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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R용사는 마왕에게 무릎을 꿇었다-29화 (29/150)

〈 29화 〉 굳건한 신뢰로 맺어진 용사파티

* * *

임무 실패..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패배라는 죄를 짊어 진 채 성으로 끌려간 토라레 일당들.

마력 봉인 수갑으로 인해 무력화된 상태로 뒷목에서 칼날이 왔다 갔다 하고 있는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

그들 네 사람은 마음 속으로 자신들이 말을 맞춘 내용을 열심히 되새김질 하며 최대한 긴장을 늦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비록 패잔병으로서의 책임을 아주 무마 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들이 입을 아주 잘 털어서 대부분의 책임을 용사에게 전가시킬 수만 있다면, 생각 외로 일은 간단하게 풀릴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애초에 토라레의 경우 대외적으로는 단순히 덤으로 고용된 짐꾼인 만큼, 그에게 책임을 묻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이렇게 끌려가고 있는 것도 단순히 파티에 속해 있었기 때문일 것이며, 딱히 무언가 처벌을 하기엔 여러모로 애매한 구석이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런 토라레의 상황과는 별개로.

이 자리에 있는 세 명의 여전사들은 역으로 그 뛰어난 가치때문에라도 입만 잘 털면 살아남을 수 있는 활로를 열 수 있을 것이었다.

이미 종족연합을 통틀어 각국에서도 알아주는 능력과 명성을 지니고 있는 그녀들이었다.

제국의 최상위 티어 용병인 다이아급 용병 출신에,

제국 황제가 직접 임명한 대신관 직책을 지니고 있는 성녀 에일린.

엘프 교국의 교황이 인정한 최고위 성기사 중 한 명이자, 신의 부름을 받았다 알려져 있는 성기사 아멜다.

그리고.. 마도국의 7대 마법사 중 한 명이자 마족들과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적을 세워왔던 마녀로서 상당한 명성을 지니고 있는 슈드.

이처럼 명확하게 입증되어 있는 세 사람의 전력적 가치는 한번의 실패로 포기하기엔 아까운 만큼,

분명 생각이 있는 높으신 분이라면 적당한 구실만 있다면 그들을 가볍게 처벌하고 끝낼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번 일에 대한 심문을 겸한 보고를 받기 위해서 취조실 근처에 까지 도착한 네 사람

그때..

“큭!..”

“거기서 얌전히 있도록.”

나머지 세 사람과는 달리 따로 그대로 감방 안에 던져진 토라레.

아무래도, 한낱 짐꾼 따위인 그에게는 무언가를 물어볼 것도 없다고 위에선 판단한 듯싶었으며 이와 관련해서 토라레는 살짝 씁쓸한 기분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칫..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역시 이런 꼴인가.. 뭐.. 사실 따지고 보면 그 만큼 무언가 책임을 지울 생각도 없다는 뜻에서 이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마지막으로 취조실 안으로 들어가는 세 여성들과 눈빛을 교환하는 토라레.

이 순간부터 자신의 목숨은 저들이 얼마나 말을 잘 해주는지에 달렸다는 것을 인지하며, 토라레는 마음 속으로 부디 그들이 실수하지 않고 잘 할 수 있길 응원하기 시작했다.

‘연습한 대로만 해 달라고. 그럼 모든 게 잘 풀릴 테니까..’

*

토라레와 떨어진 뒤 더 안쪽으로 들어가는 세 명의 여전사들.

그렇게, 이 순간부터 자신들이 어떻게 입을 놀리느냐에 따라서 그녀들과 저 남자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실감하면서

세 사람은 눈 앞에 보이기 시작한 취조실 문을 응시하며 다시금 마음의 각오를 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

‘자.. 잠시만 어디로?’

다음 순간, 갑자기 그들 각자를 붙잡은 채 세 갈래로 나뉘어 지는 병사들.

동시에, 그들의 눈에는 각자 상당히 떨어진 다른 곳에 위치한 또 다른 취조실 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상합니다.. 어째서?..’

‘이건 대체..’

일반적으로 이런 식의 일은 연대 책임을 물어 한꺼번에 처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실제로 지금까지 실패한 용사파티나 부대의 처분 역시 그렇게 진행되어 왔다.

관계자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대질심문으로 잘잘못을 가리는 식으로 진행되는 취조 방식.

이는 과거 참관인 자격으로 이런 자리에 몇 차례 참석한 적이 있는 에일린의 경험상 거의 확실시 되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점에서..

지금의 이 상황은 에일린을 비롯한 그녀들의 입장에서 위확감을 느끼게 만드는 흐름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에 그들은 불안감을 느끼면서도동시에 마음 속으로 어떻게 해서든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며 스스로를 달래었다.

‘그..그래.. 이건 단순히 따로따로 질문을 하는 것뿐이잖아? 방법이 조금 달라 졌을 뿐. 내가 말하면 되는 내용에는 변함이 없어.’

‘괜찮을 겁니다.. 모두가 약속을 했으니까..'

‘무언가가 수상하다.. 하지만 걱정할 건 없다. 맞춰둔대로만 잘 이야기를 하면..’

그렇게 억지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세 명의 여전사들은 각자 다른 방향에 위치한 취조실로.

서로가 무슨 말을 하는 지에 대해선 일절 알 수 없는 독방으로 끌려 들어갔다.

*

“! 아…”

취조실 안에 도착한 에일린.

그녀는 그곳에서 홀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인식함과 동시에,

그대로 얼굴에 담겨 있던 불안의 감정이 씻은 듯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라파엘!”

“오랜만입니다 에일린 선배.”

자신을 보면서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이는 성직자 라파엘.

과거 그녀를 잘 따랐던 후배 성직자이자, 대신관이 된 그녀의 도움 덕분에 본격적로 출세 길에 들어올 수 있었던 인물.

그렇게 그녀에게 있어서 ‘아군’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취조관으로 있는 모습을 본 순간,

에일린은 아직 신께서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며 한결 평온해진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설마 이런 곳에서 널 만날 줄은 몰랐어.”

“네, 저 역시 어쩌다 보니 이런 식으로 선배를 취조하게 되어 참으로 유감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반가움과 더불어 안타까움을 담아 말하는 에일린과.

이에 대해서 진심으로 씁쓸함을 담아 답하는 라파엘.

그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에일린은 비록 실패하고 돌아오긴 했지만 그럼에도 이 바닥은 여전히 자신의 홈 그라운드라는 사실을 다시금 인지하며, 약간의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하긴.. 다른 녀석들이라면 몰라도 이곳은 나의 모국이자 나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팔콘 제국. 한 동안 용사파티로 활동하면서 잊고 있었어.. 이 내가 어떤 존재인지..’

물론, 그런 것과는 별개로 지금 에일린은 엄연히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죄인의 신분으로 있는 몸이었다.

최악이라도 목이 잘리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최대한 이번 일을 타격 없이 넘기기 위해서라도 아직 긴장의 고삐를 완전히 늦출 수는 없었다.

그렇게 판단을 하면서..

에일린은 본래 사전에 합의했던 대로, 라파엘에게 ‘용사파티에게 있었던 일’을 쭉 이야기 해주기 시작했다.

*

엘프 교국 교황청 소속 성기사 아멜다.

한때 평범한 시종이었으나,

신의 부름을 듣고 성기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이후 최고의 성기사 중 한 명으로 추앙 받으며 수 많은 공적을 세워왔던 그녀.

그러나..

그처럼 언제나 수 많은 이들의 선망과 기대를 받는 삶은..

아멜다 라는 한 명의 엘프 여성에게 있어서, 언제나 단단한 족쇄와 같이 작용하고 있었다.

신의 부름을 받은 자는 언제나 정결해야 한다.

신의 부름을 받은 자는 항상 남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

신의 부름을 받은 자는 모든 욕망을 억제해야 한다.

눈을 뜨고 하루를 생활하는 내내 꼬리표와 같이 따라오는 이러한 말들은 아멜다라는 여성의 마음 속에 풀리지 않는 욕망과 갈등의 응어리를 쌓아 갔으며,

이는 그녀가 용사 파티라는 숭고한 사명을 지닌 채 출정한 이후에도 내내 마음 속에 가시와 같이 박혀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오직 인내 만을 강요 받아왔던 그녀의 삶은.

어느 날.

그녀의 이러한 욕망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던 그 남자에 의해서..

짐꾼 토라레에 의해서 변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그녀가 입으로 거절의 말을 내뱉는 와중에 반 강제적으로 이루어졌다.

성기사로서.. 신의 부름을 받은 자로서의 숭고함을 운운하며 거절을 표했으나, 미리 먹여둔 약물의 힘을 빌어 그녀의 욕망을 강제로 열어 젖힌 그 남자.

그러나, 그 순간 입으로는 거절의 말을 운운하면서도 아멜다의 마음은 거짓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줄곧 억눌러 왔던 욕정과 탐욕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감각.

그것이 안겨다 주는 쾌락은 그녀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 넘는 것이었으며..

그렇게 지독한 해방감과 기쁨에 사로잡혀 있는 그녀에게 토라레는 달콤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지금부터는.. 욕망에 솔직해 져도 된다고.

더 이상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앞으로 자신과 함께.. 그녀가 진정으로 원해 왔던 삶을 살아가자고.

언뜻 악마의 유혹처럼 여겨졌으나, 그녀에게 있어선 마치 구원과 같이 느껴진 토라레의 말.

결국 그녀의 본질을 정확하게 끄집어 내고, 줄곧 그녀가 듣고 싶어 했던 이야기를 해준 짐꾼의 이러한 행동은 아멜다의 몸과 마음을 완벽하게 사로잡았으며..

끝내 아멜다는 토라레의 연인이자 노예로서 그가 내민 손을 붙잡고 말았다.

그렇게 세상을 구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용사가 아닌, 자신의 욕망을 충족해주는 토라레를 선택하고 그와 함께 행복한 미래를 이루어 나가길 꿈꾸기 시작한 아멜다.

그 와중에도 아멜다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마왕을 처치하고 전쟁을 끝내겠다는 사명감이 남아 있었다.

욕망이라는 족쇄를 풀어버리긴 했지만, 그녀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엘프로서의 긍지가 남아 있었으며, 엘프 교국에 대한 애국심이 굳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아멜다는 그러한 사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의 욕망 또한 충족시킬 수 있는 길을..

그녀의 주인이자 사모하는 이인 토라레에게 마왕 처치의 업적을 안겨줄 수 있는 길을 함께 선택하기로 결정 했다.

교황의 신탁을 받은 선택 받은 용사가 '사명'을 이루는 즉시 그의 뒤통수를 치는 것으로 말이다.

그녀의 행복을 위해서..

그녀에게 행복을 안겨준 그 남자를 위해서..

*

자신의 연인이자 주인인 토라레를 위해 마음을 굳힌 아멜다.

용사의 명예를 모독한다는 점에 대한 거리낌은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그녀는 죽은 용사 대신, 살아있는 동료들과의 신뢰를 지키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그리고,지금 이 순간.

엘프 교국에서 파견된 취조관을 앞에 둔 채,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멜다의 입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이 흘러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모… 모든 것은.. 그 남자 때문이었습니다.. ㅌ..토라레 그 남자가 저희들을 유혹해서..용사를 배신 하도록..”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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