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 (145)화 (145/190)
  • 145화

    영혼 수거 불가

    ‘저승의 눈’ 2단계 스킬이 열렸어?

    어느 틈에 퀘스트를 클리어 한 거지?

    2단계 스킬 개방 퀘스트는 염라의 ‘ㅅㅈㅎ’ 기억을 모으는 거였을 텐데, 내가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는 두 개가 채워져 있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염라의 기억이 하나 더 모인 것 같았다.

    ‘어떻게 퀘스트를 깼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지금 중요한 건 2단계 스킬이 개방되면서 명부를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드디어 부모님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기다리던 순간이었는데 어쩐지 명부를 펼치는 것을 망설이게 됐다.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옷매무새까지 정돈하고 나서야 나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명부.’

    [‘저승의 명부’를 불러옵니다. (업로드 중…… 99%)]

    [‘저승의 명부’를 불러옵니다. (업로드 중…… 100%)]

    [‘저승의 명부’가 열립니다.]

    업로드가 끝나자 눈앞으로 조선 시대에나 볼 법한 디자인의 두꺼운 서책 하나가 나타났다.

    ‘저게 명부인가?’

    나는 공중에 떠 있는 서책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포털 사이트에서나 볼 법한 검색창이 떠올랐다.

    [명부에서 검색하고 싶은 망자의 사망일이나 이름을 검색하세요.]

    ‘망자의 사망일이나 이름만 입력하면 생존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건가?’

    일일이 명부 넘겨가면서 찾아야 할 줄 알았는데 그런 수고는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 부모님은 실종 상태니까 이름으로 검색해보자.

    나는 검색창에 아버지의 이름 ‘박대한’을 써넣었다.

    [검색기록 총 234,543명]

    [기원전 XXXX년 XX월 XX일 XX시 XX분 박대한 동굴에서 추위에 떨다 사망.]

    [기원전 XXX년 XX월 XX일 XX시 XX분 박대한 먹잇감 사냥하다가 동료에게 배신당해 사망.]

    :

    :

    :

    [2123년 X월 X일 박대한 교통사고로 사망]

    그러자 기원전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박대한의 사망 기록들이 쏟아져 나왔다.

    ‘기원전 XXXX년에도 박대한이 있었냐? 이건 예상 못했는데…….’

    최근 기록부터 거꾸로 찾는다고 해도 워낙 동명이인이 많아서 밤을 꼬박 새워야 할 것 같았다.

    ‘234,543명을 전부 다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걸 최대한 추릴 수 있는 방법이 없으려나?’

    문득 검색창에서 사망일을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순간 머릿속에서 특정 날짜가 떠올랐다.

    ‘****년 *월 **일.’

    내 심장과 머리에 깊게 각인된 그날.

    나의 세상이 통째로 무너져 내린 날.

    정체불명의 던전 브레이크가 열리고 부모님이 실종된 날짜였다.

    난 다시 검색창을 켜서 사망일을 실종일로 설정했다.

    ‘제발……. 없어라.’

    잠잠하던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기도했다.

    내가 걱정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나는 검색 버튼을 누르는 것과 동시에 눈을 질끈 감았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눈을 뜨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년 *월 **일 20시 30분 박대한 던전 브레이크 -‘버그010023!@#$’에서 사망 (영혼 수거 불가)]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저게 우리 아빠가 아닐 수도 있잖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실종일과 함께 어머니의 이름을 검색했다.

    [****년 *월 **일 20시 30분 김영예 던전 브레이크 -‘버그010023!@#$’에서 사망 (영혼 수거 불가)]

    ‘이럴 수가…….’

    명부의 검색 결과에는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어머니가 죽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애써 외면하려고 했던 진실이 현실로 다가오자 두통과 함께 이명이 들렸다.

    잠시 이마를 짚으며 숨을 고르던 나는 심장에 새기듯 명부의 내용을 되짚었다.

    언젠가 부모님이 정말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대로 무너져버릴 줄 알았는데 지금의 나는 폭풍이 오기 전의 하늘처럼 차분하고 고요했다.

    사망이라는 말보다 영혼 수거 불가라는 글자에 눈이 갔다.

    ‘영혼 수거 불가라는 건 영혼을 거두기 전이라는 말이 아닐까?’

    그렇다는 건 아직은 부모님이 살아 계신다는 걸지도 몰랐다.

    ‘어떻게 확인할 방법이 없을까?’

    그 순간 염라에게서 퀘스트 보상으로 획득한 질문권이 떠올랐다.

    ‘염라, 지금 어디에 있어?’

    당장 염라를 만나야 했다.

    * * *

    [성좌 ‘저승의 염라’가 “온천에 있다”고 합니다.]

    ‘지금 만날 수 있을까? 아니, 만나야만 해.’

    [성좌 ‘저승의 염라’가 “와라. 내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그대가 앉을 자리를 내어주겠다”며 흔들림 없는 얼굴로 답합니다.]

    염라가 있는 곳을 듣자마자 나는 온천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이군.”

    온천으로 들어서자마자 나를 반기는 건 해령이었다.

    내가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 탓인지 그는 토라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해령을 상대해줄 자신이 없었다.

    “그래.”

    짧게 답한 나는 곧장 염라가 머물고 있는 2층의 손님방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해령을 스쳐 지나가려는 순간, 그가 내 팔목을 붙잡았다.

    “너……. 저쪽 세계에서 나쁜 일이라도 당한 건가?”

    내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내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건지 해령이 사뭇 가라앉은 낯빛으로 내게 물어왔다.

    “……나중에.”

    왜였을까?

    해령의 물음에 참았던 눈물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돌리며 날 붙잡은 손을 떼어내자 해령도 더는 내게 무슨 일이 생긴 거냐고 캐묻지 않았다.

    2층에 오르자 염라의 손님방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이 보였다.

    “들어오시지요.”

    입구를 지키고 서 있던 강림차사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나를 방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연기도 나지 않는 담뱃대를 입에 물고 있는 염라가 보였다.

    “왔나?”

    “응. 지난번에 받았던 질문권을 쓰고 싶어서 찾아왔어.”

    “……그렇군.”

    조금 실망한 기색의 염라가 내 뒤편으로 시선을 주자 방문이 닫혔다.

    “일단 앉아라.”

    염라가 자신의 탁상 바로 앞에 놓인 푹신한 금색 방석에 앉으라는 듯 눈짓을 보냈다.

    궁금한 게 많았던 나는 고민 없이 방석에 앉았다.

    방석은 미리 데워져 있었던 것처럼 따뜻해서 충격에 굳어 있던 몸이 조금은 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치밀어 오르는 슬픔을 이를 악물어 겨우 억누른 나는 염라를 똑바로 마주 봤다.

    “명부에서 부모님의 생사를 열람해봤어.”

    “그랬던 거군.”

    이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가 간다는 듯 염라가 입에 물고 있던 담뱃대를 내려놓고 똑바른 자세로 앉았다.

    놀라지 않는 눈치인 걸 보니 그는 일찍이 명부의 내용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표정을 보니까 어떤 내용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

    염라는 묵묵하게 앉아 나를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영혼 수거가 불가하다는 말은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다. 영혼을 수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거지.”

    “그 말은 부모님이 던전 브레이크의 어딘가에 살아 계실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할까?”

    작은 희망이라도 붙잡으려는 나를 지켜보던 염라가 조용히 눈을 내리감으며 답했다.

    “오래전에 사망했으니 육체는 이미 사라지고 남아 있는 건 영혼뿐일 거다.”

    염라의 그 말은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확인이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이 몸이 파르르 떨렸지만, 마음을 다잡고 다시 꼿꼿하게 앉았다.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이 남아 있었다.

    “왜 영혼을 수거하지 못하는 건데?”

    “그대의 부모님이 휩쓸린 던전 브레이크는 시스템에 생긴 오류로 만들어진 것. 사실은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오류를 일으킨 존재가 다시 던전 브레이크를 열지 않는 이상 누구도 그곳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이다.”

    염라의 말을 듣고 있으니 당시 언론들이 떠들었던 던전 브레이크에 관한 정보들이 떠올랐다.

    원인 모를, 정체불명의 던전 브레이크.

    보통은 헌터들이 중심에 있는 보스나 힘의 원천을 꿰뚫고 나와야만 던전 브레이크가 사라지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그날의 던전 브레이크는 부모님만을 집어삼킨 뒤, 스스로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목적은 우리 부모님이었다는 듯이.

    “그 말은 부모님의 영혼이 아직도 던전 브레이크 속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떠돌고 있다는 거야?”

    “그렇다.”

    살아서도 제대로 쉬어본 적 없었던 부모님이셨다.

    그런데 죽어서도 던전 브레이크에 갇혀 영영 그 안을 떠돌고 있다니 가슴이 찢어지다 못해 산산이 조각나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열 수 있는데, 그 던전 브레이크.”

    “처음 던전 브레이크를 생성한 존재를 찾으면 열게 할 수 있다.”

    “그게 누군데?”

    내 물음에 염라가 명부를 펼쳐 부모님의 이름이 쓰인 줄을 기다란 손가락으로 따라가다 한 부분을 가리켰다.

    [버그010023!@#$]

    “여기에 쓰여 있는 것이 던전 브레이크를 생성한 자의 이름이다. 하지만 그 또한 시스템이 만들어 낸 오류라 추적이 불가능하다.”

    “……시스템이 뭐가 이래? 그 오류만 없었으면 부모님이 죽는 일도 없었던 거잖아!”

    질문에 대한 답을 들었지만 아무런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다.

    끓어오르는 분노에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세게 주먹을 쥐며 소리치는 그때였다.

    방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검은 물체가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미야오오! 미양……!”

    [‘탑의 주인’ : 큰일 났다! 박시우랑 박지호가……!]

    귓가에 울려 퍼지는 베카의 울음소리에 불길한 예감이 등골을 스치고 지나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