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 귀한곳에 누추한 분이..
* * *
자신의 눈 앞에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존재.
그자가 누구인지 인식함과 동시에,
방금 전까지 비교적 여유를 지니고 있던 엘리사는 그대로 짙은 긴장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한 보면 잊기 힘든 특색 있는 외모..
붉은 머리칼에, 구릿빛 피부를 지니고 있는 수인 격투가.
이를 통해서, 엘리사는 자신의 앞에 있는 수인이 과거 용사파티의 일원이자처음으로 마왕성 까지 당도하는데 성공한 전사들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곳에서 용사파티의 일각을 만나게 되었을 줄이야.. 그렇다는 것은 설마.. 저 년 이외에 다른 자들도 이곳에 머무르고 있다는 뜻인가?’
정황상 같은 동료인 만큼 그럴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상황.
그리고 이에 대해서, 엘리사는 이번 임무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등골이 서늘해지는 듯 한 감각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마왕의 친위대로서, 마왕을 제외한 마족들 중 최강의 실력을 보유하고 있는 엘리사.
그러나, 그녀는 용사파티에 속해있는 전사들 또한 절대로 만만치 않은 실력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대면했을 때는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 되기도 전에 용사가 쓰러져버려서 정식으로 붙어보지 못했지만, 이미 지금 까지의 전적을 통해 용사파티의 전사들은 하나같이 보통 아니라는 사실이 입증된 상황이었다.
물론 그 중에는 용사의 비중이 가장컸다고는 하지만,
다른 전사들 또한 그녀를 비롯한 마왕 친위대의4대 간부들과 비슷한.. 어쩌면 그 이상의 실력을 지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은 즉,
지금 이 순간 그녀의 눈 앞에 있는 이 수인 여전사의 힘 또한 그녀와 대등한 수준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그때와는 달리목에 처음 보는 초록 빛의 족쇄 같은 것을 착용한 채 초점없이 흐릿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수인 여전사.
이를 보면서,
엘리사는 무기를 든 손에 힘을 쥔 채 최대한 빠르게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적은 쉽게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강적.. 거기다 이 근처에는 이 녀석의 동료들까지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는 것은.. 역시 여기선 도주가 최선 이라는 뜻이겠지.’
애초에 그녀가 이곳에 온 목적은 달성한 만큼 굳이 위험한 승부를 걸 이유는 없었다.
더군다나 이 근처에는일전의 전투 결과와는 무관하게 마왕이 자신과 대등한 실력을 지녔다고 직접 공언한 용사까지 있었다.
혹 어쩔 수 없이 전투를 벌이더라도 일단은 그자와 합류한 이후에 진행 하는 것이 정답.
그렇게 판단을 내린 직후, 엘리사는 그대로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기며 이곳을 벗어나려 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두지 않겠다!”
“!”
다음 순간, 그녀의 등 뒤에서 갑작스럽게 비춰오기 시작하는 환한 불빛.
그와 동시에 그림자와 동화 되려던 엘리사의 마법은 그대로 무력화 되었으며 이에 엘리사의 얼굴에는 짙은 당혹감이 깃들기 시작했다.
‘내 마법을 강제로 취소시키다니.. 설마 용사파티의 다른 녀석이 온 건가?’
짙은 경계심을 내보이며 뒤쪽으로 살짝 시선을 돌리는 엘리사.
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의 눈에는 일전의 용사파티와는 무관한,
푸른 빛이 감도는 갑주를 착용하고 있는 처음 보는 여장군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부하들을 대동한 채 환한 빛을 발하고 있는 검과 방패를 들고 있는 그녀.
이에 엘리사는 용사파티는 아니지만 만만치 않은 상대가 나타났다는 것을 느끼며 자동적으로 눈살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인간이지만 제법 강해 보이는 실력자.. 그렇다는 건 저 여자가 바로 그 카산드라인가 뭔가 하는 녀석인가?’
앞서 경비병들을 쓸어버리면서 들었던 강자.
나머지 용사파티의 전사들이 나타난 것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매우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는 이 상황에 대해서 엘리사는 최대한 냉정함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기 시작했다.
‘앞에는 최소 나와 동급 이상의 힘을 지닌 수인, 뒤에 있는 녀석 또한 그에 못지 않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간.. 이런 상황에서 정면 대결은 절대로 무리다. 그렇다면..’
결국 남은 수단은 어떻게 해서 든 도주를 하는 것 뿐이었으나, 엘리사는 지금 같은 상황에선 그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라 판단하고 있었다.
그녀의 마법이 일부 봉쇄되었으며, 카산드라의 무기에서 나오고 있는 빛은 그녀가 몸을 감출수 있는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거기다 주변에는 이미 카산드라가 끌고 인간 병사들이 활과 창을 든 채 사방을 포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문자 그대로 사면초가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이 순간.
이에엘리사는 자신에게 남은 선택지가 단 한 가지 뿐이라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하아…”
짙은 한숨을 내뱉으며 품 속에서 재빠르게 무언가를 꺼내는 앨리사.
'제작하기 상당히 어려운 비장의 수단이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지.'
이어서 카산드라를 비롯한 이들이 제지를 할 틈도 없이 그녀는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을온 힘을 다해 지면으로 던졌다.
그러자..
펑!
"! 뭐... 뭐냐?"
"큿! 이.. 이건 대체!?"
폭발음과 함께 순간적으로 세상을 뒤덮는 강렬한 빛.
이에 카산드라를 비롯한 이들은 순간적으로 시야가 차단되었으며, 그 틈을 이용해서 엘리사는재빠르게 포위망의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섬광탄.
빛을 가두는 고도의 마법이 응축되어있으며 이것이 풀림과 동시에 지나치게 강렬한 빛을 발산하여 주변의 시야를 차단하는 도구.
상대가 빛을 발산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대처 방법은 거의 카운터나 마찬가지였으며, 실제로 이 순간 카산드라를 비롯한 병사들은 전혀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벌어 들인 시간 속에서 엘라사가 목표로 한 지점은 당연히 카산드라나 그 수인전사가 있는 곳이 아닌일반 병사들이 지키고 있는 장소.
저 두 강자라면 모를까, 그녀에게 있어서 섬광탄으로 시야가 차단된 일반 병사를 제압하는 것은 아주 손쉬운 일인 만큼, 엘리사는 단숨에 병사들을 베어 넘기고 재빠르게 이곳을 탈출하려 하였다.
그런데..
“웃!?”
다음 순간,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살기
순간적으로 그녀의 본능을 관통하는 듯한 감각에엘리사는 다급하게 몸을 뒤틀며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들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챙!
그 직후 느껴지는 묵직한 힘이 담긴 일격.
이에 엘리사는 한 순간 검을 놓칠 뻔할 정도의 충격을 받으면서 그대로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제길!”
흐트러진 자세 속에서 어떻게든 바로 서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엘리사.
그러나, 그녀가 가까스로 넘어지려던 몸을 바로 세우려던 그때..
“커헉!”
팍!
갑작스러운 격통과 함께 그대로 바닥에 처박히는 엘리사.
그 여파로 인해 단숨에 한쪽 팔이 부러지는 것을 느끼면서,
동시에 그렇게 그녀가 쓰러진 곳으로 무언가가 날아오는 감각을 느끼면서.
엘리사는 그나마 멀쩡한 한쪽 팔에 억지로 힘을 쥐어 짜내 어떻게해서든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섰다.
그리고..
쾅!
그녀의 귓가에 울려 퍼지는 폭발음과 그녀를 향해 날아드는 돌조각들.
이 충격의 정체가, 방금 전 그녀가 서있던 바로 그 자리라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이를 아슬아슬하게 회피한 엘리사는 순간적으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감각에 휩싸이게 되었다.
‘위험했어.. 만약 저기서 억지로 몸을 피하지 않았다면..’
섬광탄의 효과가 끝나가면서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하는 방금 전 폭발의 결과.
방금 전 엘리사가 처박혀 있던 그곳에는 직경 50cm짜리 크레이터가 생겨나 있었으며..
그 중심에서는 그녀가 처음부터 경계했던 그자가..
그 수인 여전사가, 돌조각이 떨어지는 주먹을 천천히 들어 올리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섬광탄으로 인해 차단된 시야와 이로 인해 발생한 혼란.
그러한 것들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은 채수인 전사는 그대로 오직 직감에 의지하여 엘리사를 공격했고,결과적으로 그녀의 도주를 저지함과 동시에 그녀의 팔까지 부러뜨려버리는 데 성공했다.
비상시에 사용하기 위해 준비해두었던 비장의 패가 실패로 돌아가 버린 상황.
이에 엘리사는 눈앞에 있는 이 수인전사의 감각이 그녀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대단하다는 것을 인식하며, 자동적으로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수인의 감지능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설마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까지 정확하게 날 잡아 낼 줄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나기 그지 없는 상대의 능력.
이에 엘리사의 얼굴에는 그대로 짙은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사방에 있던 병사들과 카산드라는 다시금 시력을 회복한 채 살짝 흐트러졌던 포위망을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초점 없는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수인 전사는, 다시금 그녀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
그렇게 궁지에 몰려 있는 엘리사를 보면서, 카산드라는 기세등등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과연.. 괜히 역대 최강의 용사파티라는 말은 허명이 아니었던 것 같군. 솔직히 방금 전 상황에서 그렇게 까지 잘 대처해 줄 줄은 몰랐다.”
“…”
칭찬의 의미가 담겨 있는 카산드라의 말에 그대로 살짝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수인전사.
방금 전의 그 재빠른 움직임이 거짓말인 것처럼 이번에는 무언가 굼뜬 듯 한 반응을 보이는 그녀였으나, 여기에 대해서 엘리사는 무언가 의문을 느낄 여지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마지막 수단이 실패로 돌아갔어.. 이렇게 되면 내가 선택해야 하는 것은 결국..’
섬광탄 이라는 비상 수단마저 사라진 지금, 그녀에게 이만한 수의 적들을 교란시킬 수 있는 수단은 더 이상 없었다.
아니..
설령 있다 해도 저 예리하기 그지 없는 감각을 지니고 있는 수인전사에게는 무용지물일 것이다.
더 이상의 탈출 방법은 없었으며,
이렇게 되면앞으로 그녀가 맞이하게 될 미래는 적에게 살해 당하거나 포로로 잡히는 것 뿐이었다.
어느 쪽이 되었든, 적에게 수모를 당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녀에겐 치욕스러운 결말.
그렇게 판단을 내린 엘리사는그대로 손에 쥐고 있는 검을 바라보며 결심을 굳히기 시작했다.
‘포로가 되어 모두에게 패를 끼칠 수는 없는 일.. 어차피 이것으로 중대한 임무는 완수했으니. 더 이상의 여한은 없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채 검을 든 손에 힘을 주기 시작하는 엘리사.
이어서 그녀는..
그 검의 끝을 천천히.. 자신의 심장이 있는 곳으로 겨누기 시작했다.
‘폐하.. 부디 만수무강 하시옵소서..’
마지막으로 주인께 인사를 하며 그대로 팔을 움직이려 하는 엘리사
그때..
쾅!!!!!
“!!?”
“어?”
다음 순간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거대한 폭발음
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엘리사의 손길은 그대로 딱 멈추어 섰으며..
동시에 카산드라와 병사들.. 심지어 수인전사 까지 포함한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의 얼굴은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짙게 피어난 흙먼지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기 시작한 누군가.
검은갑주로 전신을 감싸고 있으며, 한 손에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발산하고 있는 대검을 들고 있는 그는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또렷하면서도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였다.
“호오.. 이게 누구야? 설마 이런 귀한 곳에서 누추한 분을 만날 줄은 정말 몰랐는걸?”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