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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 (168)화 (168/190)

168화

[코피를 흘립니다.]

응?

샤레니안의 각인이 발현된다고?

샤레니안은 애초에 나한테 각인을 새긴 적이 없는데?

하지만 분명 내 손바닥에는 그의 시스템창과 똑같은 검은색의 검 문양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샤레니안, 이게 어떻게…….”

어째서 내 손에서 네 각인이 빛나고 있는 거냐고 물으려고 했는데 방금까지만 해도 또렷하던 샤레니안의 초점이 물안개가 낀 연못처럼 흐릿해져 있었다.

문득 앞서 본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성좌 ‘불사의 살인귀’의 전생이 봉인 해제됩니다.]

내 추측이 맞다면 샤레니안은 자신의 전생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운수도 염라도 모두 자신의 전생을 기억하고 있어서 샤레니안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그러면 조금 전에 나한테 떠올려보라던 기억은 뭐지?

아무것도 기억나는 게 없는데 아는 척한 건가?

그렇다기에는 나를 후대 온천 사장으로 추천한 게 샤레니안이라는 점이 걸렸다.

‘에라, 모르겠다. 본인한테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르겠지.’

“샤레니안?”

내 부름에 반쯤 혼이 나간 것처럼 보이던 샤레니안의 눈동자가 점차 맑아졌다.

그의 시선이 나에게로 와닿는 순간, 투박하리만큼 커다란 손이 나의 뒷머리를 자신의 널따란 품으로 끌어당겼다.

‘비누 냄새.’

이제 막 온천을 하고 나온 것처럼 코끝을 맴도는 산뜻한 비누 향에 잠시 혼을 빼놓는 사이, 바위처럼 단단한 몸으로 나를 감싸 안은 샤레니안의 목소리가 내 귓가를 울렸다.

“너였구나.”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 고생 끝에 다시 여자 주인공을 만났을 때, 내뱉는 첫마디처럼. 반쯤 잠긴 그의 목소리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리움이 느껴졌다.

“내가 누구였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나도 같이 반가울 거 아냐?”

샤레니안의 전생을 알 리 없는 나는 그의 행동이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너는…….”

날 보는 샤레니안의 우주 같은 눈동자가 크게 일렁였다.

평소 같으면 나오는 대로 툭툭 가볍게 말을 내뱉었을 텐데 오늘따라 그는 어울리지 않게 신중하고 진지해 보였다.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하던 샤레니안이 이내 체념하듯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래서 염라도, 내 동생도 내게 전생을 알려주지 않은 거구나?”

한 손으로 마른세수하듯 자신의 심란한 얼굴을 감춘 샤레니안이 여전히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를 애틋하게 바라봤다.

날 대하는 그의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반듯해서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평소에는 스스럼없이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거나, 내 머리 위에 턱을 올려놓기도 해서 그가 나를 더없이 편하고 친근하게 대한다는 것이 느껴졌었다.

그래서 나는 샤레니안을 볼 때마다 온순한 대형견을 떠올리고는 했다.

‘전생을 기억하고 나서 더 거리감이 생긴 듯한 기분이 드는 건 내 착각인가?’

“거짓말쟁이. 나한테는 각인해본 적 없다고 했으면서.”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일부러 샤레니안을 타박했다.

“그때는 기억하지 못했으니까. 너를.”

“그래서 내가 뭔데 각인까지 하셨을까? 알고 보니까 내가 네 첫사랑이고 그런 거 아니야?”

농담처럼 말을 던지긴 했지만,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생각했다.

샤레니안이 날 보는 눈빛도 묘하게 뜨거워진 것 같고.

‘나에 대해 말하려고 할 때도 망설였잖아?’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만약에 진짜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은 샤레니안의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먼지처럼 사라졌다.

‘아니면 아닌 거지, 그렇게까지 정색할 일이냐?’

언짢은 기분이 들긴 했지만 샤레니안과 어색해질 일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샤레니안이 온천의 손님이자 내 성좌인 이상 끊을 수 없는 관계인데 아무래도 사랑이 얽히면 전처럼 편하게 대하기 어려울 것 같았으니까.

“당연히 농담이지. 그래도 궁금은 하다? 대체 내가 너한테 뭐였길래 전생을 떠올리자마자 뜨겁게 포옹을 한 거야?”

“내, 내가 언제 그렇게까지 뜨겁게 했다고……!”

그제야 샤레니안은 날 안았다는 사실을 떠올린 건지 매운맛 최고 단계의 마라탕을 먹은 것처럼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박력 넘치게 안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부끄러워하다니.’

허술한 면이 있는 걸 보니 내가 아는 샤레니안이 맞았다.

“얼굴 빨개졌대요!”

“이건 화가 나서 그런 거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다지 당황하는 일이 없던 샤레니안이 손부채질까지 하면서 진땀을 빼는 걸 보니 더 궁금해졌다.

내가 전생의 그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날 좋아한 게 아니라면 내게 각인한 이유는 뭐야? 성좌는 손해 보는 일 같은 건 안 한다면서.”

“주인은 내게, 아니 정확히는 우리 형제의 은인이었다. 내 동생을 죽음에서 건져내주었으니까.”

“동생이라면……. 박시우의 성좌를 말하는 거야?”

샤레니안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담담한 표정과 달리 날 향한 그의 눈빛은 가슴이 미어질 정도로 먹먹해 보였다.

‘그렇다면 샤레니안은 동생이 죽을 뻔한 위기의 순간을 떠올렸겠구나.’

그래서 그토록 슬픈 얼굴을 했던 거였고.

내가 동생의 목숨을 살린 은인이라고 한다면 샤레니안이 전생을 떠올리자마자 껴안을 정도로 반가워했던 것도 이해가 갔다.

‘내가 전생에 의원이기라도 했나?’

잘 생각해보니까 지금까지 얽힌 온천 식구만 해도 넷이었다.

‘나 꽤 다채로운 삶을 살았구나? 이 정도면 내가 온천 사장이 된 건 필연일지도.’

“봉화에 불을 피울 증표가 필요하다고 했었지?”

“응, 뭔가 떠오른 게 있어?”

“있잖아. 여기에.”

대답과 동시에 내 손을 쥔 샤레니안이 상체를 낮춰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그리운 듯이 날 향해 있던 샤레니안의 눈길이 이내 쓴 미소와 함께 아래로 떨어졌다.

“주인의 손에 있는 각인. 이것만큼 확실한 징표는 없을 거야.”

“아, 알겠다! 내가 동생을 구해줘서 감사의 의미로 내게 각인한 거구나?”

“뭐……. 그렇지.”

내게 은혜를 입은 전생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지 샤레니안의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그런데 성좌를 낫게 할 정도면 난 얼마나 대단한 의원이었던 거야? 애초에 성좌가 죽을 일이 있긴 해?”

“내가 주인에게 빚을 진 건 인간이었을 때야.”

“그렇구나, 후에 네가 성좌가 되어서 보답을 한 거구나.”

마지막 의문까지 풀렸는데 어쩐지 가슴이 후련하지 않고 찜찜했다.

‘뭔가를 놓치고 있는 기분인데…….’

샤레니안이 내 손바닥에 입을 맞춘 순간부터 어쩐지 속이 체한 것처럼 갑갑한 기분이 들었다.

“이 각인 부작용이 있는 건 아니지? 내가 불사의 몸이 된다거나 힘을 받아내지 못하면 죽는다거나 하는.”

“그런 건 없다. 그저 나와 성물을 공유하게 될 뿐이지. 해령이나 염라의 경우처럼.”

각인 부작용인가 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뭐, 몸에 해롭지 않으면 됐지.’

“이제 징표가 뭔지도 알았으니 난 가봐도 되는 거지?”

불사의 전쟁에 가는 날이 아니면 솥에 붙은 누룽지처럼 눌러앉아 있던 샤레니안이 웬일로 먼저 자리를 뜨려고 했다.

“불사의 전장에 가려고?”

“아니, 순식간에 많은 기억을 떠올려서 그런지 피로해져서 온천욕을 하려고.”

많이 피곤하긴 했는지 샤레니안의 눈동자에 핏발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슬슬 불사의 전장에 갈 때가 되었으니까 쉬게 두는 게 좋겠지.’

“그래! 필요한 거 있으면 오더 넣고!”

난 자본주의 미소를 지으며 온천으로 내려가는 샤레니안을 배웅했다.

‘영계야, 불사의 탕에 갈아입을 옷이랑 수건 좀 부탁해!’

[가이드 ‘영계’가 “알겠다”며 불사의 탕에서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합니다.]

샤레니안이 나간 뒤, 나는 검은색 검 문양이 있는 손바닥으로 눈길을 돌렸다.

‘샤레니안의 각인이 생겼다는 건 나도 불사의 검을 쓸 수 있다는 건가?’

샤레니안의 검은 보기만 해도 포스가 넘쳐서 한 번쯤은 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거울에 얼굴을 비춰봤을 때 오른쪽 눈 밑에 없던 점이 생긴 걸 보면 각인이 발현된 상태인 것 같았다.

‘불사의 검!’

설레는 마음으로 불사의 검을 불러들이는 순간이었다.

손에 불사의 검 손잡이를 쥐자마자 내 몸은 크게 휘청이며 아래로 꼬꾸라졌다.

쩌적!

동시에 나무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불사의 검이 바닥에 내리꽂혔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다음에 뜬 시스템창에 있었다.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코피를 흘립니다.]

* * *

온천탕에 들어온 샤레니안은 반쯤 넋을 놓고 있었다.

벌써 수십 년이 지난 전생의 기억.

하지만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했다.

“자, 여기.”

처음 바나나를 건네며 말을 걸어오던 수온.

‘아니, 이제는 태초의 신이라고 칭해야 하나?’

입가를 삐뚜름히 올린 샤레니안이 아직도 생생한 그때의 기억을 지우려 눈을 감았다.

“너희 샤레니안, 에르시온 맞지?”

하지만 한낱 어둠으로는 가릴 수 없었다.

기다란 은발을 흩날리며 환하게 미소 짓는 루비빛 적안의 그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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