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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R용사는 마왕에게 무릎을 꿇었다-4화 (4/150)

〈 4화 〉 가엽고 딱한 자로다

* * *

“지.. 질문.. 이라니요?”

미인 마족의 말에 난 일단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나를 본적이 있는 것 같은 그녀의 태도.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러봐도 난 그녀와 대화는커녕 얼굴 조차 지금 처음 본 것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나와 대화 비슷한 것이라도 나눈 마족 이라 해 봤자, 마지막에 나한테 님 왜 혼자 죽음? 같은 느낌으로 물어본 마왕 정도 밖에는…!’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가는 한가지 사실..

이에 난 혹시나 하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일단은 자동적으로 이에 대해서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에이 무슨..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그 검은 갑옷으로 전신무장을 하고 있던 마왕이 설마 이렇게 근사한 누님이었을 리가..’

그렇게 난 자동적으로 한 순간 떠올렸던 생각을 부정하기 시작했으나..

그런 나를 보면서, 그녀는 도도함과 위험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핑계 댈 생각은 하지 마라, 그대가 짐의 칼에 쓰러졌다 해서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라 여긴 것인 가? 다시 한번 묻겠다. 그대는 왜 방금 전 그렇게 허망하게 패배를 선택한 것인가?”

군주로서의 위엄이 베어있는 듯 한 그녀의 말.

그러나, 그녀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난 그런 위엄 같은 것 보다는 그 안이 담겨 있는 의미로 인해서 더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아니.. 그게 진짜란 말이야?.. 저.. 정말 이런 누님이 아까 그 마왕이었다고?’

그렇게 밖에는 생각 할 수 없는 그녀의 언행.

이에 대해서, 난 방금 전 전투를 벌일 때와 지금 그녀 모습에서 상당히 큰 갭 차이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마치, 사냥을 앞둔 숫사자와 한 마리의 도도한 백조와 같은 차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이런 충격도 잠시,

이내 난, 지금은 멍하게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며 최대한 진지하게 표정을 굳히기 시작했다.

‘일단 여기서 살아 남기 위해선 최대한 입을 잘 털어야 해.. 자칫 잘못 하다가 기껏 얻은 한줄기 찬스를 날려버릴 수는 없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눈칫밥을 먹던 때의 감각을 되살려 최대한 눈 앞에 있는 이 마왕이라는 인물에 대해 분석을 하기 시작했다.

원작에선 쓰러뜨려야 할 최종보스로 자주 언급 된 것과 별개로, 마지막에 사실상 용사에게 당하는 배경 정도로만 나오고 끝이었던 존재.

당연히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선 원작을 기준으로는 정확히 알 도리가 없었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그녀의 모습만으로도 난 그녀가 어떤 인물인지 얼추 감을 잡을 수는 있었다.

방금 전 자신의 승리에 이상한 점이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를 만나러 직접 여기까지 온 존재.

그 말은 즉, 상당히 원리 원칙을 중요시 여기며, 동시에 전사로서의 자부심 같은 것도 지니고 있는 듯 했다.

‘당장 여기까지만 보면 사람을 헌신짝 마냥 내버린 그년들 보다 훨씬 나은 것도 같은데 말이지.. 아무튼, 상대가 이런 성격이라면 오히려 구슬리는 게 쉬울 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마왕에 대한 분석을 빠르게 끝낸 뒤,

난, 나를 향해 차가운 표정을 내보이고 있는 마왕의 앞에서 마치 절망이 담겨 있는 듯 한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하하.. 역시 눈치 챈 겁니까?.. 하긴, 당신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알아차릴 것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묻는 말에 대답해라. 왜 패배를 선택한 것이지? 그대도 용사라면 이미 알고 있었을 게 아닌가. 그대들 용사파티의 힘은 짐과 간부들의 힘보다 강하다는 것을..”

“아니요,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뭐?”

마왕의 말에 대해 단호하게 부정의 말을 뱉는 나.

이에 마왕의 얼굴에는 한 순간 짙은 의문의 감정이 피어 오르기 시작했고..

그런 그녀를 보면서 난 씁쓸함을 담아 말했다.

“물론, 당장 액면에서 보여지는 힘은 확실히 저희들이 우위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마왕성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저희들 이미 패배하고 있었습니다. 힘이나 마력 같은 것이 아닌… 서로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 에서 말이지요.”

“그게…무슨 뜻이지?”

나의 말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며 신중하게 질문을 하는 마왕.

그런 그녀를 보면서, 난 착잡함이 담긴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전.. 버림받았습니다. 믿음을 주었던 그리고 애정을 주었던 동료들에게…”

*

눈 앞에서 절망에 빠진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는 용사..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마왕에게 있어서도 참으로 충격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었다.

“어떻게 그런.. 아무리 다른 남자에게 사랑에 빠졌다 해도 그렇지, 대륙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용사를 상대로 그런 더러운 짓을 계획하고 있었단 말이더냐?”

짐꾼으로 함께 다니던 남성에게 홀려 용사를 이용하고 마지막에 대륙을 구원한 그의 명예마저 가로채갈 계획을 세워 두었던 용사파티의 전사라는 자들.

비록 인간을 기준으로 악이라 불리는 마족이긴 하지만, 그런 그들 조차도 동족과 동료들간의 신뢰는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숭고한 것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종족연합의 최강 전력이라는 용사파티의 구성원들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 용사를.. 더 나아가 자신의 동족과 조국을 속이고 우롱하려는 만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마왕의 입장에선 스스로를 청결하다 칭하는 녀석들이 자신들의 몸에 오물을 끼얹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는 상황.

그때.. 그렇게 일 순간 당혹감을 내보이고 있는 그녀는 그녀를 보면서, 용사는 짙은 회한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네.. 제가 생각해도 더럽기 그지 없는 짓이지요.. 처음엔 저도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비록... 그녀들의 마음이 저에게서 떠나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가면! 용사로서 제가 세상을 구하게 된다면 그땐 다들 저를 다시 봐 줄 것이라 믿으며 마지막까지 왔습니다! 큭… 헌데.. 헌데.. 그 녀석들은 결국..!”

“….”

이야기를 하면서 살짝 격양된 반응을 보이는 용사.

그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마왕은 잠시 무거운 표정을 지은 채 침묵을 유지하였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세상을 구하려 했던 용사.

그의 눈에 있어서 그 세상이란 아마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동료들에게 투영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사들이 나라를 위해 싸운 다는 것은 가족과 친우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듯이 말이다.

그런 점에서,

그런 동료들의 배신은 사실상 세상이 용사의 등에 칼을 꽂은 것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었다.

목숨을 걸고 지치고자 했던 모든 것이 오히려 그를 배신한 상황.

그리고.. 이로 인한 절망이 얼마나 클지에 대해선 마왕도 어렵지 않게 인식할 수 있었다.

‘믿었던 이들에게 버림받는 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지. 특히 그들을 위해 일생을 바쳐 왔다면 더더욱..’

그녀 역시 자신의 삶을 바쳐 지키고자 해왔던 백성들에게 버림을 받는다면 그와 같은 기분을 느낄 것이 분명했다.

이는 군주로서, 그녀 자신이 살아온 삶에 한 점의 부끄러움이 없는 만큼 확신할 수 있는 부분.

그렇게 눈 앞에 있는 이 용사의 고통에 내심 공감하면서,

마왕은 그녀가 직접 이곳까지 온 가장 큰 목적에 대해 마음 속으로 쓴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역시.. 이런 일은 짐에게 맞지 않는 구나. 계속 고심하긴 했지만..’

자신보다 강한 힘을 지니고 있음에도 일부러 패배를 선택한 용사.

비록 그 사실 자체에도 의문이 있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마왕은 그녀의 앞에 존재하는 이 절호의 기회를 잡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최대의 강적이었던 용사파티를 상대로 승리하긴 했지만 여전히 마족들 전황은 불리했다.

종족 연합군은 지금도 국경을 유린하고 있고 조만간 대규모 공세까지 예견되어 있는 상황.

그리고 이런 시기에, 그녀의 손안에는 대륙 최강의 존재라는 용사가 들어와 있었다.

비록 마족들 중 최강의 힘을 지니고 있는 마왕이었지만. 용사의 힘은 명확히 그녀보다 한 수 위였다.

그것은 굳이 마지막까지 싸움을 끌고 갈 필요도 없이 지금도 그녀의 감각을 통해 알 수 있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만약 이런 자가 그녀의.. 마족들의 편이 되어 준다면, 이는 지금까지 불리하게 이어져 온 종족연합과의 전황을 단숨에 역전 시킬 발판이 되어줄 것이 분명했다.

그런 점에서, 마왕은 썩 내키지는 않지만 달콤한 감언이설을 뱉는 한이 있더라도 눈 앞에 있는 용사를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일 필요성을 느꼈으며, 실제로 이를 실행하기 위해 이런 저런 것들을 고려해온 상황이었다.

막대한 부와 권력. 혹은 여자들까지.

인간이라면 누구나 혹할만한 것들을 조건으로 그를 회유할 생각을 하였으며,

정 안될 경우 그를 놔두고 도망친 동료들을 운운하며 그를 절망에 빠뜨린 뒤 타락시킬 것까지 계산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마왕은 용사를 이용하려 했던 자신의 이런 더러운 생각을 철회하고 있는 중이었다.

비록 종족도 신분도 다르지만, 마왕인 그녀조차 이해할 수 있는..

아니, 마왕이기 때문에 더욱 강하게 와 닿을 수밖에 없는 비참한 일을 당한 용사.

그런 용사에게, 마왕은 진심으로 동정심을 느끼게 되었으며.

이에 그녀는 용사를 회유하는 대신 이 순간 그가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 것을 내려주기로 결정했다.

‘어설픈 회유는 이 가엽고 딱한 자에 대한 능욕일 뿐이다.. 마지막 존중의 의미에서, 역시 전사답게 깨끗하고 명예로운 죽음을 내려주는 것이 그가 가장 바라는 일이겠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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