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 (162)화 (162/190)

162화

날 선택해줄 건가?

[‘온천 별관’의 좌표가 열립니다.]

“열렸다! 온천 별관 지도!”

지도를 보니 온천 별관은 이곳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자세히 보니까 주변이 다 던전이잖아?’

문득 해령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온천 별관은 너무 오랫동안 방치되는 바람에 던전화가 되었다는.

‘던전 등급을 미리 알 수는 없나?’

혹시나 해서 지도를 눌러봤지만 주변에 A급과 S급 던전이 분포되어 있다는 것밖에는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거기다가 탑 주변이라니. 위치는 좋네.’

지도 속 별관 위치는 박시우와 지호가 길드 던전 레이드 계획을 짤 때 주로 활동하던 지역이었다.

‘헌터들이 급할 때 찾아오기 쉽겠어.’

온천 별관만 열 수 있다면 설령 박시우가 또 다쳐서 오더라도 전처럼 손 놓고 보고 있지 않아도 됐다.

‘엄마랑 아빠는 어쩔 수 없이 보냈지만, 남은 가족들은 내가 지키겠어.’

“나, 온천 별관에 다녀올게!”

나는 내게 들려 있던 온천 수건을 해령에게 안겨줬다.

“지금 당장 가겠다고?”

“응!”

당황하는 해령을 뒤로하고 나는 곧장 온천 입구로 내려와 문손잡이를 잡았다.

‘영계야,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잠시만 온천을 맡아줘.’

온천 별관의 위치를 떠올린 나는 지체할 것 없이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 * *

‘분명 여기가 맞는데?’

지도를 들여다보던 나는 의문을 감추지 못했다.

온천의 문을 통해 나온 장소는 좌표가 찍힌 온천 별관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아무것도 없는 거지?’

내가 도착한 곳은 뻥 뚫린 허허벌판 위였다.

‘지도에 오류 난 거 아냐?’

인근에 목적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발을 떼는 순간이었다.

[‘온천 마스터키(EX)’가 필드에 반응합니다.]

[‘온천 마스터키(EX)’로 히든 필드를 개방하시겠습니까? 수락 / 거절]

히든 필드가 있다고?

온천 마스터키가 반응하는 걸 보니까 아무래도 온천 별관이 맞는 것 같았다.

‘그냥 마스터키로 열기만 하면 온천 별관이 개방되는 거였어?’

난 던전화 되었다길래 EX급 몬스터라도 잡으라고 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시시하다고 느껴졌다.

온천 사장이 되고 난 후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탓인 것 같았다.

‘뭐, 수월하면 좋은 거지.’

“수락.”

[히든 필드 ‘온천 별관의 입구 : 인연의 신전’이 온천 사장을 인식합니다.]

[히든 필드 ‘온천 별관의 입구 : 인연의 신전’이 개방됩니다.]

‘아, 바로 온천 별관이 열리는 게 아니었어?’

어쩐지 일이 쉽게 풀린다 했다.

[히든 필드 ‘온천 별관의 입구 : 인연의 신전’으로 이동합니다.]

“악!”

그때였다.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대지가 반으로 갈라지며 거대한 신전의 기둥들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어찌나 땅이 울리는지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좀 얌전하게 데려다줄 수는 없는 거냐?’

[히든 필드 ‘온천 별관의 입구 : 인연의 신전’이 온천 사장의 인연을 읽어냅니다.]

시스템창이 뜨는 것과 동시에 누군가 내 머릿속을 헤집고 생각을 읽어내는 듯한 기분에 온몸에 털이 쭈뼛 서고 닭살이 오소소 돋아났다.

그사이 하늘을 뚫을 듯이 치솟아 오른 신전은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와……. 크다.’

신전의 앞에는 다섯 개의 봉화가 있었는데 모두 불이 꺼져 있었다.

기둥에 피어 있는 불꽃만이 신전을 밝혀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들어가는 입구는 어디에 있는 거지?’

주변을 샅샅이 살펴도 신전과 봉화 외에는 눈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그때 봉화 앞으로 떡처럼 말랑하게 생긴 새하얀 눈덩이 하나가 툭 떨어졌다.

[온천 별관 가이드 ‘양머리 수건 눈토끼’가 나타납니다.]

꿈틀거리던 눈덩이에 검은콩으로 된 눈이 달리더니 양머리 수건까지 씌워졌다.

“오랜만이다. 뀨!”

‘뭐야? 저 귀여운 생명체는?’

나는 양머리 수건 눈토끼의 귀여운 울음소리에 입을 틀어막으며 감격했다.

눈토끼인데 양머리 수건을 쓰다니, 혼종 같긴 했지만 온천의 가이드다운 포인트였다.

‘아,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눈토끼가 가이드라면 온천 별관 입구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눈토끼야, 온천 별관으로 들어가는 길을 안내해줘.”

“그건 불가능하다. 뀨!”

“어째서? 길을 안내해주라고 가이드가 있는 거 아니야?”

“아직 온천 별관으로 가는 문이 열리지 않았다, 뀨! 안내를 원한다면 봉화 퀘스트를 수행해라! 뀨!”

‘또 퀘스트가 있어?’

이럴 거면 차라리 시시한 편이 나았다.

“봉화 퀘스트가 뭔데?”

“이 신전의 봉화는 온천의 손님과 얽힌 너의 전생과 과거의 인연을 뜻한다. 뀨! 봉화를 켜고 보면 그곳에서 피어난 불꽃이 네가 나아갈 길을 밝혀줄 거다! 뀨!”

‘온천 별관으로 가는 길을 알려준다는 말을 참 거창하게 하네.’

“그럼 퀘스트를 시작하겠다. 뀨!”

[히든 퀘스트 ‘인연의 신전 : 온천의 봉화(EX)’를 진행합니다.]

[온천의 봉화 불꽃 피우기]

[성좌 ‘온천의 지배자’의 봉화 : 0/1]

[성좌 ‘불사의 살인귀’의 봉화 : 0/1]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의 봉화 : 0/1]

[성좌 ‘저승의 염라’의 봉화 : 0/1]

[‘탑의 주인’의 봉화 : 0/1]

“온천의 손님과 얽힌 인연의 증표를 가지고 봉화에 손을 대면 불꽃이 피어날 거다. 뀨!”

“증표가 뭔데?”

“그건 네가 알아서 알아내야지. 뀨!”

‘그냥 온천 별관 열지 말까?’

“참고로 퀘스트를 받아놓고 진전이 없으면 근무 태만 경고에 걸릴 수 있다. 뀨!”

내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눈토끼가 충고했다.

‘그놈의 근무 태만!’

근무 태만 면제권이 있다고 해도 무한정도 아니고 임시방편일 뿐이니까…….

이렇게 된 이상, 좋든 싫든 봉화의 불꽃을 켜야 했다.

‘그나저나 봉화가 다섯 개라는 건 내가 온천 손님들과 과거에도 얽힌 적이 있다는 건가?’

운수는 꼬마 여우 시절에 만난 적이 있었지.

하지만 그 외에는 아는 게 없었다.

나는 가장 먼저 오른쪽에서 두 번째에 있는 운수의 봉화로 향했다.

‘운수야, 네가 키우는 황금 꽃잎을 보내줄 수 있을까?’

운수는 어릴 때의 나를 꽃잎으로 구원한 적이 있었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황금 꽃잎을 한 움큼 보내줍니다.]

운수가 보내준 황금 꽃잎이 손안 가득 잡혔다.

그대로 운수의 봉화를 건드리자 황금색 불꽃이 화르륵 피어났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와의 인연이 봉화에 담깁니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의 봉화가 불타오릅니다.]

‘하나는 해결했고. 여기는 해령의 봉화인가?’

운수의 봉화 오른편을 살피던 나는 무심결에 해령의 봉화를 건드렸다.

“윽!”

그러자 또다시 목 뒤가 화상을 입은 것처럼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화끈거리는 통증에 목을 부여잡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번에도 목 뒷부분에서 비늘과 같은 촉감이 느껴졌다.

[성좌 ‘온천의 지배자’와의 인연이 봉화에 담깁니다.]

[성좌 ‘온천의 지배자’의 봉화가 불타오릅니다.]

‘뭐야? 이게 인연의 증표라고?’

목뒤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해령과 연관이 있다는 건 대충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온천 사장으로 각성한 뒤에 생긴 건 줄 알았다.

‘내가 온천 사장이 되기 전에도 해령을 만난 적이 있다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전혀 짚이는 데가 없었다.

‘그건……. 남은 봉화들도 마찬가지지.’

해령의 봉화는 이미 켜졌고 비늘 이야기를 꺼내는 걸 싫어하는 것 같았으니까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물어보도록 하자.

지금은 남은 세 개의 봉화를 켜는 게 먼저였다.

‘이 중에서 제일 전생이나 과거에 대해서 잘 알 것 같은 건 역시…….’

내 머릿속에 한 남자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길게 늘어진 흑발이 잘 어울리는, 명부가 트레이드 마크인 염라가.

* * *

“염라!”

나는 온천으로 복귀하자마자 염라가 머무는 손님방으로 달려 들어갔다.

“오늘은 주문한 적 없는데, 토마토.”

서류를 보는 걸 멈추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 나를 바라보던 염라가 또 그 단어를 꺼내며 작게 미소 지었다.

급하게 뛰어온 탓에 얼굴이 붉어진 모양이었다.

“지금 토마토 타령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난 문을 닫고 빠르게 염라의 탁상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일단 숨부터 쉬고 말하지.”

염라가 씩씩거리고 있는 내 손에 물잔을 들려주며 진정시키려는 듯 나와 눈을 맞췄다.

“어디 안 갈 테니까.”

나를 달래는 그의 목소리가 차분했다.

벌컥벌컥 물을 들이켠 난 숨을 고르자마자 봉화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래서 묻는 건데, 염라 너랑 내가 전생이나 과거에 만난 적이 있을까?”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 내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염라의 눈빛이 일순간 떨렸다.

“이걸 가져가라.”

염라는 내 앞으로 단검 한 자루를 내밀었다. 단검의 새하얀 검집 위로 황금색 꽃과 보라색 나비, 검은색 검과 푸른색 용, 붉은색 장미가 그려져 있었다.

“이게 뭔데?”

“……태초의 신이 쓰던 검이다.”

검을 받아 들며 묻자 곧장 답해주는 염라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거면 봉화의 불꽃을 피울 수 있을 거다.”

단검을 든 나를 바라보는 염라의 눈빛이 아련하게 느껴졌다.

‘대체 나하고 염라가 어떤 관계였길래 검이 나오는 거지?’

태초의 신은 온천의 성좌들을 선택한 존재라고 하지 않았었나?

“염라, 전생에 우리는 어떤 사이였는데?”

호기심에 묻긴 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후회했다.

‘만약에 내가 원수였다던가 염라를 암살하려던 자객이었다면 어쩌지?’

가슴을 졸이고 있는 그때,

“그대가 내 신부였다면…….”

탁상에 팔을 댄 채 턱을 괸 염라가 자신의 눈동자에 나를 가득 담았다.

“날 선택해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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