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 (165)화 (165/190)

165화

첫 번째 XX

“이건 수호 사자의…….”

초성이 다급하게 자신의 품에서 단도를 꺼내 들었다.

새하얀 단도가 신호를 보내듯 붉은빛을 내고 있었다.

“분명해. 이건 수호 사자의 기운이야. 살아 있었구나.”

초성이 안도하듯 자신의 품에 단도를 소중히 안았다.

수호 사자가 살아있다는 걸 알게 된 그녀는 염라가 처음으로 차를 우려내주거나 꽃다발을 선물했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기뻐 보였다.

그때 초성의 말에 응답하듯 붉은빛이 더욱 강하게 빛났다.

“사자가 날 찾고 있어.”

뭔가를 느낀 듯한 초성이 다급하게 몸을 일으켜 세우며 염라를 돌아봤다.

“염라, 붉은 실을 풀어줘. 지금 당장 사자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해.”

초성이 손을 내밀었지만 염라는 그 손을 바라만 볼 뿐 움직이지 않았다.

“염라!”

재촉하듯 초성이 소리를 높였다.

고개를 숙인 채 굳어버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던 염라의 커다란 손이 초성의 가느다란 손목을 붙잡았다.

“가지……. 않으시면 안 되는 겁니까?”

“염라…….”

“아직 시스템을 상대할 정도의 몸 상태가 아니지 않습니까? 잘못하다가는 당신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고.

초성을 향해 말하는 염라의 목소리가 슬픔에 젖어 있었다.

“난 괜찮아. 염라.”

그녀가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염라는 이렇게나 두려운데 정작 본인은 흔들림 없이 의연했다.

“혹여 내가 그를 찾아갔다가 이 오랜 생의 끝을 맞게 된다고 하더라도. 내가 눈의 감는 곳이 그의 곁이라면. 난 행복할 거야.”

수호 사자에 대한 초성의 깊은 사랑이 느껴질수록 염라의 가슴은 검게 타들어 갔다.

“꼭 그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염라가 고개를 들어 처연한 눈빛으로 초성을 바라봤다.

“제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는 겁니까?”

저승의 염라대왕이 된 후로는 한 번도 무너진 적 없던 그의 얼굴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에 젖어 들어 갔다.

눈물을 흘리는 염라를 가슴 아픈 얼굴로 바라보던 초성이 그에게로 손을 뻗으려다 이내 다시 거둬들였다.

그녀는 염라를 위로하는 대신 어렵게 입을 열었다.

“태초의 신은 생명을 가진 모두를 귀하게 여기고 사랑해야 해. 세상이 위험에 빠지면 구해내야만 하고 세상에서 사라지지 말아야 할 것들을 보호하고 지켜내야 했지. 하지만 정작 날 사랑하고 지켜주는 존재는 없었어.”

초성은 자신이 살아온 삶을 머릿속에 되새기며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삶은 고독뿐이었을 것이다.

“단 한 명, 내 수호 사자를 제외하고.”

그녀의 수호 사자가 없었다면.

“그가 내 곁에 있어주어서 난 그 길고 외로운 시간을 이겨내고 살아갈 수 있었어.”

수호 사자에 관해 말하는 초성의 애틋한 눈빛을 읽어내는 순간, 염라는 깨달았다.

무엇을 하더라도 자신은 그녀의 수호 사자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더군다나 염라는 초성의 외로움을 달래주기는커녕 구원받은 존재였다.

아무리 애를 써도 사랑하는 이의 아픔을 위로할 수 없는 미약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건 염라에게도 가슴이 짓이겨질 정도로 슬픈 일이었다.

“제게는……. 당신이 세상이었습니다.”

‘제가 사는 세상, 그 전부가 당신이었습니다.’

목이 메여서 차마 염라는 다음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이 왜 쉴 틈 없이 무리해서 일해가면서까지 저승을 지키려 했는지.

왜 단 한 순간도 초성을 잊지 못한 건지.

초성을 처음 만난 그날부터, 그녀는 염라의 삶의 이유이자 세상, 그 자체가 되어버렸으니까.

“하지 못하겠습니다.”

염라는 눈물에 젖은 얼굴로 초성을 바라보며 쓰게 웃었다.

“제 손으로 당신을 죽음으로 이끌 수는 없습니다.”

태초의 신의 입지가 굳건했을 때도 시스템은 그녀를 궁지로 몰아세웠을 만큼 강력했다.

이제 겨우 내상을 회복한 초성이 시스템을 상대로 살아남을 확률은 거의 희박했으니 사실상 죽으러 가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도 가셔야겠다면 다른 방법을 쓰십시오.”

“……염라!”

화를 내는 초성을 보면서 염라는 확신했다.

그녀가 붉은 실을 끊어내는 또 다른 방법을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태초의 신이 지닌 단검만이 저를 죽일 수 있고 제가 죽으면 붉은 실도 자연히 끊어진다는 것을요.”

초성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그녀가 자신을 믿어준 것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한 책임감 하나만으로 염라는 이제껏 저승을 지키며 살아왔다.

만약 초성이 없다면 염라에게 저승에서의 삶 또한 무의미해졌다.

염라는 태초의 신의 단검을 뽑아 초성의 손에 쥐게 했다.

그리고 천천히 그것을 들어 자신의 심장을 겨누게 했다.

“자, 이제 찌르십시오. 제 심장을.”

“정신 차려, 염라!”

초성이 자신의 손에 들린 단검을 염라의 손이 닿지 못하는 곳으로 던졌다.

“당신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린다면 제 삶도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니 제발…….”

눈물을 흘리며 부탁하는 염라를 보는 초성의 눈가도 어느새 촉촉이 젖어 있었다.

“난 널 죽일 수 없어.”

“어째서입니까?”

“넌 내가 구원한 아이니까.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운 존재니까.”

초성이 손을 들어 염라의 눈물을 닦아주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것은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염라가 처음 받아보는 사랑이었다.

같은 사랑이라도 염라와 초성이 품은 사랑의 의미는 완전히 달랐지만.

“왜 당신은 끝까지…….”

‘가슴 시리게 아름답고 눈물이 날 정도로 다정해서…….’

이기적인 마음조차 가질 수 없게 하는 건지.

다짐한 듯 눈물을 닦아낸 염라가 초성의 새끼손가락을 감은 붉은 실을 끊어냈다.

“가십시오.”

외면하듯 등을 보이며 돌아서는 염라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듯 초성은 그를 두 팔로 감싸 안았다.

“염라, 고마워. 넌 무슨 일이 있어도 네 자신과 세상을 바로잡는 정의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고 살아 남아줘. 내가 마음으로 품고 사랑한 내 아이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초성은 처음 염라의 앞에 나타났던 그날처럼 새하얀 빛과 함께 사라졌다.

‘어떻게 해도 난 당신을 미워할 수가 없어.’

원망해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초성이 남기고 간 온기와 마지막까지 보여준 다정함에 염라는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 * *

초성의 이름을 써 내려간 짧은 순간, 염라의 눈앞으로 초성과 함께한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 서류를 혼자서 다 보라는 거야? 말도 안 돼!”

염라의 집무실에 놓인 자신의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를 보며 경악하는 초성.

서류를 몇 장보다 말고 책상에 엎드려서 잠든 초성을 보며 웃는 자신.

“이번에는 내가 차를 끓여봤는데 어때?”

맛없는 차를 끓여와서 기대하는 눈빛으로 감상을 기다리는 초성, 그 외에도 그녀와 함께 한 모든 순간이 수온과 함께한 기억들과 겹치며 떠올랐다.

붓으로 초성의 이름을 새기자 희미했던 그때의 기억과 감정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이제야 알겠다. 내가 이제껏 그 누구에게도 마음이 동하지 않은 이유를.’

염라의 기다란 속눈썹 아래로 짙은 그리움이 일었다.

‘수많은 시간을 돌고 돌아서도 결국에 난 기다렸던 거다.’

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린 염라가 구슬픈 미소를 지었다.

‘그대가 다시 내게로 오는 순간을.’

염라는 자신이 준 단검을 받고 손님방을 나서기 전에 수온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게 해서 미안해.”

‘결코…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이 아니었다.’

“태초의 신께서 행방불명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저 이룰 수 없는 바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긴 세월을 가슴에 홀로 품으며 살아왔을 뿐.’

“이제는 상관없는 일이기도 하고. 우리한테는 지금이 더 중요하니까. 그렇지?”

수온이 한 말을 되짚어보던 염라가 잠시 감고 있었던 눈을 떴다.

“지금이 더 중요하다라…….”

‘그렇다면 이번에는 내게도 기회가 있는 건가?’

염라의 눈길이 수온이 머물러 있던 자리로 향했다.

굳게 닫혀 있던 염라의 입술 사이로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대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염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위로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성좌 '저승의 염라'의 XX이 1000 상승합니다.]

염라의 시스템창이 선명한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그와 동시에 'XX'가 쓰인 부분이 지지직거리기 시작했다.

[성좌 '저승의 염라'의 집착이 1000 상승합니다.]

'XX'가 '집착'으로 변하자마자 마치 룰렛을 돌리듯이 같은 자리가 일그러지며 글자가 깨지더니 형태가 쉴 새 없이 변했다.

그리고 마침내 시스템 창의 'XX' 부분이 한 단어에서 멈춰 섰다.

[성좌 '저승의 염라'의 사랑이 1000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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