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출입 금지 구역
“저게 온천 별관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해령은 익숙하게 신전 중앙의 나무 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온천 별관의 문이 열리자 봉화가 있던 신전의 모습은 점차 사라지고 처음 봤던 던전의 풍경이 나타났다.
‘일단 빨리 안으로 들어가자.’
누가 던전을 지나가다가 온천 별관 건물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난리가 날 게 분명했다.
‘그나마 위치가 A급과 S급 던전 사이라서 다행인가?’
나는 온천 별관이 그나마 인적이 드문 곳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기며 해령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어라? 마당에 웬 눈이 이렇게 쌓여 있어?”
처음 온천 사장이 되었을 때는 패딩을 입어야 할 정도로 쌀쌀한 날씨였지만 지금은 초봄이라 그때보다 비교적 따뜻했다.
‘이런 날씨면 설령 눈이 내렸다고 하더라도 금방 녹았을 텐데…….’
마당에는 발자국이 찍혀 움푹 팰 정도로 눈이 두껍게 쌓여 있었다.
“이 눈은…….”
어리둥절하게 눈을 바라보고 있는 해령을 봤을 때, 그도 원인을 모르는 것 같았다.
‘해령도 모르는 게 다 있네.’
의외라고 생각하며 계속 해령을 쳐다보고 있는데 그의 얼굴 위로 용의 비늘이 나타나며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해령, 너 얼굴에 비늘이…….”
내 말에 흠칫 놀라며 습관처럼 옷소매로 얼굴을 가리려던 해령이 이내 다짐한 듯 팔을 내리고 비늘을 드러낸 채 나를 마주 봤다.
“요즘 들어 자주 나타나는 것 같군. 정확히는 네가 온천 사장이 된 뒤부터인가? 성체가 되고나서는 비늘이 나타나는 일이 없었거든.”
‘그래도 이제 비늘을 가리지 않는구나.’
난 해령의 기분 좋은 변화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왜 그렇게 웃지?”
“비늘이 예뻐서?”
“……낯부끄러운 소리를.”
내게 예쁘다는 소리를 들은 게 부끄러웠는지 해령이 슬쩍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해령은 은근히 칭찬에 약하다니까.’
붉어진 해령의 뺨을 바라보다 무심결에 그의 비늘에 눈이 닿았다.
‘이상하다? 꼭 이곳만 비늘이 비어 있는 것처럼 보여.’
해령의 물결무늬로 빽빽하게 채워진 은빛 비늘의 한 부분이 꼭 떨어져 나간 것처럼 이질감이 들었다.
나는 홀린 듯이 그 부분에 손을 가져다 댔다.
내 손길이 뺨에 닿자 해령이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갑자기 무슨…….”
전보다 얼굴이 한층 더 붉어진 해령이 당혹스러워하는 그때, 내 목뒤가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앗! 또…… 목뒤가 타들어가는 것 같아.”
“목뒤가?”
내가 화상을 입은 듯한 느낌에 눈을 질끈 감으며 목뒤를 감싸자 해령이 다급히 내 손이 닿은 부분을 살폈다.
‘이번에도 전과 같아.’
내 목뒤에서 딱딱한 비늘의 감촉이 느껴졌다.
해령의 손길이 그 부위에 닿는 순간이었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뜨거웠던 피부가 서늘해지며 목뒤에서 무언가 튕겨 나오는 게 느껴졌다.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잃어버린 용의 비늘 조각을 되찾습니다.]
[‘잃어버린 용의 비늘 조각’에 봉인되어 있던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해령의 얼굴에 비어 있던 비늘의 조각이 채워지면서 반짝이는 빛이 나와 해령을 감싸고 돌았다.
그 빛이 너무 따뜻해서 나른해진 나는 스르륵 눈을 감았다.
* * *
“이런 곳에 온천에 있는 줄은 몰랐네.”
“그러게 자주 다니는 길인데 왜 몰랐지?”
난 가족들과 함께 우연히 발견한 온천에서 쉬어가기로 했다.
“아무튼 이번엔 큰 건을 해결했으니 우리도 모처럼 휴가 써서 아이들과의 시간을 보내보자고.”
성과를 낸 엄마의 과감한 결정으로 이루어진 즉흥적인 가족 여행이었다.
“우와, 좋아! 가족 여행!”
내심 가족 여행을 떠나는 평범한 가정의 친구들이 부러웠던 우리는 신이 나서 온천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온천의 데스크에는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가 계셨다.
인자한 인상의 할아버지였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우리 가족 여행 왔어요!”
첫 가족 여행에 설렌 지호가 할아버지를 향해 자랑하듯 말했다.
“그렇구나. 가족들과 즐겁고 소중한 추억을 많이 만들길 바란다.”
“네! 그럴게요!”
“총 넷입니다. 카드 결제도 되나요?”
“물론이죠.”
전통적인 한옥 느낌이 나는 인테리어라 카드 결제가 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할아버지는 최신식 카드 결제기를 꺼내서 능숙하게 계산을 마치셨다.
“저희 온천에서만 특별하게 맛보실 수 있는 요리들도 메뉴판에 정리되어 있으니 필요하시면 각 방에 있는 벨로 불러주시면 됩니다.”
“네, 저희는 어느 방으로 가면 될까요?”
“저기 별빛관을 사용하십시오. 그리고 한 가지 더, 온천관은 출입 금지 구역이니까 실수라도 들어가지 마십시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온천의 깊이가 다른 곳보다 훨씬 깊어서 잘못하면 사고가 나곤 하더군요. 아이들도 있으니까 특히 더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설명하는 할아버지의 시선이 아주 잠깐 나에게 닿았다.
나는 온천관이 있는 방향을 물끄러미 보다 흠칫 놀라며 엄마의 뒤로 몸을 숨겼다.
“우와, 엄마! 돈가스도 있어! 돈돈이는 좋겠네!”
“엄마, 나는 무조건 돈가스 먹을 거야!”
“그럼 지호도 돈가스!”
우리 가족은 별빛관에서 소소하게 온천을 즐기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온천이 던전 인근에 있어서인지 손님도 많지 않아서 유명인인 부모님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모처럼의 휴식을 즐길 수 있었다.
그동안 부모님께 못했던 일상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날이 어둑해져 있었다.
“이제 자야지. 그래야 키가 쑥쑥 자란단다.”
“난 유치원에서 제일 큰데!”
“아빠에 비하면 아직 한참 작잖아.”
“칫, 내가 더 빨리 자서 아빠보다 더 클 거야!”
시우와 아빠의 실랑이를 마지막으로 우리 가족은 잠자리에 들었다.
바닥이 구들장처럼 따뜻해서 종일 신나게 노느라 정신이 없었던 가족들은 금세 곯아떨어졌다.
하지만 낯선 환경에서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는 홀로 깨어 있었다.
뚝. 뚝.
그런데 어디선가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물장구를 치는 소리 같기도 하고?’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손님은 우리 가족이 전부였다.
‘새로운 손님이 들어오는 소리는 듣지 못했는데…….’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그 소리가 무서우면서도 동시에 궁금했다.
나는 잠에 든 가족들이 깨지 않도록 슬금슬금 이불에서 빠져나와 복도로 걸어 나왔다.
찰방찰방!
물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걸어 나오니 어느새 온천관 앞이었다.
‘온천관은 출입 금지 구역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온천관에 환한 불빛이 밝혀져 있었다.
그때 온천관의 미닫이문 위로 내 또래 보이는 아이의 그림자가 비쳤다.
그림자를 봤을 때는 꼭 물 위를 걷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누가 들어가 있잖아?’
“온천관은 출입 금지 구역이니까 실수라도 들어가지 마십시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온천의 깊이가 다른 곳보다 훨씬 깊어서 잘못하면 사고가 나곤 하더군요. 아이들도 있으니까 특히 더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난 문득 온천 주인 할아버지와 엄마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저 아이가 위험해! 아마 저곳이 출입 금지 지역이라는 걸 모르고 들어간 걸 거야.’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는 그 아이를 구하기 위해 망설이지 않고 온천관의 문을 열어젖혔다.
“위험……. 엥?”
그곳은 위험하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웬 은발 머리의 예쁘장하게 생긴 남자아이가 물 위를 바닥처럼 거닐고 있었다.
굳은 듯이 날 바라보고 있던 소년이 놀란 고양이처럼 털을 곤두세우며 온천관의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그러자 동시에 온천관의 온천수가 소용돌이치는 바람에 나는 구조 요청을 할 새도 없이 물에 휩쓸리고 말았다.
‘숨을 쉴 수가 없어.’
주인 할아버지 말대로 온천관의 물은 빠진 뒤에도 한참을 가라앉을 정도로 깊었다.
살기 위해 물속에서 바둥거리던 나는 온몸에 힘이 빠지는 걸 느끼며 축 늘어졌다.
‘난 가족끼리 첫 여행에 와서 죽는 건가?’
짧은 순간 박시우가 아껴둔 아이스크림을 훔쳐먹은 순간과 나를 새끼 병아리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지호가 떠올랐다.
자주 얼굴을 보기는 힘들었지만, 가끔이라도 일찍 집에 돌아오시면 늘 환하게 웃으며 안아주시던 부모님의 따뜻한 품도.
주마등처럼 짧았던 삶이 스쳐 지나가는 그때, 누군가 물 아래로 가라앉고 있는 내 손을 잡아끌었다.
희미한 시야로 은발의 미소년이 보였다.
온천관에 들어왔을 때 봤던 그 아이였다.
그 소년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나의 상태를 살피다 눈을 질끈 감고 내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러자 막혔던 숨이 뻥 뚫렸다.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어?’
놀란 내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소년을 바라보자 그 아이가 나를 안아 들더니 빠르게 헤엄을 쳐서 물 밖으로 올라왔다.
물속에서 소년의 뺨에 나타난 비늘이 보석처럼 빛났다.
‘꼭 인어 같아.’
“푸핫! 살았다.”
내가 급한 대로 온천의 안쪽에 있는 바위로 올라가려 하자 한발 빠르게 먼저 위로 올라간 소년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미안하다. 내가 너무 놀라서 온천수까지 동요해버렸어.”
‘이 아이는 진짜 인어인가? 물 위를 걸어 다녔으니까 어쩌면 용일지도 몰라.’
설화 속이나 전래동화에서 물과 연관된 건 보통 용이었으니까.
“아, 역시 내 손을 잡는 건 불쾌한가?”
난 손을 거둬들이려는 소년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아니, 좋아!”
장담하건대 갓난아이 시절과 유치원 생활을 통틀어서 이렇게 신비롭고 아름답게 생긴 아이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박력 넘치는 대답에 소년의 얼굴이 삽시간에 붉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