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토라레도 궁금해 하더라고..
* * *
짐꾼 토라레
타고난 정력과 사람의 마음을 구슬리는 뛰어난 말빨을 통해 저 절대적인 지닌 용사를 밀어내고 용사파티의 여성들을 모조리 손에 넣는데 성공했으며.
그리고 이제는마왕을 쓰러뜨린 용사의 공적과 마왕의 보물을 가로채고 부귀영화를 누리게 될 것이라 의심치 않고 있던 인물.
그러나 이 순간.
그는 정말로 예상치 못하게 발생한 사태로 인해 짙은 당혹감에 서로 잡히게 되었다.
“아… 아니.. 용사가.. 그 용사가 정말로 패배했다고?”
“네..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마왕의 힘이 너무 강했습니다. 저희들 따위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용사가 힘도 쓰지 못하고 순식간에 당해버렸다. 알고 있듯이 용사의 힘은 우리들 전원이 합친 것과 비등한 수준.. 그런 용사가 당해버린 이상 우리들로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마왕 강함.. 쓰러뜨리는 건 무리.”
토라레의 말에 절망이 담겨 있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에일라.
이어서 그런 그녀의 뒤를 따라 다른 여성들은 침울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였다.
지금까지 그들이 계획했던 것이 완벽한 실패로 돌아갔다는 말.
이를 들으면서, 불과 수 분 전까지만 해도 그 동안 원해왔던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던 토라레는 커다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대체 일이.. 일이 왜 이따위로 흘러가 버린 건데? 너희들이 분명히 호언장담 했었잖아, 용사의 힘이라면 분명 마왕을 쓰러뜨릴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우리들이 할 일은 그 뒤통수를 치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죄.. 죄송합니다 주인님.”
“저희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용사의 힘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말았어요!”
“정말로 미안하게 되었다. 부디 노여움을 풀어 다오.”
“미안..주인.”
분노를 표출하는 토라레의 말에 다급하게 사과를 하면서 머리를 조아리는 용사파티의 전사들.
그러나.. 언 듯 분노에 휩싸여 있는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별개로
이 순간 토라레의 마음 속에는 솔직히 분노 보다는 불안과 다급함이라는 감정이 더욱 강하게 느껴지고 있는 중이었다.
‘큰일이다.. 설마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 버릴 줄이야, 이렇게 되면 여기서 가장 위험해 지는 건 결국 나잖아.’
그 동안 말빨과 성욕이라는 수단을 사용해 여성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고 그들을 조종해 왔던 짐꾼 토라레.
그러나, 이러한 일을 진행 하면서도 토라레는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용사와, 그보다는 약하지만 만만치 않은 무력을 지니고 있는 용사파티의 전사들.
그들이 지니고 있는 가치는 전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는 이 세상에서 아주 커다란 무기가 되었으며, 때문에 토라레는 그들의 이러한 무력과 마왕퇴치라는 명분을 앞세워 막대한 자금들을 빌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빚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통해 토라레는 이 허영심 많고 어리석은 여자들의 욕구를 부족함 없이 채워 줄 수 있었으며,
이는 여전사들의 마음 속에 채워져 있는 성욕이라는 이름의 족쇄와 더불어 그녀들이 솔직히 능력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토라레에게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중대한 요인이 되어 왔었다.
늘 검소하면서 미래를 위해 지금을 참고 견디자는 주장을 해온 용사
그들과는 달리, 토레레는 그녀들로 하여금 소위 말하는 ‘현재의 즐거움’ 이라는 것에 취하도록 해주었으며, 이는 토라레가 용사라는 강력한 존재를 밀어내고 실권을 장악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어 주었다.
그렇게, 정력이라는 타고는 재능과용사의 간판을 통해 마련한 돈으로그녀들의 마음을 손에 넣는데 성공한 토라레.
비록 그 과정에서 많은 빚이 생기게 되긴 했지만, 이 정도는 마왕을 처치하고 나면 충분히 갚을 수 있었으며 오히려 그 이상으로 엄청난 부를 누리는 것 또한 가능한 만큼, 계획만 성공 할 수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니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토라레의 이러한 ‘계획’은 ‘마왕이 너무 강하다’ 라는 냉정한 현실과 함께 박살이 나고 말았으며,
이는 토라레로 하여금 용사가 모든 계획을 눈치채고 그들의 목에 칼을 겨누는 것 이상으로 심각한 최악의 위기로 다가오고 있는 중이었다.
‘이 녀석들이 아무리 등신이라 해도 성욕 하나만 가지고 나를 계속 따를 리가 없어.. 빚까지 생긴 와중에 그 앞뒤 꽉 막힌 고지식한 용사마저도 없어진 지금, 이 년들의 애정이 언제까지 갈 지도 모르는 일이고..’
당연한 이야기 이지만, 여기서 강력한 무력을 지니고 있는 그녀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허약한 짐꾼인 토라레 따위는 단번에 묻어버릴 수 있었다.
거기다 사실 따지고 보면 토라레의 은밀한 부추김 때문에 막대한 빚을 지게 된 것이나 다름 없는 만큼, 이 점을 지적해서 공격하기 시작할 경우 토라레는 정말로 답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될 터.
비록 지금 당장은 네 여인들에게 호통을 치고 있는 입장이었지만, 그 뒤편에는 이렇게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와 같이 부실한 권력이 자리잡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 당장이야 이렇게 나한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입장이지만, 앞으로 갈수록 생활이 쪼들리고 빚쟁이까지 꼬이기 시작하면 결국 이년들도 나에게 등을 돌릴 수 밖에 없겠지… 그렇게 되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돌파구를 마련 해야 해.’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토라레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에게 닥친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고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그가 내놓은 결론은.
‘본래 계획만 잘 성공했다면 다 함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는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겠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
용사파티의 일원이자 수인족 출신 여전사인 테라.
그녀는 네 명의 파티원중 가장 마지막에 토라레의 것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라레에 대한 애정은 그 누구보다 뒤쳐지지 않는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었다.
수인족이라는 태생상 겉 보기엔 항상 무뚝뚝 하고 차가운 인상을 내보이고 있으며, 남들보다 말주변 또한 부족한 테라.
그러나, 이런 종족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토라레는 그녀에게 항상 자상한 모습을 유지해 왔다.
인간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는 수인족 전사가 아닌, 한 사람의 여자로서 그녀를 대해주었던 토라레.
이러한 사실은 테라로 하여금 끝내 그녀가 인간이란 존재들에게 지니고 있던 경계심을 풀고, 토라레에게 마음을 열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그렇게 남들보다 오랜 시간 교감을 쌓은 결과 그 남자에게 스스로의 몸을 허락하게 된 테라.
이러한 사실은 테라로 하여금 다른 세 동료들과는 달리 그녀는 토라레와 특별한 유대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지니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단순한 쾌락에 사로잡힌 노예가 아닌,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고 서로를 사랑해주는 교감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주종 관계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을 지니고 있는 입장에서, 테라는 다가올 고난 속에서도 그 남자를 반드시 지켜 보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왕토벌 실패와 그들의 등에 얹혀진 막대한 빚.
이 커다란 위기 속에서 혹 다른 세 사람이 토라레를 버린다 해도, 테라는 자신만큼은 절대로 사랑하는 남자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단단히 다짐 하고 있는 중이었다.
수인족 전사로서 마음을 준 남자를 위해서라면 목숨조차 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테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테라는 일단 휴식을 위해 들린 여관 방 침대에 누운 채 다시 한 번 각오를 단단히 하였다.
‘주인, 지킨다. 반드시..’
그렇게 오랜만에 눕는 편안한 잠자리 속에서도 테라는 마지막까지 주인을 생각하였다.
비록 순서상 오늘 밤은 그녀의 곁에 있지 않았지만..
분명 이 순간 그녀의 주인도 자신을 믿어주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
“…..그.. 그게.. 무슨 소리?”
포박되어 있는 그녀의 눈앞에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
검은 정복을 입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테라는 그녀답지 않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고…
그런 테라의 말에, 검은 정복을 입은 사람들은 공무를 수행하는 자들 특유의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해 못 한 것 같으니 다시 한 번 말해주지.”
“용사파티에서 너를 팔았다. 그들이 진 빚인 2000만 골드의 절반을 변재 해 주는 조건으로.”
“다른 녀석들 하고는 달리 넌 수인 전사이니 노예로서 그 정도 가치는 충분히 있다. 그쪽에선 나름 현명하게 판단을 내린 것이겠지.”
“그..그런.. 거.. 거짓말!!”
두 귀로 듣고서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 놓는 사람들.
이에 대해서 테라는 특유의 부족한 언어 능력을 사용해서 반박을 해보려 하였으나.. 그녀의 이런 행동과 상관 없이 검은 정복을 입은 그들은, 테라의 손에 채워진 족쇄를 단단히 조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얌전히 있어라, 이 이상 날뛸 경우 합법적으로 무력을 쓸 것이다.”
“네가 믿든 안 믿든 아무 상관 없다. 중요한 건 이 문서에 이렇게 너희 동료들이 서명을 했다는 것이고, 우리는 이에 따라서 네 년을 합법적으로 끌고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점뿐이다.”
“아…”
그 말과 함께, 그녀의 앞에서 다른 용사파티의 동료들.. 그리고 토라레의 서명이 담겨 있는 종이를 보여주는 남성.
이 부정할 수 없는 명확한 증거를 본 순간, 테라의 얼굴에는 그대로 짙은 절망과 배신의 감정이 강하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 이 무슨… 어떻게..이런.. 토..토라레님.. 당신이.. 당신이 나를..”
아침에 눈을 뜬 직후 포박되어 있는 자신의 상태를 통해 어렴풋이 인식하긴 했던 사실..
그러나, 머리로는 인식하기 시작했음에도 그녀의 마음으로는 차마 받아들일 수 없었던 냉혹한 진실.
그것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을 느끼며, 테라의 눈에는 그대로 짙은 공허함의 감정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저항의 의지를 잃어 버린 채 축 늘어진 테라의 모습을 보면서, 정복 차림을 한 이들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끌고 간다.”
“귀중한 상품이니 신속하면서도 조심해서 운반 하도록. 마족들에게 손상이 되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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