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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 (164)화 (164/190)

164화

제 손가락을 무십시오

“어째서 안 된다는 거야? 네 새끼손가락에 묶인 붉은 실만 끊어내면 되는 일이잖아. 간단한 거 아니야?”

초성이 염라에게 따지듯 물었다.

“……물러가라.”

염라가 같은 공간에 있는 이들을 모두 밖으로 나가게 했다.

그와 초성, 둘만이 남은 방안에 무거운 적막이 흘렀다.

“시스템이 당신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계속해서 뒤를 쫓고 있다고 합니다. 이곳은 그들의 통제가 닿지 않는 곳이지만 저승을 벗어나는 순간 위치가 발각되고 말 겁니다.”

“그렇구나, 그들이 아직도…….”

분하다는 듯 초성이 입술을 깨물었다.

제 입술을 깨문 것도 아닌데 염라는 그걸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아려오는 것만 같았다.

아픈 마음에 조용히 초성의 앞으로 자신의 손을 가져갔다.

“갑자기 손은 왜 내밀어?”

“입술을 깨무시려거든 차라리 제 손가락을 무십시오.”

뒤늦게 잇자국이 난 자신의 입술을 매만지던 초성이 허탈하게 미소 지었다.

“너도 참 엉뚱하구나. 됐다, 내가 성질 나쁜 개도 아니고 남의 손을 무는 취미 같은 건 없으니까.”

아주 잠깐이지만 염라는 초성을 웃게 한 것이 기뻤다.

“몸이 회복될 때까지는 이곳에서 지내십시오. 지금은 당신을 수호하는 사자의 위치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취약해진 상태이지 않습니까?”

“제법이구나. 이제는 내 상태까지 꿰뚫어 보다니. 많이 성장했어.”

초성은 염라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의 예상이 맞는다면 초성이 지금 가지고 있는 힘은, 처음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할 만큼 약해져 있었다.

염라가 지옥에서 구해내지 않았다면 그대로 재가 되어 사라질 뻔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염라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초성은 염라에게 무너지지 않는 하늘과 같은 절대적인 존재로 여겨졌기에 그녀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생각은 해본 적조차 없었다.

‘만약 당신이 이 세상에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그 상상만으로 염라는 살아가는 이유 그 자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초성이 염라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그날부터, 그녀는 그의 세상이 되어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사자의 위치를 알 수 있을 때까지만이라도 저승을 벗어나시는 건 그만두십시오. 저의 신부로 이곳에서 지내시는 것이 내키지 않으시더라도 기다리다 보면 분명 때가 올 겁니다.”

“네 말도 맞다. 지금의 난, 내 사자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어. 이 상태로 나가면 결과야 불 보듯이 뻔하지…….”

초성은 힘없이 침대에 걸터앉아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내 체면을 지켜주려 한 거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초성이 염라를 향해 물었다.

어느새 그녀는 염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안에 있던 자들을 모두 물러가게 한 것 말이야. 그들은 네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내가 이렇게까지 약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없을 테니까.”

“…….”

염라는 대답 대신 묵묵히 서서 침묵을 지켰다.

“사려가 깊구나. 역시 내가 보는 눈은 있다니까.”

초성은 자랑스럽다는 듯이 따뜻한 시선으로 염라를 보며 옅은 미소를 띠었다.

그 순간, 염라는 가슴이 뛰는 걸 느꼈다.

누구와 눈을 맞춰도 먼저 시선을 피한 일이 없는 그가 그녀의 눈만큼은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 * *

“그건 사랑입니다.”

“사랑?”

이후로도 같은 일이 반복되자 고심하던 염라가 강림차사에게 지인의 경우인 척 묻자 그가 일말의 고민도 없이 확신하며 답했다.

“예, 남녀 사이에 느끼는 애틋한 마음 말입니다. 연정이라고도 하지요. 인간이든 신이든 사랑 앞에서는 목숨까지 내놓을 정도로 무서운 열병 같은 감정이지요.”

‘내가 태초의 신을 연모…… 한다고? 그럴 리가, 그분은 나의 구원자이신데.’

처음에는 부정했지만 오래 못 가서 염라는 자신의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얼마 뒤 초성과 합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염라가 업무가 바쁘다는 이유로 혼례는 어찌어찌 생략했지만 합방까지는 피할 도리가 없었다.

“어쩐지 목욕하는데 고급 향료를 아낌없이 들이붓더라니. 이것 때문이었구나?”

침실에는 일찍이 합방 준비를 마친 초성이 있었다.

곱게 치장을 한 초성은 범접할 수 없이 아름다워서 염라는 또 시선을 다른 곳으로 두게 됐다.

“제가 아래에서 자도록 하겠습니다.”

“맨바닥인데 괜찮겠어? 매일 침대에서 잠들어왔을 텐데.”

걱정스러워하는 초성과 달리 염라는 아무렇지 않게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업무가 많으면 앉아서 눈을 붙이기도 해서 상관없습니다.”

“안쓰러워라. 그래서 눈 아래가 거뭇한 거구나.”

초성이 염라의 눈 밑에 자리한 다크서클을 보며 짧게 탄식했다.

그 말에 뿔이 난 염라가 그녀를 돌아봤다.

“제게 이곳 일을 맡기신 건 당신이지 않습니까?”

“그랬지, 참.”

신기한 일이었다.

초성의 웃는 얼굴을 보면 염라에게는 어떤 미운 감정도 남지 않게 됐다.

“내상을 치료하는 데 효험이 있는 좋은 차를 가져왔습니다. 잠들기 전에 드시죠.”

“차도 우릴 줄 알아?”

“뭐……. 조금은.”

염라는 그럴듯한 자세로 차를 우려냈다.

“드셔보십시오.”

염라가 초성에게 차를 건넸다.

“오, 맛있다.”

차를 한 모금 머금은 초성의 얼굴이 환해졌다.

혼자서 우려낸 첫 차는 꽤 성공적이었다.

‘강림차사한테 속성으로 배운 보람이 있군.’

초성의 몸을 치유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익힌 것이었다.

차를 마신 후, 초성이 하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있던 염라가 그녀에게로 눈을 돌렸다.

지쳤던 건지 초성은 어느새 침대에 엎드린 채 잠들어 있었다.

염라는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 했다.

순간 초성의 손이 그의 옷깃을 붙잡았다.

“가지 마…….”

염라가 그녀의 손길에 이끌려 제자리에 앉는 순간이었다.

“……카.”

초성의 입에서 염라가 아닌 다른 이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그 이름을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가 구슬펐다.

초성이 바라는 자가 자신이 아닌 걸 알면서도 염라는 밤새워 그녀의 곁을 지켰다.

한 번 감정을 깨닫고 나니 염라의 마음은 날이 갈수록 깊어져만 갔다.

계절이 변하는 것도 모르고 업무만 보던 그도 봄의 따스함을 느끼게 됐고 꽃의 아름다움을 알게 됐다.

“오다가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기에…….”

염라는 그 따스한 봄을 초성에게 선물하고 싶어져서 손수 만든 꽃다발을 들고 그녀를 찾아갔다.

“예쁜 꽃이네.”

꽃다발을 바라보는 초성은 분명 웃고 있었지만 옆얼굴에 자리한 어두운 그늘은 날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었다.

“염라, 나 사실 연모하는 자가 있어.”

꽃을 바라보던 초성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염라는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내 수호 사자. 난 무슨 일이 있어도 그를 찾아낼 거야.”

“지금은 몸을 회복하시는 게 먼저입니다.”

가슴이 저릿해져 왔지만, 염라는 애써 초성의 말에 상처받은 마음을 감추었다.

“그렇지? 그래서 너한테 늘 고마워하고 있어. 네가 아니었다면 사자를 찾기도 전에 이 세상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르니까.”

“고마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먼저 절 구원한 건 당신이니까.”

그리고 초성을 자신의 신부로 두고 보살피는 건 어디까지나 염라가 바라서 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느 순간부터 두려워졌다.

초성이 저승을 떠나는 날이 다가오는 것이.

* * *

염라의 걱정과 달리 초성은 잠자코 저승에서 유유자적한 나날을 보냈다.

꾸준히 치료해준 덕분인지 그녀의 몸 상태도 처음보다 많이 나아져 있었다.

어느덧 날이 어둑해지면 염라와 초성이 한 지붕 아래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소소한 일상이 되어 있었다.

염라는 장시간 이어진 업무에 지치다가도 침소로 와 초성을 볼 때면 피로가 녹아내리는 걸 느꼈다.

더 가까워질 수 없다고 해도 좋았다.

초성의 존재 자체가 염라에게는 환한 빛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연모하는 자가 수호 사자라는 걸 밝힌 뒤에는 초성도 친구처럼 염라와 격의 없이 지냈다.

“오늘은 내 수호 사자의 꿈을 꿨어. 그가 끝없는 시공간을 헤매고 다니면서 나를 찾는 꿈을.”

그날은 초성이 간밤에 꾼 꿈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녀가 자신의 수호 사자 이야기를 할 때마다 염라는 가슴이 미어지는 한편, 견딜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당신은 언제라도 수호 사자가 나타나면 떠나버릴 것 같으니까.’

그럴수록 염라는 초성을 더 곁에 붙들어두고 싶어졌다.

“꿈일 뿐입니다.”

“그렇겠지. 그는 현명하니까 분명히 어디선가 몸을 회복하기 위해서 쉬고 있을 거야.”

“어서 주무시죠. 몸이 상하십니다.”

염라는 여느 때처럼 초성의 이부자리를 봐주려 했다.

그때였다.

초성의 품에서 붉은빛이 흘러나온 것은.

“염라…….”

빛을 보며 떨리는 초성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을 때 염라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때가 왔다는 것을.

자신이 그토록 오지 않길 바라던 그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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