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 (173)화 (173/190)
  • 173화

    예뻐 보였어

    나는 겨우 코피가 멎은 해령을 이부자리 위에 눕히고 이마 위에 물수건을 갈아주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지?”

    “원래 아플 때는 충분히 쉬어줘야 해.”

    “난 그 정도로 나약하지 않다.”

    “방금 코피를 한강만큼 쏟아놓고서는. 네가 샤레니안처럼 불사신도 아니고 열도 있으니까 얌전히 누워 있어.”

    나는 몸을 일으켜 세워 앉으려는 해령을 손으로 눌러 재차 눕혔다.

    그렇게 많은 피를 쏟아낸 탓인지 안 그래도 하얀 그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져 있었다.

    ‘솔직히 해령이 코피를 쏟게 된 건 내 탓이 크니까.’

    제대로 돌봐주기로 마음먹었다.

    “넌 내가 무섭지 않나?”

    한 번 다시 눕힌 이후로는 잠자코 내 간호를 받으며 나를 바라보던 해령이 자신이 덮고 있던 이불을 얼굴 위로 끌어 올리며 물었다.

    ‘이 질문을 한 게 염라라면 모를까?’

    염라는 저승의 최고 권력자인데다 데스노…… 아니, 명부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반면에 해령은 사포처럼 까칠한 성격을 갖고 있긴 해도 무섭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오히려 온천 일을 뚝딱 해내는 걸 보면 가정적인 편이고.’

    “대체 어느 부분에서 무서워해야 하는 건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해령이 오히려 더 당황하는 눈치였다.

    “봤잖아. 내 비늘을…….”

    “그게 왜 무서워?”

    해령의 얼굴에 나타난 비늘을 처음 봤을 때, 놀란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내 햇살이 비치는 바다처럼 예쁘게 빛나는 비늘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됐다.

    “내가 알던 인간들은 모두 내 비늘을 보고 두려워하거나 징그러워했으니까.”

    늘 느끼는 거지만 편협한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문제였다.

    그들은 주로 자신과 다른 것을 존중하기보다는 배척하려 했다.

    “아직 어린데 S급 헌터로 각성해서 억대 연봉을 벌다니! 너무 어릴 때 많은 돈을 벌면 버릇이 나빠지던데. 마약처럼 나쁜 것에 먼저 손을 대기도 하고 말이에요.”

    박시우와 지호도 평범한 사람들보다 뛰어난 S급 능력을 각성했고 많은 돈을 번다는 이유로 인성이 나쁘다거나 마약을 한다는 루머가 뒤따르기도 했다.

    “S급 헌터 가문에서 혼자 일반인이라니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요? 우리 애한테 나쁜 영향만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어쩌면 진짜 혈육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요? 바깥에서 낳아온 자식이라거나.”

    반대의 경우로 나는 S급인 가족들 사이에서 혼자 비각성자라는 이유로 외도해서 낳은 아이라든가, 선행을 일삼았던 부모님이 고아원에서 데려온 입양아라든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억측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에는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리자고 마음먹긴 했다.’

    하지만 여전히 떠올릴 때마다 울컥 화가 치미는 걸 보면 그 말들이 내게 여전히 상처로 남아 있다는 거겠지.

    그래서 나는 해령이 왜 비늘 이야기만 꺼내면 방어적으로 행동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해령, 사람들이 네게 나쁜 말을 한 이유가 뭔 줄 알아?”

    “난 그들과 달리 몸의 반이 비늘로 덮여 있으니까, 징그러워서?”

    “하……. 아니야.”

    유독 비늘 이야기만 나오면 새하얗고 작은 새끼 강아지처럼 넓은 어깨가 축 처지는 해령을 바라보던 난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이 날 헐뜯은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건가?”

    “그래.”

    “왜 그런 짓을 한 거지?”

    “다 널 질투해서 그래. 넌 그들이 가지지 못한 걸 가졌으니까.”

    내 대답이 예상과 전혀 달랐던 것인지 해령은 여전히 이불 속에 얼굴을 감춘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 비늘이 질투를 느낄 정도로 대단하지는 않잖아?”

    “내 눈에는 대단하게 아름다워 보였는걸? 신비롭게 느껴지기도 하고. 너무 예쁘게 빛나서 하늘에서 별을 따다가 얼굴에 쏟아놓은 줄 알았어.”

    난 이제껏 이야기보따리에 고이 넣어두었던 비늘에 대한 감상을 술술 풀어놨다.

    ‘난 솔직하게 말한 건데……. 해령에게는 부담스럽게 느껴지려나?’

    더군다나 비늘을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해령을 위로하려고 일부러 꾸민 말처럼 들렸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쨌든 네 비늘을 봐도 징그럽거나 무섭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는 거지.”

    사실 내게 본 것을 똑같이 그릴 수 있는 실력이 있었다면 그림으로 남기고 싶을 정도로 예술적이었다고도 말하고 싶었지만, 애써 목구멍으로 삼켰다.

    슬쩍 해령 쪽을 살피니 그는 어느샌가 얼굴을 가린 이불을 내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생각에 잠겨 있던 해령이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물수건이 이불 위로 떨어졌다.

    ‘안 돼! 이불 젖겠다!’

    청결을 중시하는 영계라면 이불이 물에 젖은 걸 보고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작은 몸을 축축하게 적신 채로 몸소 이불 빨래를 하는 영계가 안쓰러워 세탁기를 권해본 적도 있었다.

    “이불 빨래는 내가 직접 하지 않으면 성에 안 찬다! 내 빨래 실력을 세탁기 따위가 따라올 수 있을 리가!”

    “그럼 내가 좀 도와줄까?”

    “당장 그 손을 치우지 못할까? 두 번 일하게 하지 말고 저리 가거라!”

    ‘특히 내가 빨래를 돕겠다고 했을 때는 영계가 사색이 되어서 질겁하기까지 했지.’

    그런 이유로 영계는 거품에 발이 미끄러져 물에 빠지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굳이 스스로 빨래하기를 고집했다.

    ‘영계를 또 고생시킬 수는 없지.’

    하지만 빠르게 물수건을 치우려는 내 손을 해령이 커다란 손으로 감아쥐었다.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물수건에서 해령에게로 향했다.

    나를 바라보는 맑은 물색의 눈동자가 청량한 호수처럼 일렁였다.

    “네게 내 비늘이 아름다워 보였다는 거지?”

    “응, 예뻐 보였어.”

    그러니까 비늘을 향한 악의적인 말들은 무시해버리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해령을 보는 순간 말 대신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됐다.

    그는 내게 칭찬을 들은 게 내심 기뻤던 건지 전보다 들뜬 얼굴로 자신의 비늘이 나타났던 자리를 매만지고 있었다.

    ‘가만히 보면 해령도 단순한 구석이 있다니까.’

    “사실 전에도 내게 그런 말을 해준 존재가 있었다.”

    “그래? 그게 누군데?”

    내 물음에 잠시 나와 눈을 맞추던 해령이 이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열 때문인지 그의 얼굴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날 이곳의 성좌로 만들어준 존재가.”

    “해령은 처음부터 온천의 지배자였던 게 아냐?”

    해령이 세 명의 성좌들을 모두 한곳에 모았으니 당연히 처음부터 신적인 존재였을 줄 알았다.

    “아니다. 원래 난 반은 인간의 피, 반은 바다 용의 피가 흐르는 반인반신으로 인간들의 마을에 섞여서 살았지.”

    꺼내기 좋은 기억은 아닌지 말을 하는 해령의 표정이 어두웠다.

    “그때는 성체가 되지 못했을 때라 몸의 반이 비늘로 덮여 있어서 마을에서 난 두려움의 존재인 동시에 멸시를 받았다. 그리고 때마침 마을에 가뭄이 들었지.”

    ‘가뭄이 해령과 무슨 상관이지?’

    의문을 가지는 순간에 해령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마을의 인간들은 날 바다에 바치기로 했다. 바다의 용의 피가 흐르는 몸이니 날 제물로 바치면 비가 올 거라고 믿은 거지.”

    “그 말은 널 산 제물로 바쳤다는 거야?”

    거기다가 성체가 아니었다고 말한 걸 보면 해령도 어렸을 게 분명했다.

    내 물음에 해령이 담담한 얼굴로 답했다.

    “그렇다. 바다에 빠진 나를 구해주고 성좌로 만들어준 게 태초의 신이었지. 그 사람도 너와 똑같은 말을 했었다. 내 비늘이 아름답다고. 그 당시에는 그다지 와닿지 않는 말이었지만. 나에게 치유력을 가진 온천수를 다루는 힘을 주며 세상에서 사라지지 말아야 할 소중한 것들을 지키라고 말했었…….”

    무심결에 나와 마주 본 해령은 말을 끝맺지 못하고 당혹스러워했다.

    “어째서…… 우는 거지?”

    “너야말로 어째서 그런 일을 겪고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하는 거야?”

    어린아이가 산 채로 바다에 제물로 바쳐졌다.

    “분명히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을 텐데……. 차갑고 무서웠을 텐데……! 아팠다고 말하는 게 당연한 거잖아. 괴로웠다고 원망을 해야지. 이 바보 같은 용아!”

    그렇게 큰일을 겪고도 슬퍼할 줄도 모르는 해령이 가여워서.

    마을 사람 중에 그를 감싸줄 이가 하나 없었다는 게 원망스러워서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도…….”

    자기 일처럼 슬퍼하는 날 바라보던 해령이 아련하게 미소 지었다.

    “되는 것이냐?”

    우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듯이 눈이 젖어 들어가던 해령의 뺨을 타고 어렵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얼마든지.”

    나는 눈물로 얼룩이 진 얼굴로 웃으며 해령의 머리를 감싸 품에 안았다.

    언제나 든든해 보이던 그의 넓은 어깨가 힘없이 떨렸다.

    난 해령이 외롭지 않도록 계속 그의 곁을 지켰다.

    해령이 나에게 그래주었던 것처럼. 묵묵히.

    * * *

    “대왕님께서 오셨다는 것을 알릴까요?”

    강림차사가 수온의 방이 보이는 복도에서 걸음을 멈춘 염라의 눈치를 슬그머니 살폈다.

    어떤 상황에도 흔들림 없이 확고했던 염라의 눈빛이 해령을 안고 있는 수온을 보는 순간, 크게 흔들렸다.

    “바로 방으로 돌아간다.”

    “그렇지만 온천 사장님께 차를 대접하시겠다고 손수 찻잎을 따오셨잖아요. 이대로 두면 금세 시들고 말 텐데…….”

    “강림.”

    “며, 명을 따르겠습니다.”

    염라의 서늘한 음성에 겁을 먹은 강림이 찻잎이 담긴 상자를 든 채 고개를 숙이며 순순히 꼬리를 내렸다.

    방으로 향하는 염라에게 해령을 안아 다독이는 수온의 모습이 쉴 새 없이 반복됐다.

    어느새 힘이 들어간 그의 주먹에는 굵은 힘줄이 서 있었다.

    * * *

    해령이 온천의 성좌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말씀해주신 대로 온천을 만들었어요. 태초의 신님이 만든 온천이라는 소문이 퍼져나간 건지 벌써 손님들이 생겼고요.”

    해령은 확인차 온천에 들른 초성에게 그간의 이야기를 전했다.

    이제 막 성좌가 된 해령은 여전히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렇구나. 아주 잘 해냈어.”

    “그래서 감사의 선물로 준비한 게 있어요.”

    “그게 뭔데?”

    “뭐, 별 건 아니고. 온천 할아범이 인간계에서 크레파스라는 걸 구해줘서 태초의 신님을 그려봤어요.”

    해령은 원기둥 모양으로 돌돌 만 도화지를 초성에게 건넸다.

    “그렇구나. 어디 온천 지배자의 그림 실력 한번 볼까?”

    “아니요! 혼자서 봐주세요! 저, 저는 온천을 돌보는 일로 바빠서 이만!”

    초성이 도화지를 펼치려 하자 해령이 쏜살같이 온천 안으로 사라졌다.

    “안 본 사이에 더 귀여워졌네. 밝아진 것도 같고.”

    해령이 밝게 지내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초성이 그에게서 받은 종이를 펼쳐 들었다.

    하지만 그림을 본 순간 미소를 짓고 있던 초성의 얼굴이 빠르게 굳었다.

    “저 아이가 어떻게 이걸…….”

    해령이 그린 그림에는 검고 긴 웨이브 머리에 흑색의 눈동자를 한 초성, 그녀의 본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