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꽃길 깔아드려라
“베카, 무슨 일이야? 박시우랑 지호라면 집에 있는 거 아니야?”
내가 베카를 품에 안으며 심각하게 묻자 붉은색 빛이 일며 그가 고양이에서 꼬맹이 마탑주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바닥에 내려놓자 베카는 아쉬운 눈빛을 하면서도 곧바로 내 질문에 답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집에 있었다. 그런데 박시우가 급한 연락을 받고 박지호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마당발인 박시우가 혼자 외출을 하는 건 더러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급하게 지호까지 데리고 나갔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아직 술도 덜 깼을 텐데 어딜 나가?”
불안한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묻자 베카가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어디로 갔는지까지는 듣지 못했지만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해서 부상자와 사망자들이 속출하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했다고?”
부상자가 나는 던전 브레이크는 더러 있었지만 사망자가 나온다는 건 보통 수준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박시우한테 지원요청이 온 걸 보면 아무래도 헌터 협회가 손쓸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나 본데…….’
그 뒤는 안 봐도 뻔했다.
박시우와 지호는 지옥귀 때처럼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뒤도 안 돌아보고 위험 속으로 뛰어들 것이다.
혹은 벌써 뛰어들었거나.
“자기들이 아무리 S급 헌터라도 사람인데 왜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하는 거야?”
지옥귀 때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건 나랑 베카가 있어서 가능했던 거라고.’
나랑 베카가 있었음에도 쉴 틈 없이 지옥귀를 상대하며 죽을힘을 다 써야 했다.
지호는 무리하는 바람에 지옥귀의 저주에 걸리기까지 했고.
박시우와 지호가 사망자가 속출하는 던전 브레이크를 막기 위해 지원을 나갔다면 두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원한다면 던전 브레이크가 어디에서 발생했는지 알아봐줄 수 있다.”
긴 한숨을 내쉬는 나를 지켜보고 있던 베카가 돕겠다고 나섰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가 뭘 하려는지 아는 것 같았다.
“그게 가능해?”
“그렇다. 던전 브레이크 생성자들은 정보를 공유할 수 있으니까.”
염라가 예전에 했던 말에 따르면 부모님의 영혼을 되찾기 위해서는 실종된 날 휩쓸린 것과 같은 던전 브레이크를 찾아내야만 했다.
‘어쩌면 베카가 단서를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그전에 이 대책 없는 호적 메이트들부터 후딱 구해오자.
“부탁할게. 베카.”
내 말에 베카가 뭔가 집중하듯 정면을 응시했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베카의 눈동자가 경고등처럼 붉은색으로 빛났다.
“발생 장소는 OO백화점 옥상, 생성자 명은 버그010023!@#$다.”
“잠깐만……. 생성자가 누구라고?”
“버그010023!@#$.”
“명부.”
나는 빠르게 명부를 펼쳐 부모님의 이름을 검색했다.
[****년 *월 **일 20시 30분 박대한 던전 브레이크 ―‘버그010023!@#$’에서 사망 (영혼 수거 가능)]
[****년 *월 **일 20시 30분 김영예 던전 브레이크 ―‘버그010023!@#$’에서 사망 (영혼 수거 가능)]
베카가 말한 던전 브레이크 생성자는 부모님이 실종된 던전 브레이크를 만든 존재와 일치했다.
‘그리고 괄호 속의 단어가 달라졌어.’
처음 확인했을 때만 해도 부모님의 영혼은 수거가 불가능한 상태라고 표시됐다.
‘그런데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한 지금은 영혼 수거가 가능한 상태로 바뀌었어!’
그 말은 지금 발생한 던전 브레이크가 십여 년 전에 부모님이 실종됐던 것과 같다는 뜻이다.
그걸 깨닫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박시우와 지호였다.
당시에도 랭커인 S급 헌터들이 있었지만 부모님을 집어삼킨 정체불명의 던전 브레이크를 상대할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건 박시우와 지호가 간다고 해서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의 던전 브레이크가 아니야.’
“베카, 던전 브레이크 등급은 알 수 없어?”
“알 수 있다. 등급은 SSS.”
“당장 가야 해.”
나는 곧장 자리를 털고 일어나 복도로 나왔다.
그러자 복도를 서성이고 있는 운수와 샤레니안, 해령이 보였다.
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건지 모두가 나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걱정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급한 상태였다.
“주인, 싸우러 가?”
그들을 지나쳐 1층으로 향하려는데 샤레니안이 내 팔을 붙잡으며 물어왔다.
“표정이 싸우러 가는 것 같은데, 상황을 알아야 우리도 도울 거 아니야. 명색이 네 성좌들인데.”
“설명할 시간 없어.”
“내가 박시우가 어떤 상황인지 보여줄 수 있어. 그 장면을 보고 온천 문을 열면 바로 박시우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을 거야.”
“네가 어떻게?”
“내 쌍둥이 동생이거든.”
그 말과 함께 샤레니안이 거대한 검을 복도의 마룻바닥에 푹 꽂아 넣었다.
“박시우의 성좌.”
보름달이 떠 있는 밤하늘처럼 눈동자의 절반이 은빛으로 물든 샤레니안이 나를 돌아보며 별일 아니라는 듯 무덤덤하게 답했다.
“박시우 성좌가 샤레니안의 쌍둥이 동생이라고?”
의외의 사실에 놀란 마음을 가라앉힐 틈도 없이 불사검의 두꺼운 칼날 위로 핑크색 슈트를 입은 남자와 맞서고 있는 박시우의 영상이 떠올랐다.
핑크색 슈트를 입은 남자는 중년의 남자를 인질로 잡고 있었는데 그는 내가 아는 얼굴이었다.
오래전에 헌터 협회가 사건을 덮기 위해 겉치레로 치른 부모님의 장례식에서 한 번 본 게 다지만.
“동료를 잃다니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아저씨도 최선을 다했지만 부모님을 찾아내는 건 무리였어.”
자신을 부모님의 동료라고 소개해서 이름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김패금 헌터?”
갑자기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지금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 탓에 몬스터의 습격으로 혼란스러운 게 아니었어?
백화점 건물이 박살 나 있는 걸 보니 습격이 있었던 건 분명했다.
내가 알기로 김패금은 S급 헌터였다.
지금은 박지호랑 지호 같은 신흥 강자들에게 밀리긴 했어도 부모님이 계실 당시에는 바로 부모님 다음으로 꼽힐 정도의 실력자였다.
‘그런 김패금 헌터가 인질로 잡혀 있다고?’
게다가 손도 쓰지 못하고 있는 걸 보니 핑크색 슈트를 입은 남자도 알려져 있진 않지만 엄청난 실력을 가진 헌터인 것 같았다.
그런데 왜 같은 헌터들끼리 대치하고 있는 거야?
“샤레니안, 이거 음성 지원도 가능해?”
나는 어느새 그 자리에 몸을 낮추고 앉아 불사검에서 흘러나오는 영상에 집중하고 있었다.
“가능하다.”
샤레니안이 엄지와 검지를 맞부딪쳤다.
그러자 영상에서 박시우와 핑크색 슈트를 입은 남자의 대화 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짓이냐? 여기다 인형을 풀어놓은 게?”
“이건 김패금이랑 나 사이의 일이다. 넌 빠져.”
핑크색 슈트를 입은 남자가 남은 손으로 카드를 꺼내 들자 시우의 앞으로 작은 피에로 인형 군단이 나타났다.
“아, 말귀를 더럽게 못 알아먹네.”
성가시다는 듯 눈살을 찌푸린 박시우가 얼음 총을 꺼내 들어 작은 피에로 인형을 단번에 얼어붙게 만들어 깨뜨린 뒤, 핑크색 슈트를 입은 남자에게로 성큼 다가섰다.
“그러니까 둘 사이 일이면 둘이서 조용히 끝낼 일이지 왜 죄 없는 시민들을 다치게 만드냐고. 너 때문에 소중한 가족을 잃은 사람도 생겼어. 이제 둘만의 일이 아니게 됐다는 말이야.”
박시우가 총구를 핑크색 슈트를 입은 남자의 머리에 가져다 댔다.
“당장 멈춰. 머리에 바람구멍 나기 싫으면.”
핑크색 슈트 남자를 향한 박시우의 눈빛이 서릿발처럼 매서웠다.
지금까지 분위기를 봐서는 내가 그 사이에 끼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박시우, 저럴 때는 제법 1위 길드장 답네.’
박시우가 사람에게 총을 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건 분위기나 박력 면에서 박시우가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저 남자는 대체 뭐길래 몬스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거지?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킨 것도 저 남자인가?’
의문을 떠올리는 순간, 남자가 던졌던 카드가 떠올랐다.
분홍색과 하늘색이 섞인 카드 디자인.
분명히 그때 균열을 깨트린 놈이었다.
‘그럼 저 남자가…… 흑막 성좌의 계약자?’
그렇다면 사태가 심각해진다.
주춤거리는 듯하던 핑크색 슈트의 남자가 소리 내며 웃기 시작했다.
“여기서 총을 쏴서 날 죽이면 네가 나랑 다를 게 뭐지?”
핑크색 슈트의 남자는 총에 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할 수 있으면 해봐.”
겁을 상실한 것처럼 남자는 박시우가 겨눈 총구를 자신의 이마에 더 가깝게 가져가며 악에 받친 듯 소리쳤다.
“당장 쏘라고!”
박시우는 총을 쏘는 대신 남자를 힘으로 제압해 쓰러트렸다.
“아저씨, 피하세요!”
“고맙다, 시우야!”
패금은 기다렸다는 듯이 박시우만 두고 꼬리가 빠져라 줄행랑을 쳤다.
‘아니, 김패금 헌터, 같이 싸워줄 의리는 없는 거냐고!’
나라도 나서서 박시우를 구하기 위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그때였다.
“피에로! 김패금을 쫓아서 죽여! 갈기갈기 찢어 죽이란 말이야!”
“피히히!”
분노에 찬 남자의 목소리에 거대한 피에로 인형이 건물을 부수며 패금을 뒤쫓았다.
“그만 둬! ㅎ…….”
박시우가 뭐라고 소리치려던 순간, 피에로 인형의 공격으로 무너진 건물의 파편이 떨어지면서 먼지 속에서 박시우와 남자의 모습이 사라졌다.
“박시우!!!”
나는 곧장 온천의 입구로 달려 내려갔다.
‘박시우를 구해야 해!’
나는 온천의 문손잡이를 잡았다.
‘난 또 같은 식으로 내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아.’
내가 온천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순간이었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그 상태로 문을 넘으면 네가 온천 사장인 걸 들킬 텐데 괜찮냐”고 묻습니다.]
‘상관없어!’
하루라도 빨리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던 나를 살고 싶게 만들어준 게 가족이었으니까.
그보다 더 소중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각인할 틈도 없이 문 너머로 뛰어들었다.
[성좌 ‘불사의 살인귀’가 “얘들아, 뭘 보고만 있어? 우리 온천 사장님 정식으로 데뷔하신다.”라며 온천의 성좌들을 돌아봅니다.]
[성좌 ‘불사의 살인귀’ : 꽃길 깔아드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