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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 (131)화 (131/190)
  • 131화

    떨어져라

    날 바라보는 샤레니안의 안색이 창백했다.

    아직도 머리에 난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 것으로 봐서 수건으로 상처를 닦을 정신도 없는 것 같았다.

    “어디 봐봐.”

    일단 피부터 멎게 하기 위해 샤레니안에게로 가까이 다가가자 산처럼 우뚝 솟아 있던 그가 내게로 몸을 낮췄다.

    손을 뻗어 수건을 상처 부위에 대서 지혈하자 새하얀 수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간단하게 지혈해서 멈출 수준이 아니야.’

    샤레니안의 부상이 심각하다는 걸 깨닫자 문득 온천에 회복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샤레니안, 지혈만 할 게 아니라 온천욕을 하는 편이 빨리 회복될 거야. 바로 탕으로 가는 게 어때?”

    “지금은 그것보다 주인이 약을 발라주는 편이 빨리 나을 것 같은데…….”

    샤레니안이 흐릿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다.

    유달리 핏기가 없는 새하얀 얼굴이 가련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까 샤레니안을 처음 봤을 때도 내가 약을 발라줬었지.’

    샤레니안이 온천을 하러 들어간 건 치료를 받고 난 이후였다.

    생각해보니 지금 이렇게 피 흘리는 상태로 온천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방에 쓰다가 남은 새살이 솔솔이 있긴 해. 가져다줄 테니까 먼저 바르고 있…….”

    “아……!”

    그때 샤레니안이 이마를 짚으며 크게 휘청거렸다. 방금까지만 해도 이 정도로 상태가 나쁜 줄은 몰랐는데 그 이상이었던 것이다.

    나는 황급히 샤레니안을 부축하고 나섰다.

    “너 괜찮은 거 맞아?”

    “다른 때보다 피를 많이 흘려서인지 어지럽군. 시야가 흐릿하기도 하고 손 하나 까딱할 힘이 없어서 혼자 약을 바를 수 있을지……. 하지만 난 괜찮다. 주인은 일 때문에 바쁠 테니까 폐를 끼칠 수는 없지.”

    그 말과 함께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우려던 샤레니안이 다시금 휘청거렸다.

    ‘혼자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냥 놔둬?’

    “됐어, 그냥 내가 약 발라줄 테니까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나에게 기대. 2층 방까지는 올라갈 수 있겠어?”

    “주인이 부축만 해준다면 문제없다.”

    샤레니안은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기댄 채 강아지 같은 눈망울을 반짝였다.

    ‘방금까지만 해도 시야가 흐리다고 말하지 않았었나? 그렇다기에는 초점이 너무 또렷한데?’

    왠지 미심쩍은 생각이 들었지만 온천 바닥을 물들이고 있는 샤레니안의 피를 보자 마음이 급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찌어찌 낑낑대며 덩치 큰 샤레니안을 데리고 2층 방까지 올라오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나는 비틀거리는 샤레니안을 눕히고 서랍장에서 약을 꺼냈다.

    “전쟁광이라는 건 알겠는데 몸을 상하게 하는 일은 그만두는 게 어때? 딱히 피 보는 걸 좋아하는 것도 아닌 것 같던데.”

    시스템창을 통해 지켜본 바에 의하면 샤레니안이 온천을 비울 때는 어김없이 불사의 전장에 가 있었다.

    하지만 샤레니안은 실수로라도 나한테 피를 묻힐 때면 늘 사과를 하며 닦아주고는 했다.

    ‘이것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걸 자기도 알고 있다는 거겠지.’

    그러면서도 매번 전장에 나가 다쳐서 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던 참이었다.

    “주인.”

    샤레니안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있는데 그가 나를 불렀다.

    약 바르는 걸 멈추고 보니 샤레니안이 눈을 가늘게 휘며 미소 짓고 있었다.

    “나를 걱정해주는 건가?”

    “헛소리하는 것 보니까 멀쩡하네. 약은 네가 발라.”

    “주인. 나 진짜 아파……. 헛소리 안 할게.”

    약통을 가슴팍으로 내던지고 일어나려는 나를 샤레니안이 다급히 붙잡으며 사죄했다.

    눈가가 촉촉해지면서까지 날 붙잡는 것을 보니 아프긴 한 모양이었다.

    “멀쩡해지고 나면 오더 보상 제대로 받을 줄 알아!”

    “얼마든지.”

    나는 샤레니안에게 오더 보상을 약속받고 나서야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아서 약을 바르기 시작했다.

    “그때도 네가 나를 이렇게 치료해줬었는데…….”

    혼잣말처럼 읊조리는 샤레니안의 얼굴에서 짙은 그리움이 느껴졌다.

    ‘내가 샤레니안을 치료해준 때라면…….’

    “온천에서 처음 만났을 때를 말하는 거야?”

    “아니.”

    당연히 그때를 말하는 거라고 여겼는데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천장을 향해 있던 샤레니안의 시선이 내게로 정확히 꽂혔다.

    “그보다 훨씬 오래전에.”

    ‘그것보다 전이라고?’

    샤레니안의 말을 머릿속에 되새기는 순간이었다.

    “앗!”

    또다시 목 뒤가 타오르는 듯한 열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동안 잠잠하다 했더니, 왜 또 이러지?’

    이번에도 피부에서 딱딱한 비늘의 감촉이 느껴졌다.

    “왜 그러지?”

    덩달아 놀란 건지 벌떡 몸을 일으킨 샤레니안이 내게 다가와 안색을 살폈다.

    “목 뒤가 뜨거워. 뭐가 난 것 같아.”

    “주인, 잠시만 살펴봐도 되겠나?”

    답을 할 힘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샤레니안의 손이 조심스럽게 커튼처럼 길게 늘어진 내 머리카락을 걷어냈다.

    “손을 치워야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이상이 있다면 약방 할아범한테 말해서 아프지 않게 고쳐줄 테니까. 아주 잠깐이면 된다.”

    여전히 목 뒤를 손으로 가리고 있는 걸 보고는 아픈 걸 싫어한다는 내 말을 기억한 건지, 샤레니안은 나긋한 목소리로 나의 놀란 마음을 달랬다.

    ‘그래, 어르신이라면 해결책을 아시겠지.’

    샤레니안 말대로 원인을 알아내는 게 먼저였다.

    나는 통증에 눈살을 찌푸리며 목을 가린 손을 내렸다.

    “잘했어.”

    내 상태를 살피기 위해 가까워진 샤레니안의 나지막한 속삭임이 귓가를 울렸다.

    “아무것도 없는…….”

    “당장…….”

    그때, 서늘한 남자의 목소리가 나의 목 뒤를 살피던 샤레니안의 말을 끊고 들어왔다.

    ‘이 목소리는…….’

    “떨어져라.”

    고개를 돌리자 목소리만큼이나 차가운 눈빛으로 샤레니안을 바라보고 있는 해령이 보였다.

    그의 분위기가 평소와 달랐다.

    ‘해령이 까칠하긴 했어도 사납다고 느껴진 적은 없었는데…….’

    그런데 해령의 얼굴이 어딘가 달라 보였다.

    “해령, 너 뺨이…….”

    해령의 피부가 내 무릎에서 잠들었던 그날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의 뺨을 아름답게 수놓은 건 비늘 같았다.

    내 반응이 이상하다고 느낀 건지 해령이 자신의 뺨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이건……!”

    비늘의 존재를 알게 된 해령이 옷소매로 황급히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저 비늘, 내 목에서 열감이 느껴지는 것과 연관이 있을지도 몰라.’

    “해령, 그 비늘 말이야.”

    해령에게 비늘에 관해 물으려는데 그가 뒷걸음질을 쳤다.

    “그 이상…… 다가오지 마라.”

    “아니, 잠깐만! 해령!”

    내가 다가갈 때면 툴툴대면서도 등을 보이는 일이 없던 해령이 어째서인지 휙 몸을 돌려 내게서 달아났다.

    ‘……놓치면 안 돼.!’

    내게서 멀어지는 해령의 물결치는 푸른색 도포를 보는 순간, 누군가 명령이라도 내린 것처럼 내 몸이 먼저 그를 따라 달리고 있었다.

    * * *

    “이런 것까지 그때랑 같을 건 없지 않나?”

    수온의 방에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샤레니안이 해령을 뒤따라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긴 한숨을 내뱉었다.

    ‘정작 당사자들은 그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성좌 ‘겨울의 왕’이 “원래 상대의 마음을 흔들어놓으려면 그 틈을 잘 활용해야 한다”며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라며 충고합니다.]

    ‘이런 사적인 것까지 엿듣지 말라고. 에르시온.’

    [성좌 ‘겨울의 왕’이 “쌍둥이니까 통하는 건 어쩔 수 없다”며 능숙하게 둘러댑니다.]

    ‘……알고 보면 저 둘은 생각보다 깊은 사이라고.’

    투덜거리긴 했어도 에르시온은 샤레니안의 하나뿐인 혈육이자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 유일한 존재였다.

    그래서인지 샤레니안은 무심결에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게 됐다.

    [성좌 ‘겨울의 왕’이 “이미 지난 일은 의미가 없다”며 “현재가 어떤지가 더 중요하다”고 충고하다 “형을 봐도 그렇고”라며 말을 덧붙입니다.]

    샤레니안은 에르시온이 마지막으로 덧붙인 말이 신경 쓰였다.

    ‘난 해령만큼 수온과 깊은 사이는 못 된다.’

    [성좌 ‘겨울의 왕’이 “그건 모르는 일”이라며 “그보다 더 이전에 더 깊은 인연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며 무심하게 말을 던집니다.]

    ‘박수온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전생과 연관이 있는 건가?’

    평소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에르시온의 말이 자꾸만 샤레니안이 기억하지 못하는 수온과의 과거가 있다는 것처럼 들렸다.

    자신이 본 은발과 적안의 수온이 단순한 환상이 아닐 것만 같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성좌 ‘겨울의 왕’이 “전생은 백 년도 더 지난 일”이라며 “되새겨봤자 의미가 없다”고 얼버무립니다.]

    그 순간에 샤레니안은 확신했다.

    에르시온이 자신이 알지 못하는 뭔가를 더 알고 있다는 것을.

    어쩌면 수온이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전생에 대해 더 물으려는 찰나, 에르시온의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성좌 ‘겨울의 왕’이 “그보다 직접 만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말합니다.]

    [성좌 ‘겨울의 왕’ : 내 계약자인 박시우의 측근에 대해서]

    * * *

    해령을 쫓아 1층까지 달려 내려왔지만 어디로 가버린 건지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꽉!”

    [‘장난감 오리 인형(S) 3’ : 다녀왔습니다!]

    그때 온천의 입구로 배달을 마친 덕택이들이 들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중에도 두 번째로 돌아온 덕택이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덕택이는 검정색 선글라스에 검정색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덕택아, 그 선글라스랑 마스크는 뭐야?”

    “꽉?”

    내 물음에 덕택이가 고개를 45도로 꺾으며 답하는 그때였다.

    [‘장난감 오리 인형(S) 7’ : 아, 진짜요?]

    [※주의 : ‘장난감 오리 인형(S) 7’ 상태이상 : 연예인 병]

    예? 덕택이가 연예인 병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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