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당신의 적은 곧 나의 적!
* * *
“마왕 폐하께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나에 대한 회유를 시도한 마왕.
이에 대해서 난 즉시 머리를 숙이며 거기에 절대적인 복종을 표하였다.
만약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면 한 번 정도는 튕겨 봤겠지만..
목숨이 간단간당 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나에겐 더 이상 뭔가를 제고 할 여유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애초에 난 마왕 성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줄곧 용사파티 놈들과 연을 끓어 버리고 마왕의 밑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상적인 용사라면 이에 대해 갈등을 느꼈을 수도 있지만, 애초에 평범한 일반인 이었던 나에게 그런 대단한 사명감은 있지도 않았으며, 거기다 NTR 게임의 피해자로서 난 이 세계의 인간들이라는 것들에게 이미 정나미가 다 떨어져 있었다.
상황이 이런 만큼, 난 딱히 마왕에게 무릎을 꿇는다거나 하는 부분에 대해 거부감을 느낄 이유 조차 없었으며, 결국 마왕이 손길을 내민 순간 그대로 이를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덥석 붙잡게 되었다.
그리고 그 직후..
죽음의 공포로 인한 긴장이 살짝 옅어짐과 동시에, 난 내가 지나치게 경솔했다는 사실을 느끼며 순간적인 후회의 감정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하아.. 제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항복 하라는 말에 이렇게 홀랑 넘어가 버리면 그림이 너무 안 좋은데.. 혹 이것 때문에 나중에 문제가 생기거나 그런 거 아니야?’
다행히 이런 나의 거침 없는 행보에 대해서 마왕이 안 좋은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순간 난 볼 수 있었다.
그 한 순간, 마왕의 얼굴에 담긴 약간의 당혹감 이라는 감정을 말이다.
‘적어도 어느 정도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어야 했어.. 항복하라는 이야기를 곧바로 좋다고 받아들여 버렸으니. 아마 나에 대한 마왕의 신뢰도가 제법 깎였을 것이 분명해..’
역사 기록이나 이야기 등에서도 보면 마지막까지 항복을 거부하다 끝끝내 굴복하는 장수들이 더욱 큰 신뢰를 얻기 마련이었다.
설령 끝끝내 항복을 하더라도, 이전의 주인이나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는 모습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이 자는 그래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라는 인식을 안겨줄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 때문.
그러나 지금의 난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난 이 점에 대해서 상당히 뼈아프게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시작부터 이렇게 점수를 까먹다니.. 이렇게 된 이상 한 동안은 정말 마왕을 위해 분골쇄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겠어..’
그렇게 일단은 살아 남았다는 사실에 한숨을 돌리면서,
동시에 앞으로 정말로 열심히 충성심과 능력을 보여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면서 난 기왕 이렇게 되어버린 것, 최대한 의욕으로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마왕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앞으로 소인은 마왕 폐하의 검으로서 폐하를 위해 죽고 폐하를 위해 살아가겠습니다, 폐하의 동지는 곧 저의 동지이며, 폐하의 적은 곧 저의 적! 부디 소인에게 이러한 충성심을 보일 기회를 주실 것을 간청하는바이옵니다!”
마치 신입 사원이 사장님께 ‘앞으로 열심히 일하겠으니 지켜봐 주십시오.’ 라는 어필을 하는 듯 한 느낌으로 선언하는 나.
그리고..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면서, 마왕은 진지함이 느껴지는 표정을 지은 채 그대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
마왕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한 용사
그에게 마왕은 새로 입을 의복과 식사, 그리고 그가 거주할 수 있는 방을 제공해 주도록 한 뒤,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되돌아 왔다.
그리고 그 직후,
마왕은 방금 전에 있었던 전투 이상의 피로감이 밀려오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자신의 몸을 침대 위에 올려 놓았다.
“후…”
평소의 그녀 답지 않게 조금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마왕.
이 순간, 그녀는 목표로 했던 용사에 대한 회유가 성공적으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켠에 불편함 이라는 감정이 맴돌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마왕은 어렵지 않게 인식할 수 있었다.
그녀의 회유를 받아들이고 그녀에게 충성을 맹세하던 용사.
그러나..
그 굴욕과 절망의 순간, 용사의 얼굴에 담겨있던 표정을 보면서 마왕은 적잖이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한치의 망설임도, 수치심도 느껴지지 않는 용사의 얼굴.
그 안에는 너무나도 또렷하게 보이는 열정과 의욕만이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었으며, 그 모습은 마치, 인간이 아닌 마족이 그녀에게 진심 어린 충성을 맹세하며 기쁨을 표하는 것만 같은 장면을 연상시켰다.
만약 이러한 맹세를 한 사람이 평범한 마족 이었다면 이에 대해서 마왕은 위화감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맹세를 한 사람이 다름아닌 인간..
그것도 인간의 수호자라는 용사라는 사실이었다.
마족이라는 대상을 죽여 없애야만 하는 존재로 여겨오면서 거침 없이 검을 휘둘러 왔던 인물.
그렇게 마족에 대한 적대감에 찌들어 온 인생을 살아왔던 그가,
방금 전, 마왕인 그녀를 향해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한치의 거짓도 느껴지지 않는 모습으로 충성을 맹세하였다.
그리고 동시에 그는 선언했다.
그녀의 적은..
즉, 인간들은
이 순간부터 자신의 적이라고 말이다.
물론, 용사의 이러한 선언은 마족들의 군주인 마왕에게 있어선 그리 나쁘지 않은 이야기라고 해석 할 수도 있었다.
용사를 인간들을 비롯한 종족연합군을 쓰러뜨리는 검으로 사용하려 하고 있는 마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용사의 이런 명확한 태도는 분명 득이 되면 득이 되었지 실이 되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관점에서 용사를 바라본 것일 뿐..
방금 전, 동료들에게 버림받고 괴로워하던 용사의 모습에 공감을 하였던 마왕의 입장에서.
용사의 이런 단호하기 그지 없는 태도 변화는 그 자체로 섬뜩하기 그지 없는 기분을 안겨주기 충분했다.
고결한 신념을 지니고 있던 자가 이를 순식간에 뒤집어 버리고 말았다.
나라를 지키려던 강철과 같았던 의지는 산산이 부숴졌으며,
수천 수만의 인간들을 지키기 위해 들어 올렸던 검은, 이제 수천 수만의 인간들을 죽이기 위한 검으로 뒤바뀌었다.
그렇게, 실시간으로 눈 앞에서 생생하게 한 인간의 처절하기 그지 없는 타락을 지켜보면서,
마왕은 가슴 속에 자리잡은 짙고도 짙은 안타까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용사를 이용하게 되었다는 사실 속에서 참으로 복잡하기 그지 없는 기분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내 그러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 마왕은 다시 한번 마음을 굳게 먹기로 결정하였다.
개인적인 마음의 갈등과 별개로, 그녀는 마왕이었다.
모든 마족들을 다스리는 군주이자,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전력을 기울여야만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는 존재.
여기까지 온 이상,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어 국가를 위한 중대사를 그르칠 수는 없었다.
‘용사의 마음은 가슴이 아프지만 어찌 할 수 없는 일.. 이렇게 된 이상 하다못해 그가 원하는 것은 최대한 들어주도록 하자꾸나.이런 것으로.. 과연그의 망가진 마음을 치유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마왕은 다시금 복장과 얼굴을 바로 잡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기왕 마음 속으로 결정을 내린 만큼 이 일과 관련하여, 곧바로 용사와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약간 이른 감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을 하기로 결정했다.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
“…꿀꺽..”
눈 앞에 차려져 있는 산해진미의 식사들.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음식들이 가득한 식탁을 보면서 난 자동적으로 군침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과연.. 마왕님이라 그러신지 대우가 차원이 다르구나. 솔직히 이 세계에 온 이후로 먹은 음식이라고는 다 말라 비틀어진 빵 조각이랑 곰팡이가 쓴 육포 정도가 고작이었는데..’
마왕성 인근에 도달하면서 슬슬 물자가 바닥을 드러내던 시기에 빙의 된 나였다.
오랜 여행 끝에 목적지를 눈 앞에 두고 있었던 상황인 만큼 식량이 풍족 했을 리가 없는 시기.
그런 나에게 있어서,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도 모르는 음식들로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진 식탁은 당연히 눈이 돌아가게 만들기 충분한 것이었다.
“그럼, 마음껏 식사를 즐겨 주시고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정중하게 인사를 하면서 물러나는 마왕성의 마족 메이드들
그들이 나간 직후, 난 잠시 잊고 있었던 허기가 폭발하는 듯 한 기분을 느끼면서 그대로 식사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입안 가득 퍼지는 고소하면서도 달콤한 맛.
신선하면서도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야채를 시작으로,
뭔지 알 수 없지만 고소하면서도 부드러운 짐승들의 고기.
특이한 방식으로 만든 면 요리.
그리고, 입에 넣는 것 만으로 살살 녹아내리는 디저트까지
그렇게 이 몸이 된 이후는 물론이고 되기 전에서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호화 만찬을 경험하면서, 난 지금까지 경험한 고생이 스르르 녹아 내리는 듯 한 기분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도중에 정말로 숨 넘어갈 뻔 하긴 했지만 이걸로 위험한 고비는 넘긴 겼다고 할 수 있겠지? 좋아. 이제부터 구질구질한 용사 따위가 아닌 마왕님의 신하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거야.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그 쌍년들을 찾아서 복수를..’
그렇게 어느 정도 식사가 마무리 되어 가는 상황에서 내가 잠시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기 시작하려던 그때였다.
똑똑똑
“응? 네, 들어오세요.”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노크소리.
이에 난 의문을 느끼며 천천히 열리기 시작한 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직후, 나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익숙한 외모의 여성
이에 난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하였다.
“마.. 마왕폐하. 무슨 일이십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