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 (125)화 (125/190)

125화

칭찬

[!!히든 퀘스트!! ‘판도라의 열쇠 만들기(EX)’]

[재료 : 베카의 심장 (0/1)]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등으로 눈을 비비기까지 해봤지만 시스템창에 적힌 글자는 분명 ‘베카의 심장’이 맞았다.

시스템창이 정상이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상상 이상으로 잔혹할 줄은.

야, 시스템창! 이번엔 선 진짜 세게 넘었다고.

살아 있는 생명체의 심장을 가져오라는 게 지금 말이야, 방구야?

물론 여전히 판도라의 상자 속에 담긴 보물이 뭔지 궁금하긴 했다만…….

하지만 그 어떤 보물도 베카보다 소중할 수는 없었다.

재수 없으니까 당장 치워버려.

나는 신경질적으로 시스템창을 눈앞에서 없애버렸다.

나한테는 우리 귀엽고 사랑스러운 베카가 곧 보물이라고!

베카를 품에 안으며 놀란 마음을 달래고 있는데 온천 안으로 반가운 주황색 부리가 나타났다.

“꽉꽉!”

[‘장난감 오리 인형(S) 1’ : 다음 도시락 실어줘!]

덕택이는 이제 막 배달을 마친 거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쌩쌩했다.

‘덕택이도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이렇게 기운 빠져 있을 때가 아니지!’

“잠깐만, 기다려! 지금 바로 챙겨줄게.”

주먹을 불끈 쥐며 의지를 다진 나는 내 무릎 위에 앉아서 나를 빤히 보고 있는 베카에게로 눈을 돌렸다.

“베카는 쉬고 있어! 난 덕택이들 도시락 좀 챙겨주고 올게!”

베카가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랑은 분위기가 조금 다른 것 같은데……. 많이 피곤한가?’

의도하지 않게 덕택이를 타고 도로를 누비고 다닌 데다가 공중으로 날아가기까지 했으니 지쳤을 법도 했다.

“온천욕을 하면 몸이 조금 풀릴 거야. 갈아입을 옷은 영계한테 부탁해놓을게.”

워낙 많은 주문이 밀려들고 있어, 시간을 더 지체할 수 없었다.

나는 빠르게 베카의 옷매무새를 정돈해주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곧장 부엌으로 달려갔다.

* * *

수온이 자리를 벗어난 뒤, 홀로 남은 베카는 그녀를 붙잡았던 손을 펼쳐봤다.

‘이건 무슨 감정이지?’

멀어지는 수온을 바라보는 건 흔하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와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멀어지는 게 아쉬워졌다.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이.

목이 마른 것도 아닌데 갈증이 나는 것 같은 기분.

수온을 보낼 때면 항상 그런 기분이 들었다.

베카에게 사라지지 않는 목마름을 느끼게 하는 건 박수온이 처음이자 유일했다.

베카는 달이 유난히도 밝게 빛나던 밤, 자신의 품에 파고든 채로 곤히 잠든 수온을 떠올리며 자신의 다리에 얼굴을 묻은 채 엎드려 낮게 읊조렸다.

“더…… 같이 있고 싶다.”

베카의 짙은 한숨 끝에 한층 더 붉어진 듯한 색의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탑의 주인’의 XX이 1000 상승합니다.]

* * *

“꽉꽉!”

[‘장난감 오리 인형(S) 1’ : 배달 끝!]

마지막 배달을 마친 덕택이가 돌아왔다.

“왜 이렇게 몸이 젖었어?”

바깥에 비가 오는 건지 고무로 된 덕택이의 몸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저녁부터 태풍이 온다더니만 비가 퍼붓기 시작한 모양이로군.”

해령이 내게 곱게 접힌 수건을 건네줬다.

‘우리 덕택이들 거센 비를 뚫고 배달을 마치고 온 거구나……!’

열악한 상황에서도 배달 임무를 무사히 마친 덕택이가 대견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고생했어! 덕택아!”

나는 커다란 수건을 펼쳐서 덕택이의 몸을 감싼 뒤, 물기를 닦아줬다.

“꽥! 꽤액!”

[‘장난감 오리 인형(S) 1’ : 보송보송해! 나, 기분 좋아졌어!]

낮보다 지친 기색이 역력하던 덕택이가 내 손길에 처져 있던 꼬리를 흔들었다.

“비를 맞아서 추울 텐데 온천욕을 하는 건 어때? 다른 덕택이들은 먼저 탕에 들어갔어.”

“꽈악? 꽉꽉! 꽤액!”

[‘장난감 오리 인형(S) 1’ : 그거 실화야? 다른 건 다 참아도 온천욕은 못 참지! 지금 바로 가보자고!]

덕택이는 언제 지쳐 있냐는 듯 총알같이 빠르게 탕으로 사라졌다.

‘다행이네. 기운이 넘쳐 보여서.’

흐뭇하게 덕택이를 지켜보고 있는데 온천의 창문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났다.

태풍이 온다더니 세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서둘러야겠군.”

때마침 부엌에서 나온 운수가 비가 쏟아져 창문을 때리는 소리에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태풍도 분다는데 어딜 가려고?”

“온천의 꽃밭에, 그곳도 바깥 날씨의 영향이 미친다. 태풍이 불면 웬만한 꽃들은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테니까 내가 결계를 치고 지킬 생각이다.”

확실히 바람이 강하면 꽃들이 쓰러질 수도 있겠지만…….

“설마 태풍이 지나갈 때까지 꽃밭에 있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지?”

“무슨 문제라도 있나?”

운수의 대답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운수는 내 생각보다 더 꽃에 진심이구나…….’

“혼자서 꽃밭을 지키려면 힘들 텐데 나라도 같이 있어줄까?”

오늘 운수와 해령이 도시락 싸는 걸 도와주지 않았다면 훨씬 더 정신이 없었을 거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나도 운수를 돕고 싶었다.

“이미 녹초 상태면서 무슨……. 나 혼자로도 충분하니 넌 일찍이 온천욕이나 하고 쉬도록 해라.”

“그게 티가 났어?”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랬구나.’

운수도 해령도 쌩쌩해 보이는데 나만 종이 인형이 된 것 같아서 민망해졌다.

‘그래, 당연하겠지. 애초에 성좌들이랑 내 체력이 같을 수 있을 리가.’

너무 격 없이 지내서 잊고 지내다가도 이럴 때면 내 온천의 손님들이 성좌라는 게 실감이 났다.

“천둥만 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창을 통해 차츰 먹구름이 드리우는 하늘을 보며 혼잣말하는 운수의 낯빛이 어쩐지 어두워 보였다.

부채로 꽃밭으로 가는 통로를 연 그가 돌연 걸음을 멈췄다.

“어쨌든 오늘, 고생이 많았다. 이제는 제법 온천 사장 같기도 하고…….”

내게 등을 보인 채로 격려의 말을 전하는 운수의 새하얀 꼬리가 살랑거렸다.

“뭐, 그렇다고!”

말을 마친 운수는 달아나듯 통로 안으로 사라졌다.

“운수, 생각보다 다정한 성격이었구나?”

“글쎄, 나도 처음 안 사실이라…….”

나만 운수를 잘 모르는 거라고 여겼는데 보아하니 해령도 얼떨떨해 보이는 게 처음 보는 모습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운수도 엄청 용기를 내서 한 말이라는 거겠지.’

새침한 성격의 운수가 나에게 저 말을 전하기 위해서 몇 번을 망설였을 것을 생각하니 귀여웠다.

“내 탕을 써라. 갈아입을 옷을 준비해놓겠다.”

해령이 먼저 나서서 탕을 내어주겠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원래는 내가 베카의 탕을 이용했는데 지금은 덕택이들의 차지가 됐네.’

식구들이 늘어나니 탕이 현저히 부족했다. 확실히 영업장을 넓힐 필요는 있겠어.

아무래도 허전한 것보다는 복작거리는 분위기가 좋았다.

“아, 그전에 해야 할 게 있어! 잠깐만 기다려봐!”

난 곧장 부엌으로 들어가 정성껏 쑥 라테 한 잔을 만들어냈다.

“자!”

그리고 그걸 해령에게 건넸다.

“내게 주려고 만든 건가?”

“응, 늘 네가 만들어주는 것만 먹은 것 같아서 한 번은 뭔가 해주고 싶었거든.”

암살 쑥 라테 이후로 해령에게는 처음 선보이는 쑥 라테라 내심 긴장이 됐다.

마른침을 삼키고 있는데 해령이 단숨에 쑥 라테를 들이켰다.

잔을 비운 해령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맛있군.”

“이번에는 진심이지?”

이미 샤레니안에게 확인받은 맛이라 의심하지 않았지만, 해령이 처음에 내 암살 쑥 라테를 먹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 참은 게 떠올라서 농담처럼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해령이 팔을 뻗어 내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익숙하지 않은 건지 손을 올린 모양새가 어색했다.

“이건 무슨 뜻이야?”

해령의 커다란 손은 이곳의 온천수처럼 따뜻해서 나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다른 손으로 얼굴의 일부를 가린 그가 나를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바다색 눈동자로 바라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칭찬.”

* * *

잠시 뒤, 나는 해령의 온천탕에 들어와 노곤한 몸을 녹이다가 말고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칭찬.”

해령의 손이 닿았던 곳이었다.

“그새 배운 건가?”

어색함에 뚝딱거리는 해령을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스마트폰으로 그 모습을 찍었다면 흑역사로 남았을 텐데, 아쉽다.

난 해령의 모습을 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익명 헌터 게시판에 올라온 게시물 몇 개만 봐도 온천표 돈가스에 대한 반응이 얼마나 뜨거운지 실감할 수 있었다.

“게시글이 올라올 때까지 밤샘한다고? 이렇게까지 주목받길 원하는 건 아니었는데…….”

물론 온천표 돈가스의 맛에는 자부심이 있지만 처음 느껴보는 뜨거운 반응이 낯설었다.

‘그것도 평생을 똥손으로 살아온 내가 요리로 주목을 받는다는 건 참으로 아이러니하단 말이지.’

이 뜨거운 성원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서는 온천표 돈가스 판매 개수를 늘려야 할 것 같은데…….

이 부분은 해령과 의논해봐야겠어.

오늘 경험해본 바로 혼자서 돈가스 스무 개를 만드는 것도 빠듯했다.

돈가스를 더 많이 만들려면 해령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계속해서 게시글을 읽어 내려가고 있는데 눈에 거슬리는 댓글이 보였다.

└익명 4 : 한창희, 선댓 먹으면 온천표 돈가스 독식할 예정이라던데. ㅠ

└익명 5 : 열망이 열망하네. 인성 뭐냐? ㅠ

하여간 한창희, 안 좋은 일에는 머리를 잘 굴린다니까?

저런 장난을 치려는 놈들은 사전에 방지할 필요가 있었다.

1인당 1개만 돈가스를 판매하면 한 명이 독식할 일은 없겠지.

돈가스를 독점할 생각에 즐거워하고 있을 한창희가 좌절할 것을 상상하니 불편하던 속이 편안해졌다.

한결 더 가벼운 마음으로 온천에 몸을 담그는 순간이었다.

쿠과콰쾅!

하늘이 반으로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창 너머가 번쩍거렸다.

천둥소리와 함께 눈앞으로 연한 노란색을 띠는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히든 퀘스트!! ‘오래된 기억 : 천둥을 무서워하는 운수(EX)’를 수락하시겠습니까? <수락/거절>]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