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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 (153)화 (153/190)
  • 153화

    [소멸합니다.]

    내 머리 위에서 얼굴을 빼꼼 내미는 건 다름 아닌 영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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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덕택이귀여워 : 뭐야? 저 귀여운 병아리는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지?

    └온천사장덕후 : 말하는 병아리에 배달하는 덕택이까지 이 정도면 온천 사장님 동물농장 찍으셔도 될 듯.

    :

    :

    └덕택이분양받습니다 : 온천 사장님 제발 덕택이랑 병아리 굿즈 내주세요. 제가 살게요. 제발요.

    영계의 귀여움에 시청자들의 열렬한 호응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우리 영계가 또 한 귀여움 하지.’

    내적으로 공감하며 흐뭇해하고 있는데 날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는 영계와 눈이 딱 마주쳤다.

    “다시 돌아가고 싶게 만드는 그 변태 같은 눈빛은 뭐냐?”

    “크흠, 내……. 내 눈빛이 뭐 어땠다고! 그보다 영계, 네가 여기에는 어쩐 일로…… 아니, 그보다 어떻게 온 거야?”

    정곡을 찔린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하지만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계약자가 있는 곳을 찾는 것쯤은 어렵지 않지. 어쨌든 난 너의 가이드니까.”

    ‘맞아, 영계는 어쨌든 내 가이드였지.’

    매일 온천 수건을 정리하고 있는 것만 봐서 그런지 영계의 신분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래도 여긴 SSS급 던전 브레이크인데 들어와도 괜찮겠어? 네 생각보다 훨씬 위험할 수도 있어.”

    베카도 상태가 좋지 않은데 영계까지 이 일에 휩쓸려 다치는 건 원하지 않았다.

    “내 걱정은 마라. 이래 보여도 나는 온천의 지배자 해령님의 수호신, 조무래기들에게 쉽게 당하지 않는다. 해령님이 나를 이곳에 보낸 것도 그만큼 나를 신임하고 계시기 때문이지.”

    내 염려와 달리 영계는 이 정도 던전 브레이크쯤은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듯 자신의 앙증맞은 가슴팍을 손으로 통통 치며 자신감에 찬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난 조용히 영계가 한 말을 되짚어 봤다.

    “해령이 여기에 널 보냈다는 건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다. 해령님께서 널 도우라고 날 이곳에 보내셨다.”

    “날 도우라고?”

    ‘이 조그마한 병아리가 험난한 던전 브레이크에서 뭘 할 수 있지?’

    진지하게 고민해봐도 해령이 내게 영계를 보낸 이유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보여서 기분이 나쁘니까.”

    나름대로 티를 내지 않는다고 노력한 건데 영계는 내 생각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씩씩거렸다.

    “그래서 뭘 도우려고 왔는데?”

    “내가 힘의 근원이 있는 곳으로 인도해주겠다.”

    “그게 가능해?”

    “당연하지. 수호신은 아무나 하는 줄 아는가?”

    “하지만 주변에 길이 하나도 보이질 않잖아.”

    “안 보이면 보이게 만들면 되는 거지. 그건 어렵지 않다.”

    나는 사방이 암흑 속인 데다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시시각각 변하는 명령어들로 가득한 주변을 둘러보았다.

    길은커녕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다.

    ‘어려울 것 같은데…….’

    “그럼 해봐.”

    나는 속는 셈 치고 머리 위에 있는 영계를 내려주기 위해 손을 가져갔다.

    “도움은 필요 없다. 어차피 그 손으로 날 받아내는 건 불가능할 테니.”

    “충분히 받고도 남을 ㄱ…….”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영계가 머리 위에서 뛰어내렸다.

    순간 영계의 주변에 환한 빛이 피어나면서 기다란 용의 형체로 변했다.

    윤기가 흐르는 은빛 비늘에 용맹스러운 기운이 깃든 은빛 눈동자.

    처음 온천 사장 계약을 맺었을 때 꿈속에서 봤던 용의 모습이었다.

    [실시간 스트리밍 중…… (현재 접속자: ???????명)]

    * * *

    └고급때타월 : 병아리가 용이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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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아집필해 : 와, 나 용 처음 봐.

    └1급온천수 : 온천 사장님, 사기캐인 줄은 알았지만 이건 핵 수준 아니냐?

    └박지누또랑해 : 랭킹에 넣는 게 무의미하네. 전 세계 통틀어서 최종 보스부터 용까지 길들이는 헌터 또 있냐?

    └온천회원1884 : 강형육도 이건 못함.

    └베카얼굴잘해 : ㅋㅋㅋㅋㅋ 쌉인정 ㅋㅋㅋㅋㅋ

    ‘그러고 보니까 영계는 원래 용이었지.’

    병아리 모습에 익숙해진 탓인지 용이 된 영계가 낯설게 느껴졌다.

    “뭘 보고만 있느냐? 어서 타라.”

    영계가 자신의 단단해 보이는 등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응!”

    나는 곧장 중심을 잡고 영계의 등에 올라탔다.

    “힘의 근원이 있는 곳으로 가기 전에 먼저 부모님이 있는 곳으로 갈 수도 있다. 가겠느냐?”

    출발하기 전, 영계가 내게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영계는 부모님의 영혼이 있는 장소도 느낌으로 알 수 있는 모양이었다.

    ‘엄마, 아빠를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 싶긴 하지만…….’

    그것만큼이나 베카가 신경 쓰였다.

    거기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박시우나 지호가 돌아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부모님은 박시우랑 지호랑 같이 보자.’

    왠지 부모님을 먼저 보면 굳게 다잡은 마음이 약해질 것만 같았다.

    “바로 힘의 근원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줘.”

    “알았다.”

    영계는 내게 더 묻지 않고 공간을 박차고 빠르게 날기 시작했다.

    은빛 비늘에서 흘러나오는 환한 빛이 암흑을 걷어내자 그 속에 숨어 있던 미로 같은 길이 드러났다.

    영계는 순식간에 긴 동굴을 빠져나갔다.

    그러자 눈앞에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그 중앙에는 명령어가 흘러나오는 일그러진 큐브가 불길한 검은 기운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게 이 던전 브레이크를 유지하는 힘의 근원이다.”

    큐브 앞에서 멈춰 선 영계는 내가 내릴 수 있도록 몸을 낮췄다.

    영계의 등에서 뛰어내린 나는 일그러진 큐브에 가까이 다가갔다.

    파지직-

    “아, 따가워!”

    큐브에 손을 대려 하자 보호막 같은 형체가 나타나더니 손이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이 따갑게 느껴졌다.

    “조심성 없긴.”

    “난 진짜 힘의 근원이 맞는지 확인하려고 했던 거거든? 메테오 쿨타임이 1,000년이란 말이야. 오래 살아야 수명이 백 년이 될까 말까 한 나한테는 사실상 1회용이라고!”

    실수해서 힘의 근원이 아닌 다른 것을 메테오로 부쉈다가는 던전 브레이크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소멸할 수 있는 만큼 신중해야 했다.

    그때였다.

    지면이 꿈틀대기 시작하더니 일그러진 큐브가 있는 곳으로 들어오는 모든 통로가 일제히 막히기 시작했다.

    나는 온천의 안개구름을 이용해서 공중으로 날아올라 간신히 피해를 면했다.

    “급하게 통로를 막는 걸 보니 던전 브레이크의 생성자가 침입자가 생겼다는 걸 눈치챘나 보군. 그 큐브가 진짜 힘의 근원임을 증명하기에 이보다 더 정확한 증거가 있느냐?”

    영계의 말이 맞았다.

    ‘던전 브레이크 생성자가 침입자의 존재를 눈치챘다는 건, 나를 막기 위해 이곳에 나타난다는 뜻이기도 하지.’

    그전에 힘의 근원을 부수는 게 나로서도 편했다.

    ‘강림차사, 지금 힘의 근원을 부술 테니까 부모님 영혼을 잘 부탁해.’

    [‘존잘강림차사’ : 맡겨만 두십시오.]

    ‘저승의 눈.’

    강림차사의 답이 돌아오자마자 나는 저승의 눈을 불러들였다.

    그러자 은발이었던 머리카락이 먹물처럼 검게 물들었다.

    저승의 눈의 한 가운데에 박힌 보석에 비친 나의 두 눈동자가 염라의 것처럼 검붉게 빛났다.

    ‘그럼 간다.’

    나는 왼손에 감아쥔 저승의 눈을 주먹을 펼쳐 아래로 떨어뜨리며 외쳤다.

    “메테오!”

    [저승의 눈이 스킬 ‘메테오(EX)’를 사용합니다.]

    동시에 거센 바람이 일며 하늘에 검은 홀들이 생겨나더니 불타오르는 운석들이 던전 브레이크 전체에 유성처럼 쏟아져 내렸다.

    운석에 깔린 일그러진 큐브가 짓이겨지며 이내 폭발했다.

    [스킬 ‘메테오(EX)’로 던전 브레이크—버그010023!@#$ 힘의 근원이 파괴됩니다.]

    [‘던전 브레이크—버그010023!@#$’가 소멸합니다.]

    * * *

    똑똑—

    그 시각 온천, 샤레니안이 염라가 묵고 있는 손님방으로 찾아와 손등으로 벽을 두드렸다.

    “뭐지?”

    그 기척에 거울을 통해 수온을 지켜보고 있던 염라가 서류로 눈을 돌리며 무신경하게 답했다.

    이런 반응이 섭섭하다는 듯 샤레니안은 염라의 탁상 맞은편에 보란 듯이 턱을 괴고 앉았다.

    “아무리 속에 파란색 피가 흐른다는 소문이 자자한 자네라지만 부르면 눈길 한 번 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래도 오랜 시간 같은 온천 단골로 지냈는데.”

    서운하다는 말투에 염라의 짙은 눈썹이 일그러졌다.

    “진짜 나랑 눈을 맞추자고 찾아온 건 아닐 테고. 본론이 뭐지?”

    여전히 명부에 시선을 고정한 염라가 성가시다는 듯이 물었다.

    “역시 자네는 눈치가 빨라. 그럼 빙빙 돌리지 않고 바로 묻지.”

    단도직입적인 염라의 태도가 마음에 든다는 듯 눈을 반달로 접어 웃던 샤레니안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점차 사라졌다.

    “박수온의 전생은 뭐지?”

    붓을 든 염라의 손이 샤레니안의 물음에 멈췄다.

    “나와…….”

    샤레니안이 염라의 검붉은 눈동자를 꿰뚫듯이 마주 봤다.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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