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미야옹!
“어디 가?”
나는 박시우에게 문전박대를 당하고 지호와 식탁에 마주 앉아 저녁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박시우가 방에서 나오는 게 보였다.
패딩을 챙겨 입은 걸 보니 외출을 하려는 것 같았다.
헤어진 여자 친구라도 붙잡으러 가나 싶어서 물은 건데 나를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박시우가 미친놈처럼 자신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
“으아아아악!”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마주하기라도 한 듯이 박시우가 악에 받친 고함을 내지르며 현관을 뛰쳐나갔다.
“지호야, 쟤 왜 저래? 저 정도 증세면 진짜 병원 데리고 가봐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 혹시 여자 친구랑 헤어진 충격 때문에 정신줄을 놓아버린 거 아니야?”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는 내게 지호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실소를 터트렸다.
“에이, 시우 형이 여자 친구가 어디 있어? 매일 길드 던전이랑 레이드 뛰느라 바쁜데. 길드원 외에는 사람 만나는 거 본 적도 없어. 그냥 술이 덜 깼나 보지. 형이 이상한 게 하루 이틀도 아니잖아.”
그건 맞는 말이다만…….
나는 자연스럽게 지호의 말에 수긍하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이 남아 있었다.
“여자친구랑 헤어진 것도 아니면 갑자기 술은 왜 퍼먹은 거래?”
“나야 말을 안 해주니까 모르지. 근래 들어서 조금 심란해 보이긴 했어. 갑자기 온천 사장님 찾는 것도 멈추라고 하고.”
“박시우가 온천 사장님 찾는 걸 멈추라고 했다고?”
“응, 덕질은 적정선을 지키면서 할 때가 더 행복한 걸 깨달았다나 뭐라나? 또 혼자 청춘 만화에나 나올 법한 말을 하더라고. 길드원들도 갑자기 온천 사장님 찾는 걸 포기하겠다고 하니까 혼란스러운 모양이고. 여러모로 복잡한 일이 많아.”
제정신을 못 차리는 박시우 때문에 지호도 걱정이 많은 것 같았다.
아마도 박시우가 나를 온천 사장이라고 생각해서 수색을 멈추자고 한 거겠지.
일단 잘 대응해서 당장은 의심에서 벗어났으니까 조만간 다시 온천 사장을 찾기 시작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나에게는 마찬가지로 성가시지만.
―요즘 화제의 중심에 있죠? 온천 사장님이 판매하는 온천표 돈가스, 한정 판매인 만큼 주문에 성공한 분들의 후기가 온 국민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데요. 그만큼 치열했던 일명 ‘돈켓팅’에 참여한 시민분과 인터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거실에 있는 TV에서 나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와 지호의 시선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화면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이번 돈켓팅에 참여하셨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푸악! 컥!”
인터뷰 화면에 나오는 남자의 얼굴을 본 나는 먹고 있던 것을 뿜을 뻔했다.
“누나, 괜찮아? 여기 물!”
컥컥거리는 내게 지호가 물을 건넸다.
나는 곧장 물을 받아 들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고마워.”
“놀랐잖아. 안 뺏어 먹을 테니까 천천히 먹어.”
“그, 그래.”
답을 하면서도 내 눈은 계속해서 화면으로 향했다.
냉수를 들이켜고 다시 봐도 은발에 푸른 눈, 바다색 도포 차림의 남자는 해령이었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그것도 성좌 복장 그대로 나타나면 어떡해?
분명히 내 목소리가 해령에게도 들렸을 텐데 시스템창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아무래도 인터뷰를 멈출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이다.
―복장이 무척 퀄리티가 높아 보입니다. 이번 온천 사장님께서 47층을 클리어 하실 때를 완벽하게 재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는데요. 그만큼 온천 사장님에 대한 애정이 진심이시라는 거겠죠?”
―일단 그런 것으로 해두지……요.
‘지금 반말하려고 했다.’
기나긴 세월을 성좌로 살아온 해령의 입에서 나오는 존댓말은 참으로 어색했다.
―온천 사장님의 게시글이 올라왔을 때 상황이 어땠나요?
―인간ㄷ…… 아니,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서 서버가 터졌습니다. 요즘 말로 피켓팅이었죠.
‘방금은 인간들이라고 말할 뻔했어…….’
뉴스는 실시간으로 전국에 방영되고 있었다.
해령이 말실수를 하려고 할 때마다 그걸 보는 내 심장이 미친 듯이 벌렁거렸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기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거야?’
―아침이나 돼서야 서버가 복구되었다고 하던데 주문에 성공하셨나요?
―아니요. 실패했습니다.
―안타깝네요. 해외에서도 수많은 분들이 돈켓팅에 참여한 만큼 경쟁이 치열했으니 너무 상심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온천 사장님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기자의 말에 카메라가 해령을 단독으로 잡았다.
―바…….
자연스럽게 내 이름을 부르려는 해령을 향해 나는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질렀다.
‘안 돼!’
그러자 해령이 말을 멈췄다.
―아무래도 시민분이 많이 긴장하셨나 보네요. 그럼 여기서 인터뷰를 마…….
방송 사고라고 생각한 건지 기자가 빠르게 화면전환을 시도하려던 그때였다.
불쑥 카메라 앞으로 튀어나온 해령이 기자의 마이크를 빼앗아 들었다.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먹고 싶거든요. 온천 사장님이 만든 돈가스.
순간, 해령이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눈빛이 꼭 나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아서 잠시 숨을 멈추게 됐다.
―네, 온천표 돈가스를 향한 국민들의 애정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던 인터뷰였습니다. 지금까지 기자 한탕만이었습니다.
다른 화면으로 넘어가고 나서야 방금 내가 본 인터뷰가 현실이었음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해령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인 거야?’
온천에서는 냉랭하게 굴더니 좀처럼 속을 알기가 어려운 남자였다.
“와, 방금 인터뷰한 사람 되게 잘생겼다. 아이돌 연습생 같은 건가? 아니면 캐스팅 제의 많이 받을 듯.”
지호가 해령의 외모에 감탄했다.
“잘생기긴 무슨, 딱 봐도 관종이구만.”
[성좌 ‘온천의 지배자’가 “지금 관종이라고 했냐”며 버럭 화를 냅니다.]
역시 해령의 입을 열게 하는 데에는 열 받게 하는 것만큼 좋은 게 없었다.
내가 부를 때는 대답도 안 하더니 어디 한 번 답답해봐라!
나는 보란 듯이 해령의 시스템창을 무시했다.
“누나, 그런데 왜 온천 사장님 돈가스 주문 성공했을 때 안 왔어? 진짜 맛있었는데. 누나, 돈가스 완전 사랑하잖아.”
“나 원래 사람 많은 곳 싫어하잖아. 그리고 내 배가 돈가스 몇 입 정도로 차겠어? 괜히 입맛만 버리지.”
“그건 맞지. 요즘 워낙 귀한 거라 맛만 보는 수준으로 끝나긴 했어. 그런데 온천 사장님은 진짜 대단한 것 같아. 어떻게 강한 사람이 요리까지 잘할 수가 있지?”
잊고 있었다.
지호도 온천 사장 팬클럽의 일원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한테는 지호가 온천 사장님보다 더 대단해 보여. 헌터 일도 열심히 하고 온천 사장님보다 잘하는 요리도 훨씬 많잖아.”
“에이, 온천 사장님이 온천표 돈가스만 판매해서 그렇지. 그 정도 손맛이면 분명 다른 요리도 잘하실 거야.”
내 칭찬에 지호가 수줍어하면서 미소 지었다.
그러고 보니까 온천 별관에 관리자가 필요했지?
솔직히 누굴 써야 한다면 우리 지호가 적격이었다.
지호는 요리 실력도 있고 레시피에 대한 이해가 빨랐다.
거기에 온화한 말투, 착한 외모까지 갖췄으니 별관의 간판으로 두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지호를 영입하기 위해서는 내 정체를 밝혀야 한다.
사실 지호한테 내가 온천 사장인 걸 밝히는 건 큰 어려움이 없었다.
문제는 눈치 빠른 박시우였다.
탑 꼭대기까지 오르고야 말겠다는 야망에 불타오르는 그가 내가 온천 사장이라는 걸 눈치챈다면 집필에 영입하려고 열과 성을 다할 것이다.
아까도 의심만으로 나를 충분히 귀찮게 했다.
‘박시우라면 뭘 상상하든 그 이상을 해내겠지.’
상상만으로 진저리를 치게 됐다.
‘당장 급한 건 아니니까 지호를 온천 별관의 관리자로 고용하는 건 조금 더 생각해보자.’
모처럼 쉬러 집에 온 거니까 일 생각은 접어두고 이불 속에서 지내는 거야.
저녁만 먹고 방으로 들어갈 생각으로 마지막 한 숟가락을 뜨는데 수상쩍은 소리가 들렸다.
“먀옹.”
‘방금 고양이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고층 오피스텔에서 길 가던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릴 일은 없었다.
‘내가 착각한 건가?’
“누나, 혹시 고양이 소리 들리지 않았어?”
다시 수저를 드는 내게 지호가 귀를 쫑긋 세우며 물어오는 그때였다.
“너도 들었…….”
“미야옹!”
내 뒤편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내 방에서 거실로 뽀작 뽀작 젤리 소리를 내며 달려 나오는 붉은 눈의 작고 검은 솜뭉치가 보였다.
‘잠깐만, 붉은 눈에 검정색 고양이라고?’
고양이를 보는 순간, 머릿속에 한 꼬맹이의 얼굴이 스쳤다.
그때 고양이의 앙증맞은 울음소리와 함께 빨간색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먀옹!”
[‘탑의 주인’ : 박수온, 나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