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거기까지!
“안녕하세요, 패금 헌터님. 진짜 팬이에요! 한국에 돌아오신 걸 환영해요!”
OO 백화점에서는 김패금의 팬 사인회가 한창이었다.
그가 헌터 협회의 대표적인 인물인 만큼 협회 소속 간부와 헌터들도 참여한 자리였다.
패금이 온천 사장을 언급한 만큼 어떻게든 그 사실을 엮어서 조회수와 시청률을 올려보고자 모인 기자들로 인해 현장은 카메라 셔터가 끊이질 않고 있었다.
현정우는 건물의 옥상에서 카드 마법을 통해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국을 떠난 지 몇 년 만에 돌아오는 건데 절 기억해주시다니 감동이네요.”
올해로 58세가 되는 패금은 처음 봤을 때보다 많이 늙어 있었다.
세월의 흐름에 얼굴이 조금 달라졌을 뿐 정우의 눈에 그는 여전해 보였다.
저런 식으로 영웅 행세하는 것부터 가식적인 웃음까지.
그 미소를 볼 때마다 정우는 속이 뒤틀리는 것 같은 역겨움을 느꼈다.
“기억할 수밖에요. 패금 헌터님이 한빛 보육원에 주기적으로 기부해주신 덕분에 동생이랑 제가 무사히 사회인이 될 수 있었어요.”
“저도 그 보육원에 있었어요.”
“패금 헌터님은 저희의 은인이세요.”
“그때 패금 헌터님이랑 같이 찍은 사진이에요. 덕분에 헌터라는 꿈을 꾸게 되었고, 지금은 헌터 협회에서 일하고 있어요.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팬 사인회에 찾아오는 패금의 팬들은 하나 같이 그의 미담을 쏟아내며 칭찬하기에 바빴다.
‘어리석긴, 김패금은 자신이 어디에 기부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할 텐데.’
“정우야, 김패금 헌터님 알지? 그분이 이번에 나를 던전 레이드 팀에 데려가주기로 하셨어. 아빠가 돈 많이 벌어와서 우리 정우 가지고 싶어 하는 거 다 사줄게.”
한때 정우의 아버지도 그들처럼 패금을 영웅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정말 우습게도 자신 또한 아버지와 같이 패금을 신처럼 생각한 때가 있었다.
‘바보처럼.’
정우는 가면 뒤에 감춰진 패금의 진짜 얼굴을 떠올렸다.
“이 무능한 나라, 제대로 하는 것도 없으면서 세금은 많이도 떼어간다니까? 어차피 버릴 돈 기부하면서 이미지 메이킹이라도 해야지. 그편이 내게는 더 도움이 될 테니까.”
패금이 오랫동안 잘 쌓아놓은 이미지는 그의 추악한 얼굴을 숨기는 단단한 벽이 되어줬다.
“김패금 헌터가 제 아버지를 죽였어요! 저 사람은 살인자라고요!”
김패금은 정우 아버지의 죽음을 사고사로 은폐하려고 했다.
어린 날의 정우는 헌터 협회를 찾아가서 그 사건의 진실을 고발했다.
“김패금 헌터가 살인자라니 그게 무슨 소리니?”
헌터 협회에서 잠깐 소란이 일긴 했으나 말 그대로 잔잔한 호수에 약간의 파문이 일었을 뿐, 어린 정우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거기까지였다.
“아, 저 아이는 이번에 사고를 당한 현정민의 아들 같군요. 아무래도 하루아침에 아버지를 잃게 되었으니 충격이 클 겁니다. 제가 잘 달래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일이 커지기 전에 김패금이 먼저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나섰으니까.
“당신이랑 이야기할 생각 없어! 이 살인자!”
정우는 계속해서 항의했지만 패금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의 눈높이를 맞춰 앉아 위로하듯 말했다.
“네 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내게도 몹시 유감스러운 일이야. 아직 어려서 누구든 탓하고 싶은 건 알겠지만 이제는 네 마음속에서 아버지를 놓아주렴. 그래야 가시는 길이라도 편히 떠나시지 않겠니?”
“거짓말하지 마! 난 당신이 동료들과 하는 말을 다 들었어!”
어린 정우가 자신이 본 것들을 사실대로 말했지만 헌터 협회와 여론의 지지를 한몸에 받고 있던 패금의 신임을 무너뜨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며칠 전에 김패금 헌터가 웬 이름 모를 D급 헌터를 돕겠다고 던전 레이드 파티에 끼워줬는데 사고로 죽었다나 봐요. 호의를 베풀려고 했던 건데 은혜도 모르고 살인자라고 하다니……. 아무리 어려도 염치가 없네요.”
“이러니까 무서워서 구조 활동도 못하겠다니까? 목숨 걸고 구하려고 해도 결과적으로 시민이 죽으면 살인자 취급할 거 아니야?”
어린 정우에게 돌아오는 건 헌터들의 싸늘한 시선과 비난뿐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분위기에 의기양양해진 패금은 어린 정우의 귓가에 대고 성가시다는 목소리로 경고했다.
“닥치고 꺼져. 자꾸 성가시게 굴지 말고. 네 아버지를 따라 죽고 싶지 않다면.”
분노에 치가 떨렸지만 어린 정우에게는 패금에게 맞설 힘도 능력도 없었다.
그때 정우에게 손을 내밀어준 유일한 존재.
“저자를 죽이고 싶나? 나라면 너와 네 아버지를 비난한 모두를 없앨 수 있는 힘을 네게 줄 수 있는데.”
그게 지금 정우의 성좌 ‘버그010023!@#$’였다.
정우는 목숨을 담보로 각성하고 성좌의 각인을 얻었다.
성좌의 각인을 사용한 정우의 갈색 눈이 점차 핑크색으로 물들어갔다.
“아빠, 떠나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줘.”
하늘을 올려다보는 푸른색과 분홍색이 뒤섞인 정우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곧 길동무들을 보내줄게.”
짙은 그리움과 슬픔에 잠긴 정우의 눈동자가 점차 분노와 혐오로 일그러지며 매섭게 변했다.
“시작해.”
정우의 말에 그의 뒤에서 성좌 ‘버그010023!@#$’가 나타났다.
“좋다. 너무 오랜간만이라 흥분되는군.”
괴이한 소리를 내며 웃던 성좌 ‘버그010023!@#$’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하더니 검은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주의!! 성좌 ‘버그010023!@#$’가 던전 브레이크를 생성합니다.]
[!!주의!!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합니다. <등급 : SSS>]
성좌 ‘버그010023!@#$’가 만들어낸 던전 브레이크에서 작은 피에로 인형들이 떼로 몰려나왔다.
피에로 인형들은 손에 든 공을 무분별하게 던지기 시작했다.
“꺄악!”
“던전 브레이크다!!!”
피에로 인형들을 쏟아낼수록 던전 브레이크의 크기가 커졌다.
때아닌 몬스터들의 습격으로 패금의 팬 사인회장은 단숨에 아수라장이 됐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던전 브레이크라니? 여기는 던전 브레이크 안전 지역 아니었어?”
전기 채찍으로 몬스터를 상대하던 패금이 협회 구성원들에게 언성을 높였다.
패금이 팬 사인회를 연 곳은 소위 안전 지역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안전 지역이라는 건 던전 브레이크가 몇십 년간 단 한 번도 열리지 않는 장소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자신이 입국한 날에 팬 사인회 장소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열리다니, 화려한 귀국을 꿈꾸던 패금에게는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대체 던전 브레이크 등급이 얼마나 높길래 잡몹이 S급이야?”
패금이 채찍을 스무 번은 휘둘러야 쓰러지는 작은 피에로 인형의 등급을 보며 기함을 했다.
“이건 평범한 던전 브레이크가 아닙니다. 아무런 정보도 읽히지 않아요! 간부님들부터 빨리 대피하십시오!”
헌터 협회 소속 직원들은 간부들을 대피시키느라 몬스터의 습격을 받고 쓰러지는 시민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김패금 헌터님! 살려주세요!”
“에잇, 퉤! 재수가 없으려니까!”
방금만 해도 자신의 사인을 받고 있던 팬이 패금의 바짓가랑이를 잡자 그가 기분 나쁘다는 듯이 바지를 털어내며 침을 뱉으며 피를 흘리는 시민에게서 되돌아섰다.
“여전하네. 위선자인 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핑크색 슈트 차림의 정우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몬스터들에게서 달아나려는 패금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넌 또 뭐야?”
“서운하네. 나 기억 안 나?”
“내가 기억할 만큼 네가 대단한 인물이 못 되겠지.”
“그래?”
한쪽 입가를 올리며 실소를 터뜨리던 정우가 카드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스킬 ‘흑화’를 사용합니다.]
그러자 카드가 빛을 내기 시작하며 작은 피에로 인형들이 한자리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작은 피에로 인형(S)’이 ‘죽음의 피에로 인형(SSS)’으로 흑화합니다.]
모여든 인형들은 하나로 뭉치더니 삽시간에 백화점 건물만큼 커졌다.
“피히히!”
죽음의 피에로 인형이 소름 돋는 웃음소리를 내며 패금에게 다가섰다.
그의 위로 피에로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하지만 패금은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어느새 자신의 앞에는 정우가 칼날처럼 날카로운 카드를 목에 들이밀고 있어서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목이 날아가버리고 말 테니까.
“너…… 너 정체가 뭐야? 나한테 왜 이래?”
“현정민.”
“현정민이라면…….”
이름을 들은 패금의 낯빛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이제 좀 기억이 나는 모양이네. 서운할 뻔했잖아. 그럼 네가 내 아버지를 어떻게 죽였는지도 기억하겠지?”
성좌 ‘버그010023!@#$’를 통해서 본 아버지의 마지막은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비참했다.
패금은 말 그대로 몬스터를 유인할 미끼로 정우의 아버지를 사용했으니까.
정우의 아버지는 숨이 멎을 때까지 살이 파먹히는 고통에 몸서리를 쳐야 했다.
“아버지라는 건 네가 그때 그 꼬맹이…….”
정우는 카드를 내려놓고 패금을 정면에서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제야 정우의 정체를 알아차린 듯 패금이 뒷걸음질을 치다 발을 헛디뎌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았다.
그대로 굳은 채 움직이지 못하는 패금의 눈높이를 맞춰 상체를 낮춘 정우가 그를 살기가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는 당신 차례야. 죽여줄게. 아버지보다 더 고통스럽게.”
“살려줘! 네 아버지 일은 오해야! 내가 전부 설명할게!”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패금의 손을 정우가 사정없이 짓밟았다.
“닥치고 꺼져. 성가시게 굴지 말고.”
정우는 그대로 죽음의 피에로 인형을 올려다봤다.
“먹어.”
“아악!”
“피히히!”
죽음의 피에로 인형이 패금을 짓누르려는 순간이었다.
탕!
커다란 총성과 함께 피에로 인형의 손의 일부분이 얼어붙었다.
“거기까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타난 시우가 총구를 들이대며 정우의 앞을 가로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