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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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낀 나는 곧장 침대에서 튕기듯이 일어나 거실로 달려 나갔다.
“큥! 컁!”
[‘운수를 믿으십니까?’ : 박수온, 나 왔어!]
새끼 여우 모습을 한 운수가 박시우의 품에서 빠져나와 나에게 한달음에 달려왔다.
“얘는 누구야?”
자연스럽게 운수를 안아 든 내가 품 안의 그를 향해 추궁하듯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다들 여기로 모여들면 어떡해? 우리 집이 무슨 동물 농장도 아니고.’
“큐웅…….”
방금만 해도 기세 좋게 날 찾으러 왔다고 소리치던 운수가 내 추궁에 딴청을 피우며 앓는 소리를 냈다.
‘이럴 때만 못 알아들은 척하지?’
“자식, 수컷이었나? 박돈돈 오니까 바로 날 버리네.”
박시우는 버림받은 것이 서운한지 미련 가득한 눈길로 내게 안긴 운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생긴 걸 보니까 여우 같은데 누구 부탁으로 맡아주기로 한 거야?”
운수의 털을 매만지며 얼굴을 살피던 지호가 물음을 던졌다.
‘그러게. 저 인간이 어떻게 운수를 안고 들어온 거지?’
난 관심 없는 것처럼 굴면서 박시우를 향해 귀를 쫑긋 세웠다.
“부탁받은 거 아닌데?”
“그럼?”
“날도 추운데 웬 슈크림 같은 아이가 길을 잃었는지 복도에서 헤매고 있길래 데리고 왔지.”
“캬앙컁.”
[‘운수를 믿으십니까?’ : 던전 브레이크로 베란다를 날려 먹었을 때 봐서 층수까지는 기억하고 있었는데 몇 호실에 사는지가 헷갈렸다.]
‘그렇게 된 거였나?’
운수의 이야기까지 듣고 나니 어떤 상황이었는지 대충 이해가 갔다.
“형? 그렇다고 무작정 주워오면 어떡해? 주인이 찾고 있으면 어쩌려고?”
“주인이 언제 올 줄 알고 우리 슈크림을 영하의 추위 속에서 떨게 만들어?”
박시우가 자신이 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큰소리를 냈다.
복도에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찰나에 박시우는 벌써 운수에게 슈크림이라는 애칭까지 붙여준 것 같았다.
“그것도 그렇지만……. 일단 털이 잘 관리된 걸 보니까 주인이 있을 확률이 높아. 사진 찍어서 신고부터 해두자.”
“캬앙!”
[‘운수를 믿으십니까?’ : 감히 어딜!]
지호가 자신의 몸에 손을 대며 카메라 렌즈를 들이밀자 운수가 으르릉거리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냈다.
“지호야, 아무래도 카메라 렌즈가 낯선가 봐. 나를 제일 편안해하는 것 같으니까 사진 찍는 건 내가 해서 신고 넣어둘게!”
“응, 그럼 그 아이는 누나한테 좀 맡길게. 난 형부터 좀 치워야 할 것 같아서.”
지호가 취기에 휘청거리는 박시우를 부축했다.
‘그러고 보니까 저기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짐승이 한 마리 더 있었지.’
잠깐 눈을 뗀 사이 박시우는 눈이 반쯤 풀려 있었다.
“치우다니, 내가 재활용 쓰레기도 아니고! 박지호, 너 어떻게 형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냐……?”
“재활용이라도 되면 다행이야, 형. 내일도 술 먹고 들어오면 진짜 쓰레기통에 넣어버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
상처받았다는 듯 흐느끼는 박시우를 짐짝이라도 되는 것처럼 방에 던져 넣는 지호의 다소 거친 언행을 보니 평소에 쌓인 게 많은 것 같았다.
박시우가 일을 벌이면 수습하는 쪽은 늘 지호였으니까 이해도 갔다.
“박시우, 술 깰 때까지 이 애는 내가 돌보고 있을게.”
‘운수, 너도 들어가서 보자.’
경고와 함께 방문을 열자 운수의 털이 오소소 돋아나는 게 느껴졌다.
“미야옹.”
[‘탑의 주인’ : 꼴 좋군.]
나는 남의 일이라는 듯이 말하며 가벼운 걸음으로 내 뒤를 따라 들어오는 베카를 돌아보며 말했다.
‘너도 마찬가지야. 베카.’
* * *
“컁!”
[‘운수를 믿으십니까?’ : 난 떳떳하다!]
난 이참에 운수와 베카를 함께 묶어서 온천으로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운수가 초장부터 강하게 나왔다.
“캬앙! 컁!”
[‘운수를 믿으십니까?’ : 난 온천의 이용객으로서 자리를 비운 주인을 되찾으러 왔을 뿐이다!]
“내가 남긴 쪽지 못 봤어? 온천은 무기한 영업 중지라고 했잖아.”
“캬앙! 컁!”
[‘운수를 믿으십니까?’ : 난 이미 한 달 치 온천 이용권을 구매했다. 아직 한 달도 안 지났는데 문을 닫아버리는 게 어디 있지?]
“크흠…….”
듣고 보니 손님 입장에서는 충분히 컴플레인을 걸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계속 그날처럼 쉴 틈도 없이 밤새우면서 일했다가는 내가 먼저 죽을걸. 난 목숨까지 걸어가며 일하고 싶지 않아!”
“컁? 캬앙.”
[‘운수를 믿으십니까?’ : 매출이 부족한 거 아니었어? 우리는 성좌들의 온천만으로는 돈이 되지 않아서 별관을 지으려는 줄 알고 일부러 쉬지 않고 오더를 넣은 건데.]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운수가 예상 밖이라는 듯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매출이 왜 부족해? 온천표 돈가스만 팔아도 먹고사는 데는 문제가 없는데. 내가 별관을 지으려는 이유는 지호나 박시우 같은 헌터들이 다쳤을 때 회복하는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야. 던전 근처에는 응급 환자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으니까.”
“캬앙…….”
[‘운수를 믿으십니까?’ : 그랬던 거였나…….]
“근데 내가 별관을 여는 걸 왜 막으려고 한 거야? 어차피 성좌들의 온천은 평소처럼 열려 있으니까 불편한 건 없을 텐데.”
“캬앙, 컁.”
[‘운수를 믿으십니까?’ : 네가 별관을 열면 본관에는 알바를 쓸 거라고 하길래,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누가 그런 말을 해?”
“컁.”
[‘운수를 믿으십니까?’ : 샤레니안이.]
‘아, 그러고 보니 샤레니안에게 별관에 관한 이야기를 했었지.’
아마도 의사소통 과정에서 잘못 전달된 내용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난 별관에 알바를 쓴다는 말이었는데 샤레니안이 오해했나 보네.”
“캬앙? 캬아아…….”
[‘운수를 믿으십니까?’ : 진짜냐? 샤레니안 이자식…….]
모든 게 샤레니안의 오해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운수가 으르렁거렸다.
그것 때문에 새끼 여우로 둔갑하기까지 하면서 날 찾아온 건가?
“그런데 본관에 알바를 쓴다고 해도 크게 문제는 없지 않아? 어쩌면 나보다 요리를 잘하고 성격 좋은 알바가 들어올지도 모르잖아.”
나는 지호가 온천의 관리자가 된 모습을 상상하며 말했다.
친절하고 살가운 성격이니 온천의 성좌들과도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컁! 캬앙! 캬아.”
[‘운수를 믿으십니까?’ : 싫다. 우리가 인정한 온천 사장은 너니까. 네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
내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라……. 솔직히 운수에게서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예상하지 못해서인지 그 말은 내게 생각보다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때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안개가 드리우더니 그 속에서 황금빛 머리카락에 인형처럼 예쁜 외모를 가진 운수가 나타났다.
“다른 성좌들도 너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러니까 괜찮다면……. 나랑 같이 온천으로 돌아가자.”
‘또 얼굴이 자두가 되어버렸네.’
수줍게 손을 건네는 운수의 오드아이에 내 모습이 가득 차오른 것이 보였다.
“미안하지만 당장은 어려워.”
“온천으로 돌아오면 내 귀랑 꼬리를 마음껏 만지게 해준다고 해도?”
난 슬쩍 운수의 보송한 여우 귀와 살랑이는 꼬리를 바라봤다.
달콤한 제안이긴 했지만 지금 나에게는 그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그래.”
“……어째서?”
자신의 여우 귀와 꼬리까지 내어준다고 했는데 거절당할 줄은 몰랐는지 운수가 부서진 바위처럼 무너져 내렸다.
“설명해줄 테니까 여우로 돌아와 줄래? 누가 들어올 수도 있어서.”
“큐웅…….”
내 말에 다시 새끼 여우로 둔갑한 운수가 풀썩 그 자리에 쓰러져 누워 앓는 소리를 냈다.
“불쌍한 척해도 지금은 더 쉬고 싶어.”
근무 태만 면제권을 쓰지 않았으면 모를까 쓴 이상 뽕을 제대로 뽑아야 했다.
온천에 돌아가면 언제 또 마음 편하게 쉴 날이 올지 몰랐다.
“딱 6일만 더 쉬고 돌아갈게. 그러니까 베카랑 같이 온천으로 돌아가.”
“컁!”
“미야옹!”
[‘운수를 믿으십니까?’ : 싫다!]
[‘탑의 주인’ : 싫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베카와 운수가 동시에 침대에 발라당 배를 드러내고 누웠다.
“진짜 안 돌아가?”
“캬앙?”
[‘운수를 믿으십니까?’ : 어디서 모기가 우나?]
“미야옹.”
[‘탑의 주인’ : 그런 모양이군.]
얼굴만 보면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더니 이럴 때는 합이 잘 맞았다.
‘둘 다 배 째라는 표정이군.’
“이제 나도 모르겠다.”
어차피 여기서 푹 쉬고 온천으로 돌아가면 전부 해결될 일이었다.
만사가 귀찮았던 나는 남은 6일의 휴식을 만끽하기 위해 베카와 운수 사이의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 누웠다.
‘잠이나 푹 자두자.’
난 베카와 운수의 보드라운 털과 온기 덕분인지 얼마 안 가서 스르륵 잠에 빠졌다.
* * *
얼마나 깊게 잠들었던 걸까?
다시 일어나니 창밖이 어두워져 있었다.
베카와 운수도 내내 신경전을 펼치느라 지쳤던 건지 아직 잠에 빠져 있었다.
‘깨우지 말고 두자.’
조용히 침실을 빠져나가려는 그때였다.
[!!확인하지 않은 스킬이 있습니다!!]
몰려오는 잠 때문에 눈물이 어린 채 시스템창을 바라보던 나의 눈이 점차 크게 뜨였다.
[!!‘저승의 눈’ 2단계 스킬 ‘메테오’가 개방됩니다.]
[!!‘저승의 눈’ 2단계 스킬 개방으로 ‘저승의 명부’ 열람이 가능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