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폭주합니다.]
‘그 말은 진짜 김패금 헌터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거야?’
빠르게 갱신되고 있는 스트리밍 채팅창의 반응도 내 생각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실시간 스트리밍 중…… (현재 접속자: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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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집필 : 저 핑크색 수트 입은 사람 누군데 김패금한테 살인자라는 거임? 처음 보는데?
└박지호사랑해 : 나도 처음 보는데 ;;; 박시또 공격 다 피하는 거 실화냐?
└한창희폐급 : 박시또 총알을 피할 정도면 최소 S급이라는 이야기인데 ㅎㄷㄷ
└집필대나무숲 : 박시우 박수온 박지호 부모님 TMI ― 약 20년 전에 활동하셨던 S급 헌터 부부,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세계인 TOP5에 헌터 최초로 선정. 헌터 협회 소속으로 구조 활동으로 수천 명의 시민을 구해낸 영웅. 당시 갑작스러운 던전 브레이크 발생에 시민들을 구조하다 휩쓸려서 실종. 추후 헌터 협회에서 공식으로 사망 판정. 명예의 헌터 훈장 수여.
└온천수건도둑 : 진짜 그분들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울컥함. 아무리 그래도 고인들까지 욕보이는 건 좀 아닌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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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희 : 김패금 헌터 미담 제조기인 거 모르는 사람도 있음?
└한창희폐급 : 한창희 쪽에서 싸고도는 거 보니까 김패금 헌터 영입해서 열망 길드 이미지 세탁하려고 한다는 거 사실인가 보네.
└패완온천가운 : 그래서 온천 사장님 부모님을 욕보인 저 어그로꾼 정체가 뭐임?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믿기 힘들다면 직접 확인해보라”고 합니다.]
‘그걸 내가 어떻게 확인해?’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태초의 바람을 인간에게 사용하면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다 들여다볼 수 있다”고 귀띔해줍니다.]
‘태초의 바람에 그런 기능이 있었어?’
그렇다고는 해도 한시가 급한 상황에 김패금의 인생을 전부 다 보고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김패금의 기억을 들여다보면 핑크색 수트 남자가 왜 부모님을 원망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패금의 기억 중에 보고 싶은 부분만 골라 볼 수는 없어?’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이제 그 부채는 너와 완벽하게 동기화됐다. 네가 원한다면 그대로 움직여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고민할 것 없지!’
“좋아, 그럼 여기서 네 말이 맞는지 확인해보자.”
나는 핑크색 수트 남자를 똑바로 보며 부채를 다시 펼쳐 들었다.
내 말에 그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네가 어떻…….”
“김패금 헌터님, 잠시만 실례 좀 할게요.”
나는 김패금 헌터에게 양해를 구함과 동시에 그를 향해 부채를 휘둘렀다.
“태초의 바람!”
[성좌의 부채가 ‘태초의 바람’을 일으킵니다.]
“부채, 김패금이 살인을 저지른 때의 기억을 보여줘!”
[스킬 ‘태초의 바람’ 효과로 ‘김패금(S)’의 기억이 흘러나옵니다.]
태초의 바람을 맞은 김패금은 곧바로 잠들었다.
동시에 그의 머리에서 기다란 필름이 흘러나와 허공에 펼쳐졌다.
필름은 영상을 몇 배속으로 돌린 것처럼 빠르게 돌아가다가 한 곳에서 멈추더니 이내 보통 속도로 재생됐다.
“캬아아악!”
“으아아악!”
김패금 기억의 첫 장면은 상상 이상으로 참혹했다.
영상 속에서는 헌터로 보이는 한 남자가 날카로운 이를 가진 상급 드래곤에게 뼈째로 씹어 먹히고 있었다.
[실시간 스트리밍 중…… (현재 접속자: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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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온천수 : 으악! 저게 뭐야?
└파란하늘온천 : 저게 김패금 헌터의 기억인 거임?
└박시또맘 : 으……. 그런 것 같은데? 어떡해 못 보겠음 ㅠㅠ
└한창희 : 딱 보니까 던전인 것 같은데 뒤에 김패금 헌터가 구조해주는 거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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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아집필해 : 아닌 거 같은데? 저게 김패금의 기억이고 구조할 생각이었으면 화면이 흔들려야 하는 거 아님? 지금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잖아.
└사장님부채 : 헐……. 소름. 진짜 그러네?
“역시 사람을 미끼로 써야 상급 몬스터가 나온다니까. 오늘도 보상이 쏠쏠하겠어.”
채팅방에서 온갖 추측들이 쏟아져 나오는 와중에 영상에서 김패금 헌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드래곤에게 잡아 먹히는 헌터를 보면서 음산하게 웃기까지 했다.
“살려……. 우리 정ㅇ……한테 가야…….”
미끼로 쓰인 헌터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으려 애쓰다 피를 토하며 정신을 잃었다.
“아버지!!!”
영상 속의 헌터를 지켜보던 핑크색 수트 남자는 악에 받쳐 소리치다 이내 오열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가…….’
눈으로 보고도 쉽게 믿기지 않는 잔혹함에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영상은 다음으로, 또 다음으로 넘어갔다.
언뜻 봐도 같은 일을 당한 헌터가 수십은 될 것 같았다.
[실시간 스트리밍 중…… (현재 접속자: ???????명)]
* * *
└온천의역사 : 김패금 완전 사이코패스였네? 저래놓고 팬 사인회 연 거임?
└사장님집필해 : 와 씨, 이때까지 사람을 미끼로 써서 레이드한 거임?
└낯가리는온천회원 : 저게 사람XX냐?
└아트길원구함 : 연쇄살인범 실제로 처음 봐. 그것도 그게 기부 천사 김패금……. 개소름. 경찰에 신고하려고 녹화 땀.
└집필대나무숲 : 저게 어떻게 사람이냐? 사람 탈을 쓴 짐승보다도 못한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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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패금을 비판하는 채팅들이 쉴 새 없이 올라왔다.
‘저 남자의 말대로 김패금은 살인자였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김패금과 달리, 부모님은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못하는 선한 사람들이었다.
‘분명 저 남자가 뭔가 오해하고 있는 걸 거야.’
“부채, 김패금의 기억 중에 부모님과 저 남자와 관련된 게 있다면 보여줘!”
내 말에 또다시 필름이 빠르게 흘러가다 멈췄다.
자신의 스킬로 CCTV를 꺼버린 김패금은 누군가의 휴대폰에 온 문자를 확인하고 있었다.
휴대폰에는 낯익은 돈가스 스티커가 붙여져 있었다.
‘저건 내가 돈가스를 좋아해서 아빠 폰에 붙여준 스티커인데?’
김패금이 가지고 보고 있는 건 아빠의 휴대폰이었다.
―안녕하세요. 낮에 주신 연락처로 연락드려요. 이번에 돌아가신 D급 헌터 현정민 아들입니다. 제가 김패금 헌터가 아버지를 던전에서 미끼로 썼다고 말하는 걸 들었어요.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
아빠의 휴대폰에 온 문자를 확인한 김패금은 답장을 보내기 시작했다.
―미안하다. 헌터 협회에서는 더는 해줄 게 없는 것 같구나. 네 아버지는 약해서 죽은 거니까.
김패금은 문자에 답장을 보내곤 씨익 웃으며 휴대폰을 자신의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설마……. 저 남자는 김패금이 보낸 문자를 아빠가 보냈다고 오해한 거야?’
영상을 보는 핑크색 수트 남자의 낯빛이 충격에 굳어 있었다.
그도 문자를 보낸 게 김패금이라는 사실을 처음 안 것 같았다.
“김패금! 내 손 잡아!”
영상은 빠르게 다음으로 넘어갔다.
그 장면 속에는 건물 옥상에서 기둥에 몸을 의지한 채 아빠를 붙잡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김패금은 던전 브레이크에 휘말릴 듯 위태로운 상황이었는데 아빠가 손을 붙잡아 그걸 막아내고 있었다.
‘저 장소는 부모님이 실종되었던…….’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날,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 장소만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부모님이 돌아오기만을 수천수만 번은 빌었으니까.
‘그렇다는 건 저게 부모님이 실종되기 직전 상황이라는 건데……. 그 자리에 김패금이 있었단 말이야?’
나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헌터 협회에서는 부모님이 시민을 구하려다 던전 브레이크에 휩쓸려 실종되었다고 말했을 뿐, 개인의 신상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그 시민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조금 더 세게 당겨줘! 이러다 전부 던전 브레이크에 휩쓸리겠어!”
김패금의 구조 요청에 부모님이 동시에 힘껏 그의 팔을 당기는 순간이었다.
김패금은 기다렸다는 듯이 채찍 스킬을 써서 건물의 또 다른 기둥을 감으며 뛰어올랐고 그 반동으로 부모님의 몸이 던전 브레이크 쪽으로 쏠리면서 위치가 역전됐다.
이제 그가 부모님을 당겨주기만 하면 모두가 살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김패금은 위기에 처한 부모님을 지켜보기만 하다가 그들을 향해 야비하게 웃었다.
“잘됐다. 안 그래도 고작 D급 헌터 하나 죽은 것으로 물고 늘어져서 성가셨는데…….”
“김패금……?”
“잘 가라. 지옥으로.”
김패금은 미련 없이 아빠를 잡은 손에서 힘을 뺐다.
“김패금!”
부모님이 시커먼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김패금이 본 마지막 기억이었다.
내가 보고자 하는 모든 장면을 보여준 것인지 펼쳐져 있던 필름이 다시금 김패금에게로 되돌아가며 그가 눈을 떴다.
막 일어나 의아해하는 그를 기다릴 새조차 없이 입 밖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부모님을 던전 브레이크에 휩쓸리게 만든 게……. 당신이었어?”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직도 가식적인 얼굴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구는 김패금을 보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느낌이 들었다.
“당신 때문에 우리 가족이 얼마나 고통받았는데…….”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응하듯 푸른색 마나가 온몸을 휘감고 돌며 스파크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위기를 느낀 건지 핑크색 수트를 입은 남자가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용의 힘이 폭주하기 시작합니다.!!]
[!!실시간 스트리밍이 강제 종료됩니다.!!]
“하루하루를 얼마나 지옥같이 살았는데……!”
소용돌이가 일며 기다란 은발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박수온! 그만 둬!”
반쯤 정신이 나가서인지 박시우가 뭐라고 소리치는 목소리도 희미하게만 들려왔다.
하늘 높이 치켜든 부채는 어느새 김패금을 겨누고 있었다.
겨우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지려는 그때였다.
“덕택아! 달려!”
“꽉!”
“수온아! 당장 멈추지 못해?”
다급한 오리의 울음소리와 함께 청아하고 당찬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목소리는…….’
“너 말 안 들으면 앞으로 돈가스는 없는 줄 알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꿈에서라도 다시 듣고 싶었던 목소리였으니까.
고개를 돌린 곳에는 덕택이를 탄 엄마와 아빠가 날 바라보고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