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나한테 난폭한 짓을 할 생각이야! 야한 이야기처럼!
* * *
손끝에 느껴지는 찌릿한 감각.
단단한 무언가를 내리치면서 느껴지는 약간의 고통에 난 살짝 눈살을 찌푸렸으나,
그와는 별개로 난 내가 마주하게 된 이 ‘결과’ 에 대해서 자동적으로 살짝 입꼬리가 올라갈 수 밖에 없었다.
‘이정도 일격을 방어했는데 고작 이 정도 피해라니.. 역시 마왕이 내려준 장비야, 성능 확실한걸?’
이곳 롭을 다스리고 있는 장군이자, 제국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성기사 카산드라.
내가 아는 그녀의 전력은 용사파티의 엘프 성기사 아멜다와 대등하거나 그 이상인 수준으로 그런 그녀가 나에게 날린 이 공격 또한 보통 일격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방패를 사용한 돌진 공격.. 대충 신의 방패인가 하는 이름이었지?’
스토리상에서 마족 간부 중 한 명을 패퇴시킬 때 사용했던 힘.
만약 이것을 맞은 대상이 내가 아닌, 방금 전 도망친 간부였다면 아마도 제법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자체적인 공격력도 강했고,
무엇보다 신성력이라는 마족에게 있어선 상극과 같은 힘이 담긴 일격이었던 만큼 상성상으로도 최악이었던 일격.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녀의 이런 필살의 일격을 정통으로 방어했음에도
나에게 느껴지는 여파는 말 그대로 ‘조금 아프다.’
딱 그 정도 수준에 불과했다.
입고 있는 갑주의 방어력도 뛰어났으며, 결정적으로 아무리 마족제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 해도 나라는 존재는 일단 인간이었다.
카산드라가 기대했던 상성에 따른 추가 데미지는 일절 받지 않는 몸이었으며,
거기다 지금의 나는 그런 것을 다 배제하더라도 당장 기본 스팩에서부터 그녀를 일방적으로 찍어 누르는 것이 가능했다.
카산드라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자면, 말 그대로 상대를 단단히 잘못 만난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런 식으로 또 다른 꼼수를 둔건 저쪽도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겠지. 뭐 딱히 소용은 없었지만.’
카산드라의 공격이 막힌 것과 동시에, 나를 향해 공격을 시도하다 그대로 모가지를 잡혀 버린 그년..
용사파티의 일원으로서 나의 블랙리스트에 당당히 이름이 올라와 있는 존재.
수인 여전사 테라.
이 순간 내 손아귀 안에서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난 그대로 점점 더 강하게 녀석의 목을 조이기 시작했다.
“커허어어어억!!!”
괴로움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어떻게 해서 든 벗어나기 위해 나의 팔을 공격하는 테라.
하지만 목을 잡혀버린 시점에서 그녀는 이미 온전히 힘을 쓸 수 없었으며, 아울러 갑옷의 방어력 또한 단단하기 그지 없는 만큼 테라의 이런 노력은 무의미한 발버둥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녀의 이러한 무의미한 노력과는 별개로,
이 순간 난 테라가 열심히 발버둥을 쳐준 덕분에 그녀와 관련해서 한가지 중요한 사실 발견할 수 있었다.
‘단순한 장신구로 알고 있었는데.. 설마 이건..?’
문득 나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초록색 빛을 발하고 있는 족쇄.
그것이 무엇인지 인식함과 동시에,
나의 입가에는 자동적으로 미소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지배의 족쇄라.. 참 귀한 물건을 착용하고 있는걸?’
착용한 대상의 이성을 날려버리고 명령에만 복종하는 광전사로 만드는 아이템
게임 내에선 딱 하나만 얻을 수 있으며 설정상으로도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알려져 있는 그것.
이어서 나의 시선은 이 순간 대검에 실려 있는 힘으로 인해 방패를 빼는 것 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카산드라에게로..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손가락에게로 향하였다.
그녀의 손에 착용되어 있는 족쇄의 매개체가 되는 반지.
그것을 보면서 난 자동적으로 한 가지 재미있는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차피 복수를 하기로 벼르고 있었는데, 이것도 나쁘지 않겠지. 실제 설정대로 잘 움직여 줄지는 해 봐야 알겠지만.. 뭐 혹 실패하더라도 다른 방법은 충분히 있으니까.’
그렇게 결론을 내린 직후.
난 그대로 테라의 목을 쥐고 있던 손에 한 순간 강하게 힘을 담았다.
그러자..
우득!
“커헉!...허어어어...”
순간적으로 가해진 충격에 그대로 정신을 잃고 축 늘어진 테라.
힘 조절을 한 만큼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그녀가 기절한 것을 확인한 직후, 난 그대로 손에서 힘을 빼 그녀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대로 테라에게서 시선을 돌려 옆에 있는 카산드라에게로 옮겨지는 나의 시선.
그와 동시에, 카산드라의 얼굴에는 그대로 짙은 공포의 감정이 담기기 시작했고..
난 그대로 자유로워진 나의 한쪽 팔을 그녀를 향해 뻗기 시작했다.
그리고..
*
“이.. 이럴.. 수가..”
순식간에 수인여전사의 목을 꺾어 기절시켜버린 마왕.
자신과 동급의 힘을 지닌 존재를 단숨에 해치워버린 그의 모습을 보면서,
동시에 그녀가 시도했던 도박이 완벽하게 실패로 끝나버렸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카산드라의 얼굴에는 그대로 한층 진한 공포가 깃들기 시작했다.
‘이.. 이게.. 이게 마왕의 힘..이라고? 마.. 말도 안돼.. 이건 듣던 것 보다 훨씬 더 강하잖아!.. 어떻게.. 어떻게 나의 비장의 수가 이렇게 허망하게..’
아무리 그래도 2:1 상황이라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 여겼던 카산드라의 생각을 단 수 초 만에 산산 조각으로 박살내 버린 마왕.
이어서 그는 그대로 공포에 질려있는 카산드라를 향해서 시선을 돌렸다.
투구에 가려져 있어 표정을 읽을 수 없으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무시무시하게 보이는 마왕의 모습.
이어서 마왕은 방금 전까지 수인 여전사를 들고 있던 팔을 천천히 카산드라가 있는 곳을 향해 뻗기 시작했다.
“아…아아..”
그 절망적인 현실에 진한 공포를 느끼기 시작하는 카산드라.
이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는 손에 들고 있는 방패를 놓고 달아난다거나, 방패를 검집 삼아 끼워둔 검을 뽑아 마왕을 공격해야 한다 같은 건설적인 생각 따위는 전혀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오직 압도적인 공포.
그 끔직하기 그지 없는 감각에 사로잡힌 채, 카산드라는 그저 몸을 덜덜 떠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크윽!”
그대로 방패를 들고 있던 그녀의 손목을 붙잡는 뒤 이를 비틀어 버리는 마왕.
그 안에 담겨 있는 싸늘하면서도 어마어마한 힘에 카산드라는 짙은 고통을 느끼면서 그대로 방패를 쥔 손을 놓을 수 밖에 없었다.
이어서 그대로 저항할 수 없는 힘을 담아 카산드라의 손목을 강하게 잡아 끈 뒤 그녀를 살펴보는 듯 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는 마왕.
그의 이러한 두려우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서, 카산드라의 머릿속에는 한 순간 자신의 미래와 관련해 끔직하기 그지 없는 지식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 어째서 내 목을 치지 않고 이런 짓을…!!! 서.. 설마.. 이건.. 말로만 듣던 그것인가?.. 마왕에게 잡혀가 온갖 험한 골을 당하는 여전사들의 운명.. 마족들의 씨받이로 사용된서 마족의 아이를 낳다가 죽임을 당한다는..’
종족 연합 사이에서 알음 알음 전해져 오는..
마족들에게 포로로 잡혀간 이들의 비참하기 그지 없는 운명.
고블린이나 오크 같은 하급 마족들에게 능욕을 당하고, 그 중 몇몇은 고위 마족들의 노리개로 끌려가 죽을 때까지 성적인 학대를 받는다는 굴욕과 절망으로 가득 찬 이야기.
비록 여태까지 구체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었지만, 저 사악하고 잔인한 마족들의 특성상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이라 여겨지는 이야기.
그렇게 그 찰나의 순간, 보다 구체적이면서도 절망적인 미래를 머릿속으로 그려내면서 카산드라는 마왕에게 손목을 붙들린 그대로 고개를 푹 숙였다.
‘끝이야.. 이제 마왕은 이대로 나를 납치한 뒤 온갖 굴욕적인 일을 겪도록 만들겠지.. 신을 섬기는 나를 조롱하면서 온갖 능욕을 가할 거야..’
평범한 여성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 성기사인 그녀에게 있어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미래에 절망하는 카산드라.
그 순간…
문득 카산드라의 머릿속에는 정확한 출처는 알 수 없는 마왕에 대한 한가지 이야기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그러고 보니.. 확실치는 않지만, 부하들은 어떤지 몰라도 마왕은 의외로 전사로서의 긍지를 지니고 있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어본 것도 같은데..’
출처가 불분명 한 만큼 확신을 할 수는 없다 여겨지는 이야기.
그러나 이 순간, 카산드라는 설령 그것이 확신할 수 없는 이야기라 할 지라도 그 콩알만한 가능성어 희망을 걸어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그래.. 어차피 실패해 봤자 본전이잖아?.. 설령 사실이 아니고 실패한다 해도 어차피 마족들에게 난폭한 짓을 당하는 건 똑같아. 그렇다면..’
그렇게, 만에 하나의 가능성에 기대를 건 채, 순간적으로 몰려오는 두려움과 긴장에 몸을 떨기 시작하는 카산드라.
그 순간..
“!”
강한 힘을 담아 내던지듯 그녀의 손을 내려놓는 마왕.
마치 무언가를 끝낸 듯 한 그의 행동에 카산드라는 진한 다급함을 느끼면서 그대로 마왕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어서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의 문장.
그것은… 적어도 제국의 장군이자 신을 섬기는 성기사로서, 최소한의 명예만이라도 지키고 싶다는 간절한 욕망에서 비롯된 말이었다.
“큭! 죽여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