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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 (183)화 (183/190)

183화

다시 내 곁으로

온천 별관 청소는 어렵지 않게 끝이 났다.

해령이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온천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용의 기운이 퍼지더니 별관이 눈 깜짝할 사이에 깔끔해졌기 때문이다.

‘언제 봐도 간편한 청소법이라니까.’

“청소는 이걸로 끝이다. 달리 살펴보고 싶은 게 있나?”

“아, 아니. 뭐, 해령이 청소했으니까 문제없겠지! 어차피 별관은 내가 아니라 지호가 관리할 예정이니까 차차 살펴보라고 하면 될 일이고.”

‘……어라? 내가 왜 이러는 거지?’

어째서인지 해령을 전처럼 똑바로 마주 보기가 어려웠다.

“내 신부가 되어주지 않을래?”

“너와 내가 성인이 되어 영원의 짝이 될 수 있을 때, 다시 너를 찾아가겠다.”

신부의 각인이 되살아난 탓인지 과거의 기억을 되찾아서인지 몰라도 자꾸만 나에게 청혼하는 해령이 떠올랐다.

‘찬바람을 쐬면 좀 나아질지도 몰라.’

“그래도 온천관은…….”

“아, 오랜만에 여유롭게 코에 바람이나 넣어볼까?”

해령이 뭐라 말하려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그와 둘이 있는 게 영 어색할 것 같았다.

그래서 못 들은 척 달아나듯 온천 별관의 마당으로 나왔다.

그러자 양머리 수건을 쓴 눈토끼가 동그란 몸을 통통 튀기며 내게 다가왔다.

“그렇군. 기억이 났다! 뀨! 널 어디에서 봤는지. 뀨!”

“날 어디에서 봤는데?”

‘보나 마나 이번에도 까먹었다고 답하겠지.’

별 기대 없이 눈토끼의 찹쌀떡 같은 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네가 눈으로 나를 만들었다! 뀨! 지금보다 넌 훨씬 작았고 너와 닮은 또래의 남자아이 둘이 함께였다.”

“아…… 설마!”

눈토끼의 말을 들으니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온천 별관에 가족 여행을 왔을 때는 한창 추웠을 때라 눈이 펑펑 와서 마당에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박돈돈! 박지호! 우리 눈사람 만들자!”

별관을 떠나기 전에 박시우가 지호와 나에게 눈사람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난 눈토끼 만들고 싶은데!”

“그럼 지호가 좋아하는 눈토끼 만들자!”

우리는 지호가 원하는 눈토끼를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귀를 어떻게 만들지?”

“음…….”

고민하던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온천의 수건이었다.

나는 온천 수건으로 양머리를 만들어서 동그란 눈 위에 씌웠다.

“자, 어때? 토끼 같지?”

“그건 양 아니냐?”

“토끼야.”

“양머리 수건이면 양인…….”

“토끼라고.”

시비를 거는 박시우를 가볍게 무시한 나는 별관의 마루에 놓인 바구니에서 검은콩 두 개를 꺼내 눈토끼에 붙였다.

“짠, 눈도 생겼지?”

“우와, 진짜 눈토끼다! 귀여워!”

눈토끼를 보면서 기뻐하던 지호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했다.

‘어째서 잊고 있었던 거지?’

내 추측이 맞다면 아무래도 해령의 기억을 담은 비늘이 내 몸에 들어오면서 당시의 내 기억도 함께 봉인된 것 같았다.

‘해령의 기억을 담은 비늘이 내게 봉인된 건 용의 신부 표식 때문인가?’

나는 푸른빛이 나던 목덜미를 살며시 쓸었다.

“그런데 그때는 평범한 눈토끼였던 것 같은데 어떻게 온천 별관의 가이드가 된 거야?”

“네 가족이 떠나고 난 후에, 온천의 성좌님께서 내게 힘을 나누어주셨다. 뀨! 자신을 대신해서 별관을 지키라고 하셨지. 뀨!”

‘온천의 성좌님이라면……. 해령?’

“그러고 보니 그랬지. 처음 볼 때부터 낯이 익었던 건 그 이유였나?”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해령은 어느새 내 뒤로 다가와 눈토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에는 아무리 가까운 거리에 있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해령이 내 근처에 있다는 것만으로 의식이 됐다.

“이 기운은……. 온천의 성좌님께서도 많이 자라셨군요. 뀨!”

눈토끼는 마치 가족을 만난 것처럼 해령의 도포에 얼굴을 비비며 반가워했다.

‘빠져나가려면 지금이다!’

또다시 해령과 단둘이 남아서 어색한 상황이 되는 건 싫었다.

“그럼 둘은 아직 할 이야기가 많은 것 같으니까 천천히 와. 나는 먼저 지호한테 가서 온천 별관 오픈에 대해서 의논해야 해서.”

“잠깐ㅁ…….”

나는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해령이 붙잡을 틈도 없이 달아나듯 온천 마스터키를 사용해 별관을 빠져나왔다.

* * *

“결국에는 저 인간 소녀와 다시 만나신 거로군요. 뀨!”

수온이 떠난 뒤, 양머리 수건을 쓴 눈토끼가 해령을 올려다봤다.

“그렇게 됐군. 약속대로라면 내가 먼저 찾아갔어야 했는데 많이 늦었지.”

무영의 숨이 멎었을 때, 해령은 스스로 온천의 문을 닫고 깊은 잠에 빠질 정도로 충격에 빠져 있었다.

“해령, 슬슬 움직일 때가 되지 않았나?”

“뭐가 말이지?”

“네 짝 말이다. 할아범을 잃은 슬픔은 이해하지만, 그 인간도 너에게 소중한 존재였잖아.”

“아침을 잘못 먹은 건가? 내가 인간을 소중하게 여길 리 없잖나?”

“해령, 너 설마 기억을 잃은 거야?”

“내가 기억을 잃어?”

“찬찬히 기억해봐. 네가 온천관에 있을 때 인간 가족 한 팀이 여행을 왔었잖아.”

처음 해령이 스스로 기억의 일부분을 잃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샤레니안의 말 때문이었다.

‘별것 아니니까 잊었겠지.’

당시 해령은 무영의 죽음과 연관된 것을 생각하기만 해도 괴로웠다.

그래서 굳이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런……. 네가 할아범을 아끼는 건 알았지만 기억을 잃을 정도로 충격이 컸을 줄은 몰랐군.”

“온천을 다시 운영하라고 설득하기 위해 날 찾아온 거라면 돌아가라. 할아범이 아닌 다른 자를 온천의 주인으로 들일 생각 없으니까.”

당혹스러워하는 샤레니안을 두고 해령은 매정하게 돌아섰다.

불사의 전장에서 상처를 입고 오는 것이 일상인 샤레니안은 온천이 가장 필요한 자였다.

그래서 종일 성가시게 굴 줄 알았는데 그는 의외로 순순히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영계가 새로운 계약자를 데려왔지.’

온천의 성좌인 자신의 동의도 없이.

그렇게 박수온이 온천 사장이 됐다. 그것도 샤레니안의 추천으로.

해령은 그게 그날 쌀쌀맞게 군 것에 대한 샤레니안의 복수라고만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나?’

해령의 기억에서는 그날, 샤레니안도 온천 별관에 있었다.

‘어쩌면 박수온을 만났을지도 모르는 일이군.’

“앞에 온 인간은 온천 사장인 거지요? 뀨!”

“그렇다.”

“그런데 어째서 온천의 성좌님에게서 느껴지는 것과 같은, 어쩌면 그 이상의 기운이 느껴지는 겁니까? 뀨!”

“그러게 말이다. 내 예비 신부의 전생이 너무 대단해서 여러모로 골치가 아파.”

해령이 수온의 전생과 현생에 엮인 하나 같이 범상치 않은 남자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예비 신부요? 온천 사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뀨! 그렇다는 건 그때 제게 가이드를 맡겨주신 것도…….”

“그래.”

비늘을 되찾은 이후, 해령은 그동안 어떻게 잊고 지낼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그때의 뜨거운 감정이 되살아났다.

“너무 소중하게 느껴져서. 박수온, 그녀의 손길과 숨결이 닿은 모든 것이.”

“그래서 녹지 않게 남겨두고 싶었다.”

수온에 대해 말하는 해령의 눈빛이 애틋하고 다정했다.

“그나저나 고민이군.”

“무엇을 고민하십니까? 뀨!”

해령은 과거의 기억을 되찾은 뒤로 눈에 띄게 자신을 피하는 수온을 떠올리며 탐탁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언제까지 날 애태울 생각일까?”

‘그렇다고 수온이 안정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기에는 잔챙이들이 많아서 불안하고…….’

잠시 사색에 잠겨 있는 듯하던 해령이 마루에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데려와야겠다.”

바다색 도포가 휘날리는 것과 동시에 해령의 푸른 눈동자가 의미심장하게 빛났다.

“내 신부를. 다시 내 곁으로.”

* * *

<온천 별관 영업>

* * *

언제부터 하나요? 오늘 온천 사장님이 개방했다고 하시던데!

* * *

ㄴ익명 1 : 거기 알바는 안 구하시나요? 사장님! 저 좀 써주세요! 무급으로 일할게요.

ㄴ익명 2 : 저도요. ㅠㅠ

ㄴ익명 3 : 돈켓팅 이상으로 경쟁 치열할 거라고 예상되는 온켓팅…….

ㄴ익명 4 : 이럴 때를 대비해서 오토 마우스를 샀다.

ㄴ익명 5 : 혹시 판매처 주소 좀 알 수 있을까요?

익명 헌터 게시판은 벌써 온천 별관 오픈에 관한 이야기로 후끈했다.

‘이거 빨리 온천 문 안 열면 또 오피스텔에 민폐 끼치겠는데?’

공지가 늦어질수록 누구보다 빨리 정보를 얻기 위해서 오피스텔에 기자들이 몰려들 게 뻔했다.

‘심지어 이제는 규모가 월드와이드라고.’

해외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지면서 더 스케일이 커졌다.

‘운수야, 지호 데리고 잠시 응접실로 와줄 수 있을까? 온천 별관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있어서.’

응접실로 내려오자 지호와 운수, 그리고 이제 막 온천욕을 마치고 나온 듯한 베카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운수야, 네가 보기에 지호가 온천 별관의 관리자가 될 능력이 되는 것 같아?”

“향료를 만드는 것도 그렇지만 온천 요리도 수준급이다. 관리자가 아니라 사장이라고 해도 믿을……. 크흠!”

지호의 칭찬을 늘어놓던 운수가 뒤늦게 나의 따가운 눈총을 느끼고 헛기침을 했다.

“평가는 냉정해야 하는 거니까. 안 그런가?”

‘그건 맞지.’

분한 기분이 들긴 해도 나는 여유롭게 꼬리를 살랑이는 운수의 말에 동의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호의 실력이 좋은 건 사실이니까.’

“별관은 총 10개의 방이 있는데, 지호 혼자서는 관리가 어려울 것 같아서 덕택이를 투입하려고 하는데. 그래도 일손이 부족할 것 같아. 따로 알바를 구해야 하나?”

“인간 알바를 구하는 건 반대한다. 온천의 비법을 노리고 오는 인간들이 있을 수 있다.”

운수는 외부인을 알바로 쓰는 것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러면 어쩌지? 나도 버그를 해결해야 하니까 당분간은 일을 도울 수 없을 텐데…….”

“내가 덕택이를 추가로 불러주겠다. 온천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덕택이는 많으니까.”

그때 베카가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말리며 구세주처럼 등장했다.

나는 지난번에 온천탕을 가득 채우고도 넘쳤던 장난감 오리 인형 떼를 떠올렸다.

‘그래! 그 덕택이 떼라면 일손이 부족할 일은 없을 거야.’

“베카, 그럼 부탁해도 될까?”

“얼마든지.”

“그런데 너 던전 브레이크를 열 수는 있어? 그보다 힘을 써도 괜찮은 거야?”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자 그 눈길을 피하지 않고 받아내던 베카가 한쪽 입가를 올리며 내게 다가와 얼굴을 가까이했다.

“내가 어때 보이지?”

그의 장밋빛 적안이 나를 향해 매혹적으로 빛났다.

“네 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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