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많관부!
신전으로 향하는 나의 인벤토리에는 염라가 준 태초의 신의 단검과 약 항아리 어르신이 만들어주신 주먹밥이 들어 있었다.
“어르신, 혹시 제가 46층에 갔을 때 만들어주신 주먹밥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신전에 가기 전에 나는 어르신이 있는 약방에 먼저 들러 부탁을 했다.
“주먹밥을 만들어 달라고?”
갑작스러운 주문에 항아리 상태의 어르신은 고개를 갸웃거리듯 뚜껑을 비스듬히 틀며 고민하다가 이내 기쁘다는 듯이 뚜껑을 들썩이며 큰소리로 웃었다.
“아하, 알겠다! 우리 손녀, 이 할아비의 손맛이 그리워진 것이로구나!”
‘사실은 베카와 연관된 인연의 증표가 주먹밥이라고 생각해서 만들어달라고 부탁드린 거지만…….’
“맞아요! 어르신이 해주신 주먹밥 진짜 맛있었거든요.”
펑 소리와 함께 연기 속에서 인간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 어르신의 얼굴이 무척 기뻐 보여서 자세한 사정을 설명하는 건 생략하기로 했다.
‘드문드문 어르신의 주먹밥이 생각나서 그립기도 했고.’
“귀여운 손녀가 내가 만든 주먹밥이 먹고 싶다는데 당연히 해줘야지!”
내 말에 어르신은 흔쾌히 소매를 걷어붙이고 부엌으로 들어가셨다.
“자, 손녀를 위한 약 항아리의 정성 가득한 주먹밥 도시락이다!”
어르신은 약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빠르게 주먹밥을 만들어 내셨다.
덕분에 순식간에 도시락이 주먹밥으로 가득 찼다.
“같은 모양이면 심심할 것 같아서 몇 개는 덕택이 모양으로 만들어봤다.”
어르신은 오리 모양 주먹밥을 가리키며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어르신은 정말 다정하시다니까.’
오리 모양 주먹밥에서 날 아끼는 어르신의 마음이 느껴져서 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도시락이 너무 귀여워요! 감사해요, 어르신!”
“네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구나.”
감동한 내가 기뻐하며 덥석 안기자 어르신이 자상하게 내 등을 다독여주면서 인자한 미소를 지으셨다.
“또 주먹밥이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하거라! 우리 손녀가 먹고 싶다고 하면 한밤중이든 새벽이든 내가 만들어주마!”
나는 다정한 어르신의 말을 떠올리며 작게 미소 지었다.
‘어르신이 있어서 다행이야.’
[히든 필드 ‘온천 별관의 입구 : 인연의 신전’으로 이동합니다.]
“오, 온천 사장! 돌아왔나? 뀨!”
신전으로 들어서자 봉화 앞을 서성이고 있던 양머리 수건 눈토끼가 말랑한 몸으로 통통 튀며 나를 반겼다.
‘저 토끼 꼭 눈이 아니라 떡 같아서 만져보고 싶…….’
아니지, 지금 눈토끼한테 한눈팔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응, 봉화를 올리려고 왔어.”
내가 가져온 증표가 봉화가 원하는 답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킁킁, 너한테서 맛있는 냄새가 난다. 뀨!”
봉화가 있는 곳으로 다가서는데 근처에 있던 양머리 수건 눈토끼가 내게 다가와 배낭에 대고 냄새를 맡았다.
아마도 어르신이 만들어주신 주먹밥 냄새를 맡은 것 같았다.
‘뭐, 넉넉히 챙겨주셨으니까 조금 나눠줄까?’
나는 배낭에서 주먹밥 도시락을 꺼내 눈토끼의 앞에 하나 내려두었다.
“눈토끼 입맛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맛있다! 뀨!”
걱정과 달리 눈토끼는 주먹밥을 맛있게 먹었다.
어찌나 잘 먹는지 순식간에 주먹밥 하나가 사라졌다.
“이건 뭔가 그리운 맛이다! 뀨! 그래, 난 전에도 이 주먹밥을 먹어본 적이 있다! 뀨!”
‘눈토끼가 약 항아리 어르신이 만들어준 주먹밥 맛을 알고 있다고?’
“언제 먹어봤는데?”
“음, 그게 언제냐면……. 뀨우…….”
눈을 반쯤 내리감은 채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눈토끼가 이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답했다.
“너무 오래되어서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뀨!”
‘그럼 그렇지, 애초에 어르신이 만든 주먹밥을 눈토끼가 먹어봤을 리가 없잖아.’
기억력이 썩 좋지 않아 보이는 걸 보니 눈토끼가 뭔가 착각한 것 같았다.
“맛있으면 하나 더 먹어.”
“좋다, 뀨!”
나는 새로운 주먹밥을 보며 즐거워하는 눈토끼를 뒤로하고 베카의 봉화가 있는 곳으로 다가섰다.
‘베카를 처음 만난 건 탑 46층.’
베카가 보스라는 걸 몰랐던 나는 그에게 물과 주먹밥을 줬다.
그리고 같이 주먹밥을 먹으면서 그와 친해졌다.
‘그러니까 베카와 내 인연의 증표는 주먹밥일 확률이 높아!’
물론 꼭 주먹밥이 아닐 수도 있으니 혹시 몰라서 물병도 챙겨왔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난 주먹밥 도시락을 든 채로 봉화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런데 어째 봉화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도시락이 문제인가 싶어 아예 주먹밥을 꺼내 들고 봉화에 손을 가져다 대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봉화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이게 아니라고?’
허망해하고 있는데 눈토끼가 내 손에 들린 주먹밥을 보며 눈을 빛냈다.
“그것도 나 주려고? 뀨?”
“그래, 너라도 맛있게 먹어줘.”
“맛있게 잘 먹겠다! 뀨!”
나는 눈토끼에게 주먹밥을 내려주며 나도 입에 한 입 베어 물었다.
‘주먹밥이 아니면 베카하고 내 인연의 증표는 뭐지?’
나는 문득 탑에서 베카가 흑화했을 때 그를 묶었던 때수건을 떠올렸다.
‘설마……. 샤레니안의 애착 때수건은 아니겠지?’
그러고 보니 지옥귀와 싸울 때 베카가 손에 샤레니안의 때수건을 감싸고 있었던 게 떠올랐다.
‘하지만 그건 47층에서 석쌍과 싸우다가 태워 먹어 버렸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주먹밥이 아니면 베카와 이어진 물건은 때수건이 유일했다.
‘만약 때수건이라면 증표를 가져올 수가 없잖아?’
“눈토끼야, 증표가 사라져서 가져올 수 없으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해?”
“증표가 사라지면 봉화도 사라진다. 뀨! 봉화가 있다는 건 가져올 수 있는 증표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뀨!”
‘그럼 꼭 그때 쓴 때수건이 아니라도 되는 건가?’
나는 샤레니안의 때수건과 똑같은 모양의 때수건을 인벤토리에서 꺼내 들고 봉화에 손을 가져다 댔다.
하지만 이번에도 봉화에 불이 붙기는커녕 찬바람만 쌩쌩 불었다.
“때수건도 아니면 대체 뭐지?”
아무리 생각해도 더 떠오르는 게 없었다.
‘일단 확실한 것부터 처리해두자.’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낀 나는 베카의 봉화를 포기하고 염라의 봉화가 있는 곳으로 다가섰다.
‘이번 것도 틀리는 건 아니겠지?’
전생을 기억하는 건 염라뿐이라 일단은 믿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인벤토리에서 태초의 신의 단검을 꺼내자 오물거리며 주먹밥을 먹던 눈토끼가 내게로 눈을 돌렸다.
“오……. 그것은 태초의 신의 단검이로군! 뀨!”
“이 단검을 알아?”
“당연하지! 태초의 신이 온천의 지배자에게 힘을 나눠줬기에 이 온천도 있을 수 있었던 거니까. 뀨!”
‘그러고 보니 해령도 태초의 신의 선택을 받아서 성좌가 되었다고 했었지? 온천이 태초의 신의 힘으로 만들어진 거라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온천 사장의 스킬들도 어떻게 보면 태초의 신의 힘이겠네?
힘을 나눠준 것뿐인데 온천의 성좌들을 탄생시키다니 새삼스럽게 태초의 신이 위대하게 느껴졌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것도 태초의 신의 힘이 깃들었기 때문이다. 뀨! 그렇지 않았다면 난 평범한 눈토끼로 금방 사라져 버렸을 거다. 뀨! 그런데…….”
자신의 이야기하던 눈토끼가 콩으로 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올려다 봤다.
“네게서 그리운 느낌이 든다. 뀨! 마치 언젠가 만난 것 같은……. 뀨!”
“난 양머리 수건을 쓴 눈토끼를 보는 건 처음인데? 심지어 살아 움직이고 말까지 하는 건 더더욱.”
“그대를 만난 게 언제냐면……. 뀨!”
내심 뒷말이 궁금했던 나는 눈토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역시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뀨!”
‘눈토끼 말을 믿은 내가 잘못이지.’
두 번이나 같은 수에 당하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눈토끼에 대한 신용을 잃은 나는 그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듣기로 마음먹으며 염라의 봉화에 손을 가져다 댔다.
[성좌 ‘저승의 염라’와의 인연이 봉화에 담깁니다.]
[성좌 ‘저승의 염라’의 봉화가 불타오릅니다.]
“됐다!”
염라의 짐작이 틀리지 않은 건지 봉화에 보라색 불꽃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전체 헌터 대화창에 진한 글씨로 된 문구가 연이어 떠올랐다.
[‘온천 사장’이 ‘온천 별관 : 인연의 신전’에서 세 번째 봉화의 불꽃을 밝히는 데 성공합니다.]
[앞으로 불꽃을 밝힐 봉화의 개수 : 2개]
[‘온천 사장’이 모든 봉화의 불꽃을 밝히면 ‘온천 별관(EX)’이 개방됩니다.]
[※‘온천 별관(EX)’은 일반인이나 헌터들도 출입이 가능합니다.]
마지막 문장을 보는 순간 나는 문득 잊고 있던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시스템을 건드리면 후폭풍이 따른다는 것과 나는 이번 부모님 일로 성좌들과 함께 시스템을 협박한 적이 있다는 것을.
[시스템 : 그럼 많관부! ٩( ᐛ )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