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 (167)화 (167/190)
  • 167화

    [봉인 해제됩니다.]

    시스템창이 벌인 농간이 가져온 효과는 어마어마했다.

    ―수온아, 나 샛별인데 기억나? 너랑 같은 별빛 초등학교 나왔는데.

    “전화 잘못 거셨습니다.”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는지 말도 섞어본 적 없는 동창에게서 연락이 오고,

    ―온천 사장님, 제가 진짜 도박 빚만 청산하면 새 삶을 살 생각이거든요. 부디 5억만 제게 기부해주실 수 없…….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돈을 요구해왔다.

    <현 시각 박시또 본가 (사진o)>

    * * *

    [사진]

    온천 사장님 만나려고 오피스텔 복도까지 기자들이 기어 들어옴.

    * * *

    └익명 1 : 와, 온천 사장님은 인권도 없냐?

    └익명 2 : 기레기들 공동 현관 비밀번호는 어떻게 알아냈대? 경찰에 신고 못 하나?

    └익명 3 : 집필 길드원 피셜 오피스텔 안에 박시또 있는데 안에서 못 나오고 있다고 함.

    └익명 4 : 카더라 통신이긴 한데 이번에 박지호 길드 그만둔 거 온천 별관이랑 연관 있다는 추측이 있음.

    └익명 5 : 박지호가 EX급 온천 지점장 되는 거 아님?

    └익명 6 : 와, 이거 진짜면 금, 아니. 온천수저.

    └익명 7 : 온천수저 ㅋㅋㅋㅋ 맞는 말인데 웃기네 ㅋㅋ

    익명 헌터 게시판에 올라온 기자들로 가득 차 있는 오피스텔 복도 사진을 본 순간에는 확실하게 체감이 됐다.

    ‘이제 정말 조용히 살기는 글렀구나.’

    <온천 별관 알바>

    * * *

    자리 남는 거 없나요? 저 돈가스 잘 튀기는데.

    * * *

    └익명 1 : 온천 별관 알바 하면 온천 사장님 만날 수 있나요?

    └익명 2 : 저는 무급으로 일할게요. 뽑아만 주세요. 사장님 ㅠㅠ

    └익명 3 : 오, 생각해보니까 온천 별관 알바 개꿀임. 덕택이도 볼 수 있고 온천 사장님도 볼 수 있고 온천표 돈가스 레시피도 알 수 있는데 거기다 박지호도 볼 수 있다.

    └익명4 : 이 정도면 온천국.

    └익명5 : 나도 가고 싶다 ㅠㅠ

    ‘별관이 열리기도 전인데 벌써부터 알바 지원자들이 넘쳐나는군.’

    아무래도 알바가 부족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온천 방에 누워 한가롭게 게시글을 읽어나가던 나는 ‘당분간은 밖에 나갈 생각 말고 지호랑 같이 온천에 붙어 있어’라는 박시우의 메시지를 보고 문득 그가 홀로 오피스텔에 갇혀 있다는 댓글을 떠올렸다.

    ―너는 어쩌려고? 오피스텔 안에 있다며.

    ―나? 이미 나왔는데.

    ―어떻게?

    복도뿐만 아니라 건물 앞까지 기자들이 깔려 있다고 들었는데.

    정말 박시우가 오피스텔 밖으로 나왔다면 그들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포털로.

    ‘포털?’

    박시우의 메시지를 보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은 현정우였다.

    ‘둘이 같이 있는 건가?’

    나는 전보다 빠르게 메시지를 작성해나갔다.

    ―현정우가 계약한 성좌는 위험한 존재야. 시스템이 골머리를 앓을 정도로 통제를 벗어나 있고 날 죽이려고도 했어.

    정확히는 죽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살아난 과정까지 설명하자면 복잡하니 생략하기로 했다.

    ―난 현정우도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박시우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내게 현정우는 나를 죽이려고 했던 성좌의 계약자이자 부모님을 던전 브레이크에 가둔 장본인이었다.

    ‘또 같은 일을 겪고 싶지 않아.’

    내 걱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나 박시우야. 안 져.

    ‘하여간 입만 살아서는.’

    나는 박시우를 말리는 걸 일찍이 포기했다.

    말린다고 들을 인물도 아니었지만 그가 확신 없는 일에 나서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조금 더 믿어보기로 했다.

    ‘뭐, 지금으로서는 현정우를 포섭하는 게 버그의 횡포를 막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하고.’

    막말로 현정우를 죽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헌터가 된 게 아니니까.

    만약 그랬다면 현정우보다 김패금을 먼저 죽였을 것이다.

    김패금을 생각하니 속에서 열불이 나는 걸 느낀 나는 바닥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그러다 온천 바닥 내려앉겠다. 주인.”

    열린 문틈 사이로 내가 주먹으로 내리친 바닥을 향해 안쓰러운 눈길을 보내고 있는 샤레니안이 보였다.

    “같이 내려앉고 싶지 않으면 그 눈빛은 거두는 게 좋을 텐데.”

    “염라의 각인을 받더니 어째 더 무서워졌군. 그거 성격도 옮는 건가?”

    샤레니안이 다 가려지지도 않는 커다란 덩치를 문 뒤로 숨긴 채 나를 바라봤다.

    “그건 성좌인 네가 더 잘 알겠지.”

    “자세한 건 나도 몰라.”

    “왜 몰라?”

    “직접 각인해본 적은 없으니까.”

    그러고 보니 전에 샤레니안이 각인에 대해 말한 기억이 있었다.

    보통 성좌들은 본인에게 득 될 게 없으니 각인을 하지 않는다고 했지.

    ‘그런데 난 그 각인을 세 개나 얻은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나뿐만이 아니라 온천의 성좌들도 나를 각별하게 여긴다는 게 실감되어 기분이 묘해졌다.

    ‘처음에는 혼자인 게 당연했는데.’

    어느새 혼자 있는 때는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온천 식구들과 함께하는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알았던 사이처럼.’

    “정말 떠오르는 게 없어?”

    “뭘 말하는 거지?”

    빙긋이 눈을 접어 웃으며 나를 보는 샤레니안은 분명 내가 무엇을 묻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영계 말로는 네가 날 추천해서 내가 온천 사장이 된 거라고 했어.”

    “그건 네가 직접 떠올려줬으면 하는데. 네가 날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충분히 서럽거든.”

    듣고 보니 샤레니안의 입장도 이해가 갔다.

    ‘샤레니안이 날 온천 사장으로 추천했을 정도면 가벼운 사이는 아니었을 텐데 나만 전혀 기억을 못하고 있으니…….’

    게다가 짚이는 곳조차 없으니 왠지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좋아. 내가 기억해내볼게.”

    내 대답에 샤레니안은 조금 놀란 듯한 얼굴이었다.

    아마도 내가 기억해내보겠다고 말할 줄은 예상하지 못한 거겠지.

    ‘어차피 온천 밖으로는 나가지도 못하고. 봉화도 이제 두 개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시간은 충분해.’

    “대신 힌트를 줘. 내가 널 만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예를 들어 너를 처음 만난 곳으로 데려간다든가?”

    [성좌 ‘저승의 염라’가 손쉽게 인연의 증표를 내어놓은 것을 후회합니다.]

    ‘염라, 어차피 넌 바빠서 나랑 다닐 시간도 없잖아.’

    [성좌 ‘저승의 염라’가 흰 봉투를 꺼내더니 붓을 들어 그 위에 ‘사직서’라고 써 내려갑니다.]

    ‘내가 나중에 놀러 갈게. 그러니까 사직서는 넣어둬.’

    염라대왕이 저승에서 퇴사를 하겠다니.

    앞서 지옥귀들이 날뛰는 것을 겪은 바 있는 나로서는 지구에 메테오가 떨어지는 것보다 무서운 일이었다.

    [성좌 ‘저승의 염라’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사직서를 서랍 속에 넣습니다.]

    ‘왜 내가 염라의 계략에 말려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지?’

    근래에 들어 염라는 부쩍 이상한 행동을 많이 했다.

    쑥 라테를 만들어오라는 오더를 넣어놓고는, 막상 들고 갔더니 직접 차를 우려주지를 않나,

    “오늘은 박술임이라는 망자를 재판했는데…….”

    자신이 판결을 내린 망자의 재판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앞으로 내릴 판결에 대한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자문을 구하려면 나보다 강림차사를 부르는 편이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내게 차를 우려주거나 그날의 이야기를 하는 염라는 어딘가 모르게 즐거워 보여서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염라에게는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필요했던 걸지도 모르지.’

    온천의 식구들이 내게 함께하는 따뜻함을 알려준 만큼 나도 그들에게 다정한 존재가 되어주고 싶었다.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봉화가 총 다섯 개라고 들었는데 한 명은 누구냐”고 묻습니다.]

    ‘온천의 성좌 넷에, 베카까지 다섯이야.’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온천의 성좌에 나도 포함이 된 거냐”며 얼떨떨해합니다.]

    ‘응, 너도 있었는데?’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난 전혀 기억나는 게 없는데?”라며 자신의 봉화가 있었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워합니다.]

    어라? 비늘에 유독 민감하게 굴길래 해령은 뭔가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반응을 보니 정작 그도 나와 어느 연관된 과거가 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괜찮아. 일단 네 봉화가 가장 먼저 켜졌거든.’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다시 한 번 놀라며 “증표가 뭐였냐”고 묻습니다.]

    ‘목 뒤에 비늘.’

    역시나 비늘이라는 말이 나오자 해령은 달아나듯 자취를 감춰버렸다.

    ‘대체 비늘이 뭐길래 저렇게까지 싫어하는 거지?’

    “집중.”

    잠시 해령에게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샤레니안이 내 앞에 몸을 낮추고 앉아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툭 건드렸다.

    그의 밤하늘 같은 눈동자가 내게 닿는 순간,

    [성좌 ‘불사의 살인귀’의 XX이 1000 상승합니다.]

    그의 눈동자 색처럼 검은 시스템창이 시야를 가렸다.

    [성좌 ‘불사의 살인귀’의 전생이 봉인 해제됩니다.]

    연이어 떠오른 창이 칠흑같이 검은색을 띠었을 때, 내 오른쪽 손바닥에서 빛이 새어 나오더니 검은색 검 문양이 나타났다.

    [성좌 ‘불사의 살인귀’의 각인이 발현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