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장 돌아온 탕아 (7/15)
  • 6장 돌아온 탕아

    아드리안은 엘로디를 데리고 난간 안쪽으로 들어갔다. 떨어지고 싶지 않아서 꽉 붙잡았던 손을 겨우 떼어놓고는 몇 번이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괜찮아.”

    엘로디의 몸이 공포에 떨리고 있었다. 아드리안은 안심하라는 듯 손을 힘주어 꼭 잡았다가 놓았다. 그러고는 몸을 일으켜 이 상황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는 애론과 눈을 맞부딪쳤다.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것처럼 눈을 반짝이던 애론의 입술이 말려 올라갔다.

    “안녕, 나의 반려.”

    “그런 말투는 집어치워. 너랑 친한 척 굴고 싶지 않으니.”

    “너무한데. 그래도 우리는 나름 인정받은 운명의 상대인데 말이야.”

    “그걸 발로 차버리고 도망간 사람이 할 만한 말은 아닌 거 같은데.”

    말을 마친 아드리안이 엘로디의 앞쪽으로 섰다. 그의 왼손에서 한기가 몰리기 시작했다.

    “내 여동생은 어땠어? 좋았어? 엘로디는 안 알려주더라고.”

    “알려줄 생각 없으니까, 닥쳐.”

    말을 마친 그의 손을 중심으로 결정이 순식간에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것을 그대로 움켜쥐고는 무릎을 굽혔다가 바닥을 박차고 올라 애론을 향해 집어 던졌다.

    애론은 급하게 양손에 화염을 두르고는 그것을 겨우 막아냈다. 그러나 강한 힘 때문에 몸이 몇 미터 밀려났다.

    “네 처분은 내 소관이다. 지금 당장 널 죽여도 상관없어.”

    “글쎄. 네가 그럴 수 있을까.”

    애론은 그의 말에 긴장하며 자세를 고쳤다. 그런 그를 향해 적의를 드러내며 아드리안은 양손을 모았다. 얼음과 한기가 한곳으로 뭉쳐서 그의 주변에 빼곡히 들어섰다.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고위 마법을 수행하는 아드리안을 보며 애론은 생애 처음으로 환희를 느꼈다. 자신이 저 정도를 하려면 적어도 5분 이상은 걸렸다.

    애론은 손을 벌리고 방어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열기 때문에 그의 몸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분노를 쏟아내며 아드리안은 애론을 향해 쇄도했다. 얼음 창을 집어 던지는 것과 동시에 그의 주변에 있던 결정들이 애론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애론은 양손으로 겨우 그것들을 막아냈으나 전부를 막아내는 것은 무리였다. 꽤 많은 숫자의 창이 그의 몸을 그대로 타격했다. 애론은 무릎을 꿇고 온 힘을 다해서 마력을 밀어내야만 했다.

    “황족이 다르긴 다르네.”

    반발력에 의해 피를 쏟으며 여유로운 척을 하는 그를 보며 아드리안은 비웃었다. 그가 만들어낸 열기에 기화된 얼음들 때문에 수증기로 시야가 가물거렸다.

    “대마법사라고 불리기에는 수준 차가 너무 나는군.”

    애론은 그의 말에 미간을 구기며 다시 일어섰다. 그는 양손에 각각 화염을 두르고 있었다. 등 뒤로 저무는 태양과 붉은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아름다운 남자의 모습은 마치 종말을 내리러 온 천사 같아 보이기까지 했다.

    둘 중 하나를 아드리안 쪽으로 힘껏 던지고는 애론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아드리안은 처음 던진 마법을 가볍게 피하고 애론이 들고 있는 것을 마력으로 튕겨내며 그의 배를 발로 걷어찼다.

    데굴데굴 굴러 벽에 처박힌 애론이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온 황태자를 보며 웃었다.

    “그런데, 나의 반려. 엘로디에게 너무 신경을 안 쓴 것 아니야?”

    아드리안이 몸을 돌리는 순간 애론이 왼손을 앞으로 뻗어 던져둔 화염을 엘로디를 향해 돌렸다.

    아드리안이 내려놓은 자리에서 처음 보는 마법사들의 전투에 넋을 놓고 있던 엘로디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불덩이를 보고 정신을 차렸다.

    기억났다.

    원작에서의 애론은 이렇게 강하지 않았다. 그는 대륙에 몇 없는 마법사이기에 특별했던 것이지 황족인 아드리안에 맞설 정도로 강한 자가 아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그녀는 중요한 순간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는 자책감과 함께 몸을 옆으로 날리려 했다. 그 순간 눈앞이 까맣게 변하면서 익숙한 등이 눈에 보였다.

    아드리안은 왼손을 들고 최대한 마력으로 벽을 세우려 했으나 너무 급하게 시전하는 바람에 모두 막아내는 것에 실패했다.

    “아드리안!”

    엘로디는 뒤로 쓰러지는 아드리안을 받아냈다. 반짝이는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서서히 쓰러지는 모습이 느리게 재생되는 것 같았다.

    제대로 마법을 쓰지 못하고 몸으로 막아낸 탓에 여기저기 피가 흐르고 그을음이 져있었다. 무엇보다 직접적으로 막아낸 그의 왼손은 엉망이 되어있었다.

    “손…손이!”

    “괜찮아.”

    아드리안은 마법으로 왼손을 식히고는 다시 일어섰다.

    “뒤로 물러서.”

    아드리안은 그녀를 자신의 뒤로 숨기고 오른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애론은 그런 그를 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양손으로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아까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아드리안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전투나 마법에 대한 지식이 없는 엘로디라도 지키는 싸움이 얼마나 어려운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게다가 아드리안은 다치기까지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상황에 그녀는 비참함을 느꼈다.

    아드리안은 서서히 지치기 시작했다. 몸을 다친 데다가 손 하나만으로는 애론의 마법을 모두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엘로디만 넘기면 봐줄게.”

    “차라리, 날 죽이지 그래.”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던 애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이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건가. 애론은 아드리안과 싸우면서 알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나의 반려를 죽이고 싶지는 않아서.”

    애론은 그가 마력을 끌어올리는 순간부터 급격한 변화를 느꼈다. 하얗게 피어오르는 한기가 자신의 몸에 닿을 때마다 저릿저릿한 기분에 쾌감마저 느꼈다.

    이런 게 운명의 반려라는 건가.

    그러나 자신을 바라보는 아드리안의 눈에는 증오와 경멸만이 보였다. 그것 또한 맘에 들었다. 애론은 혀를 내밀어 아랫입술을 핥았다. 그는 어느새 웃고 있었다.

    “누가 네 반려라는 거야!”

    아드리안은 조금만 더 버티면 원군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 애론은 아마 자신을 죽이기 어려울 것이다. 아무리 막 나가는 녀석이라도 황태자인 자신을 죽이면 제국 전체가 달려들어 그를 찾아 죽이리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아드리안은 자신을 방패로 엘로디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그의 생각을 알아차린 것인지 애론은 마구잡이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성이 배제된 채 기존 공격 패턴이 무너지자 아드리안은 그를 막아내기 더 어려워졌다. 한 손으로 모든 마법을 막아내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그의 몸에는 이곳저곳 상처가 늘어났다.

    그것을 지켜보는 엘로디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지켜지는 것은 이제 진절머리가 났다.

    과거 애론의 악의를 부모님이나 리암이 막아주던 걸 이제는 아드리안이 대신하고 있었다.

    엘로디는 둘이 서로에게 집중해 있어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것을 알고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두 번이나 떨어질 뻔하고 나서 아직도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몇 번이고 자신의 무력함을 원망했다. 애론에게 잘 보여서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칠 게 아니라 그냥 스스로 힘을 키웠어야 했다.

    지금 이 순간 적어도 아드리안에게 방해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엘로디는 자리를 피하기 위해 주변을 살폈다.

    출구를 찾아 주변을 살피던 엘로디는 자신의 근처 아래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분명 누군가 도와주기 위해 왔을 것이다.

    엘로디는 애론의 눈치를 보며 손으로 조심히 더듬으며 바닥에 손잡이가 달린 문 쪽으로 다가갔다. 아래쪽에서 웅성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밑에서 열 수 없는 구조인 걸까.’

    엘로디는 철문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쥐고 힘껏 당겨 올렸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따라 아래에서 들리는 소리가 커져갔다.

    마침내 그녀의 힘에 의해 조금 들린 문틈으로 가스파르의 손이 나와 철문을 받치고 힘껏 열어젖혔다.

    엘로디는 그와 다른 기사들이 올라오는 것을 보며 주저앉았다.

    “전하!”

    그리고 그 순간 가스파르가 몸을 날려 검으로 애론의 마법을 갈랐다.

    “늦었어.”

    아드리안은 피를 많이 흘린 탓에 어질어질한 머리를 흔들고 다시 애론을 올려다보았다.

    애론은 갑작스러운 방해꾼 때문에 둘의 싸움이 멈춘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얼굴을 구겼다.

    “이런. 친구가 올 줄 몰랐네. 너무 치사한 것 아니야?”

    “당신은 반역자다, 애론 나바르. 폐하께서 자비를 베푸신 걸 감사하게 여겨라.”

    가스파르는 검을 그에게 겨눈 채로 입을 열었다.

    아무리 애론이었지만, 현 제국의 최강의 기사라 불리는 그와 황태자를 상대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팽팽하게 바라보던 둘의 긴장을 자르듯 애론이 뒤로 몸을 뺐다.

    “그럼 다음에 보자고.”

    몸을 돌려 날아가려던 그는 심술을 부리기로 했다. 엘로디를 별생각 없이 데려왔지만 황태자가 저렇게 목을 매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드리안은 원래 자신의 것이 아니었나.

    상체를 휙 돌려서 오른손을 쭉 뻗어서는 엘로디를 끌어당겼다. 엘로디는 끌려가지 않기 위해 손으로 바닥을 짚었으나 소용없었다.

    아드리안이 엘로디를 잡기 위해 손을 뻗는 것을 보며 애론은 얼굴을 구겼다. 그러고는 마력을 끌어올려 그녀를 더 강하게 당겼다. 엘로디는 아드리안의 손을 놓쳐 그대로 공중으로 날아 올려지는 것을 필사적으로 버텼다.

    가스파르가 애론을 향해 공격하려는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수십 개의 탄환이 애론의 몸에 박혔다.

    “아악!”

    하늘로 끌려가던 엘로디의 몸이 그대로 떨어지는 것을 아드리안이 손을 뻗어 받아냈다.

    그와 동시에 애론이 긴 비명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돌바닥에 몸이 부딪히기 직전 그는 붉은 잔상과 함께 사라졌다.

    엘로디는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아드리안의 품에서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 정신을 차렸다.

    “전하, 손이…….”

    피와 그을음으로 새까맣게 변한 그의 팔에 엘로디의 손이 닿자 아드리안이 고통 때문인지 얼굴을 찡그렸다.

    “금방 나을 거야.”

    엘로디는 엉망이 된 그의 손을 결국 만지지도 못하고 바라만 보며 눈물을 흘렸다. 무력한 자신 때문에 다친 것 같아서 괴로웠다.

    울고 있는 엘로디를 어찌해야 할지 몰라 아드리안이 당황하는 것을 본 가스파르는 한숨을 쉬고는 그 둘에게 다가갔다.

    “엘로디 님, 전하는 괜찮을 겁니다. 저분 저한테 반쯤 죽을 만큼 맞았을 때도 상처 하나도 안 남고 멀쩡하게 회복되셨거든요.”

    “그렇지만…….”

    그렇다고 아프지 않은 게 아닐 거란 말은 차마 내뱉을 수 없었던 엘로디는 힘겹게 그 말을 삼켰다. 아드리안은 자신을 걱정해 주는 엘로디가 마음에 들어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런 그를 본 가스파르가 화가 나서 그대로 그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애론과의 전투로 약해진 아드리안은 결국 그의 발길질에 그대로 기절했고, 엘로디는 놀라서 엉엉 울면서 그를 끌어안았다.

    가스파르는 이 일 때문에 패트리샤와 보나파르트 부인에게 얼마나 잔소리를 들을지 생각하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 * *

    “당신 미쳤어요?”

    가스파르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신발 끝을 내려다보았다. 패트리샤의 손가락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했지만 고개를 들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세상에! 환자를 발로 차서 기절시키는 게 사람이에요? 전하가 아무리 튼튼해도 그렇지, 상대는 대마법사가 될 거라고 한 남자라고요!”

    “전하는 이미 대마법―”

    “닥쳐요!”

    패트리샤는 가스파르에게 업혀온 아드리안을 보고 놀랐었다. 애론이 강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아드리안은 무려 황태자였다. 제국에서 황제 다음으로 손에 꼽히는 강자인 그가 기절했을 정도라니. 애론의 힘을 걱정하며 앞으로 엘로디를 어떻게 지켜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게다가 뒤에서 하얗게 질려서 울며 들어오는 엘로디에게 상황 설명을 듣자 더 화가 난 패트리샤는 가스파르를 불러내 한바탕 쏟아내고 있었다.

    한참을 혼난 가스파르는 보나파르트 부인이 패트리샤를 불러 방 안으로 들어가자 겨우 숨을 돌렸다.

    “가스파르 경, 잠깐 저랑 이야기 좀 하시죠.”

    아니었다.

    웃으면서 자신을 부르는 보나파르트 부인을 보고는 그는 다시 죄지은 자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방 안으로 들어간 패트리샤는 힘없이 앉아있는 엘로디를 마주했다. 아드리안의 옆자리에 앉아 그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며 다가갔다.

    “전하는 괜찮으실 거예요.”

    엄밀히 말하자면 그는 애론에 의한 부상 탓이라기보다는 가스파르가 무식하게 걷어찼기 때문에 기절한 것이 맞았다.

    엘로디는 조용히 그의 왼손을 내려다보았다. 성직자들의 신성 마법을 퍼부어 주고 나서도 다 낫지 못해 패트리샤가 붕대를 감아두었다.

    “상처가 남으면 어떡하죠.”

    엘로디는 화상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고 있었다. 게다가 손이었다. 마법사에게 손을 다치는 것은 마법의 반을 잃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멍청하게 서있었던 그 순간을 몇 번이고 다시 되돌리고 싶었다.

    “전하는 튼튼하시고, 무엇보다 회복력도 좋으시니까 걱정 마세요. 흔적도 안 남을 거예요.”

    패트리샤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엘로디의 마음을 아는 듯 패트리샤가 그녀의 어깨를 몇 번이고 쓸어주었다.

    “손도 괜찮으실 거예요.”

    엘로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패트리샤는 그런 그녀를 보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문을 닫고 나갔다.

    엘로디가 기억하는 원작에서의 애론은 저 정도로 망나니가 아니었다. 애론은 모두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자란 사람 특유의 사랑스럽고 해맑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조금 우유부단해서 아드리안을 곤혹스럽게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구애를 받긴 했지만 그래도 아드리안을 이 지경으로 만들 만한 일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이다.

    애론은 완전히 비틀렸다. 그리고 그의 성격을 바꿔버린 것이, 이야기가 이렇게 튀어버린 원인이 엘로디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전생의 기억을 갖고 있어 정신만은 성인인 자신이 유치한 애론의 장난에 맞장구쳐 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녀는 최선을 다해서 연기를 한다고 했었지만, 어린아이의 감은 비상한 면이 있었다. 게다가 오메가인 그는 남들의 감정을 더 잘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이제 와서 자신이 이미 다른 생을 겪었고, 그 기억을 갖고 있다고 고백한들 그는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엘로디는 그에게 사과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성격이 변한 것에 자신이 하나의 이유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가 자신을 이 정도로 증오할 당위성이 생기지는 않았다.

    엘로디는 아드리안을 내려다보며 불과 하루 전 저 손으로 잠든 자신을 쓸어주던 것을 떠올렸다.

    자신을 괴롭히고, 리암을 빼앗는 것은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드리안을 저렇게 만든 것은 용서할 수 없다.

    엘로디는 조심히 그의 왼손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붕대 너머로 후끈한 열기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때 자신의 앞을 아드리안이 막아섰을 때와 같은 열기였다.

    엘로디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서 그녀의 손등 위로 떨어졌다. 요즘 자신은 마치 지난 10여 년간 울지 않은 것을 보상받으려는 것처럼 눈물이 많아졌다.

    엘로디는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아냈다. 이제는 다시 애론 때문에 울지 않을 것이다.

    애론은 평범한 것을 혐오했다. 날 때부터 특별했던 그에게 자신이 혐오의 대상이 된 것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여자아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처음으로 그에게 반항하는 자신이 재밌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하아…….”

    여전히 오리무중인 애론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어서 긴 한숨을 뱉어냈다. 어렸을 때의 일을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자신과 그의 사이가 나빠진 급격한 계기라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어린 시절 애론은 누가 봐도 심하다 싶을 정도로 엘로디를 괴롭혔지만, 지금처럼 자신을 죽이고 싶어 한다거나 혐오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만일 진심이었다면 그는 반드시 어린 엘로디를 죽였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 상태에서는 그랬다.

    대체 그렇게 잘났으면서 고작 평범한 자신을 왜 그렇게 미워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엘로디는 자신이 할 수 있을 법한 일들을 생각했다. 어차피 애론은 자신을 죽일 때까지 달려들 것이다. 엘로디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과 애론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을 생각했다.

    애론이 엘로디가 가장 괴로워하고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다면, 자신 역시 그랬다.

    엘로디는 아드리안이 눈을 뜰 때까지 그의 곁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사이 황제가 찾아와 말없이 아드리안을 한참을 내려다보다 엘로디에게 얼마든 있고 싶은 만큼 궁에 남아도 좋다는 이야기를 하고 사라졌다. 그와 함께 온 황후 역시 얼굴만 굳힌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드리안이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엘로디의 걱정은 늘어났다. 혹시 눈을 뜨고 자신 따윈 꼴도 보기 싫다고 하면 어쩌지, 라든가 아니면 그가 애론에게 운명을 느꼈다는 이야기 따위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곧 자신이 얼마나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지 깨닫고는 쓰게 웃었다.

    “왕자님이시면서 너무 자주 쓰러지세요.”

    엘로디는 투정을 부리듯 말하며 그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댔다. 자신이 궁에 들어와 있던 몇 달 사이에 벌써 두 번이나 쓰러졌다.

    엘로디는 전생에서 봤던 동화를 떠올렸다. 백설 공주나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어떻게 깨어났더라.

    몸을 일으켜서 침대 가장자리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손으로 하얗게 질린 얼굴과 반짝이는 은발을 쓸었다. 천천히 그의 이마와 뺨, 입술에 키스를 해주었다.

    방 안에는 아드리안의 숨소리만이 가득했다.

    * * *

    “하윽.”

    남자가 피범벅이 되어 쓰러져 있었다. 몸 여기저기에 뚫린 여러 개의 구멍으로 피가 끊임없이 뿜어져 나왔다.

    “젠장.”

    애론은 욕을 하며 몸을 치유하기 위해 애썼다. 알파와 오메가는 기본적으로 일반적인 인간들보다 회복 속도도 빨랐다. 그런 자신이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라니.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제도의 가장자리 깊숙한 곳에 몸을 숨긴 그는 힘겹게 마법으로 자신을 가리고 있었다. 아무도 관심 없을 장소였기에 다행이었다.

    그때 어디선가 구둣발 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애론은 그것을 들으며 예민하게 반응했다. 혹시 모를 사태에 공간 이동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상대는 느릿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은폐 마법을 건 애론이 쓰러져 있는 장소를 정확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림자에서 한 발짝 나오자 달빛에 후드를 뒤집어쓴 여자가 눈앞에 서있었다.

    애론은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당신이 날 불렀지.”

    “맞아.”

    이자벨이 후드를 벗자 긴 은발이 달빛을 받아 별처럼 반짝였다. 무심한 푸른 눈동자가 그의 몸을 훑었다.

    “엉망이구나.”

    “하, 당신 아들이랑 그의 친구 때문은 아니니까 걱정 마.”

    이자벨은 그의 말에 웃으며 애론에게 다가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녀의 손에서 푸른빛이 보였다.

    “내 아들이 진심이었다면 넌 날 만날 수 없었을 거란다.”

    애론은 그녀의 말에 이를 갈았다. 분명 아까 만난 아드리안의 전력은 압도적이었다. 엘로디를 보호하려 하지 않았다면 분명 자신은 패배했을 것이다.

    이자벨의 신성력으로 애론의 몸이 서서히 나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완벽하지 않았다. 피는 멎었지만 몸의 이곳저곳이 뚫려 신경과 근육, 뼈가 손상되었다.

    애론은 신성력에도 상처의 회복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자 한숨을 내쉬었다.

    이자벨은 그런 그를 내려다보더니 다시 후드를 뒤집어쓰고는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그녀의 손짓에 멀리서 대기하던 흰옷을 입은 사제들이 그들에게 한 발짝 다가왔다.

    애론은 그 의상의 의미를 알아차리고는 인상을 쓰며 그녀에게서 떨어지려 했다.

    “당신… 그 일의 주동자였나.”

    “주동자는 아니야. 그저 목적이 비슷해서 함께하고 있는 것뿐이지.”

    그가 경계하는 것을 본 황후가 사제들을 다시 뒤로 물렸다.

    “황후, 당신 목적은 뭐지?”

    애론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녀를 노려봤다.

    “내 목적은 별것 아니란다.”

    황후는 눈을 감았다 뜨고 애론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자연의 섭리를 돌리고 싶은 것이지.”

    오만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은 여신처럼 빛나 보였다.

    애론은 그런 그녀를 가만히 노려보다가 몸을 돌려 골목을 나가는 황후를 뒤쫓았다.

    * * *

    눈을 뜬 아드리안은 자신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가스파르를 밀어내기 위해 애를 썼다.

    “아, 이거 놔!”

    소리를 지르면서 짜증을 낸 그가 겨우 가스파르를 밀어냈다. 가스파르는 멀쩡해 보이는 아드리안 때문에 지난 며칠간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지를 기억해 내고는 불쑥 짜증이 났지만 뒤에서 도끼눈을 뜨고 쳐다보는 보나파르트 부인 때문에 조용히 몸을 물렸다.

    지난 며칠은 그야말로 지옥으로의 행군이었다. 엘로디는 아드리안이 신음 소리만 내도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면서 하얗게 질렸고, 그때마다 자신을 압박하는 사람들의 눈은 하나, 둘 늘어났다.

    처음에는 패트리샤와 보나파르트 부인 정도였던 것이 어제 분위기 전환 차 산책이라도 하라고 내보낸 엘로디가 과로로 정원 한가운데서 주저앉게 되자 쥴리아와 나나까지 가세했다.

    견디다 못한 가스파르는 오늘 아침 교회에 들렀다. 부디 황태자 전하가 어서 눈을 뜨고 자신을 이 지옥에서 구원해 달라는 기도를 신께서 들어주신 것이 틀림없었다.

    “엘로디는?”

    눈을 뜨자마자 찾는 걸 보고는 보나파르트 부인이 냉랭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엘로디 님은 지금 쉬고 계세요.”

    “어디가 안 좋아? 혹시 다치기라도 한 거야?”

    엘로디의 이야기를 듣고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고 가스파르가 결국 입을 열었다.

    보나파르트 부인은 지금 엘로디와 아드리안 모두에게 화가 나있었다. 서로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둘이서 똑같이 자신의 몸은 걱정도 안 하고 내던져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엘로디에게 잔소리를 퍼붓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 전하를 간호하다가 과로를 좀 하셔서요.”

    “지금은 괜찮은 거고?”

    아드리안의 질문에 가스파르는 계속 보나파르트 부인의 눈치를 보았다.

    저 꼬장꼬장한 보나파르트 공작가의 대부인은 황후조차 한 수 접고 들어가는 여인이었다. 과거 평범한 베타의 몸으로 정적들의 목을 베고 현 황제의 체제를 가장 공고히 만든 시대의 영웅이었다.

    “엘로디 님은 괜찮으시니 걱정 마세요. 본인 몸이나 걱정하시죠.”

    뾰족한 부인의 말에 아드리안은 입을 다물었다. 순간 한마디라도 입을 열었다가는 보나파르트 부인이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드리안과 가스파르를 키우다시피 한 보나파르트 부인에 대한 공포가 그 둘의 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그럴 생각이야.”

    아드리안은 눈을 다른 쪽으로 굴리며 대답했다. 어차피 밤에 몰래 찾아가면 될 일이다.

    그러나 보나파르트 부인은 항상 아드리안의 머리 위에 있었다.

    “엘로디 님이 괜찮아지실 때까지 찾아가지 마세요.”

    “어? 아니, 내가 언제 찾아간다고…….”

    구차한 변명에 코웃음을 치는 그녀의 모습에 아드리안은 입을 다물었다.

    “가뜩이나 몸도 안 좋은 아가씨인데 가셔서 또 얼마나 괴롭히시려고요.”

    “…….”

    “만일 전하께서 엘로디 님을 몰래 만나다가 걸리기라도 하면 가스파르 경도 함께 책임지셔야 할 겁니다. 잘 지키세요.”

    가스파르는 억울했다.

    “제가 왜요!”

    “정말 몰라서 물으시나요?”

    정말로 화가 난 듯한 그녀의 음성에 둘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아니요.”

    냉큼 대답하는 가스파르를 아드리안이 노려봤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보나파르트 부인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말썽쟁이 남자아이 둘을 키우며 단련된 그녀는 상대적으로 여자아이는 얌전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엘로디는 절대 얌전한 아이가 아니었다.

    애론보다 덜했을 뿐이지 그녀 역시 넘치는 에너지로 여기저기 사고를 치고 다니던 아이였다. 전생을 기억하고 나서는 더 지능적으로 사고를 쳐서 나바르 후작이 목덜미를 잡는 날도 많았다.

    그날 밤, 자고 있던 아드리안은 인기척에 가스파르가 자신이 잘 자고 있는지 확인하러 들어온 줄 알고 짜증을 내며 눈을 떴다.

    거기에는 눈을 반짝이며 자신 위에 올라타 있는 엘로디가 있었다.

    “엘―!”

    “쉬잇.”

    엘로디는 재빨리 아드리안의 입을 손으로 막고 문 쪽을 바라보았다. 아드리안이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일어나려는 걸 보나파르트 부인이 무조건 절대 휴식을 하라며 문을 잠가버려서 방에 갇히게 됐다.

    결국 자신의 방에서 발코니를 타고는 벽 하나 건너에 있는 아드리안의 방에 딸린 발코니로 뛰어든 참이었다.

    놀라서 동그랗게 뜬 익숙한 눈에 엘로디는 안도감을 느꼈다.

    “몸은 어떠세요?”

    “어? 아… 괜찮은 것 같아.”

    당황한 그가 횡설수설하며 자신의 상태를 보고했다. 손의 상처는 이제 거의 다 나았다. 엘로디는 안도감에 숨을 깊이 내쉬었다.

    “마법을 쓰는 데는 이상 없으시겠죠?”

    “가스파르랑 싸워서 이것보다 더 심하게 다친 적도 있는걸. 괜찮아.”

    아드리안은 웃으며 오른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엘로디는 그제야 자신이 그의 몸 위에 올라탄 것을 알고 얼굴을 붉히며 침대 옆으로 내려왔다. 아드리안은 그런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어정쩡한 자세로 그의 품에 안겨서 엘로디는 눈을 깜빡였다.

    “전하…….”

    “미안해.”

    아드리안은 납치된 엘로디를 구하러 가는 내내 그녀에게 사과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말이라도 제대로 해볼걸, 그녀에게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고 용서를 구하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내가… 그날 세실의 힘을 알아차리지 못해서.”

    엘로디는 손을 뻗어 그의 등을 마주 끌어안았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전하.”

    “내가 너한테 심하게 대한 건 미안해. 혹시 그래서…….”

    아드리안은 차마 자신이 싫어졌냐고 물을 수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엘로디는 그런 그의 등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이렇게 상냥한 남자가 황태자라니 제국의 미래를 걱정할 판이었다.

    “전하의 진심이 아니었던 것 정도는 알아요.”

    엘로디가 손으로 천천히 그의 넓은 등을 쓸어내렸다.

    이제는 상관없었다.

    제국에서 황제는 반드시 알파 자손을 낳기 위해 알파나 오메가를 황후로 맞이해야만 했다. 그래서 포기하려 했다.

    하지만 엘로디는 그가 오롯이 자신만을 바라봐 주기를 원했다.

    손으로 그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발갛게 물든 눈가에 입술을 가져다댔다. 눈가와 볼 그리고 입술을 찾아들었다. 움찔하던 아드리안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입술을 훑었다. 천천히 입 안을 더듬는 혀에 정신을 놓을 것 같았다.

    “전하.”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쓸었다. 아드리안은 조금 불편한 듯 웃으며 그녀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쳤다. 그가 붙잡은 엘로디의 손바닥에 깊이 키스하자 그녀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온전히 자신의 것이었으면 좋겠다.

    엘로디는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입으로 내뱉고 싶은 말을 참아야만 했다. 그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안아주세요.”

    엘로디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그에게 매달렸다. 아드리안은 말없이 그녀의 얼굴을 보더니 다시 키스를 해왔다. 어쩐지 그녀의 진심을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이제 새살이 돋아나고 있는 곳에 스치는 기분이 좋았다.

    “엘로디, 이름으로… 이름으로 불러줘.”

    그의 말에 엘로디가 웃었다.

    “흐읏.”

    다리를 활짝 벌린 엘로디는 조금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비부에 얼굴을 묻은 아드리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달빛을 받은 은발이 달처럼 반짝여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아드리안의 혀가 음핵을 휘감았다. 예민한 부분에 느껴지는 자극에 엘로디는 허리를 떨며 오르가슴을 느꼈다.

    아래쪽에서 질척한 소리가 났다. 혀가 클리토리스를 찌르고 빨아대는 것에 눈앞이 아찔해졌다. 질 내에는 중지와 약지가 들어가 여기저기를 자극하며 휘젓고 있었다.

    “아아!”

    중간쯤을 강하게 문지르자 엘로디의 몸이 바들거리며 쾌락에 몸을 비틀었다.

    “아드리안, 으응!”

    “괜찮아.”

    그런 그녀의 반응을 보는 그의 눈동자가 예쁘게 휘어졌다. 그리고 몸을 내려 얼굴을 다리 사이에 묻고 가볍게 그녀의 음핵을 빨아올렸다.

    “아앙!”

    애액이 아드리안의 손가락을 타고 끊임없이 떨어져 내렸다. 엘로디는 등을 잔뜩 수축시킨 채로 오랫동안 쾌락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비부에서 입이 떨어져 나가자 멍하니 바라보던 엘로디는 몸을 일으켰다.

    “엘로디?”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 건지 모르는 아드리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그를 밀어트리고는 그의 몸 위에 올라탔다. 단단하게 부풀어 오른 그의 성기를 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억지로 크게 벌린 입 안으로 그의 페니스가 가득 찼다. 혀로 귀두의 갈라진 끝을 쓸면서 손으로 그의 기둥과 음낭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흐으.”

    아드리안이 신음 소리를 내며 허리를 틀었다. 입 안의 얕은 부분에 닿아오는 그의 귀두에 엘로디는 몸을 떨었다.

    “잠깐… 아! 엘로디.”

    쾌락을 주는 것은 자신인데 오히려 자신이 쾌락을 느끼고 있어 몸을 떨었다. 그때 아드리안의 손이 그녀의 둔부를 쥐고는 그의 얼굴을 향하게 돌렸다. 자신의 비부가 모두 보이는 자세에 엘로디는 얼굴을 붉혔다.

    그는 반쯤 몸을 일으키고 그녀의 음순에 다시 자신의 얼굴을 묻었다. 날카로운 코끝이 음순을 자극해 왔다. 그 자극만으로 기분이 좋아져서 엘로디의 허벅지가 떨려왔다.

    서로의 비부에 얼굴을 묻고는 입과 손가락으로 자극을 계속했다. 엘로디는 몇 번이고 그의 입에 애액을 뿜어냈다.

    어쩐지 오기가 생겨서 엘로디는 아드리안의 페니스를 힘껏 빨아올렸다. 그의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면서 긴 한숨 같은 신음 소리와 함께 그대로 입 안에 사정해 왔다. 끈적한 정액의 양이 너무 많아서 엘로디는 결국 절반을 토해내야 했다.

    “그런 거 먹지 마.”

    아드리안은 얼굴을 붉힌 채 콜록거리는 엘로디를 바라보았다. 묘하게 가학심을 자극하는 그의 얼굴에 엘로디는 몸을 일으켜 일부러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다 삼키지 못한 흔적이 얼굴을 타고 가슴 위로 점점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던 아드리안은 얼굴을 가렸다. 붉게 물든 그의 귀를 보고 엘로디가 웃었다.

    “아드리안, 빨리요.”

    엘로디는 비부를 그의 귀두에 대고 천천히 문질렀다. 이대로 그와 영원히 한 몸이 되어서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드리안은 자신의 몸 위에서 허리를 흔드는 엘로디를 잡아서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가볍게 체위를 바꿔서 엘로디의 몸 위로 올라탔다.

    그녀를 갖고 싶다. 온전하게,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 영원히 자신에게 묶여서 살아가게 하고 싶었다.

    곧 자신의 그런 생각이 역겨워서 그는 얼굴을 찡그렸다.

    “나는…….”

    엘로디는 듣고 싶지 않은 말이 나올까 봐 두려웠다. 손을 뻗어 그의 목을 당겼다.

    “상관없어요. 아드리안 님이 뭐라고 생각하시든.”

    아드리안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엘로디는 그런 그의 성기를 손에 쥐고 한껏 벌어진 안쪽에 문질렀다. 뜨겁고 축축한 감촉에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고 아랫배가 저려왔다. 그의 귀두가 질구에 맞아오자 엘로디는 기대감에 허리를 흔들었다.

    “으응.”

    천천히 몸을 가르고 들어오는 그의 성기에 엘로디의 허리가 휘었다. 뜨거운 페니스가 점점 몸 안쪽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엘로디는 그 느낌에 손끝을 바짝 세우고는 아드리안을 끌어안았다. 그의 등이 놀랐는지 움찔거렸다. 매번 이런 식이어서 엘로디는 재밌어했다.

    한껏 벌려진 양발을 뻗어 그의 허리 뒤로 교차시키고 몸을 끌어당겼다. 귀두가 질 깊은 곳에 부딪쳐 왔다. 엘로디는 그 감각에 가볍게 오르가슴을 느끼며 그를 붙잡았다. 뜨거운 내부가 페니스를 물었다 놓아주면서 더 깊숙한 곳으로 끌어당겼다.

    “아드리안, 더.”

    엘로디의 말이 신호가 된 것처럼 아드리안이 그녀의 양다리를 어깨 위로 올리고는 천천히 쳐올리기 시작했다. 젖어서 미끈거리고 뜨거운 질 내를 성기가 문지르고 누를 때마다 눈앞에 하얗게 점멸됐다.

    “읏. 엘로디. 엘로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엘로디는 웃었다. 이대로 그가 자신의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누구에게도 아드리안을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

    “흐윽! 전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이 맘에 안 들었는지 그의 움직임이 거칠어졌다. 그녀의 내부가 엉망으로 휘저어지면서 머릿속도 함께 엉망진창이 되는 것 같았다.

    그의 커다란 등을 단단히 붙들고 허리를 들어 올리자 그의 오른쪽 손이 받쳐주었다. 반쯤 몸이 들린 상태에 몸이 긴장한 것인지 전체를 꽉 잡아 물듯 압박했다.

    “아아!”

    그것만으로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아드리안이 다시 엘로디를 내려서 눕히고는 키스를 해왔다. 얽힌 혀와 흐르는 타액, 살과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방 안에 가득했다.

    엘로디는 문득 누군가 이 소리를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과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었다.

    오래전 리암과 약혼하겠다는 엘로디를 부른 어머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알파와 오메가와 엮이면 불행해진다는 말은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흐윽!”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을 알아차린 듯 유두를 살짝 깨물고 혀끝으로 문지르는 감각에 신음이 맞닿아진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그런 자신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웃는 것 같은 진동이 가슴에서부터 전해져 왔다.

    커다란 손이 다른 쪽 가슴을 문질러 주었다. 다리 사이는 이미 애액으로 엉망이었고, 몸은 계속해서 남자의 성기를 깊숙이 받아들이기 위해 애를 쓰는 것 같았다.

    체모가 얽히고 가슴을 문지르던 손이 음핵으로 향했다. 부드럽게 굴려지는 것과 동시에 페니스를 물고 있는 질 내벽을 더 강하게 압박하기 시작했다. 얕은 신음 소리와 함께 아드리안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아, 앙! 아드리안!”

    “으응.”

    높아지는 신음 소리에 그가 다시 키스를 해왔다. 그의 입 안에서 흩어지는 소리가 조금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자궁 입구 뒤쪽을 쳐올리는 감각에 등이 점점 뒤로 휘어져 들어갔다.

    손을 그의 몸에 두르고 양다리로 그의 허리를 꽉 쥐었다. 그의 두 손이 자신을 안아 올리자 그대로 주저앉듯 그의 몸 위로 쓰러졌다. 아까보다 더 깊이 들어오는 그의 물건에 엘로디는 더 이상 아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혀가 문질러지는 느낌과 예민해진 질 내벽을 몇 번이고 문지르고 찌르는 귀두에 정신이 나갈 것 같다.

    어쩌면 이대로 정신이 나가버려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상냥한 왕자님은 분명 망가진 자신을 평생을 아껴줄 것이다.

    몸 안에 들어와 있는 성기가 한껏 부풀어 올라서 질 내가 거의 찢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엘로디는 아드리안이 사정하는 것을 느꼈다. 어쩐지 애가 달아서 그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그가 부어넣은 정액이 다 들어가지 못하고 엉덩이를 타고 떨어져 내렸다. 아드리안의 허벅지 위에 앉은 채로 그의 몸에 기댄 엘로디는 조금씩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드리안. 더 해요, 우리.”

    그가 자신에게 푹 빠져서 다른 생각 따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 엘로디는 누구에게도 그를 넘겨줄 자신이 없었다. 다른 누구에게도, 심지어 그의 운명의 반려인 애론에게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날, 자신이 납치되어서 죽을 뻔했을 때 얼마나 후회했던가.

    “안 돼. 쉬라는 이야기 들었잖아.”

    그의 대답에 엘로디는 인상을 썼다. 아직 자신의 몸 안에 들어있는 성기는 이미 부피감과 단단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거짓말쟁이세요.”

    아드리안은 볼을 붉히고는 그런 그녀를 무시하고 천천히 엘로디의 몸에서 페니스를 빼냈다. 단단하게 일어선 귀두 끝이 질 내를 긁으면서 나오는 감각에 엘로디는 쾌락에 허덕였다.

    “흐읏.”

    아드리안은 제대로 고쳐 앉고서 쾌락에 몸을 떨고 있는 엘로디를 제 허벅지 위에 앉혔다. 작은 머리통을 가슴 쪽으로 당겨서 끌어안고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댔다.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아드리안이 천천히 그녀의 머리를 쓸어내리며 눈을 감았다. 그의 심장 위에 귀를 대고 엘로디는 멍하니 말을 걸었다.

    “괜찮아요.”

    “뭐가.”

    “저 안 부서져요.”

    자신을 유리처럼 다루는 그가 평소와 다르게 느껴졌다. 한두 번 몸을 섞은 것도 아니고 셀 수 없을 만큼 가져온 관계였다.

    “미안해.”

    다시 해오는 사과에 엘로디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아드리안 잘못이 아니에요.”

    머리 위로 젖어오는 감각에 엘로디는 그의 목에 두른 손을 더 꽉 끌어안았다.

    “저도, 크리스타도 모두 전하의 잘못이 아닌 거 아시잖아요.”

    “미안… 미안해.”

    엘로디는 안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괜찮아요.”

    둘은 그렇게 서로를 끌어안고만 있었다. 엘로디는 아드리안이 더 이상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기를 바랐다.

    엘로디는 아드리안의 위에서 내려와서 침대 위에 제대로 자리를 잡고 누웠다. 손짓을 해 그를 불러서 옆에 눕혔다.

    부드러워 보이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처음 봤을 때보다 조금 길어진 듯한 길이의 머리카락이 손의 움직임에 따라 멋대로 흔들렸다. 손을 내려 천천히 반듯한 이마와 보드라운 뺨을 쓸어내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물기로 반들거리는 보라색 눈동자가 흔들렸다.

    “제가 옆에서 전하가 흔들릴 때마다, 무너지려고 할 때마다 도와드릴게요.”

    어차피 가질 수 없다면, 그저 옆에라도 있고 싶다.

    어쩌면 고백일 수도, 그에게 하는 맹세일 수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라도 그를 옭아매고 싶었다.

    “저번에도 깨어나셨잖아요.”

    “난… 스스로를 조절하지 못하는 상황이 무서워. 만일 다음에 또…….”

    아드리안은 기억이 드문드문 있던 지난번을 떠올렸다. 세실의 [눈]에 조종당했다고 하지만 그때의 자신은 엘로디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먹어버리고 싶을 만큼 강한 소유욕을 느꼈다.

    아버지가 했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젠가, 자신이 완전히 이성을 잃게 된다면 그래서 엘로디를 부숴버리려 한다면…….

    “둘이면 더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천천히 내린 손을 그의 심장 근처에 올렸다.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이 손끝을 타고 넘어왔다. 그 박자에 맞춰 엘로디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절 포기하지 마세요.”

    그의 가슴에 머리를 가져다댔다. 몸을 굳힌 채로 한참을 있던 아드리안이 그녀를 끌어안았다. 말이 오가지 않고,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엘로디는 아드리안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오랜만에 그의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그에게서 은은하게 나는 장미 향이 달았다.

    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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