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장가 오라고?
“자, 온천 사장표 돈가스 대령이오!”
해령이 울음을 그치자 나는 그를 부엌으로 와서 먹을 것을 만들어 식탁에 내어놓았다.
똥손에서 탈출한 덕분에 몇 번 손을 움직이고 나니 온천표 돈가스가 뚝딱 만들어졌다.
‘역시 금손이 최고야!’
내가 온천 사장이 되고 나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었다.
“갑자기 웬 돈가스지?”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돈가스를 바라보던 해령이 내게 속을 알 수 없다는 듯이 물어왔다.
“코피도 흘리고 오랫동안 엉엉 우느라 힘이 다 빠졌을 텐데, 뭐라도 먹어야 힘이 날 거 아니야?”
“누가 엉엉 울었다는 건지……. 그리고 전에도 말했지만 성좌는 끼니를 챙겨 먹지 않아도 몸에는 지장이 없다.”
쉬지 않고 운 탓인지 붉어진 눈가를 옷소매로 감춘 해령이 딴청을 피웠다.
투덜거리는 말투와 달리 그의 귀가 붉어져 있었다.
‘해령이 부끄러워한다!’
보기 힘든 구경거리라 놀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관두기로 했다.
‘오늘은 모처럼 해령의 상처를 알게 된 날이기도 하니까.’
지금은 해령이 잘 먹고 기운을 차리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내가 부모님과 이별을 겪고 슬픔에 빠져 있을 때, 해령이 여러모로 보살펴준 것처럼.
나도 그가 아픔을 극복하는 걸 응원해주고 싶었다.
“몸에는 지장이 없어도 힘은 빠질 것 아니야? 군소리 말고 먹어둬. 너도 알다시피 온천표 돈가스만 한 보양식이 또 없거든.”
‘먹기만 해도 체력이 모두 회복되잖아.’
장담하건대 어떤 약도 온천표 돈가스만큼 효과가 좋지는 못할 것이다.
“너는? 같이 먹지 않는 건가?”
식탁 위에 홀로 덩그러니 놓인 돈가스를 바라보던 해령이 식기를 들며 내게 물었다.
“나는 베카한테 다녀오려고. 며칠째 소식이 없어서 걱정이 되던 참이었거든. 온천표 돈가스 도시락도 만들었고.”
“잘됐구나. 나도 꼬맹이 소식이 궁금하던 차였다.”
내가 손에 든 돈가스 도시락을 해령에게 들어 보이는 그때, 부엌으로 약 항아리 어르신이 나타났다.
“수온아, 네가 만들어준 돈가스는 잘 먹었다. 무영이 만들어준 온천표 돈가스만큼이나 맛이 좋았지.”
난 해령과 베카에게 줄 돈가스를 만들면서 어르신에게 드릴 돈가스도 같이 만들었다.
지난번 인연의 신전에 갔을 때 약 항아리 어르신이 만들어주신 주먹밥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지막 하나까지, 눈토끼랑 쌀 한 톨 남기지 않고 해치웠지.’
“어르신이 만들어주신 주먹밥에 비하면 아직 많이 부족한걸요. 아, 맞다. 도시락 통 돌려드려야 하는데 까먹고 있었어요!”
나는 미리 설거지를 해두었던 도시락 통을 인벤토리 창에서 꺼내 어르신에게 건넸다.
“천천히 돌려줘도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라. 그리고 이것도 받고.”
빈 도시락 통을 받아든 어르신이 손에 들고 있던 또 다른 도시락을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얼떨결에 받아든 내가 어르신을 멀뚱히 바라보며 물었다.
“네가 만들어준 돈가스를 먹다 보니까 마탑의 꼬맹이가 떠올라서.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맛있는 게 생기면 종종 나눠 먹고는 했거든. 혹시 이 도시락을 꼬맹이에게 전해줄 수 있겠느냐?”
“당연하죠. 어르신의 도시락을 받으면 베카도 분명 좋아할 거예요.”
“크흠, 그럼 부탁하마.”
어르신은 도시락을 건넨 뒤, 쑥스러우신지 헛기침을 하며 뒷짐을 지고 유유히 복도를 빠져나가셨다.
아마도 베카가 온천에서 지내는 동안 친해진 건 영계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그새 어르신이랑도 친해졌구나. 잘됐다. 오늘 베카 배 터지겠는데?’
난 어르신이 챙겨준 도시락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때 누군가의 손이 내 손목을 살며시 쥐었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리니 돈가스에는 손도 대지 않고 나를 붙잡고 있는 해령이 보였다.
“왜 그래?”
“가지 마.”
‘가지 말라고?’
나를 바라보는 해령은 우는 모습을 보고 난 직후라 그런지 더욱 아련해 보였다.
‘해령은 혼자 밥을 먹는 게 적적한 걸지도.’
이전에 들은 해령의 과거에서 그는 비늘이 난 얼굴 때문에 늘 혼자였다.
‘많이 외로웠겠지.’
짝을 이루는 체육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는 혼자 있는 게 일상이었던 나처럼.
많은 사람의 질투 혹은 궁금증을 담은 시선들을 받아내며 홀로 먹는 밥은 맛도 없을뿐더러 체하기 일쑤였다.
“좋아, 안 갈게.”
나는 도시락 두 개를 식탁에 나란히 올려놓고 해령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대신 네가 돈가스를 다 먹을 때까지만이야. 오늘 안에 베카한테 도시락을 전달해줘야 하니까.”
해령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하자 그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식기로 돈가스를 썰었다.
돈가스를 조각내는 해령의 손이 거북이의 걸음보다 더 느릿느릿했다.
“칼질이 서툴면 내가 썰어줘?”
“아니, 돈가스를 더 맛있게 먹기 위해서 고기 결의 반대로 썰고 있는 중이다.”
‘성좌는 끼니를 먹지 않아도 산다더니…….’
그 와중에 돈가스를 맛있게 먹는 것은 꽤나 중요한 모양이었다.
그 취향을 존중해주기로 한 나는 해령이 좋을 대로 두기로 했다.
돈가스를 한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낸 해령이 포크로 고기 조각을 집었다.
‘이제 먹는 건가?’
당연히 해령의 입으로 들어갈 줄 알았던 고기 조각은 어느샌가 내 앞으로 가까워져 있었다.
“뭐야?”
내 물음에도 해령의 포크는 여전히 나를 향해 있었다.
‘설마 나보고 먹으라는 건가?’
“먹어라. 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잖아. 나를 달래느라.”
해령은 내가 자신 때문에 끼니를 거른 것이 마음에 걸리는 눈치였다.
“난 괜찮아. 그렇게 배고프지도 않고.”
해령이 내게 미안해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돈가스를 먹는 것을 한사코 거절했는데,
꼬르륵!
마치 이때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배꼽시계가 울렸다.
그것도 다른 걸로 둘러댈 수도 없을 만큼 요란하게.
‘이 솔직하고 튼튼한 위장 같으니……!’
배고픔에 눈이 먼 몸은 주인의 체면 따위는 생각해주지 않는 것 같았다.
“네 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데.”
내 배에서 나는 소리를 들은 건지 해령이 작게 웃었다.
“어서 먹어라. 내 팔을 떨어뜨릴 셈인가?”
더 부끄러울 것도 없어진 나는 순순히 돈가스를 받아먹었다.
원래도 맛있지만 배고플 때라 그런지 돈가스의 맛이 평소의 몇 배로 황홀하게 느껴졌다.
‘한 입만 먹기에는 아쉬운데 하나 더 만들까?’
고민하고 있는데 해령이 다시 돈가스를 집어 내게 건넸다.
“이제 너 먹어. 내가 먹고 싶으면 하나 더 튀겨도 되고.”
“말하지 않았나? 난 굳이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된다고. 그리고 내가 먹는 것보다 이편이 재미있기도 하고.”
곧이곧대로 돈가스를 받아먹는 나를 해령은 흥미로운 눈길로 지켜보고 있었다.
‘뭐지? 꼭 내가 조련당하고 있는 것 같은 이 기분은.’
“그럼 포크 내놔. 내가 먹을 테니까.”
“딱히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오늘 네게 무척 위로 받았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라도 보답하고 싶은데 안 되는 건가?”
해령이 바다색 눈동자를 은은하게 빛내면서 한껏 풀이 죽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을 마주하니까 묘하게 마음이 약해졌다.
‘이상하다. 내가 해령에게 이 정도로 마음이 약해진 적이 있었나?’
보통은 해령이 몸과 마음이 지친 나를 달래주거나 챙겨주는 편이었다.
‘해령의 약한 부분을 알아서 그런 걸지도.’
“너 좋을 대로 해라.”
나는 해령의 성의를 생각해서 그가 주는 돈가스를 전부 받아먹었다.
[‘온천표 돈가스’를 먹었습니다. 체력이 Max로 회복됩니다.]
돈가스 한 개를 뚝딱 해치우고 나니 배가 든든해졌다.
“잘 먹는군.”
해령은 접시를 깨끗이 비운 나를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잘 먹는 것만으로 칭찬 받아본 건 유치원생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전부터 느낀 거지만 해령은 육아를 끝내주게 잘할 것 같아. 해령 밑에서 자라는 아이는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랄 것 같달까?”
실제로 해령은 빨래부터 설거지, 요리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잘했다.
“왜?”
내 칭찬에 해령은 식탁에 팔을 대고 턱을 괸 채 나를 보며 입가를 삐뚜름히 올려 웃었다.
“또 너한테 장가 오라고 하려고?”
‘어라?’
분명 전에 해령이 만든 돈가스 맛에 빠져서 내가 했던 말인데 아무렇지 않았던 그때랑은 느낌이 달랐다.
‘아냐, 그저 선수를 뺏겨서 그런 거겠지.’
곧 죽어도 지는 건 싫어하는 것만큼은 박시우와 판박이인 내가 여유로운 얼굴로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왜? 나한테 장가 오라고 하면 오려고?”
이번에는 또 얼마나 신박한 욕들이 날아올까 기대하고 있는데.
“그래. 갈게. 너한테.”
예상과는 전혀 다른 대답에 나는 놀란 눈으로 해령을 돌아봤다.
날 바라보는 해령의 눈빛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살짝 벌어져 있던 그의 선홍빛 입술에서 나긋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장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