 비참하기 그지 없는 미래가 안겨주는 고통도 아니었다.
그녀의 마음을 가장 크게 괴롭히고 있는 원인.
그것은.
이 순간 그녀라는 존재가 삶의 궤적 끝에 맞이한 운명.
그녀라는 존재가 떨어져 있는 너무나도 비참하기 그지 없는 지금의 이 현실과,
이를 만들어낸 지난 날의 과거에 대한 것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대체.. 대체.. 어디서부터..’
항상 스스로를 위해 최선이라 여겼던 길을 선택해 온 아멜다.
그러나,
그 끝에 맞이하게 된 이 최악의 결말은..
한치의 빛도 보이지 않는 나락과 같은 결말은.
그녀에게... 지금까지의 인생을 통째로 부정 당하는 듯한 기분을..
아니, 실제로 그녀의 인생이 통째로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여과 없이 알려주고 있었다.
‘줄곧 최고라 여겼던 길을 선택해 왔는데.. 최대한 안전하게… 대세에 거스르지 않는 길을 선택해 왔는데… 그 결과가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최선을 다해 준비한 시험이었음에도 0점을 맞은 것도 모자라 유급을 당한 것과 다를 바 없는 결과.
그 사실에 괴로워하고 있던 아멜다의 머릿속에는..
문득.
그런 그녀의 삶을 지적했던 한 남자의 말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당신은 성기사이지 않습니까. 좀더 주도적으로 움직이도록 해주세요.”
그것은…
언제나 그녀를 향해 충고를 겸한 불만을 이야기했던 남자의 말.
그녀가 보아온 인간 중 최강의 힘을 지니고 있었으나…
언제나 타인에게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언제나 절제되고 올곧은 길만을 주장해 왔던 한 남자의 말.
이제는 죽고 없어진
용사의 말.
이 이야기를 들었을 당시,
아멜다의 대놓고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 속으로 짜증과 반발 그리고 무시의 감정 만을 느낄 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멜다는 자신의 삶의 방식이 틀리지 않았다 여기고 있었다.
토라레가 주는 달콤한 쾌락의 열매와 욕망에 충실한 삶의 방식은, 그녀로 하여금 용사의 말 따위는 쓸모 없는 잔소리이자 그 남자에 대한 비호감만을 더욱 강화시키는 요소가 되어 왔다.
어차피 저 용사의 힘이 있으면 전쟁은 끝날 것이며.
자신은 그저 적당히 그의 비위만 맞추다 떨어지는 열매만 따먹으면 된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이런 생각과 별개로 용사의 잔소리는 계속되었으며, 이는 아멜다로 하여금 안그래도 낮았던 용사에 대한 호감도를 더욱 감퇴시키는 결과를 만들었다.
그런 감정을 지니고 있었기에,
아멜다는 용사를 숙청하자는 동료들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 할 수 있었다.
동시에 이를 통해 토라레와의 달콤한 인생을 설계할 계획을 짜나갈 계획을 한 것은 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행동의 결과,
지금과 같이 꿈도 희망도 없는 나락에 떨어지게 된 아멜다의 머릿속에는.
자동적으로 자신에게 해주었던 그 남자의 여과없는 충고의 말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람이 인생의 끝자락에 몰렸을 때 자동적으로 부모님의 잔소리를 떠올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짙은 절망 속에서 정도를 걸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결과를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이는 자연스럽게, 아멜다의 마음 속에 깊은 후회의 감정을 유발하고 있었다.
‘만약… 제가 당신의 말을 들었다면… 용사님의 말처럼…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똑바로 나의 길을 걸었다면 이렇게 까지는…’
실제로 그녀의 선택이 바뀌었다 해서 일이 어떤 식으로 흘러갔을지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밑바닥에 떨어진 사람에게 있어서 지나간 과거의 작은 가능성을 떠올리고 그것에 기대를 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거기다, 지나친 고문의 여파로 인한 정신적 피폐와 꿈도 희망도 없는 현실에 대한 절망.
그리고 외면하고 있던 죄악에 대한 죄책감까지.
이러한 복합적인 감정들은,
아멜다로 하여금 정상적인 사고가 아닌 혼란 속에서 이루어지는 과장과 망상과 같은 사고를 하도록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아멜다의 머릿속에는 자동적으로, 그녀의 운명을 결정지었던 마왕과의 최종 결정에 대한 If 가 잔뜩 뒤틀린 형태로… 실제로 지나간 현실과는 여러모로 괴리가 있는 형태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때 내가 토라레의 손을 거절하고 계속해서 용사님의 편에 남아 있었다면. 단순한 사탕발림이 아니라 진심으로 용사님을 돕기로 했다면… 어쩌면 이런 결말을 맞이하지는 않았을 지도 몰라.’
실제로, 마지막 전투에서 그들이 세운 전략적 목표는 기나긴 여정의 최종 결전을 준비하는 것 치고는 지극히 단순하면서 이기적이라 할 수 있긴 했다.
마왕과 용사를 일방적으로 맞붙이는 것으로 용사의 힘을 최대한 빼놓고 그대로 다 함께 힘을 잃은 용사의 치자는 계획.
그러나…
만약 여기서 그들이 용사를 토사구팽할 생각이 아닌, 진정으로 승리만을 위한 플랜을 짰다면.
좀 더 신중하게 작전을 구성해 마왕의 부하들을 각개격파하고, 그대로 다같이 합심하여 마왕을 처치하는 식으로 계획을 짰다면…
아마도 아멜다는… 지금과 같이 무자비한 고문을 받는 비참한 죄인의 신분이 아닌, 전쟁을 끝낸 영웅으로서 대접을 받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또한 사랑하는 조국인 엘프 교국 역시, 아마도 지금과 같이 크나큰 위기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맞아. 어쩌면 용사님의 그런 고지식한 태도와 딱딱한 경고의 말은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함이었을 지도 몰라…’
생각해 보면, 마지막 순간 홀로 마왕을 향해 나아가던 용사의 모습에선 무언가를 체념한듯한 기색이 느껴졌던 것 같았다.
아울러, 뒤쪽에 있던 터라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째서 인지 용사의 입가에 깃들어 있던 미묘한 미소.
엘프로서 시력이 뛰어난 그녀의 눈에 언뜻 보였던 그 의미 불명의 미소에 대해서 아멜다는 단순히 승리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낸 것이라 여겼으나,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용사의 그 미소는…
이어질 마왕 토벌의 실패와, 그녀의 이런 비참한 운명에 대한 가능성을 엿보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러한 생각은, 이내 불안정하기 그지 없던 아멜다의 마음 속에서 확신으로 굳어지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아멜다의 입에선 자동적으로 회한과 사죄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용사님 제가… 제가 당신의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당신이 충고한 대로…진작에 정신을 차렸어야 했는데… 저의 어리석음 때문에... 아무것도 모른 채 쾌락에 빠져 개처럼 헐떡이던 저 때문에…”
본래부터 최후까지 자신들을 위해 싸우다 죽은 용사의 명예가 더럽혀진 것에 대한 죄책감을 지니고 있던 아멜다였다.
비록 그 감정은 토라레의 계획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죽여놓았으나, 이제 그것은 다시금 무덤을 뚫고 기어 나와 아멜다의 마음을 무자비하게 할퀴기 시작했다.
뒤틀린 사고 속에서 이루어진, 용사라는 존재에 대한 지나친 과대 평가와 함께 말이다.
“잘못…했습니다… 제가..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사님…”
세계관 지도 입니다
팔콘제국은 대부분이 평야.
마도국은 남쪽 빼고 대부분 한랭지대
엘프 교국은 평야 반 숲 반
수인국은 대부분이 열대 말람 지역+남쪽은 사막 지대
마왕국은 좀 많이 큰 섬나라. 평야도 많지만 방어에 용이한 산악 지형도 적당히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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