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 저 용사는 위험한 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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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국의 재상 벨제뷰티
그녀는 자신의 군주인 마왕의 신하이자 그녀의 보좌로서…
동시에,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온 그녀의 친구로서,
언제나 주군과 국가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이를 위해 헌신해 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벨제뷰티는 그녀의..
아니, 그녀의 주군인 마왕과 이 마왕국에 아주 커다란 위기가 닥쳤다고 판단하는 중이었다.
마왕에게 단 둘이 식사를 해달라 요청한 용사의 행동과 이를 받아들인 마왕.
단순히 밥 한 끼 먹으려는 것을 가지고 뭘 그리 과민 반응하느냐 할 수도 있겠지만, 그녀의 시선에서 지금의 이 상황은 그렇게 가볍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용사놈이 마왕님께 식사를 하자고 했다. 그것도 다른 부귀영화를 모조리 거절하고 이것을 선택했어. 그렇다는 것은…’
군주는 곧 국가이며, 때문에 군주의 함락은 곧 국가의 함락이라는 것인 당연한 이치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종족 연합에 속해있는 나라 중에는 군주가 아닌 의회를 통해 국정을 이끌어 가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들 조차도 나라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들이 당하는 것은 곧 국가의 멸망으로 직결된다는 기본 원칙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이 기회를 이용해 용사가 마왕을 암살하려 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았다.
당연한 일이지만 마왕과의 식사 자리에 무기를 휴대하는 것은 금지되었으며,
단 둘이라 하지만 시종을 위해 드나드는 하인들과, 입구에 항시 대기하고 있는 무장 친위대를 고려하면 성공 가능성이 너무 낮았다.
여기서 말하는 함락이라는 것은 다른 의미에서의 함락.
즉..용사가 마왕의 호감을 얻는 것과 관련되어 있었다.
다른 무언가가 아닌 마왕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선택했다는 용사의 행동,
이는 곧 용사가 마왕의 마음을.. 생각하기에 따라선 더 나아가 이 나라 그 자체를 노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의미라 할 수 있었다.
‘용사 네 이놈.. 역시 그 엄청난 힘만큼이나 지니고 있는 욕망이 어마어마한 녀석이군. 거기다 생각했던 것 보다 제법 머리도 좋은 녀석이야.’
용사가 어느 정도 머리를 쓸 줄 아는 녀석이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정황을 통해 벨제뷰티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런 벨제뷰티에게 조차 이번 일은 용사에 대한 그녀의 평가를 전면적으로 수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단순히 자신의 이득을 위해 움직이는 수준의 인간이 아닌..
어마어마한 힘과 능력을 기반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탐욕스러우면서도 확실하게 추구할 줄 아는 위험하기 그지 없는 존재로 말이다.
‘마왕님의 마음을 사로 잡는 것으로 이 나라를 손에 쥐겠다는 뜻인가? 하긴.. 그 정도 목표를 지니고 있으니까 인간의 몸으로, 그것도 인간들 중 최강이라는 용사의 몸으로 우리 마족들의 편에 선 것이겠지. 무서운 녀석 같으니라고.. 어떻게 해서든 저 자의 마수로부터 마왕님과 이 나라를 지켜내야만 해.’
그렇게 용사라는 존재에게 한층 더 진한 경계심과 우려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벨제뷰티는 마음의 각오를 한 뒤 이 사실에 대한 이야기를..
저 용사의 사악한 음모에 대한 경고를 그녀의 앞에 앉아 있는 마왕에게 해주기로 마음을 굳혔다.
*
용사와 식사 약속을 잡은 뒤 어떤지 복잡함 감정을 느끼고 있는 마왕.
그런 그녀에게 전후 사정을 들은 직후,
벨제뷰티는 언제나와 같이 잔잔한 표정을 지은 채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폐하, 혹 괜찮다면 소인이 이 일과 관련하여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래. 어디 말 해보도록. 안 그래도 그대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지금까지 마왕에게 가장 정확하면서도 최선이라 여겨지는 해답을 가져다 주는 존재였던 벨제뷰티.
그런 그녀라면 지금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마왕은 그녀의 말을 경청할 준비를 하였다.
“우선..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폐하께서도 이 일이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 계실 것입니다. 저 용사가 요청한 폐하와의 식사 자리는 절대로 평범한 의도에서 벌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 솔직히 그것 때문에 짐은 지금도 머릿속이 복잡한 상황이다. 온갖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왜 용사가 굳이 그런 이상한 것을 요구했는지..”
그 말과 함께 살짝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이기 시작하는 마왕
그녀의 이런 반응을 보면서, 벨제뷰티는 특유의 날카로움이 담겨 있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요구지요, 그리고.. 그 점이 바로 용사가 진정으로 노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가?”
“생각을 해 보십시오. 폐하께서는 분명 용사에게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준다 하셨습니다. 허나 그에 대해서 그가 원한 것은 부도 권력도 영토도 아닌.. 바로 폐하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즉..”
그 말과 함께, 차가운 표정으로 마왕을 바라보는 벨제뷰티.
이어서 그녀의 입에선 진지한 경고의 감정이 담겨 있는 말이 흘러나왔다.
“용사가 원하는 것은.. 곧 폐하라는 뜻입니다.”
“응?.. 짐을.. 말인가?”
그녀의 말에 얼굴에 당혹감이라는 감정을 내보이기 시작하는 마왕.
그런 주인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네, 소인이 보건대, 지금 용사는 어떤 식으로든 폐하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번 작전에서 과도할 정도의 공적을 세운 것도, 그에 대한 포상으로 식사를 요청한 것도 분명 이를 위한 포석이겠지요.”
“용사가 짐의 마음을... 하지만 어.. 어째서?”
“죄송합니다. 아직… 그가 어디까지를 생각하고 있는지는 소인도 확신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좋은 이유 때문은 아닐 가능성이 높은 만큼 아무쪼록 주의해 주십시오. 저 용사라는 자는 폐하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위험한 존재입니다. 식사는 하는 도중에도 절대로 경계심을 늦추지 마시옵소서.”
“으음…”
벨제뷰티의 말에 대해서 일단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마왕.
그러나..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도 벨제뷰티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불안감과 더불어 진한 안타까움의 감정이 담겨 있는 중이었다.
‘솔직히 상황이 이 정도로 나쁘지만 않았어도 그런 위험한 식사 약속 같은건 바로 파하도록 권유 드렸을 텐데..’
냉정하게 봤을 때, 벨제뷰티의 입장에선 여러모로 신뢰할 수 없는 존재인 용사가 마왕과 접촉하는 것 자체를 막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었다.
당장 자신의 주군이 이런 식의 인간 관계에 서툴다는 것은 그녀도 잘 알고 있는 만큼, 저 용사의 간사한 혓바닥이 마왕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현재 마왕국의 사정은 이 용사라는 독이 든 성배와 같은 물건을 쉽게 거절할 수 있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도 이루어지고 있는 종족 연합군의 대규모 공세.
이는 100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재상직을 맡아온 벨제뷰티에게 있어서도 감당이 불가능한 최악의 위기였다.
비록 압도적인 전투력을 지니고 있는 마왕이 주기적으로 출동하여 급한 불을 꺼주고는 있었지만, 그조차도 언젠가 한계가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
이런 시기에,
마왕조차 능가하는 힘을 지니고 있는 용사라는 이름의 검은.
마왕국을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중요하면서도 유일한 열쇠라는 사실을 벨제뷰티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차마 마왕에게 용사가 이 나라를 노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까지 하지 못한 데에는 그러한 배경이 깔려 있었으며, 마왕과의 식사 약속을 취소시키지 못한 이유 또한 이 때문이었다.
명확한 확증이 없는 상태에서 추측만으로 무언가를 하기엔 대상의 중요성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일단 폐하께 경고를 드렸으니 어느 정도 잘 처신하시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주시할 필요가 있겠어. 저 용사가 수상한 짓을 벌일 경우 즉시 대처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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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장미꽃 잎이 띄워져 있는 뜨거운 욕조.
사람 10명은 족히 들어갈 수 있는 그곳에서 그녀는..
마왕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홀로 몸을 씻고 있는 중이었다.
평소라면 전쟁의 피로를 씻어내면서 그녀에게 평온한 감정을 안겨주는 목욕시간.
그녀는 어느 때와 같이 목덜미를 시작으로 어깨와 쇄골..
그리고 특유의 커다란 가슴을 천천히 닦아내면서 몸 구석 구석에 맺혀 있는 긴장의 응어리를 풀어내려 하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렇게 몸을 닦고 있는 마왕의 마음 속에는,
평소의 평온함이 아닌 앞으로의 일에 대한 염려와 긴장이라는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중이었다.
‘용사가.. 짐의 마음을 원하고 있다 라..’
벨제뷰티가 그녀에게 해주었던 이야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선 마왕 역시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다.
군주라는 자리에 있는 몸으로서 그녀의 총애를 받는다는 것은 곧 권력을.. 그것도 아주 큰 권력을 손에 넣는다는 의미로 직결될 여지가 있었다.
그것도 그 대상이 마족이 아닌 인간 용사라는 점에서 이는 충분히 경계할 만한 부분.
벨제뷰티가 우려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으며, 그 위험성에 대해선 마왕 또한 어느 정도 동감하고 있는 바였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 마왕의 마음 속에는 어째서인지 용사에 대한 경계심 보다는, 무언가 익숙하지 않은 기분이 더욱 강하게 느껴지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구나. 만약 그렇다면 이 식사 자리는 독이 든 사과와 같은 것이거늘.. 어째서 짐은 이렇게 목욕까지 하면서 그 순간을 이처럼 기다리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경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쉽사리 떨쳐낼 수 없는.. ‘기대감’ 이라는 이름의 감정.
그렇게 일전에 용사의 공을 치하하기 위해 그를 만나러 갔을 때와 비슷한 모순된 감정을 느끼면서..
마왕은 그대로 눈 바로 아래 부분까지를 욕조 안에 담근 채 그대로 천천히 콧김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대로 욕조 속에서 마치 그녀의 감정을 표현하듯 보글보글 올라오는 거품들.
그것을 바라보면서, 마왕은 마음 속으로 가능한 빨리, 이 혼란스러운 감정의 원인을 찾아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번 식사 자리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구나. 부디 그렇게 되었으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