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위기 탈출, 베카!
‘베카, 돌아와!’
베카가 덕택이들을 타고 나간 건 생각보다 큰 파장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지난번 지옥귀 사건으로 베카에 대한 여론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헌터 협회처럼 호의적이지 못한 집단은 여전히 있다.
괜히 밖으로 나갔다가 베카가 다치는 일이 생길까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게 몸이든 마음이든 결코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탑의 주인’이 “오리가 너무 빨리 달려서 내릴 수 없다”며 덕택이의 목을 부둥켜안습니다.]
하긴 빛보다 빠른 속도로 달리긴 했지.
어찌나 빠르던지 말릴 새도 없었다.
‘베카, 덕택이한테 잠시 멈춰달라고 해봐!’
[‘탑의 주인’이 “오랜만에 스피드를 즐겨서인지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것 같다”며 겁에 질립니다.]
베카가 겁에 질릴 정도라고?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빡 않는 베카가 덕택이 등에 매달려서 바들바들 떨고 있을 걸 생각하니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베카, 지금 어디야?’
[‘탑의 주인’이 “잘 모르겠다”며 울먹입니다.]
베카가 울고 있어?
엄연히 보호자로서 울고 있는 베카를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본 모습으로 베카를 구했다가는 정체가 들통날 텐데…….
잠깐…… 그럼 각인해서 구하면 되잖아?
[!!돌발 퀘스트!! ‘위기 탈출, 베카(EX)’를 수락하시겠습니까? <수락/거절>]
[거절 시 베카의 호감도 하락, 퀘스트 성공 시 보상 : 판도라의 구슬 18개]
베카를 구해낼 방법을 떠올리는 그때,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지금 퀘스트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우리 베카가 다치게 생겼다는 말이야!
“부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수락을 누른 나는 온천 사장의 부채를 불러들여 각인했다.
[!!돌발 퀘스트!! ‘위기 탈출, 베카(EX)’]
[베카를 오리 인형으로부터 안전하게 구출하기(0/1)]
“어디를 가려고?”
당장 큰일을 낼 것 같은 얼굴로 소매를 걷어붙이는 나를 지켜보던 해령이 물음을 건넸다.
“베카를 구해와야지! 위험하게 저대로 둘 수는 없잖아.”
“뭐하러 번거로운 일을 하지? 막말로 그 꼬맹이는 백번을 굴러도 멀쩡할 텐데.”
“그런 건 상관없어. 지금 중요한 건 베카가 무서워하고 있다는 거야. 겁에 질려서 떨고 있는 베카를 혼자 둘 수 없어.”
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해령을 돌아보고 섰다.
“얼른 베카만 구해올게.”
뜻을 굽히지 않을 것을 알아챈 건지 해령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에 덕택이들이 돌아오면 도시락만 좀 챙겨줘, 부탁할게!”
“거기 서라, 박수온!”
나는 해령에게 붙잡히기 전에 온천의 데스크로 달려가면서 도로뷰에 일곱 번째 덕택이의 목적지 주소를 검색했다.
그러자 목적지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나를 베카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줘!’
문손잡이를 잡은 나는 도로뷰로 본 풍경을 머릿속으로 되새기며 문을 열었다.
* * *
“결국, 가버린 건가……?”
수온이 온천을 나서는 걸 지켜보던 해령이 골치가 아프다는 듯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어째서 매번 귀찮은 일에 나서려는 건지…….”
“확실히 무모하긴 하지. 오지랖도 넓고 말이야.”
해령의 혼잣말에 기척 없이 나타난 운수가 버릇처럼 둥근 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말을 보탰다.
“하지만 난 좋아한다.”
해령을 마주 보고 선 운수가 수온이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간 보자기를 집어 들었다.
“박수온의 그런 모습도.”
오래된 수온과의 기억을 떠올린 운수가 알 수 없는 미소를 띠었다.
“도시락을 싸는 건 내가 돕도록 하지.”
보자기를 품에 안은 운수가 부엌을 향해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
얼떨떨하게 서 있던 해령이 들뜬 걸음으로 나아가는 운수의 뒷모습을 황당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읊조렸다.
“저거…… 진짜 운수가 맞나?”
* * *
문을 열자 나는 도로 한복판에 서 있었다.
그것도 해령과 같은 한복 차림으로!
“저 사람, 온천 사장님 아니야?”
“야, 진짠 듯. 코스프레라기에는 너무 리얼한데?”
벌써부터 사람들은 나를 알아보기 시작한 것 같았다.
덕택이들이 워낙 빨라서 목적지 부근으로 온 건데, 주변이 잠잠한 것을 보니 아직 베카를 태운 덕택이는 지나가지 않은 것 같았다.
‘베카, 혹시 주변에 뭐가 보여?’
[‘탑의 주인’이 “네가 보인다”며 손을 흔듭니다.]
내가 보인다고?
“야, 야. 저거 나만 오리로 보이냐? 도로 위에서 달리고 있는 거…… 오리인 것 같은데?”
“지, 진짜 오리잖아?”
“카메라 어딨어? 일단 찍어!”
베카의 시스템창과 동시에 주변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드니 투명한 시스템창 너머로 돌풍을 일으키며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덕택이가 보였다.
덕택이의 등 뒤로 내게 손을 흔들고 있는 베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덕택아, 멈춰!”
있는 힘껏 소리쳤건만 스피드에 흠뻑 빠진 덕택이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덕택이의 순진무구한 눈망울에 잠시나마 반짝인 빛은 광기가 확실했다.
‘멈추는 건 힘들겠어. 그렇다면…….’
베카가 가까워지는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두 팔을 활짝 펼쳤다.
“베카, 여기야!”
어찌나 크게 소리쳤는지 내 목소리가 도로를 울렸다.
“꽈악!”
[‘장난감 오리 인형(S) 7’ : 엄마야!]
내 고함에 놀란 일곱 번째 덕택이가 커다란 울음소리와 함께 스파크를 일으키며 급정거를 했다.
그 반동으로 등에 타고 있던 베카가 하늘 높이 튕겨 나갔다.
“베카!”
나는 젖 먹던 힘을 다해 베카가 날아간 방향으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기본 스탯이 올라서 그런지 평소보다 몸이 가볍고 날렵했다.
하지만 베카도 그만큼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빨리……!’
[‘온천 사장의 간절함’에 ‘마나’가 반응합니다.]
그때였다.
순간적으로 푸른색 마나가 몸을 휘감더니 날개가 달린 것처럼 나는 높이 날아올랐고, 아슬아슬하게 땅에 부딪히기 전 베카를 품에 안았다.
“잡았……다아악!”
베카를 받아내는 것까지는 어찌해서 성공했는데 떨어지는 것에 대비하지 못한 몸은 속수무책으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베카만큼은 다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몸을 내던진 나는 끝내 보도블록 위에 착지하는 데 성공했다.
“아야야……. 베카, 괜찮아?”
몸뚱이 여기저기가 쓰라려오는 게 느껴졌지만 내 몸 따윈 살필 새도 없이 품에 안겨 있는 베카의 상태부터 살펴보았다.
“나는 괜찮다, 하지만 너는…….”
“다행이다.”
안도하듯 미소 짓자 날 바라보는 베카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이제 온천으로 돌아가…….”
베카에게 함께 온천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려는 순간, 내 위로 적지 않은 수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저기…… 온천 사장님이랑 베카님 맞으시죠?”
“진짜 온천 사장님이셔!”
“저기에 온천 사장님이랑 베카가 있대!”
‘어느 틈에…….’
잠깐 베카에게 한눈을 판 사이에 구름처럼 주변으로 몰린 인파를 바라보니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나…… 온천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돌발 퀘스트!! ‘위기 탈출, 베카(EX)’를 완료합니다.]
[돌발 퀘스트 ‘위기 탈출, 베카(EX)’ 완료 보상으로 판도라의 구슬 18개를 획득합니다.]
[판도라의 구슬 20개가 한곳에 모입니다.]
[!!히든 퀘스트!! ‘판도라의 열쇠 만들기(EX)’가 열립니다.]
인파들 너머로 떠오른 시스템창들을 결국 눈치채지 못한 채로.
* * *
그 시각, 박시우는 익명 헌터 게시판으로 온천 사장의 소식을 접하고 있었다.
<온천 사장님이랑 베카, 도로 한복판에서 영화 한 편 찍으심 (움짤o)>
* * *
참고로 본 글은 가상의 팬픽이나 소설이 아님. 실화임. 오늘 남자 친구랑 영화 보고 나오는 길에 도로에서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는 오리 인형을 발견함. 오리 배 같은 크기의 인형이었는데 그 위에 타고 있는 꼬마가 베카였음. 너무 빠르게 달려서 위험해 보였는데 오리 인형이 급정거하면서 베카가 공중으로 날아오름. 다들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이라서 소리만 지르고 있었는데 온천 사장님이 베카를 온몸을 던져서 받아내심. (현장은 감동의 도가니탕 그 잡채!) 온천 사장님이랑 베카님 모두 무사해 보이셨고 사진 요청하려고 했는데 정중하게 거절하시면서 작게 뭐라고 속삭이셨는데 눈앞에서 사라지심. 아무래도 텔레포트 같은 스킬 주문이었나 봄. 운이 좋은 쓰니는 미리 찍어둔 영상 움짤로 공유해봄. 참고로 온천 사장님 움짤보다 실물 깡패시다. (입틀막.) 솔직히 남자 친구 내 이상형이었는데 오늘부로 이상형 온천 사장님으로 바뀌었다.. [움짤1] [움짤2] [움짤3]
* * *
└익명 1 : 쓰니 이상형 온천 사장으로 바뀐 거 웃프네 ㅋㅋㅋㅋㅋㅋㅋ
└익명 2 : 쓰니 남자친구 : ???
└익명 3 : ㅋㅋㅋ의문의 1패 ㅋㅋㅋㅋ
└익명 2 : 그런데 저 오리 인형은 뭔데 도로를 달리는 거임?
└익명 4 : 저도 그게 궁금.
└쓰니 : 그러게요. 상자처럼 생긴 보자기를 등에 메고 있던데.
└익명 5 : 온천 사장님과 베카 조합 최애인 온천 회원은 여기서 웁니다. ;´ㅠ ㅠ` (오열)
이 글을 보면서 오열하고 있는 이는 ‘익명5’뿐만이 아니었다.
“나도 온천 사장님! 나도 베카!”
시우는 뒤늦게 소식을 접하고 주먹을 입에 문 채 숨죽여 눈물짓고 있었다.
“온천 사장님은 가운도 잘 어울리시던데 도포 차림마저도 영롱하시네. 진짜 갓 온천 사장님, 천상계에서 내려오신 거 아니냐?”
못 말리는 시우의 주접에 소속 길드원들도 고개를 저을 때쯤, 화면의 움짤을 내리던 그의 손이 멈췄다.
‘어라……?’
시우의 눈길이 멈춘 움짤에서 온천 사장은 곤란한 얼굴을 한 채로 습관처럼 오른쪽 손으로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우리 돈돈이도 당황하면 오른손으로 머리카락을 만지는 버릇이 있는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시우가 자신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
“내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고민도 잠시, 뺨에 벌겋게 손자국이 찍힌 채로 시우는 이내 예술 작품을 보듯 감탄과 존경을 표하며 경건하게 온천 사장님의 움짤을 감상하기에 여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