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그 용사의 은밀한 취미?
* * *
용사의 공적을 치하하기 위해 그가 있는 곳에 도착한 마왕.
어째서 인지 눈에 띄게 급한 모습으로 이곳까지 서둘러 온 그녀는 그대로 방안으로 들어가려 했고,
이에 대해서 하인들을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그대로 문을 열고 자신의 군주인 마왕을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용사!”
방 안에 들어감과 동시에 다급하게 소리치는 마왕.
그런데..
“!?”
“아…”
다음 순간
그대로 잠시 멍한 표정으로 제자리에 멈추어 선 마왕.
한편, 그런 마왕을 보면서 방안에 있던 용사 역시 한 순간 딱딱하게 굳어진 표정을 지은 채 마치 시간이라도 멈춘 듯 동작을 정지하였다.
이 순간 마왕의 눈 앞에 보이고 있는 장면.
그것은..
일전에 보았던 그 용사파티의 수인 전사가 개밥그릇에 담겨 있는 밥을 개처럼 엎드려서 입으로 먹고 있는 모습이었다.
동시에, 그런 수인 여전사의 머리를 진짜로 개 취급하면서 어루만져 주고 있던 용사의 행동은 덤.
이를 보면서.. 마왕은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 지 짙은 혼란에 빠진 채 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의 입에서 가까스로 흘러나온 말은…
“이.. 이것은... 상당히 독특한 취미를 지니고 있…구나. 용사여.”
“아.. 아니.. 저.. 이.. 이건 그런 게 아니고..”
정말로 억지로 담담함을 가장하고 있다는 티가 팍팍 날 정도로 어색하기 그지 없는 마왕의 반응.
이에 대해서 용사는 짙은 당혹감에 사로잡힌 채 어떻게든 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으나.. 그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마왕은 애써 입가에 빳빳한 미소를 담은 채 그에게 말했다.
“괘.. 괜찮다!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사람마다 취향이란 것이 다 다르다는 것은 짐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짐은 이 나라의 군주로서 그 모든 것을 이해해줄 준비가 되어 있는 몸이니..”
“…”
어떻게 해서든 이 상황을 납득을 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는 마왕.
이에 용사는 어쩐지 매도를 당하는 것 이상으로 가슴이 아파오는 듯 한 기분에 사로잡힌 채 한 동안 그저 침묵을 유지할 수 밖에 없었다.
*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이루어진 마왕의 갑작스러운 방문.
마치 엄크를 연상시키는 듯한 이 상황으로 인해서 여러모로 난감한 입장에 처하게 된 난 정말로 힘겹게 마왕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설명하였다.
물론, 여기에 대해선 약간의 각색을 곁들여서 이 녀석의 정신을 파괴해 개같이 만든 과정이 45연속 실패가 아닌 그냥 깔끔하게 족쇄를 풀자 이렇게 되었다 정도로 순회 시켰지만 말이다.
“음..음.. 미안하구나 용사여. 짐이 이상한 오해를 하고 말았구나.”
“아.. 아닙니다 폐하. 오히려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드려서 죄송할 따릅입니다.”
그렇게 가까스로 상황 설명을 끝낸 나에게 어색한 목소리로 사과를 하는 마왕.
이에 대해서, 난 속으로 짙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대로 나의 앞에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는 테라를 바라보았다.
“그럼.. 이 자는 이제 예전처럼 돌아올 방법이 없는 것인가?”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녀석을 구속하고 있던 족쇄를 파괴한 결과 이렇게 된 것으로 봐선.. 가망이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 말과 함께, 난 마왕의 앞에 부숴진 쇳덩어리 하나는 내밀어 보였다.
‘실패’와 함께 모든 마법적 능력이 날아가면서 단순한 고철덩이가 되어 버린 지배의 족쇄.
이를 집어본 마왕은 납득을 한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제법 강력한 마법이 담겨 있었던 것 같구나. 지금에 와선 말 그대로 철 조각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물건이지만.”
그 말과 함께, 그대로 족쇄의 파편을 도로 나에게 돌려주는 마왕.
이어서 난 짐짓 씁쓸함이 담긴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하였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전 지금 상황이 오히려 더 나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차피 그녀는 이미 저를 배신했던 몸. 만약 정신이 멀쩡했다면 분명 지금쯤 전 분노에 휩싸인 채 그녀에게 모진 고문을 가하고 있었겠지요.”
실제로는 남들의 눈을 피해 이루어진 45연속 실패로 인해서 이미 테라에게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로 고통을 준 나였지만, 여기서 굳이 그런 사실을 이야기 할 필요는 없었다.
이 나라의 군주인 마왕은 나의 상관이라 할 수 있는 존재인 만큼 가능한 좋은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꼭 그런 게 아니라 하더라도,
눈 앞에 있는 이상형의 미녀에게 안 좋은 인상을 주고 싶지 않다는 것은 남자라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애초에 이번 임무에서 오버클리어를 달성한 이유에는, 단순히 마족들에게 신뢰를 얻는다는 사실을 넘어서 이 임무를 내려준 마왕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욕망 또한 포함되어 있었고 말이다.
“유감이구나… 그대 같은 자가 이러한 일들을 겪어야 하다니.”
“뭐, 이것도 나름 운명이라 하면 운명이겠지요. 용사가… 아니, 저라는 사람이 짊어진 운명.”
“용사..”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면서 약간의 무거움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마왕.
그녀의 이런 반응을 통해서 난 자칫 호감도 감소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상황이 적당히 무마되었다는 것을 인지하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
용사를 치하하려는 생각으로..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여러모로 마음이 복잡할 것으로 여겨지는 용사의 상태를 살펴보고자 그를 방문한 마왕.
그러나 이 순간 용사와 만나 그와 대화를 하면서,
마왕은 오히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더욱 복잡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수용.. 아니, 사실상 체념에 가까운 모습으로 지금의 이 상황을 수용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용사.
그리고..
그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그런 용사와 대화를 나누면서.
이 순간 마왕은, 자신의 마음 속에 피어나고 있는 이질적이면서도 모순된 감정으로 인해 혼란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참으로 기이한 일 이도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짐은 어째서 이렇게 까지 마음이 불편하단 말 인가.’
냉정하게 말했을 때.
본래의 그녀였다면 지금의 이 상황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종족연합군의 보급선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마을 롭
그곳에서 출발하는 보급품들은 마치 괴수의 사지에 공급되는 혈액마냥,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는 놈들의 공세의 힘의 근원이 되어 왔었다.
그 보급선에 어느 정도의 타격을 주게 된다면 당장 위급한 전선 몇 곳의 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을 것이었으며, 때문에 마왕은 용사에게 그곳의 공격을 명한 것이었다.
그러나.. 용사가 가져온 성과는
단순히 그 괴수의 혈관을 끊어 놓는 수준이 아닌, 녀석의 혈액이 뿜어져 나오는 심장에 칼을 꽂아 넣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제 아무리 강력한 괴물이라 해도 심장에 칼날이 박히게 된다면 오래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하나의 거대한 생물체와 같이 마왕국 곳곳을 두들기고 있는 종족 연합군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록 그들의 총 군세는 여전히 마왕군의 3배에 달하고 있었지만, 그들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결국 식량과 무기 없이는 오래 버티는 것이 불가능했다.
당장 그들의 본국에서 물자가 당도하려면 앞으로 몇 달은 족히 소요될 터.
이 기회를 이용한다면 불리한 전세를 뒤집는 것은 물론이고,
잘만 하면 마왕국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는 저 가증스러운 적들을 완전히 몰아낼 수 있을 지도 몰랐다.
이처럼 단순히 적의 진격을 늦추는 수준이 아닌, 대대적인 반격의 기회를.. 그것도 아군의 피해조차 없는 완벽한 방식으로 가져다 준 용사.
그러나..
이런 대단한 승전보 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 마왕은 지금의 이 상황을 순수하게 좋게 받아들일 수 없어하고 있는 중이었다.
군주의 지위에 앉아 있는 몸으로서 모든 마족들을 다스리는 공적인 존재인 마왕
그녀의 이런 입장에서 봤을 때, 국가의 큰 이득을 안겨준 용사의 행동은 당연히 기뻐해 마땅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순간,
마왕의 마음 속에는 그런 공적인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그녀’라는 이름의 한 여인의 시선에서 우러나오고 있는 진한 안타까움이라는 감정이 크게 자리를 잡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동족인 인간들을 무참히 학살했으며, 배신을 했다지만 과거의 동료였던 존재를 잡아와 노예로 삼은 용사.
한때 그 동족과 동료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검을 휘둘러 왔던 고결한 존재의 이런 철저하면서도 완벽한 변심.
이는 한때 그가 걸었던 것과 같은 고결한 사명을 지닌 길을 이 순간 걷고 있는 마왕으로 하여금 안타까움이라 불리는 감정을 강하게 유발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용사의 처지에 대해선 공감을 하고 있었도다. 하지만, 승전을 한 마당에 짐이 이 정도까지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란 무엇이란 말인가...’
그녀의 입장에선 이해할 수 없으면서, 동시에 이 끝을 따라가다 보면 무언가 중요한 것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상황.
그러나…
이와 관련해서 마왕은 이 이상 깊게 생각을 하는 것을 일단은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비록 마음 속에 찝찝함은 남아 있었지만, 지금의 그녀는 이 이해할 수 없는 감정 따위에 휘둘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어디 까지나 마왕으로서의 ‘일’을 처리 하는 것.
그렇게 마음 속에서 피어나는 감정들을 한쪽에 치워둔 뒤, 마왕은 눈 앞에 있는 용사를 향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찌 되었든...용사여, 짐이 내린 명령을 훌륭하게 수행해 준 것에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하고 싶구나.”
다시금 군주로서의 위엄이 담긴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마왕.
이에 용사는 얼굴에 담겨 있던 그림자를 거둔 뒤, 다시금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신 그저 주군이신 마왕폐하의 명을 따랐을 뿐입니다. 오히려 이렇게 소신의 충성심을 입증할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리 말해주니 고맙구나 용사, 하지만 그대의 공적은 분명 짐의 기대를 능가했으며 우리 마왕국에 큰 이득을 안겨줄 것이다. 이만한 공을 세운 자에게는 마땅한 포상이 있어야 할 터. 그대가 원하는 것을 말해보거라.”
“아.. 아닙니다 폐하! 소신은 단지 목숨을 살려주고 믿음을 주신 폐하의 은혜만으로도..”
마왕의 말에 당혹감을 내보이는 용사.
그러나, 그의 이런 반응에 대해서 마왕은 차분하면서도 단호함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말은 하지 말거라, 신상필벌은 세상의 이치. 오히려 그대같이 큰 공을 세운 자에게 마땅한 포상을 주지 않는 다면 장수들의 사기에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무엇이든 좋으니 그대가 원하는 것을 말하도록.”
“으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두지 않는 마왕의 말
이에 대해서 용사는 잠시 동안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이어서 조심스럽게, 눈 앞에 있는 마왕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은. 한 가지 청이...바라는 것이 있긴 합니다...”
“뭔가? 말해보아라.”
용사의 말에 대해서 짙은 관심을 느끼기 시작하는 마왕.
이에 용사는 제법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마왕 폐하. 혹 괜찮으시다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