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신부의 표식
은발의 소년은 한 손으로 나를 바위로 끌어올렸다.
또래 아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힘이었다.
‘역시 용이나 인어 왕자님 같은 게 틀림없어!’
내가 두 눈을 빛내며 소년을 바라보자 그가 화들짝 놀라더니 곧장 자신의 팔로 뺨에 나타난 비늘을 가렸다.
“……흉측하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하나도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소년은 자신의 비늘을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니, 전혀! 오히려 예쁜데? 진주처럼 반짝거리고.”
“이게 예쁘…… 다고?”
소년은 예쁘다는 말을 처음 듣는 것처럼 놀라는 눈치였다.
“응, 난 거짓말 안 해. 네 비늘은 꼭 인어 왕자님 같아. 설화 속에 나온 용처럼 멋있기도 하고!”
“보통 인간은 용을 무서워하지 않나?”
용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소년이 귀를 쫑긋 세우며 관심을 보였다.
“그런 사람들이 있을지는 몰라도 난 아니야. 난 용이 신비롭다고 생각하거든. 나중에 꼭 한번 타보고 싶어.”
“날 타보고 싶다고 말하는 인간은 또 처음이군.”
솔직하게 말했을 뿐인데 소년은 내가 재미있다는 듯 작게 웃었다.
“웃으니까 더 예쁘네.”
이 말을 하자마자 나는 당황해서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소년의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생각만 한다는 게 그만 입 밖으로 나와버린 것이다.
“아, 이건 네가 너무 예쁘게 웃어서 그런 거야. 원래는 혼자 생각만 하려고 했는데…….”
어쩐지 쑥스러운 기분이 들어 손가락으로 볼을 긁적거리자 소년이 물에 젖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내게 물어왔다. 화제를 돌리려는 것 같았다.
“넌 온천의 손님으로 온 건가?”
“응, 처음으로 온 가족 여행이야.”
“그럼 분명히 온천 할아범이 경고했을 텐데, 온천관에는 발을 들이지 말라고.”
“네가 출입 금지 구역에 들어와 있잖아! 위험하다고 알려주려 했지.”
‘그런데 왠지 말하는 투가 온천 주인 할아버지랑 친한 사이 같은데?’
“난 상관없다. 어차피 그 조항은 내가 종종 온천관에 들려서 생긴 거니까.”
“그런 거면 그냥 손님이 있다고 하면 되지, 왜 위험하다고 말씀하신 거지?”
“난 용이다. 보통 인간은 자신과 다른 존재를 보면 두려워하니까. 인간이 날 보면 소란이 일 것 같아서 내가 말해둔 것이다.”
“너 진짜 용이야?”
겁을 내기는커녕 두 손을 모으며 감탄하는 날 보는 소년의 얼굴에서는 처음의 경계 어린 매서운 눈빛은 사라지고 한결 온화해진 눈빛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다.”
“우와, 너 대단하다! 용이라니!”
“용이라서 대단하다니, 그런 이야기는 또 처음 들어보는군.”
소년은 나를 외계인을 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나 궁금한 거 있어!”
하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고 발표를 하듯 손을 들며 질문을 이어갔다.
“용은 진짜 이름이 용이야?”
“인간의 이름은 다 인간인가?”
‘듣고 보니 그러네.’
“그럼 네 이름은 뭔데?”
“해령.”
“해령이구나! 이름도 생긴 것만큼이나 예쁘네.”
“그 예쁘다는 말 좀 그만할 수 없나?”
해령은 예쁘다는 말을 할 때마다 미간을 좁혔다.
처음에는 기분 나빠하는 줄 알았는데 볼이 빨개지는 걸 봐서는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예쁜 걸 예쁘다고 하지. 그게 아니면 뭐라고 해?”
“정말 못 말리겠군. 그래서 뭐지?”
“뭐가?”
내 물음에 해령이 빛나는 은발을 살랑이며 내게로 눈길을 돌렸다.
“네 이름.”
날 향한 푸른색 눈동자가 투명한 호수처럼 맑게 빛났다.
“난 박수온이라고 해.”
해령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 누군가 깃털로 간지럼을 태우는 것처럼 속이 간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나는 괜히 시선을 발로 돌리며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박수온. 예쁜 이름이군.”
내 이름을 들은 해령이 나에게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이래서 해령이 나한테 예쁘다고 하지 말라고 한 건가?’
누군가에게 예쁘다는 말을 듣는 게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인 줄은 몰랐다.
‘예쁘다는 말을 처음 들어보는 것도 아닌데.’
수온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스러워했다.
우리 가족은 부모님의 유명세에, 외모부터 우월한 유전자라며 가족 전원이 언론에 많이 노출된 탓에 어렸을 때부터 예쁘다는 말은 심심찮게 들어왔다.
‘그럴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이상하네.’
“나한테는 예쁘다는 말, 하지 말라더니…….”
괜히 쑥스러워진 내가 젖은 머리카락을 한 움큼 잡아 비틀어 물기를 짜냈다.
“예쁜 건 예쁘다고 하는 거라며.”
‘그건 맞지만…….’
이제 와 내가 한 말을 도로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해령은 용으로 변할 수도 있는 거야?”
“그렇다. 하지만 너는 내가 용으로 변한 걸 보면 무서워서 바로 울면서 도망갈걸?”
“아닌데, 난 보고 싶어! 해령의 진짜 모습!”
내가 해령이 입고 있는 남색 온천복의 옷깃을 붙잡으며 간절하게 바라보자 내 눈빛을 꿋꿋하게 받아내던 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진실을 빨리 알수록 포기가 빨라지는 법이지.”
해령은 어린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쓸쓸한 얼굴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런데 그가 갑작스럽게 바위 아래로 몸을 내던졌다.
“해령!”
놀란 내가 바위 아래를 내려다보자 온천수만 일렁일 뿐, 해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해령이 아래로 빠진 건가? 구해줘야 하는데! 어른들을 불러오자!’
해령이 물에 빠졌다며 어른들에게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온천수가 치솟아 오르며 푸른빛과 은빛이 섞여 아름답고 몽환적인 용이 눈앞에 나타났다.
한눈에 봐도 고귀한 자태에 너무 놀란 나는 감탄조차 내뱉지 못했다.
‘이 용이…….’
“해령?”
“그렇다.”
“뭐야? 너무 예쁘잖아! 비늘들이 반짝반짝 빛나서 꼭 보석 같아.”
용을 본 것이 너무 기뻤던 나는 무심결에 해령의 머리를 두 팔로 꼭 껴안으며 얼굴을 맞댔다.
“너무 가깝다.”
“아, 미안. 용을 본 게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확실히 넌 날 보고도 겁내지 않는군.”
“난 예쁘고 귀여운 걸 좋아하거든! 그러니까 해령도 좋아.”
“진심인가?”
“당연하지!”
내 말에 해령이 조심스럽게 내 앞으로 자신의 등을 내밀었다.
“타보겠나? 싫다면 어쩔 수 없지만.”
“아니, 타보고 싶어!”
어릴 때도 겁이 없던 나는 덥석 해령의 등에 올라탔다.
“꽉 잡아라.”
온천관은 노천탕이어서 천장이 뚫려 있었는데 해령은 날 태우고 온천을 벗어나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별이 너무 가깝게 보여서 닿을 것 같아.’
하늘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아름다웠다.
“와, 너무 예쁘다!”
밤의 풍경에 감탄하던 나는 몸을 낮춰 해령의 귀에다 대고 작게 속삭였다.
“물론 해령만큼은 아니지만.”
바람 소리 때문에 내 말을 듣지 못한 건지 해령은 아무 말 없이 내게 마음껏 하늘에서 보는 야경을 구경시켜줬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해령의 꼬리가 처음보다 기분 좋게 살랑이는 것 같았다.
밤 나들이를 마치고 온천관으로 돌아온 우리는 다시 나란히 바위에 앉았다.
해령도 은발의 소년으로 돌아와 있었다.
“박수온.”
밤바람을 쐬고 와서인지 졸린 기분이 들어서 바위에 기대어 있는데 해령이 내 이름을 불렀다.
“왜?”
내 물음에 해령이 눈을 살짝 가린 은색 머리칼을 흩날리며 나를 바라봤다.
“내 신부가 되어주지 않을래?”
“신부?”
그건 엄마, 아빠처럼 부부가 되자는 거 아닌가?
너무 갑작스러운 제안에 얼떨떨해져 있는데 귀가 빨갛게 달아오른 해령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온천 할아범이……. 결혼은 평생을 함께해도 즐거울 것 같은 사람이랑 하는 거라고 했다.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면서.”
날 향한 해령의 눈빛이 방금 하늘에서 봤던 별을 담은 것처럼 영롱하게 빛났다.
“처음이었다. 누군가와 있으면서 이렇게 즐거웠던 것은. 너라면 평생을 함께해도 좋을 것 같아. 물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거절해도 좋다. 강요하는 건 아니다.”
“좋아.”
나는 깊게 고민하지 않고 답했다.
해령이 내게 신부가 되어달라고 말하는 순간, 너무 기뻐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나도 네가 좋아. 네 신부가 될게.”
나는 약속의 의미로 새끼손가락을 건넸다.
“이건 뭐지?”
“사람들은 약속할 때 서로의 새끼손가락을 걸어.”
내 말에 해령이 어색하게 내게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이제 약속한 거다!”
“아직이다.”
해령은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다는 듯 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더니 내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그러자 신비로운 빛이 목으로 전해지며 푸른색 꽃문양이 새겨졌다.
놀란 난 해령의 입술이 닿은 곳을 감싸며 그를 바라봤다.
“이건 용의 신부의 표식이다. 각인도 새겨뒀고.”
“각인은 뭔데?”
“내가 영원히 네게 충성할 거라는 맹세.”
해령이 목을 감싼 내 손 위에 다시 한번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그 순간, 미소 짓는 그가 너무 아름다워서 이 모든 게 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너와 내가 성인이 되어 영원의 짝이 될 수 있을 때, 다시 너를 찾아가겠다.”
그 약속을 마지막으로 나는 별빛관으로 돌아와 잠들었다.
다음날, 다시 온천관으로 갔을 때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수온아, 여긴 출입 금지 구역이라고 했잖니? 조심해야지.”
‘나는 괜히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엄마에게 붙잡히고 말았지.’
그리고 어느 순간, 해령을 만난 그때의 기억만 잘려 나간 것처럼 잊게 됐다.
‘그럼 설마……. 무영 때문에 잃어버렸다는 기억이…….’
나였어?
봉인되었던 기억을 모두 들여다본 나는 해령이 있었던 곳으로 눈을 돌렸다.
때마침 그도 나를 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때 내 목덜미에서 푸른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봉인되어 있던 ‘용의 신부 표식’이 발현됩니다.]
눈이 마주친 해령과 나 사이에는 전에 없던 어색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