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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 (135)화 (135/190)
  • 135화

    파티원 구함 (1/9999999999)

    “덕택아, 무슨 일이야? 울지 말고 이리 와서 천천히 이야기해봐.”

    나는 아직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대충 쓸어넘기며 덕택이를 방 안으로 불러들였다.

    그러자 덕택이가 비눗방울 같은 눈물을 퐁퐁 흩날리며 내게로 다가와 앉았다.

    ‘잠깐, 7번 덕택이면 박시우에게 배달하고 온 녀석인데…….’

    문득 낮에 있었던 일이 머릿속을 스쳤다.

    “꽈악…….”

    [‘장난감 오리 인형(S) 7’ : 그러니까…….]

    날 향해 울먹이는 눈망울만 봐도 덕택이는 내게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괜찮으니까 눈물 뚝 그치고! 나한테 말 못한 이야기가 뭐야?”

    “꽈악…… 꽉.”

    [‘장난감 오리 인형(S) 7’ : 사실 내가 오늘 박시우한테 배달을 갔을 때…… 일이 있었다.]

    ‘아……. 그래서 낮에 박시우 이야기를 했을 때 덕택이 7번이 민감하게 반응했던 건가?’

    박시우와 깊게 얽히지 않고 무사히 배달을 끝내기를 바랐건만…….

    왠지 이야기를 듣기 전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데?”

    난 마음을 가다듬고 질문을 이어갔다.

    “꽈악꽉……. 꽉! 꽈악…….”

    [‘장난감 오리 인형(S) 7’ : 박시우한테 배달을 갔을 때 난 너무 행복했다. 집필 길드원들은 나를 누구보다 반갑게 맞이해줬다. 날 만난 건 밤새워 축배를 들 만한 일이라면서 박시우가 샴페인도 터트려줬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까지는 내가 익명 헌터 게시판에서 본 글의 내용과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내 물음에 두렵다는 듯이 내 눈치를 살피던 덕택이가 다짐한 듯 말을 이어갔다.

    “꽈악. 꽉! 꽈아악……. 꽉.”

    [‘장난감 오리 인형(S) 7’ : 분위기에 들떠서 잊고 있었는데 샴페인은 술이니까 당연히 알코올이 들어 있었다. 난 알코올에 약하다. 심하면 상태이상에 걸리기도 하고……. 하지만 집필 길드원들과 흥겹게 어울리다가 취하는 줄도 모르고 마셨다.]

    덕택이 7번이 연예인 병에 걸려 있었던 건 알코올이 든 샴페인을 마셨기 때문이었구나.

    덕택이가 상태이상에 빠져 있었던 원인이 밝혀졌지만 내 마음은 개운하지가 못했다.

    ‘이거 냄새가 너무 나잖아!’

    박시우가 처음부터 끝까지 판을 짜놓은 듯한 강렬한 냄새가!

    아무래도 덕택이가 그 치밀한 덫에 걸려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종종 던전에서 S급 몬스터를 만나기도 하는 박시우라면 덕택이의 약점을 미리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아니, 분명 알고 있었을 거다.

    박시우는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

    ‘회식 자리에 가서도 주구장창 고기랑 콜라만 먹는 인간이 굳이 알코올이 든 샴페인을 사 들고 왔다고?’

    그것부터가 수상했다.

    “꽉. 꽉……. 꽉!”

    [‘장난감 오리 인형(S) 7’ : 그때였다. 박시우가 말을 걸어온 건……. 지금 생각해보니까 모든 게 계획적이었던 것 같아!]

    다시 생각해보니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건지 덕택이의 노란 얼굴이 자책감으로 어두워졌다.

    “박시우가 너한테 뭐라고 했는데?”

    “꽉! 꽈악!”

    [‘장난감 오리 인형(S) 7’ : 나한테 박수온을 아냐고 물었다! 너무 자연스럽게 물어와서 나도 모르게 안다고 답해버렸다!]

    이런……. 이제야 박시우의 이상행동이 이해가 갔다.

    ‘박시우는 내가 온천 사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박시우는 어떤 경우에도 가능성이 낮은 일에는 직접 나서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덕택이에게 술까지 먹여 그런 질문을 던진 걸 보면 내가 온천 사장이라는 걸 이미 확신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뭐, 결론을 내리기 전에 확인하는 절차라고나 할까?

    온천 사장의 귀에 들어가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거겠지.

    “그게 다야?”

    “……꽉! 꽉꽉! 꽈악꽉!”

    [‘장난감 오리 인형(S) 7’ : ……사실은 더 있다! 박시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박수온이 온천 사장이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 순간 온천에 대해서 발설해서는 안 된다는 금기 조항이 떠올라서 난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하고 주문이 밀렸다는 핑계를 대면서 달아났다!]

    잘 놀다가 갑자기 달아나는 것도 충분히 수상하잖아…….

    덕택이한테 전해 들은 것을 토대로 한다면 박시우는 이미 어느 시점부터 내 정체를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꽉……! 꽉! 꽈악!”

    [‘장난감 오리 인형(S) 7’ : 정말 미안하다……! 사장 언니! 내가 잘못한 걸 알면 해고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꽉꽈악꽈악!”

    [‘장난감 오리 인형(S) 7’ :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있다가 이 일을 다른 사람을 통해서 사장 언니가 알게 되었을 때 날 원망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으니까 편하게 잠들 수가 없어서 자백하게 됐다!]

    어찌 됐든 곤란한 상황이 된 건 맞았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준 덕택이를 탓하고 싶지 않았다.

    순진한 덕택이는 영악한 박시우의 꾀에 속아 넘어간 것뿐이니까.

    탓하려면 야비하기 짝이 없는 박시우를 탓해야지.

    “이제라도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꽉?”

    [‘장난감 오리 인형(S) 7’ : 이런 날 용서해주는 거야?]

    “자백했으니까 해고하지는 않을게. 대신 경고 한 번! 또 금기 조항을 어길 시 봐주는 건 없어.”

    “꽈악! 꽈악. 꽉!”

    [‘장난감 오리 인형(S) 7’ : 정말 고맙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 사장 언니는 천사야!]

    덕택이가 살포시 뛰어올라 내게 폭 안기며 빗방울 같은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그만 울어. 이러다 온천이 물바다가 되어버리겠다.”

    ‘그런데 덕택이는 왜 모두가 잠드는 야심한 시각에 나에게 자백을 하러 온 걸까?’

    보통은 상대가 기분이 좋은 틈을 노려서 자백하러 오지 않나?

    의문이 들긴 했지만 덕택이는 사람이 아니니까 나와는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사람들도 저마다 생각이 다르잖아.

    ‘자, 일단 박시우도 아직 먼저 나한테 온천 사장이냐고 묻진 않았으니까.’

    미리 걱정한다고 해도 달리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덕택이가 확실하다고 한 것은 아니니까 발뺌하면 그만이었다.

    ‘뻐기는 건 훗날의 나에게 맡기도록 하자.’

    미래의 나에게 오늘의 일을 떠넘기며 하품을 하는 그때였다.

    무심결에 바라본 문 뒤편의 어둠 속에서 미세하게 튀어나온 새하얀 귀와 살랑이는 꼬리가 눈에 들어왔다.

    * * *

    ‘언뜻 수온의 목소리가 들려서 달려오긴 했는데…….’

    운수는 소란스러움에 이끌려 염라의 방까지 오게 됐다.

    하지만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지는 못하고 미닫이문 뒤에 숨어서 상황을 지켜봤다.

    눈가리개를 벗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아직 운수는 누군가에게 얼굴을 보이는 것이 어색하고 부끄럽게 느껴졌다.

    “꽈악! 꽈악. 꽉!”

    수온과 덕택이가 화해의 포옹을 나누고 있는 것을 지켜보던 운수가 흰 꼬리를 살랑이고 있는 때였다.

    “지금 저 오리 인형을 부러워하고 있는 건가?”

    어느샌가 운수의 바로 옆에서 나타난 베카가 방 안의 상황을 확인하다 말고 놀라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그를 돌아봤다.

    “부럽긴……! 누가 오리 인형 따위를 부러워한다고…….”

    부정하긴 했지만 베카의 말에 운수는 자기도 모르게 태풍이 불던 날,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 녹여주던 수온의 포근한 품을 떠올렸다.

    ‘그때, 수온의 품이 따뜻하고 기분 좋긴 했었지……. 내 애착 담요처럼.’

    운수는 자신이 매일 덮고 자는 황금색 애착 담요를 떠올렸다.

    천의 색깔이 운수의 머리색을 떠올리게 한다며 무영이 만들어준 담요였다.

    아기같이 뽀얀 운수의 새하얀 얼굴이 단숨에 자두색으로 달아올랐다.

    그런 그의 변화를 알아차린 베카의 눈매가 장난스럽게 휘어졌다.

    “그럼 상관없겠군. 내가 안겨도.”

    “뭐야?”

    운수가 그 말을 온전히 이해하기도 전에 베카는 곧장 수온이 있는 방으로 토도독 달려 들어갔다.

    “박수온, 어디 갔었어?”

    어디선가 나타난 커다란 베개를 품에 안은 베카가 동그란 눈을 촉촉하게 적신 채로 수온을 올려다봤다.

    “베카, 깼어?”

    “눈을 뜨니까 네가 없어서…… 무서워따.”

    조금 전과 달리 온몸에 귀여움을 장착한 베카의 모습에 운수가 입을 떡 벌렸다.

    ‘저 가식적인 혀 짧은 소리는 뭐지? 저런 연기에 수온이 속을 리가…….’

    운수는 수온의 생각이 자신과 다르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

    “미안해, 같이 자기로 해놓고 여기서 깜빡 잠이 들어버려서. 우리 베카 많이 무서웠겠다.”

    그런데 수온은 별다른 경계심 없이 베카를 품에 안아 다독여줬다.

    ‘어째서 속는 건데?’

    황당함과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쾌감을 느낀 운수는 여우 꼬리를 한껏 곤두세웠다.

    “그럼 오늘은 덕택이랑 베카랑 같이 내 방에서 자도록 할까?”

    “꽉!”

    [‘장난감 오리 인형(S) 7’ : 사장 언니라면 평생 함께 자도 좋다!]

    “좋다.”

    ‘저 속 시커먼 꼬맹이랑 같은 방에서 자기까지 한다고?’

    운수가 불만스러운 기운을 온몸으로 뿜어내던 그때, 수온의 품에 안겨 있던 베카가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운수와 눈을 마주친 베카가 돌연 한쪽 입가를 올리며 웃었다.

    ‘저 얄미운 꼬맹이가……!!!’

    그 순간, 운수의 정신을 붙잡고 있던 뭔가가 툭하고 끊어지는 게 느껴졌다.

    띠링―

    운수의 복슬복슬한 꼬리가 타오르는 불처럼 하늘을 향해 일렁이는 것과 동시에 온천 손님 단톡방의 알림이 울렸다.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탑의 주인’을 처리할 파티원을 모집합니다. (1/9999999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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