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난 반대한다
[‘온천 사장’이 헌터 최초로 성좌의 경지에 오릅니다.]
[‘온천 사장’이 태초의 별, ‘태초의 신’으로 부활합니다.]
[‘베카’가 성좌 ‘수호사자’로 부활합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문장들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큰 파급력을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탑 100층의 상황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냐고?’
그 영상이 세계로 뻗어나가면서 성좌의 경지에 오른 최초의 인간 ‘박수온’이자 태초의 여신으로서 나는 전설이 됐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좀처럼 뜻이 모이지 않던 각종 커뮤니티도 이번 일만큼은 한마음, 한뜻이 됐다.
<태초의 여신님 조각상>
* * *
[사진]
성지 순례 왔습니다. 부디 SSS급 헌터로 각성하게 해주세요.
* * *
ㄴ익명 1 : 전 S급도 좋습니다.
ㄴ익명 2 : 태초의 여신님 조각상 요즘 완전 핫플이라 한 번 만져보려면 앞에서 텐트치고 자야 한다던데.
ㄴ익명 3 : 그래도 가야죠! 어떤 사람이 태초의 여신님 조각상 만지고 S급 헌터로 각성했다잖아요.
ㄴ익명 4 : 이번에 태초의 여신님 조각상 만지고 면접 봐서 까까오 합격함!
ㄴ익명 5 : 와, 역시 태초의 여신님의 영험함이란. 저도 만지러 갑니다.
이쯤 되면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거의 신격화된 것 같다.
‘실제로 신이기도 하지만.’
<태초의 여신 보유국>
* * *
이 대한민국이라니, 애국심에 가슴이 웅장해진다.
* * *
ㄴ익명 1 : 요즘 다른 나라에서도 한국으로 헌터 교육받으러 오잖음 ㅋㅋㅋ
ㄴ익명 2 : 솔직히 온천 사장님이 우리나라 위상 제대로 높였지. 아, 지금은 전직 온천 사장님이신가?
ㄴ익명 3 : 인정. 요즘 한국이라고 하면 온천 사장님 나라라고 존경한다고 한다.
<요즘 초등학생 희망 직종 1위>
* * *
성좌
* * *
ㄴ익명 1 : ㅋㅋㅋㅋㅋ 온천 사장님 파워 ㅋㅋㅋ
ㄴ익명 2 : 지금은 태초의 여신님이시지.
ㄴ익명 3 : 태초의 여신님으로 인한 초등학생들의 꿈 상향 평준화.
ㄴ익명 4 : 저 40대인데 저도 성좌가 꿈입니다.
ㄴ익명 4 : 현실은 탑 30층.
ㄴ익명 5 : 토닥토닥.
내가 전직 온천 사장이라고 불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바로 새로운 온천 사장이 생겼기 때문이다.
성좌가 되었으니 더는 온천 사장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게 무의미했다.
“지호야, 지금 성좌랑 계약 파기해. 어차피 헌터 안 할 거라며.”
내가 점찍어둔 인물은 지호였다.
“안 그래도 성좌랑 잘 이야기가 되어서 좋게 끝났어. 나 이제 일반인이야.”
홀가분하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지호에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너 일반인 아니야. 온천 사장이야.”
나는 거의 반강제로 온천 사장의 마스터키를 지호에게 줬다.
[‘박지호’가 새로운 온천 사장이 됩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온천 사장이 된 것에 부담스러워했지만 내가 점찍은 사람답게 지호는 온천과 온천 별관을 곧잘 운영해나갔다.
내가 성좌가 된 지 얼마 안 되어서 개업한 온천 별관은 예상대로 초대박을 터뜨렸다.
<온켓팅>
* * *
다들 성공하셨나요? 저는 이번에도 실패 ㅠㅠ
* * *
ㄴ익명 1 : 저는 드디어 성공했습니다. 9번째!
ㄴ익명 2 : 와, 진짜 축하드립니다. 부러워요.
ㄴ익명4 : 저한테 파실 생각 없으신가요? 돈은 원하는 대로 드릴게요.
ㄴ익명 2 : 하루에 열 팀밖에 못 들어가다니 온천 별관 사업 확장 안 되나요? ㅠㅠ
ㄴ익명 3 : 진짜 죽기 전에 가볼 수 있으면 다행.
<온천에서 먹는 온천표 돈가스>
* * *
[사진]
먹기만 해도 체력 Max로 회복되는 거 실화냐?
* * *
ㄴ익명 1 : 거기 쑥 라테는 먹기만 해도 체력이 오릅니다.
ㄴ익명 2 : 와, 쑥 라테 판매는 안 하시나? ㅠㅠ
ㄴ익명 3 : 팔면 바로 사는 건데 온천 운영만으로 온천 사장님이 너무 바쁘셔서 안 하실 듯.
ㄴ익명 4 : 나도 먹고 싶다. 온천표 돈가스.
<덕택이랑 눈토끼 알바>
* * *
[사진]
방마다 온천 요리 배달하는 덕택이 너무 귀여워. ㅋㅋㅋㅋㅋ 손님맞이 하는 눈토끼도 너무 커엽. ㅋㅋㅋㅋ 양머리 귀는 뭐냐고.
* * *
ㄴ익명 1 : 양머리 수건 눈토끼 실화냐 ㅋㅋㅋ
ㄴ익명 2 : 저 눈토끼 때문에 온천에 간 사람들 인증샷 찍을 때 양머리 수건 쓰는 거 유행한 거잖음. ㅋㅋㅋ
ㄴ익명 3 : 진짜 눈토끼 집에 데려가서 키우고 싶게 생김. 당근으로 유혹해볼까?
ㄴ익명 4 : 여기서 양머리 수건 눈토끼 TMI -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주먹밥이라고 함 ㅋㅋㅋㅋ
ㄴ쓰니 : 저는 눈토끼가 쑥 라테 마시는 것도 봄 ㅋㅋㅋ
ㄴ익명 5 : 그 정도면 토끼가 아니라 사람 아니냐고 ㅋㅋㅋ
이외에도 온천이 현대 의학에서 고치지 못한 불치병도 치료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지호는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를 하면서 사람들을 도울 수도 있게 됐다.
지호가 온천 별관의 일로 바빠지면서 온천 본관에도 새로운 알바생이 생겼다.
“수온님, 이쯤 되면 차를 찾으시는 것 같길래 제가 쑥 라테를 준비해봤는데 드셔보시겠습니까?”
바로 샤레니안의 쌍둥이 동생이자 박시우의 성좌였던 에르시온이었다.
내가 전생에 죽었던 자신을 되살려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에게 은혜를 갚겠다며 내가 손님으로 있는 온천 본관 알바생을 자처한 것이다.
“아, 안 그래도 목이 마르던 참이었는데…….”
내가 에르시온이 가져온 쑥 라테를 받아 들려는데 누군가의 손이 에르시온의 잔을 막아 내게 닿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건 내 역할이라서. 넘보지 않았으면 하는데.”
바로 해령이었다.
해령의 손에도 에르시온과 같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쑥 라테가 들려 있었다.
‘원래 해령이 내 쑥 라테를 챙겨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딱히 누가 챙겨도 상관없지 않나?’
내 생각과 달리 해령은 그 일을 다른 이가 대신하는 걸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마침 잘됐네. 나도 쑥 라테가 먹고 싶었던 참인데 두 잔이니까. 잘 먹겠습니다.”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건지 어디선가 나타난 샤레니안이 날쌔게 해령의 손에 들린 잔을 빼앗아 들어 자신의 입에 털어 넣었다.
“어째서 네 동생 걸 두고 내 걸 마시는 건데? 진심으로 불사의 생을 끝내고 싶은가 보군.”
잔뜩 뿔이 난 해령이 주먹으로 샤레니안의 복부를 가격했다.
“아, 아프지 않나? 해령, 원래도 거칠었지만 요즘 들어서 더 사나워진 것 같다.”
자신의 배를 움켜잡고 있던 샤레니안이 은근슬쩍 해령의 귓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였다.
“자신의 신부를 빼앗길까 봐 안달이 난 수컷처럼.”
무슨 말을 했는지 몰라도
“아, 아프다니까!”
샤레니안은 다시 한번 해령의 주먹맛을 보게 됐다.
“에르시온, 잘 마실게.”
그 틈에 나는 에르시온이 주는 쑥 라테를 받아 들었다.
“별말씀을요. 언제든지 필요한 게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수줍어하던 에르시온은 달아나듯 2층 부엌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 버렸다.
‘샤레니안과 다른 의미로 귀여운 구석이 있네.’
쑥 라테를 홀짝이고 있는데 내 곁으로 해령이 다가와 섰다.
“맛있나?”
“뭐가?”
“그 쑥 라테, 맛있냐고.”
“응, 괜찮은데?”
에르시온의 손에 아직 쑥 라테 조리법이 덜 익어서 그런지 아쉬운 부분이 조금 느껴지긴 했어도 먹을 만했다.
내 대답을 들은 해령의 잘생긴 눈썹이 일그러졌다.
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에 팔을 대고 턱을 괸 해령이 뾰로통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내가 만든 것보다 더?”
‘설마……. 해령이 지금 에르시온을 질투하는 건가? 고작 쑥 라테 때문에?’
질투하는 해령은 생각보다 더 귀여워서 더 놀리고 싶어졌다.
“어렵네. 에르시온이 만든 게 더 맛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내 말에 검은 오라를 뿜어내던 해령이 내 손에 들린 잔을 빼앗아 들어 남은 쑥 라테를 다 마셔버렸다.
‘질투하는 것 맞네.’
“내 입맛에는 별로인데. 쑥 가루도 덜 들어갔고 우유도 부족하다. 그리고 넌 더 진한 걸 좋아하지 않나?”
‘먹기만 해도 아는 거면 천재 아니야?’
게다가 내 취향까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몇 번을 봐도 해령은 일등 신랑감이라니까.’
“맞아. 그런데 해령은 어떻게 그렇게 사소한 것까지 잘 알아?”
내 물음에 해령이 긴 속눈썹을 올려 나를 바라봤다.
“왜일 것 같지?”
나를 향해 빛나는 매력적인 바다색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나는 숨이 턱하고 막히는 것처럼 아찔해졌다.
‘성좌가 되고 나서도 저 외모에는 적응이 안 된다니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귀여워 보였는데, 지금은 또 다르게 보였다.
“아 참, 박시우가 어쩌고 있는지 봐야 하는 걸 까먹고 있었네.”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화제를 바꾸며 손바닥을 펼쳐 마나를 일으켰다.
그러자 마나가 동그랗게 퍼지며 박시우의 모습을 비췄다.
현정우의 죽음을 알게 된 뒤로 슬픔에 잠겨 있던 박시우는 에르시온과의 계약을 파기했다.
그리고 새로운 성좌를 맞이했다.
‘그게 나란 말이지.’
“어이, 박시우. 아직도 탑 99층이야? 그래서는 죽기 전에 성좌 되겠어? 명색이 태초의 신의 계약자인데 제대로 하자?”
[‘박시우’가 “아우, 저걸 진짜 쥐어박을 수도 없고”라면서 주먹을 쥔 손을 부들부들 떱니다.]
“억울해? 화나면 너도 성좌 하던가?”
[‘박시우’가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아악!” 하고 괴성을 내지릅니다.]
“그래도 친오빠인데 너무 구박하지 마라.”
한창 박시우를 갈구는 것을 즐기고 있는데 해령이 나를 말리고 나섰다.
‘사실 해령이 박시우의 편을 들 수도 있는 건데…….’
이상하게 해령이 박시우를 감싸고도는 게 서운하게 느껴졌다.
“넌 왜 박시우 편을 들어?”
심통이 난 내가 해령을 보며 묻자 애틋한 눈길로 날 바라보던 그가 손가락으로 내 볼을 장난스럽게 건드리며 작게 미소 지었다.
“미리 잘 보이려는 거다. 내 처남이 될 사람이니까.”
갑작스러운 해령의 고백에 굳어 있는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염라가 손을 번쩍 들며 우리의 앞에 섰다.
“난 이 결혼을 반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