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누나?
[성좌 ‘불사의 살인귀’가 “얘들아, 뭘 보고만 있어? 우리 온천 사장님 정식으로 데뷔하신다”라며 온천의 성좌들을 돌아봅니다.]
[성좌 ‘불사의 살인귀’ : 꽃길 깔아드려라!]
‘꽃길?’
궁금해할 틈도 없이 나는 문 아래로 추락했다.
“왜 문이 공중에서 열리는 건데에에에에엑???”
온천 문을 통해 나온 곳은 백화점 건물 인근의 하늘이었다.
[성좌 ‘불사의 살인귀’가 “잊히지 않을 데뷔를 위한 연출”이라고 설명합니다.]
‘그전에 죽게 생겼는데 무슨 개소리야아아악???’
[성좌 ‘불사의 살인귀’가 “주인의 화려한 데뷔를 모르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고 주접을 떱니다.]
나는 머지않아 그 말들이 무슨 뜻이었는지를 이해하게 됐다.
[성좌 ‘불사의 살인귀’가 이 시스템에게 ‘[4K] 온천 사장님 공식 데뷔 쇼케이스’ 실시간 스트리밍을 요청합니다.]
[시스템이 실시간 스트리밍을 수락합니다.]
[특별 편성 ‘☆[4K] 온천 사장님 공식 데뷔 쇼케이스☆’ 실시간 스트리밍이 진행됩니다. (현재 접속자: ???????명)]
[동시 접속자 폭주로 인한 집계 시스템 마비 /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소요 시간: 59초 23)]
[실시간 스트리밍 중…… (현재 접속자: ???????명)]
* * *
└덕계못온천회원 : 와! 드디어 나도 온천 사장님 실시간 스트리밍 본다!
└돈켓팅성공기원 : 그런데 온천 사장님은 어디 가시고 아리따운 여자분이 추락하고 계신 거임?
└지나가는온천회원1 : 여기 온천 사장님 방송 아닌가요?
└덕택이는꽉꽉꽉 : 방송사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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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하는온천사장: 저거 위험한 거 아니야? ㅎㄷㄷ 진짜 떨어지는 것 같은데?
└EX급온천가운 : 저기 어디임? 아는 사람 119에 신고 좀 넣어봐.
추락하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사람들의 경악하는 댓글이 올라가는 스트리밍 채팅창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꽃잎을 뿌리며 보호 결계 주문을 겁니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의 주문으로 꽃잎이 떨어지는 곳마다 보호 결계가 펼쳐집니다.]
갑자기 황금색 꽃송이가 주변을 휘감아 돌며 결계가 생기고
[성좌 ‘저승의 염라’가 저승의 갓을 부여합니다. 저승의 갓을 쓰고 있는 동안 죽음이나 타격을 1회 피할 수 있습니다. (단, 1회 사용 시 저승의 갓이 소멸합니다.)]
머리에는 검은 갓이 씌워졌다.
‘이것들이! 내가 온천 사장이지 마법 소녀인 줄 알아? 나 떨어져 죽는다고!’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온천의 안개구름 신발(S)’을 부여합니다. 안개구름을 조종해 공중을 날아다닐 수 있습니다.]
바닥이 코앞으로 가까워지는 그때, 푹신한 솜사탕 같은 감촉이 발을 감싸고 돌더니 공중에 몸이 붕 떠올랐다.
[실시간 스트리밍 중…… (현재 접속자: ???????명)]
* * *
└꽉꽉꽉 : 와, 방금 뭐임? 마법 소녀인 줄?
└연예인병덕택이 : 아, 진짜요?
└온천사장님포에버 : 떨어지는 게 아니라 변신 중이었다고 한다.
└온천사장님은아이돌 : 꽃가루 떨어지는 거 핵 예쁨!
└덕택이키우기 : 아, 진짜요? ㅋㅋㅋ 연예인병 덕택이 고증 ㅋㅋㅋ 나만 웃기냐?
└온천표돈가스 : 온천 사장님에 이은 신규 헌터 마법 소녀 두둥!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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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온천사장 : 어라? 근데 저 얼굴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음? 나만 그래?
채팅창에는 실시간으로 시청자 반응이 쏟아져 나왔지만, 세차게 불며 뺨을 때리는 바람 때문에 연타로 싸대기를 맞은 것처럼 머리통이 얼얼해져서 글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 살았다.’
반쯤 넋이 나간 채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나는 예정에 없던 추락을 당했다는 사실에 뒤늦게 열이 솟구쳤다.
‘이것들이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 안전장치도 없이 날 추락시킨 걸 보면 진짜 온천이 영영 문 닫길 바랐나 봐?’
나는 항의하듯 얼굴에 붙은 기다란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 넘기며 이를 악물고 눈을 매섭게 떴다.
[성좌 ‘불사의 살인귀’가 “모든 것은 다 계획이 되어 있었다”다며 슬그머니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냅니다.]
‘계획대로 됐다면서 왜 진땀을 흘리는 건데?’
[성좌 ‘저승의 염라’가 “만에 하나 그대로 추락했더라도 저승의 갓이 있어서 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그게 지금 대안이라고 말하는 거야? 이 또라이 성좌들아! 내가 박시우 구하러 왔지, 콘서트 하러 온 줄 알아?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데 장난을 쳐?’
대화할수록 답이 없다는 생각에 소리를 버럭 내지르자 그제야 반성을 하는 건지 성좌들이 잠잠해졌다.
그 와중에도 채팅창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실시간 스트리밍 중…… (현재 접속자: ???????명)]
* * *
└박시또갓온천사장 : 어? 저분!!!
└집필아온천해: 헐. 박시또 동생분 아니신가? 저번에 커뮤니티에 사진 올라왔잖아. 박시또 연인으로 오해받아서.
└배달의덕택 : 근데 박시또 동생이 왜 온천 사장님 데뷔 스트리밍에 나와?
└온천사장정보망 : 온천 사장님이랑 친분이 있으신가? 원래 집필이랑 온천 사장님이랑 연결 고리가 많았잖아. 박시또 동생분이랑 온천 사장님이 사적으로 친분이 있어서였을지도. 같은 학교 출신이라던가?
└집필대나무숲 : 지금 저 지역 던전 브레이크 발생했다고 함. 속보 떴어. 사망자도 있고 부상자는 셀 수도 없대. 심각함. 그래서 집필도 지원 나갔다는데? 같이 지원 간 거 아님?
└박시또여보야 : 근데 박시또 동생 일반인 아니었음? 집필 길드원도 아니고 헌터라는 소리 못 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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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덕후 : 그런데…… 왠지 좀 닮지 않음? 온천 사장이랑 박시또 동생.
‘그래도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갓은 써두자.’
염라가 챙겨준 저승의 갓의 효력을 떠올린 나는 그것을 생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고쳐 쓰고 단단히 매듭을 지었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장난을 친 게 아니”라며 “너의 성좌들이 또라이인 건 맞아도 생각이 없지는 않다”고 눈살을 찌푸립니다.]
운수는 짜증을 내면서도 또라이라는 건 부정하지 않았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조금 더 높이 올라가서 아래를 보라”고 말합니다.]
‘또 무슨 짓을 벌이려고?’
의심하면서도 운수의 말대로 온천의 안개구름 신발을 타고 하늘 위를 치솟듯이 날아올라 아래를 내려다 봤다.
“저건……!”
내 몸을 휘감아 돌던 황금빛 꽃송이들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보호 결계가 되어서 몬스터와 싸우고 있는 헌터들과 시민들을 지켜주고 있었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꽃잎이 다 떨어지면 보호 결계가 사라진다”며 “효력이 다하기 전에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성좌 ‘저승의 염라’가 “갑작스러운 던전 브레이크로 예정에 없던 망자가 늘어 저승사자들도 비상근무에 돌입했다”며 “너희 부모님의 영혼은 강림차사가 맡아 저승으로 인도하기로 했다”고 말합니다.]
‘염라, 부모님의 영혼을 찾으면 저승으로 인도하기 전에 만날 시간을 줘.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지켜내면 예정에 없던 망자의 수도 줄어들 거고, 그러면 저승에 공을 쌓는 셈이니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마지막일지라도 부모님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박시우, 지호와 같이.
가족이 다 함께 온천에 여행을 갔던 그날처럼.
모여서 못다 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성좌 ‘저승의 염라’가 “저승에 이로운 공을 세운 자에게는 상을 주는 것이 이곳의 규율”이라며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콜! 그 약속 꼭 지켜.’
나는 가장 먼저 박시우가 있었던 건물 주변을 살폈다.
커다란 피에로 인형이 난동을 부려서 건물 일부가 무너진 탓에 박시우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밑에 깔린 건가?’
건물의 잔해를 단번에 해치우기 위해서는 부채를 사용하는 게 제일 편했다.
베란다도 가루로 만들어 버린 잔잔한 바람이니까.
해령의 부채가 온천 사장의 부채가 되고 난 이후로는 사용 범위를 조절하는 게 가능해져서 박시우에게 타격을 주지 않고 잔해들만 부술 수도 있었다.
다만, 애초에 잔잔한 바람의 범위가 넓어서 주변에 있는 헌터들이나 시민들이 다칠 염려가 있었다.
더군다나 작은 피에로 인형들이 건물 주변에 진을 치고 공격을 하는 상황이라 사람들을 피신시키는 게 우선으로 보였다.
황금 꽃송이의 꽃잎은 총 7장, 그중에 한 장이 떨어졌다.
‘보호 결계가 깨지기 전에 사람들부터 피신시켜야 해.’
우선순위를 정하자 움직이기가 더 쉬워졌다.
나는 결계 밖의 몬스터 때문에 나가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전부 물러나세요!”
[실시간 스트리밍 중…… (현재 접속자: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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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사장껌딱지 : 박시또 동생 어쩌려고 저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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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희여영원하라 : 박시또 동생 일반인 맞는데 ㅋㅋ 오빠랑 남동생 믿고 설치는 거 아님?
‘부채.’
사람들의 앞을 막아선 나는 해령의 각인을 사용했다.
“잔잔한 바람!”
은발을 휘날리며 부채를 펼쳐 휘두르자 사람들 앞에 득실대던 피에로 인형들이 단번에 추풍낙엽처럼 산산조각이 나서 사라졌다.
[실시간 스트리밍 중…… (현재 접속자: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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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희폐급 : ?????
└덕택이는꽉! : 예???? 온천 사장님이 왜 거기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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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또갓온천사장 : 박시또 동생이 온천 사장이었어? 이거 실화냐?
혼돈과 함성의 도가니인 채팅창과 함께 이를 지켜보고 있던 시민들도 격렬하게 환호를 내질렀다.
“혹시 헌터가 계시면 시민분들을 데리고 대피하…….”
시민들의 선두에 서서 대피를 도울 헌터를 찾기 위해 사람들을 향해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누나?”
지호의 손에 들려 있던 큐브 지팡이가 힘없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