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내 첫사랑이다
“이제 괜찮다.”
오늘은 내 인생에서 제일 많이, 그리고 크게 운 날이다. 그래서 더 나올 눈물 같은 건 없을 줄 알았는데.
“마음 편히 울어도.”
해령의 말이 주문이라도 된 것처럼 눈물방울이 마룻바닥으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그때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오랫동안 묵혀둔 그리움과 슬픔을 모두 풀어내기에 부모님과 함께한 시간은 너무 짧았다고.
“사실은 더 오래 같이 있고 싶었어. 부모님께 더 멋진 걸 보여주고 더 좋은 것을 해드리고 싶었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그냥 내 옆에 영원히 있어 주기를 바랐다고……. 그런데…….”
‘그럴 수가 없대. 부모님은 살아 돌아올 수가 없대…….’
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서럽게 울었다.
해령은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안다는 듯 슬픈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만큼이나 가슴 아파해주는 눈빛이 느껴져서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해령은 주저앉은 채 숨 쉴 틈도 없이 목놓아 우는 나를 묵묵히 품에 안아 다독이며 위로했다.
속에 맺힌 응어리를 원 없이 토해낸 내가 울다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그는 계속해서 내 옆을 지켰다.
* * *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자신의 오피스텔로 돌아온 정우는 자신의 성좌 ‘버그!@#$010023’과 대면하고 있었다.
“내가 문자를 보낸 사람이 정말 박대한이 맞냐고 물었을 때 분명히 넌 그렇다고 답했어. 왜 그런 거짓말을 한 거야?”
“내가 무슨 거짓말을 했다는 거야? 수신자 아이피가 박대한이니까 그런 줄 안 거지.”
버그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하품을 하며 귀를 후비적거렸다.
“그때는 확실히 알 수 있다고 했었잖아……!”
성좌를 향해 악을 내지르는 정우의 손이 분노에 파르르 떨렸다.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다.
김패금의 실체를 폭로하기 위해 헌터 협회에 찾아갔을 때 모두가 어리고 힘이 없는 정우를 외면했지만, 그들만큼은 달랐다.
“정우라고 했지? 난 박대한 헌터라고 하는데 네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볼 수 있을까?”
대한은 망연자실해서 헌터 협회 앞에 주저앉아 있는 정우에게 다가와 따뜻한 목소리로 손을 내밀어줬다.
“여보, 바깥은 추우니까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일단은 따뜻한 차라도 마시면서 애 몸부터 녹이게.”
영예는 정우를 커다란 담요로 감싸며 따뜻한 공간으로 데려가 울면서 그간의 일을 이야기하는 그를 달래줬다.
“네 이야기는 잘 알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증거가 없다는 거야. 김패금 헌터는 인지도가 높고 이 업계에서 권력과 영향력이 큰 사람이라 정확한 증거 없이는 조사를 시작하는 것도 어려워.”
“혐의를 입증하려면 우리가 직접 조사하는 수밖에 없지. 이 아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날 던전 레이드를 같이 간 헌터들 목록을 조사하면 뭔가 나올 거야.”
대한과 영예는 정우의 말을 믿어주는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진실을 밝혀 볼게. 정우 아버지의 죽음에 억울함이 없도록. 약속할게. 정우야.”
정우는 그들을 굳게 믿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자신에게 목숨을 바치면 복수할 힘을 주겠다는 성좌의 유혹을 애써 외면하면서.
아버지조차 없는 차가운 단칸방에서 며칠이고 그들의 연락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정우에게 돌아온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미안하다. 헌터 협회에서는 더는 해줄 게 없는 것 같구나. 네 아버지는 약해서 죽은 거니까.
‘그럴 리가 없어. 분명히 그날은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주겠다고 했었잖아.’
정우는 몇 번이고 대한과 통화를 시도했지만 돌아오는 건 지금은 전화를 받지 못한다는 안내 음성뿐이었다.
직접 찾아가 만나보려고 해도 급한 일 때문에 자리에 없다는 대답만 들었을 뿐이었다.
“내 목숨을 주면……. 모두에게 복수할 힘을 준다고 했지?”
“그렇다.”
기다림에 지친 정우에게 남은 희망은 목숨을 걸고 성좌와 계약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대한과 영예, 두 사람이 보여준 호의와 믿음을 거짓이었다고 믿기 어려웠다.
“그전에 하나만 묻자. 넌 이 문자 박대한 헌터가 보낸 게 맞는지 알 수 있어?”
“알 수 있다.”
그래서 확인하고 싶었다.
정말 문자를 보낸 게 그들이 맞는지.
그들이 정우에게 보여준 것이 김패금처럼 위선이었던 것인지.
“이 문자 박대한 헌터, 본인이 보낸 게 맞아?”
아니길 바랐다.
대한과 영예의 다정함은 암흑으로 가득한 세상에 유일한 한줄기의 빛처럼 느껴졌으니까.
“맞다.”
그래서 성좌의 대답은 정우에게 마치 사형선고와 같이 들렸다.
그때 그는 생각했다.
내 세상은 그들에 의해 완전히 무너졌고 그들이 나와 아버지를 죽인 거라고.
“줄게. 목숨. 그러니까 내게 힘을 줘.”
삶의 희망을 잃은 정우에게는 분노와 혐오밖에 남지 않았다.
“그 쓰레기들을 이 세상에서 치워버릴 힘을.”
그렇게 목숨을 담보로 한 성좌와의 계약과 정우의 복수가 시작됐다.
첫 타깃은 당연히 김패금이었다.
어쩌다 보니 대한과 영예가 던전 브레이크에 휩쓸리게 되었지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들도 똑같은 위선자들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고?”
정우가 자신의 목을 감싸며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죄책감들이 한꺼번에 정우의 숨통을 조여왔다.
그때, 정우에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박시우였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 무리하게 포털 열어줄 필요 없으니까. 알겠냐?”
“날도 추운데 왜 보일러도 안 켜놓고 있냐? 밥은 먹었고?”
자신을 다정하게 대해 주는 시우는 대한과 영예를 꼭 닮아 있었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괴로움에 울부짖던 정우가 카드를 불러내 자신의 목을 겨누었다.
그러자 성좌의 검은 손이 카드를 잡은 그의 손을 묶어 죽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거 놔!”
“순순히 죽게 둘 줄 알고? 잊었나? 네가 죽으면 나까지 소멸한다는 걸.”
정우가 이를 악물고 안간힘을 써봐도 성좌의 힘을 거역하는 건 무리였다.
성좌의 검은 손에 의해 정우의 손에 들려 있던 카드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사라졌다.
“넌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행여 그게 지옥 속이더라도. 오로지 나를 위해서.”
성좌가 절망에 빠져 눈물을 흘리고 있는 정우를 향해 몹시 즐거운 듯 소름 돋는 웃음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죽어!”
성좌가 사라진 뒤에도 몇 번을 시도해봤지만 정우는 죽지 못했다.
“제발…… 죽게 해줘!”
처음 아버지를 김패금의 손에 잃었던 그날처럼 정우는 차디찬 방에 웅크리고 앉아서 몸을 떨었다.
그때 정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인을 확인한 그가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밥은 먹었냐?”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고 이내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정우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형.”
듣기만 해도 대한과 영예를 떠올리게 하는 다정하고 따뜻한 목소리.
그건 박시우였다.
* * *
“염라대왕님, X패…… 아니, 김패금 같은 놈들은 정말 죽으면 벌을 받습니까?”
염라를 선두로 저승길을 걷는 중에 대한이 그에게 물음을 던졌다.
아이들 앞이라 괜찮은 척하긴 했지만 김패금이 저지른 악행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원통했다.
“벌을 받는다.”
“어떤 벌을 받습니까?”
“김패금의 경우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에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 죽어서도 지옥을 풀코스로 돌게 될 거다. 살이 파이고 사지가 떨어져 나가는 고통을 느껴도 죽을 수 없지.”
“좀 잔인하긴 해도 김패금에는 마땅한 벌이네요. 아주 혼쭐을 내주십시오.”
생각보다 잔혹한 형벌에 두려워하던 영예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라. 망자들의 원통함이 풀릴 때까지 김패금은 지옥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게 저승의 법이니까.”
“봐주는 것 없이 확실해서 좋네요.”
대한과 영예는 저승의 형벌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론 죄인이 합당한 대가를 치른다는 사실에 만족스러워했다.
“염라대왕님, 저도 은밀히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대한과 영예의 물음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강림차사가 염라의 옆에 바짝 붙어서서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어갔다.
“좋다. 오늘은 특별히 답해주도록 하지.”
앞으로 시말서와 사건 경위서를 쓸 강림차사의 노고를 생각한 염라가 흔쾌히 물음을 허락했다.
“온천 사장에게만 이토록 특별하게 구시는 이유가 뭡니까?”
강림차사의 의문 가득한 목소리에 염라는 말없이 앞으로 나아가기만 했다.
“염라대왕님께서 답해주기로 약조하신 겁니다. 온천 사장은 청렴하신 염라대왕님께서 규율을 어기실 정도로의 가치가 있는 분입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기필코 답을 얻어내고 말겠다는 듯 강림차사가 끈질기게 물음을 이어갔다.
침묵을 유지한 채 앞으로 나아가던 염라가 일순간 걸음을 멈췄다.
놀란 강림차사가 진땀을 빼던 그때였다.
“……내 첫사랑이다.”
어느새 염라의 검붉은 눈동자는 짙은 그리움에 젖어 들어 있었다.
굳게 닫혀 열리지 않을 것 같던 그의 마른 장밋빛 입술이 옅은 미소를 그렸다.
“내 첫 신부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