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난 쓰레기야!
“덕택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꽉?”
[‘장난감 오리 인형(S) 7’ : 아, 진짜요?]
이번에도 덕택이는 빛나는 검정색 선글라스를 추켜올리며 같은 대답만 되풀이했다.
해령은 뛰쳐나가서 보이지도 않고 덕택이는 연예인 병에 걸려오다니,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일단 덕택이부터 해결 보자.’
나는 서둘러 익명 헌터 게시판에 접속했다.
어쩌면 덕택이가 연예인 병에 걸린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덕택이 팬 사인회 (사진o)>
* * *
[사진]
오늘 길에서 검은 선글라스 쓴 덕택이 만나서 사인 요청했더니 종이에 발 도장 찍어줌. 그걸 시작으로 갑자기 즉석 팬 사인회 열림. 근데 부리에 맞는 마스크는 어떻게 찾았냐고. ㅋㅋㅋㅋ
* * *
└익명 1 : 발 도장 짱 귀여워. ㅠㅠ
└익명 2 : 진심 납치해서 키우고 싶다.
└익명 3 : 덕택이 같이 납치하실 파티원 구함(1/99999)
└익명 4 : 온천 사장님, 여기 덕택이 납치범 있어요! ㅋㅋㅋㅋ
└익명 5 : 덕택이가 낀 마스크 정보 아시는 분 답글 좀.
게시글에 첨부된 사진 속에는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한 덕택이가 발 도장을 발 도장을 찍고 있었다.
덕택이의 등에 도시락이 없는 것으로 봐서 배달을 마친 후, 돌아오는 길에 찍힌 사진인 것 같았다.
‘그렇다는 건 선글라스나 마스크는 배달 전에 받았거나 주문자에게 받았다는 건가?’
나는 다른 글을 검색해보았다.
<덕택이 팬 사인회 후기 (대화o, 번역ver)>
* * *
쓰니 : 덕택아, 너 너무 귀여워.
덕택이 : (종이에 발 도장 찍으며) 아, 진짜?
쓰니 : 진짜 만나고 싶었는데 너 실물이 더 귀엽다.
덕택이 : 아, 진짜?
* * *
└익명 1 : 덕택이 아이돌 다 됐네 ㅋㅋㅋㅋ
└익명 2 : 아, 진짜? 봇 ㅋㅋㅋㅋ
└익명3 : 덕택이 대화 한 줄 요약 ― 꽉?
└익명 4 : 이것도 귀여워 ㅋㅋㅋ
└익명 5 : 덕택아, 데뷔하자! ㅠㅠㅠ
보아하니 길거리 팬 사인회를 했을 때, 덕택이는 이미 연예인 병에 걸려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아무래도 주문자를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연예인 병에 걸린 덕택이가 배달을 갔던 곳들을 확인해보려고 하는데 내 눈길을 사로잡는 제목의 게시글이 있었다.
이제 막 올라온 따끈따끈한 글이었다.
<연예인 덕택이 (사진o)>
* * *
[사진]
박시또가 온천표 돈가스 주문 성공해서 미리 준비해놓은 마스크랑 선글라스 덕택이한테 선물해줌. ㅋㅋㅋ 덕택이 집필 길드원들이랑 미니 팬 사인회 열리고 한참 놀다가 돌아감. 박지호가 고급 스킬 ‘아, 진짜?’ 알려주니까 덕택이가 바로 습득해서 쓰더라. ㅋㅋㅋㅋ 사진은 우리 팬 사인회 하고 찍은 단체 사진.
* * *
└익명 1 : 근데 박시또 엄청 좋아할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표정 안 좋음?
└익명 2 : 표정은 안 좋은데 손은 덕택이 안고 만지작거림 ㅋㅋㅋㅋㅋ
└익명 3 : 박시또 나쁜 손 ㅋㅋㅋㅋ
└익명 4 : 귀여운 거 좋아하나 봐 ㅠㅠ 이러니까 내가 박시또 하지.
└익명 5 : 덕택이한테 ‘아, 진짜?’ 가르쳐준 거 박지호였어? ㅋㅋㅋㅋㅋㅋㅋ
└익명 2 : 가르쳐주는 박지누또도 귀엽고 바로 쓰는 덕택이도 귀여움 ㅋㅋㅋㅋ
└익명 8 : 이 정도 환영이면 덕택이 집필 신입 길드원 아닌가요?
└익명 9 : 듣자 하니 덕택이 S급이라고 함 ㅋㅋㅋㅋㅋ
└익명 10 : 덕택이(S급) : 긴장해라! 박시또 꽉!
└익명 11 : 꽉! 귀여워서 기절함 ㅋㅋㅋㅋㅋㅋ
덕택이한테 ‘아, 진짜’를 가르쳐준 게 지호였다고?
선글라스랑 마스크는 박시우 작품이고?
아…… 저것들이 내 호적 메이트가 맞나?
급격하게 몰려오는 스트레스에 머리가 띵한 걸 느끼며 이마를 짚은 나는 바로 다음 게시글로 눈을 돌렸다.
<박시또 여친이랑 헤어졌냐? (사진o)>
박시우가 여자 친구가 있었나?
여자 친구 여부는 내 알 바가 아니었지만, 이별에 슬퍼하는 박시우 사진은 훗날에 유익하게 쓰일 것 같다는 생각에 게시글이 사라지기 전에 손가락을 움직였다.
[사진]
박시또 덕택이 만난 이후로 계속 저 상태임. 덕택이랑 둘이 오래 놀길래 기분 좋을 줄 알았는데 계속 이별 노래만 들음. 지금 나오는 노래. 윤하의 「오늘 헤어졌어요」
* * *
└익명 1 : 박시또 오빠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 거래요. 그래서 저는 어때요?
└익명 2 : ㅋㅋㅋㅋ 핸들이 고장 난 1톤 트럭인 줄 ㅋㅋㅋ 직진 오지네ㅋㅋㅋㅋ
└익명 3 : 덕택이한테 차인 거 아님?
└익명 4 : ㅋㅋㅋㅋㅋㅋ박시또 여자 친구설보다 더 설득력 있는 덕택이설 ㅋㅋㅋㅋ
사진 속의 박시우는 실연당한 남자의 몰골을 하고 있었다.
‘박시우가 아무리 또라이라고 해도 덕택이한테 고백을 할 정도는…….’
평소 그의 행실을 되짚어보던 나는 어느샌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박시우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일지도…….’
박시우 사진 저장을 마친 나는 미련 없이 휴대폰을 주머니 속에 넣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덕택이의 연예인 병을 어떻게 고치냐는 건데…….
[!!히든 아이템 ‘약 항아리의 물약 제조서(EX)’가 ‘연예인 병’ 진단에 반응합니다. [……펼쳐보기]!!]
연예인 병을 고치는 법에 대해 고민하는 순간 약 항아리의 물약 제조서가 반응했다.
그래! 나에게는 어르신의 물약 제조서라는 치트키가 있었지?
[‘약 항아리의 물약 제조서(EX)’ 112페이지]
[상태이상 ‘연예인 병’의 해독제 ― 특제 바나나 우유]
[재료 : 발그레 바나나 1개, 우유 250mL, 설탕 두 스푼]
[제조법 : 믹서기에 발그레 바나나 1개와 우유 250mL, 설탕 두 스푼을 넣고 돌린다.]
잠깐, 연예인 병의 해독제가 특제 바나나 우유였어?
듣던 중 반가운 이야기였다.
마침 나는 특제 바나나 우유를 만드는 퀘스트를 받아둔 참이었으니까.
예전의 나라면 질겁했겠지만 금손이 된 지금 내게 두려운 요리는 없었다.
문제는 발그레 바나나를 구해야 한다는 거였다.
‘거길 다시 가고 싶지 않은데…….’
한 번 죽음을 맞이했던 곳이어서일까? 왠지 그곳에 가면 당시의 공포가 생생하게 되살아날 것 같아 선뜻 내키지 않았다.
잠깐, 그러고 보니까 이제 식재료 판매 데스크에서 웬만한 재료를 얻을 수 있었지?
내 기억이 맞는다면 목록에 발그레 바나나 우유도 있었다.
“덕택아, 내가 널 위해서 특별히 신메뉴를 준비했는데 먹으러 갈래?”
“꽉?”
[‘장난감 오리 인형(S) 7’ : 아, 진짜요?]
“거절은 거절할게.”
“꽉?”
[‘장난감 오리 인형(S) 7’ : 아, 진짜요?]
연예인 병은 생각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건 뭐, 아예 의사소통이 안 되잖아?
“그냥 따라와.”
“꽉?”
[‘장난감 오리 인형(S) 7’ : 아, 진짜요?]
난 아예 덕택이를 품에 안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식탁에 덕택이를 내려놓은 뒤, 냉장고를 열었다.
“장고야. 식료품 판매 데스크를 열어줘.”
[‘행복한 온천 냉장고(SS)’ : 예, 알겠습니다. 형님!]
[‘행복한 온천 냉장고(SS)’의 ‘온천 식재료 판매대’가 열립니다.]
[온천표 돈가스 전용 고기 10개 (10만 골드)]
[발그레 바나나 10개 (5만 골드)]
:
:
: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
나는 곧장 발그레 바나나 한 묶음을 구매했다.
[‘발그레 바나나 10개’를 구매합니다. 온천 판매 데스크에서 5만 골드를 소비합니다.]
구매한 발그레 바나나 10개는 곧장 냉장고로 들어왔다.
쑥 라테나 온천표 돈가스를 만들었을 때처럼 특제 바나나 우유 레시피를 떠올리자 이번에도 마치 기억이라도 하듯 막힘없이 움직이며 특제 바나나 우유를 만들어냈다.
[특제 바나나 우유 만들기]
[레시피로 특제 바나나 우유 만들기 (1/1)]
[보상 : 150만 골드]
[퀘스트 ‘특제 바나나 우유 만들기’를 완료합니다.]
[퀘스트 ‘특제 바나나 우유 만들기’ 완료 보상으로 150만 골드를 획득합니다.]
바나나 우유 한 잔에 150만 골드라니 군침이 도는 보상이었다.
온천표 돈가스로 하루에 몇천만 골드를 순식간에 벌고 있었기에 전보다는 큰 금액이라는 느낌이 덜했지만 온천 확장에 알바생까지 쓸 생각을 하면 한 푼이라도 더 모아두는 게 좋았다.
“자, 덕택아. 이건 특제 바나나 우유야. 너한테 제일 먼저 선보이는 거니까 한 번 먹어볼래?”
“꽉?”
[‘장난감 오리 인형(S) 7’ : 아, 진짜요?]
버그에 걸린 것처럼 같은 말만 되풀이하던 덕택이가 바나나 우유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순식간에 잔에 있던 바나나 우유를 비운 덕택이가 날개를 퍼덕이며 놀랐다.
“꽈악! 꽉?”
[‘장난감 오리 인형(S) 7’ : 눈앞이 깜깜해! 누가 불 껐어?]
아무래도 특제 바나나 우유의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덕택이는 이제 정신이 든 건지 혼란스러워 보였다.
“까만 선글라스를 쓰고 있으니까 그렇지.”
난 덕택이의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손수 벗겨줬다.
“꽈악!”
[‘장난감 오리 인형(S) 7’ : 이제 사장 언니가 보여!]
“그것참 다행이네.”
선글라스를 벗은 덕택이는 무척 상쾌해 보였다.
“덕택아, 이제 누가 물건 줘도 덥석덥석 받지 마. 아무 말이나 따라 하지도 말고. 혹시 박시우가 널 괴롭히거나 한 건 아니지?”
나는 문득 박시우가 덕택이한테 고백했다가 차였다는 설을 떠올리며 물었다.
“꽈악…….”
[‘장난감 오리 인형(S) 7’ : 박시우라면 사장 언니의…….]
어째서인지 박시우라는 이름이 나오자 덕택이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진짜 박시우가 널 괴롭히기라도 한 거야?”
내 걱정스러운 물음에 나를 바라보던 덕택이가 울먹이기 시작했다.
“꽈아악, 꽉! 꽈악!”
[‘장난감 오리 인형(S) 7’ : 사장 언니, 난 쓰레기야! 정말 미안해!]
바들바들 떨던 덕택이는 급기야 눈물을 흩뿌리며 부엌을 뛰쳐나가버렸다.
‘오늘 여럿 저러네…….’
대체 박시우가 무슨 짓을 했길래 덕택이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지?
그때 잠잠하던 휴대폰이 또 울렸다.
―또라이.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요즘은 또라이도 제 말하면 오는 모양이군.’
박시우에게 궁금한 점이 많았던 나는 그의 상태도 살필 겸 통화에 응했다.
“또 뭔데?”
―집 베란다 공사 완공됐다고 연락 왔다. 그 김에 화장실이랑 인테리어도 좀 손봤고. 그러니까 짐 싸서 집에 들어오라고.
어? 이건 예상 못한 전개였다.
아직 온천에 머물러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건 곤란하지.
―아니다, 들어오지 마.
“응?”
―아니야, 들어와.
원래도 정상은 아니었지만 오늘따라 박시우의 이상 증세가 더 심했다.
“너 어디 아파?”
―아니야, 들어오지 마! 아니, 들어와! 아니, 나도 몰라! XX!
분노에 찬 욕설을 마지막으로 박시우와의 통화가 끊겼다.
“……이게 드디어 정신줄을 놨나?”
통화가 끊긴 휴대폰을 바라보며 합리적인 의심을 품고 있는 그때였다.
“박수온…….”
등 뒤에서 베카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부엌의 입구에서 자신의 몸만 한 베개를 안은 채로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베카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