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TR용사는 마왕에게 무릎을 꿇었다-15화 (15/150)

〈 15화 〉 복수는 좋은 거야 ..

* * *

게임 상에서 유저들을 빡치게 만드는 것은 비단 강력한 힘을 지닌 적 몬스터나 보스들만이 아니었다.

과거에 유행했던 한 RPG 게임에서 손이 미끄러졌다며 심심하면 장비 내구도를 까먹는 통에 유저들의 분노를 산 모 대장장이.

핵전쟁으로 세계가 대충 망한 세상에서 정수기가 없다고 지랄하는 통에 기껏 개고생끝에 가져왔더니 거지같은 핑계를 대면서 사람을 쫓아내는 관리자.

통수란 통수는 다쳐놓고 마지막에 가서 사실 제가 그려려고 그런게 아니고요.. 같은 소리를 하면서 솜방망이 처벌로 끝난 쌍년 등…

명목상으로는 일단 우리들을 도와주는 ‘아군’ 이라는 간판을 달고는 있었지만, 실상은 그냥 그 행보 자체로 분노를 유발하는..

솔직히 차라리 처 죽이기라도 할 수 있는 적보다 더 짜증나는 아군 NPC 들은 게임 내에 상당히 많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애초에 그 태생부터가 사람 기분을 더럽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이 NTR 게임 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게임을 플레이 하는 과정에서 각종 지저분한 방식으로 나의 혈압을 상승시켜왔으나 시스템상 죽이기는커녕 공격 자체가 불가능 하며 결국은 마지막까지 꿀 빨면서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녀석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내 앞에는 그러한 죽이고 싶어도 못 죽이는 NPC들 중에서도 유독 내 기분을 더럽게 만들었던 녀석이..

도시 롭의 군수품 관리자이자, 군납비리의 상징과 같은 인물.

스토리 전개상 보급품 비용이라는 명목으로 강제적으로 보유 자급의 80%를 털어버리며,

이를 거부할 경우 식량이 고갈되어 전멸했다는 문구와 함께 게임을 재시작하게 만들고

마지막에는 썩은 미소와 함께 자신에게 속아넘어간 용사를 비웃으며 금화를 새는 것으로 등장을 끝냈던 그 새끼가..

부패관리 글렌이,게임 상에선 결코 보여준 적이 없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ㄴ…너..너..넌… 누구냐.. 이.. 이게 대체 무슨 짓이지?”

"누구냐 하면. 네놈에게 당한 피해자 중 한 사람.. 이라고 하면 되려나?"

"뭐... 뭐..라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와중에도 두려움은 느껴지는지 온 몸을 덜덜 떨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글렌.

그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대검을 들고 녀석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네놈,...! 내가 누군 줄 알고 감히 이런 짓을 하는 것이냐! 가..감히 이곳 롭의 절반을 다스리고 있는 이 글렌 님을 건드리겠다는 것인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한 채 덜덜 떨면서 가오는 살아 있는지,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대사의 변형 판을 이야기 하기 시작하는 글렌

그러고 보니저 녀석이 식량 가격을 가지고 우리들을 압박할 때 했던 이야기 역시 저것과 상당히 유사했던 것 같았다.

대충 자기가 이 마을의 절반을 지배하고 있다느니.. 자기 성질을 건드리면 당장 내쫓아 버리겠다느니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압박과 구라를 총동원해 돈을 뜯어내었던 글렌.

실제로 보급기지 역할을 하고 있는 이곳인 만큼, 보급품 관리자인 글렌이 마을의 절반은 지배한다는 저 이야기 자체는 아주 틀린 이야기가 아니긴 했지만, 그런 새끼가 횡령을 저지르고 용사파티를 삥 뜯었다는 사실은 그것대로 큰 문제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순간, 내 앞에서 실시간으로 글렌이 소리치고 있는 저 대사는, 나로 하여금 안 그래도 녀석 때문에 기분이 더러워 졌던 그 때를 다시금 떠올리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나마 조금은 낫네. 그때는 재수없게 처 웃으면서 저런 소리를 늘어 놓았지만 지금은 덜덜 떨면서 저 소리를 지껄이고 있으니..’

그렇게 다시금 본능에서 우러나오는 역겨움을 느끼며,

난 그대로 천천히..

들고 있던 대검에 진한 기대의 감정을 담은 채.

그대로 이것을 녀석을 향해 휘둘렀다.

­팍!

“어…?”

한 순간 검에서 뿜어져 나온 한 줄기의 검은 불꽃.

그것에 직격 당한 결과 통째로 날아가버린 녀석의 팔

그곳에서 뿜어져나오는 피.

그리고..

그곳을 통해서 느껴지는 고통의 감각.

한 순간 파도처럼 밀려오기 시작하는 그것은.

일이 발생한 것 보다 한 박자 늦게

그의 뇌리를 강하게 후려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끄아아아아악!!!!”

그 직후녀석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소리.

태어난 이래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어마어마한 통증.

그 고통의 파도에 집어삼켜짐과 동시에.

글렌은 그대로 바닥을 뒹굴며 괴로움에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너어어어!!! 너 이 개자시이이이이아아아아아ㅇ아아악!!!” 가..감히!!감히 이 글렌님으으으을!!!”

고통과 분노로 뒤엉킨 비명을 토해내는 글렌.

마치 해충처럼 격하게 꿈틀거리고 있는 녀석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나의 마음 속에는,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진한 희열의 감정이 강렬하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래.. 바로 이거야.. 이걸 보고 싶었어. 이 재수 없는 새끼가. 이렇게 비참하게 땅을 기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다고!”

안 그래도 이 세계에 들어오면서 인간을 죽인다는 거부감이 매우 무뎌진 나였다.

이런 상황에서, 줄곧 처 죽이고 싶었던 녀석이 괴로움의 감정을 토해내는 모습을 보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일말의 가책도 자비도 존재하지 않는 순수한 기쁨과 쾌감을 느끼도록 만들어주고 있었다.

‘복수는 후회와 허탈함만을 불러온다 했었는데.. 이제 보니까 그거 다 개소리였잖아. 사람들이 복수심을 불태우며 안달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어!’

처벌받아 마땅한 인간에게 응당한 징벌을 내리는 것.

어설프고 어설프며 지지부진하기 그지 없는 인간의 법률 따위에 의존한 것이 아닌..

나의 손으로 직접

응징 받아 마땅한 존재에게 고통이라는 이름의 처벌을 내려주는 것.

그것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은 후회도 공허함도 아닌,

순수하기 그지 없는 기쁨.. 그리고 진한 보람과 성취감이었다.

그렇게 환의에 찬 감정 속에서.

난 다시 한 번 가볍게

기쁨의 감정을 담아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팍!

“끄르게에에에에에엥ㄲ!!!”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그대로 날아가버리는 녀석의 한쪽 다리.

동시에 글렌의 입에선 돼지 멱따는 듯한 비명 소리가 한층 더 강렬하게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끄어..끄어어어억…. 사.. 살… 살..려..줘.. 제.. 제발…. 대… 대체.. 내가 무슨.. 무슨 짓을 했다고 이러는..건데.. 제..제발.. 도.. 돈이라면…줄 테니까.. 제..제발.. 제발 목숨 만은…”

격심한 고통 속에서 드디어 생명의 위험을 느끼며 내원하기 시작하는 글렌.

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지가 지금까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난 한층 더 진한 미소를 담은 채 다시 한 번 검을 쥔 손에 힘을 담았다.

‘살아있을 가치가 없다는 건 이런 놈을 두고 하는 말이겠지... 솔직히 마음 같아선 여기서 한 시간 정도 더 직접 짓이겨 주고 싶었지만..’

그러나 아쉽게도 나에게는 누군가를 오래오래 살려두면서 괴롭히는 재주는 없는 상황이었으며.

거기다 결정적으로 지금 나에겐 그 정도로 여유를 부릴 정도로 시간이 많지 않았다.

기분을 매우 좋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 할때였다.

‘뭐.. 보람찬 것과 별개로이건 어디까지나 보너스 같은 것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난 그대로 글렌 녀석을 향해 마지막으로 검을 휘둘렀다.

“끄허어어어어어억!!!!”

영원히 불구로 만들어 놓기엔 돈 많은 이 새끼가 고위 회복마법을 안 받을리가 없는 만큼 여기선 숨통을 끊어 놓는 것이 정답이었다.

그 결과

그대로 깔끔하게 하반신이 분리되어 떨어져 나가는 글렌.

그렇게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녀석을 놔둔 채,

난 그대로 다시 한 번 검을 휘둘러 창고 안에 남아 있던 군수품에 불을 붙였다.

음차원의 마력이 담겨있는 검은 불꽃을 심으로 하여 피어나는 새빨간 불길.

마치 지옥의 깊은 곳에서 피어난 듯 한 그 강렬한 화염은 평범한 불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군수품들과 창고를 불태워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장면을 뒤로 한 채, 난 그대로 창고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기왕 환심을 사는 것을 목적으로 일을 벌인 만큼, 이제 겨우 불길이 치솟기 시작한 저쪽을 도와주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응?”

*

어둠이 깔려 있는 창고 구역.

마족들의 습격이 예고 된 지금, 이곳을 지키고 있는 병력은 평소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았으며.

그나마 남은 병사들 역시 곧바로 방벽 쪽으로 움직일 생각만을 한 채 정작 이곳의 상황은 그리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듣자 하니 이번에 나갔던 놈들은 다 죽임을 당했다면서?”

“그래... 그 중에는 내가 알고 있던 녀석도 있었는데. 성격이 별로여서 친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죽었다고 하니까 조금은 불쌍하네.”

습격을 당한 이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다가올 전투에 대비하는 병사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화톳불에 의지하면서 그들은 긴장을 풀기 위한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어쨌든 곧 마족들이 몰려온다고 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해두자고. 뭐.. 카산드라 장군님이 있는 이상 별 걱정은 안되지만.”

“그분의 실력이라면 어지간한 마족들은 단번에 처치할 수 있으니까 말이지.”

“확실히 대단하신 분이지, 소문에 따르면 마왕의 친위대조차도 이길 수 있을지 모른다는데..”

“그래? 그렇다면 확실히 주의를 해야겠어.”

“으음.. 그래야겠...?”

“응? 뭐야? 주의하다니 그게 무슨…!”

그때..

“커…허…..ㄱ”

“!”

“뭐.. 뭐야?”

갑작스럽게 어둠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검에 그대로 목이 떨어져 나가는 동료.

이에 그곳에 있던 이들은 그대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 예기치 못한 기습에 대비를 하려 하였다.

그러나..

“! 커….ㄱ!”

“끅….!”

그들이 무언가 손을 써보기도 전에 순식간에 목에서 분리되어 바닥에 떨어지는 머리.

변변한 비명조차 똑바로 지르지 못한 채, 경악으로 물들여져 바닥에 떨어지고 있는 그들의 눈에는,

마지막으로, 보라빛으로 일렁이는 갑주를 입고 있는 한 작은 체구의 무언가의 모습이 들어왔다.

*

수비병들을 최소한의 소음만으로 처리한 그녀..

마왕의 친위대중 한 명이자, 이번 임무에서 용사의 감시와 보조 임무를 맡고 있는 마족.

엘리사 이클립스 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는 그녀는 검에 묻어있는 피를 가볍게 털어내었다.

“그럼. 이제 슬슬..”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면서, 그대로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화톳불의 장작 하나를 들어다 옆에 있는 창고 안으로 집어 던지는 엘리사.

그 직후..

그대로 천천히 측면에 위치한 부둣가로 시선을 돌린 그녀의 눈에는,

서쪽 끝에서부터 이쪽으로 차례차례 연기가 피어 오르기 시작하는 창고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둠이 깔려 있는 터라 일반적으로는 거의 구분이 불가능했지만, 그녀의 눈에는 또렷하게 보이는 화재의 현장.

이어서 연기가 피어나던 창고에는 마치 봉화를 울리기라도 하듯 작은 불꽃이 하나하나 피어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창고에서부터 서쪽 구역에 있는 이 마지막 창고까지 이런 식으로 불타는 장작을 하나씩 던져놓고 온 엘리사.

이제 그 여파가 말 그대로 불이 붙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투구로 가려져 있는 그녀의 입가에는 슬쩍 미소가 지어지기 시작했다.

‘그럼.. 이제 반대쪽에서 요란하게 일을 진행하고 있는 건방진 용사 놈에게 가봐야지.’

비록 전투력은 그녀보다 강할지 모르나 감히 그녀의 전문분야인 이런 잠입 임무에서 자신을 도와주겠다 어쩐다 같은 이야기를 늘어 놓은 용사.

그 사실에 약간의 앙금이 생긴 만큼,

자신이 맡은 일을 끝낸 이 시점에서 엘리사는 이대로 용사에게 달려가 아직도 못 끝냈냐며 핀잔을 주는 것으로 복수를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찾았…다..”

“!?”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약간 어눌한 목소리.

이에 엘리사는 무언가 심상치 않은 살기가 그녀를 덮치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 직후.. 그대로 그녀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한 존재.

초점 없는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그것’ 얼굴을 알아봄과 동시에,

마족 간부 엘리사의 표정은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설마.. 저 녀석은 그때 그..?’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