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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 (141)화 (141/190)

141화

주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베카? 어째서 고양이가 되어 있는 거야? 여기는 어떻게 들어온 거고? 그 와중에 이렇게 귀여울 수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에 놀라긴 했지만 윤기가 좔좔 흐르는 까만 털과, 체리같이 붉은 눈동자를 깜빡이며 나를 바라보는 검은 고양이 베카는 내 심장을 뛰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뭐야? 어디서 고양이가 들어온 거지?”

고양이를 발견한 지호가 의아하다는 듯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일단 의심을 하기 시작하면 곤란하다는 생각에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짧은 순간에 빠른 속도로 두뇌 회전을 마친 나는 태연하게 웃으며 고양이로 변한 베카를 안아 들었다.

“아, 깜빡하고 말하는 걸 잊어버렸네. 해순이네에서 키우는 고양이인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잠시만 맡아달라고 하더라고.”

“먀아앙.”

[‘탑의 주인’ : 둘러대는 거니까 어쩔 수 없지만 주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베카는 졸지에 해순이의 고양이가 된 것이 무척 불만스러워 보였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그냥 모르는 고양이라고 하고 쫓아내버려라”며 못마땅해합니다.]

[‘탑의 주인’이 “박수온은 너 같이 인정머리 없지 않다”며 약 올리듯 기다란 꼬리를 살랑입니다.]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마탑 꼬맹이, 온천에서 마주치지 않게 조심하라”며 경고합니다.]

[‘탑의 주인’이 “박수온이 온천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그딴 곳에는 볼 일이 없다”며 피식 입가를 올리며 미소 짓습니다.]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속에서 화가 치미는 것을 느끼며 목 뒤를 부여잡습니다.]

‘해령의 말문이 막히는 건 또 처음 보네.’

이번에는 의심할 여지없는 베카의 승리였다.

해령이 갠 수건 때문에 이틀 동안 쌓아 올린 퀘스트가 초기화되면서 생긴 화가 한 번에 날아가고 속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해순이 누나네 고양이였구나. 너무 귀엽게 생겼다. 안아봐도 돼?”

어릴 때는 집에서 고양이를 기르자고 졸라대는 게 일상이었을 정도로 고양이를 좋아하는 지호가 간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 고양이의 실체를 알게 되면 지금 한 말을 후회하게 될 텐데?’

지금은 앙증맞은 고양이의 형체를 하고 있지만 속은 최종 보스, 베카라고…….

하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지호는 내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고양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리 와봐. 야옹아.”

“미야앙.”

[‘탑의 주인’ : 저리 꺼져라.]

내게서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베카가 앞발로 지호의 얼굴을 꾹 눌렀다.

“누나, 지금 냥택당한 거 맞지? 지금 얘가 앞발로 나를 찍었잖아.”

‘냥택이 아니라 어택이었던 것 같은데…….’

밀어내려고 했던 베카의 의도와 달리 지호는 앞발이 자신에게 닿은 것만으로도 간택이라도 당한 것처럼 기뻐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야옹이 이름은 뭐야?”

“베…….”

무심결에 베카라고 답하려던 나는 뒤늦게 말끝을 길게 늘어뜨렸다.

“베?”

“베, 베리!”

때마침 TV에서 흘러나오는 홈쇼핑에서 블루베리를 판매하는 것을 본 나는 놀라운 순발력으로 작명을 하는데 성공했다.

“베리였구나! 눈동자 색하고 잘 어울리는 이름이네. 자, 어서 이리 와봐.”

지호가 두 팔을 뻗으며 다가서자 베카가 의미심장한 울음소리를 내며 나를 돌아봤다.

“먀옹?”

[‘탑의 주인’ : 괜찮다면 내가 저 인간을 잠깐 기절시켜도 되겠나?]

‘전혀 안 괜찮아. 지호는 내 소중한 동생이란 말이야.’

“먀오옹…….”

[‘탑의 주인’ : 소중한 동생이라…….]

내 말을 되새기던 베카가 지호를 빤히 바라봤다.

안 되겠어.

이 이상 베카와 지호를 같은 공간에 뒀다가는 무슨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일단 떨어뜨려 놓자.’

“아, 지호야. 베리를 맡기기 전에 부탁할 게 있어.”

“뭔데?”

“갑작스럽게 베리를 맡게 되어서 고양이 용품을 사는 걸 까먹었네. 사료나 장난감처럼 필요한 것만 간단하게 사다 줄 수 있을까?”

“나 그거 해보고 싶었어! 펫 샵에서 고양이 츄르 사는 것!”

해보고 싶었다니 다행이네.

좋아하는 지호를 보면서 한고비 넘겼다고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어린 나이에 헌터가 되어서 남부럽지 않을 만큼 큰돈을 벌지만 정작 그 일 때문에 좋아하는 고양이를 키울 시간조차 없다니…….

누군가의 롤 모델이나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지호였지만 나는 그가 조금 더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직업을 가졌으면 했다.

‘아직도 어린데 너무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려서 사는 것 같았으니까.’

문득 ‘청순’이라는 이름으로 지호를 만났을 때가 떠올라서 안타까웠다.

“베리야, 오빠가 빨리 가서 맛있는 간식 사 올게!”

제대로 플렉스를 할 생각인지 발급 조건이 까다로워서 최상위 랭커들만 보유할 수 있다는 블랙 카드를 챙겨 든 지호가 코트를 걸치며 들뜬 걸음으로 현관을 나섰다.

“먀아옹. 먕?”

[‘탑의 주인’ : 오빠라니. 그게 뭐지?]

“가족끼리 쓰는 호칭 같은 거야.”

오빠의 뜻을 정확히 알았다가는 이번에야말로 베카가 지호를 기절시킬지도 몰랐다.

심지어 베카는 남자인데…….

“마아……. 먕.”

[‘탑의 주인’ : 가족이라……. 그렇군.]

내 설명을 들은 베카는 앞발로 얼굴을 매만지며 딴청을 피웠다.

“그보다 여기는 어떻게 들어온 거야?”

“먀앙.”

[‘탑의 주인’ : 포털을 타고.]

온천에서 종종 포털을 통해 탑으로 이동하던 베카가 떠올랐다.

그게 우리 집으로도 통할 줄이야…….

긴 한숨을 내쉰 나는 질문을 이어갔다.

“갑자기 말도 없이 나타나면 어떡해?”

“먕. 먀앙.”

[‘탑의 주인’ : 보고 싶어서 왔다, 네가.]

내 품에 안긴 베카가 까만 귀를 움직이며 보석 같은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 봤다.

“먀앙먕. 먀먕.”

[‘탑의 주인’ : 이제는 온천에 가도 만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이곳으로 왔다.]

하긴 베카는 나를 만나기 위해서 온천에 손님으로 들어온 거였지.

하지만 계속해서 이곳에 두는 건 여러모로 위험했다.

갑자기 베카가 본모습으로 변하기라도 하면 정체가 들키는 것은 물론이고 누군가 다칠지도 몰랐다.

‘방금만 해도 지호를 기절시키려고 했잖아.’

“베카, 네 마음은 잘 알겠어. 하지만 이곳에서 지내는 건 어려워. 여기에 있으면 계속 고양이 모습으로 살아야 하고 누구에게도 마법을 쓰면 안 돼. 그래도 괜찮겠어?”

마탑의 보스로 살아온 베카에게 고양이의 몸은 답답하게 느껴질 것이다.

내게 안겨 있던 베카가 품을 빠져나와 날렵한 몸놀림으로 바닥에 착지했다.

아마도 계속 고양이로 사는 건 힘들다고 느낀 거겠지.

“그러니까 하루만 있다가 돌아가.”

지호에게는 해순이가 돌아와서 데려갔다고 하면 깔끔하게 정리가 될 것이다.

“먀앙.”

[‘탑의 주인’ : 평생 고양이로 살아야 한다고 해도 좋다.]

베카가 내가 신은 슬리퍼 위에 식빵을 굽는 자세로 앉으며 나를 바라봤다.

“먀앙. 먕.”

[‘탑의 주인’ : 날 키워라. 박수온.]

마치 유혹하듯이 매력적인 장밋빛 눈동자를 빛내면서.

* * *

“으으……. 추어.”

정우와 뜨끈한 국물에 소주를 한잔 걸치고 잔뜩 취한 시우가 혀가 꼬인 소리를 내며 몸을 웅크렸다.

“아씨, 안에 들어가면 또 박돈돈이 있잖아! 허허헝!”

우는 소리를 내던 시우가 오피스텔로 향하던 걸음을 멈췄다.

“아니야, 박돈돈은 박돈돈일 뿐이다. 그뤠, 걔는 그냥 내 동생이지 온천 사장님이 아니……악! 아악!”

둘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순간, 시우의 머릿속에서 온천 사장을 만났을 때 부렸던 주접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게 내 동생이라니! 그게 박돈돈이라니!!!’

수치스러움에 시우는 온몸이 오그라들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후회한들 이미 엎질러진 물, 없었던 일로 만들 수 없었다.

“아니지! 정신 차려, 박시우. 박돈돈은 그냥 박돈돈일 뿐이라고!”

두 손으로 자신의 뺨을 세게 후려친 시우가 오피스텔 입구로 들어서려는 순간이었다.

시우의 앞으로 검은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나타났다.

“동생 얼굴 한 번 보기 어렵네. 인간세계까지 내려와야 겨우 볼 수 있으니.”

남자가 쓰고 있던 모자를 들어 올렸다.

그 아래로 드러난 얼굴은 샤레니안이었다.

“누구…….”

샤레니안의 얼굴을 보며 얼떨떨한 표정을 짓던 시우가 말을 끝맺지 못하고 굳은 듯이 멈췄다.

그의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점차 은빛으로 물들었다.

어느샌가 그의 왼쪽 눈 아래에는 눈물점이 나타나 있었다.

“그 수고를 겪으면서 날 찾아왔다는 건. 그만큼 형한테 중요한 뭔가를 내가 알고 있다는 거겠지.”

그 말을 하며 웃는 시우의 위로 샤레니안과 같은 얼굴을 한 은발에 은색 눈동자를 가진 남자가 겹쳐졌다.

그는 샤레니안의 쌍둥이 동생이자 시우의 성좌 ‘겨울의 왕’인 에르시온이었다.

“나도 전할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내가 먼저 말했다가는 기다림에 지쳐서 형의 목이 먼저 빠질 것 같으니까 양보하도록 할까?”

에르시온의 말대로 샤레니안은 어딘가 다급해 보였다.

그를 마주 보는 에르시온의 입가에 머물러 있던 웃음기가 일순간 서늘하게 식었다.

“그래서 뭐지? 나한테 묻고 싶다는 이야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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