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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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눈싸움하자는 건가?
샤레니안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뚫어지게 날 바라봤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의 그를 보고 있자니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승부욕이 발동했다.
좋아, 기꺼이 응해주지.
나는 눈에 힘을 팍 주고 지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샤레니안을 똑같이 마주 봤다.
그때 샤레니안이 눈을 깜빡였다.
“어? 내가 이겼다!”
신이 나서 샤레니안이 눈을 향해 손가락을 뻗자 그가 아리송한 표정으로 내 손끝을 바라봤다.
“눈싸움 말이야, 방금 네가 먼저 눈 감았잖아.”
“하……. 정말 모르겠군.”
내 말에 복잡한 기분이 들었는지 샤레니안이 큼지막한 손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 같은 말을 쏟아냈다.
뭔가 심각해 보이는데, 나랑 눈싸움하려던 게 아니었나?
단순히 장난을 치려고 했다 보기에 샤레니안은 어딘가 모르게 심란해 보였다.
“무패 신화를 자랑하던 내가 패배하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아, 고작 눈싸움에 졌다는 이유로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던 거야?
좀 황당하기는 해도 한편으로는 가장 샤레니안다운 이유였다.
“안타깝지만 그 정도 실력으로 날 상대하려면 아직 멀었어. 좀 더 수련하도록 해.”
자신만만한 얼굴로 샤레니안의 두꺼운 어깨를 손으로 툭툭 치며 던진 말에 그의 까만 눈동자가 파도치듯 격하게 흔들렸다.
그때였다.
지이잉― 지잉―
스마트폰이 연이어 울리기 시작했다.
게시글에 ‘익명1’이 댓글을 달았습니다.
게시글에 ‘익명2’가 댓글을 달았습니다.
게시글에 ‘익명3’이 댓글을 달았습니다.
미리보기로 게시글 알람을 확인하는 중에도 스마트폰의 진동이 끊이질 않았다.
나는 댓글을 확인하기 위해 내가 작성한 게시글을 눌렀다.
“와, 이거 실화냐?”
분명 같은 내용에 인증 사진 하나만 추가했을 뿐인데…….
└익명1 : 1
└익명1 : 와, 나 계 탔다!!!! 찐이었다!!!
└익명2 : 1111
└익명3 : 11111
└익명4 : 1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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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101 : 추가 주문은 안 받으시나요? 제가 1000만 골드에 살게요. ㅠㅠ
└익명 102 : 온천 사장님 돈가스 양도해주실 분 구함. (선제시)
게시판 댓글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심지어 원래보다 몇 배의 가격으로 구매를 하겠다는 헌터들도 있었다.
“샤레니안, 드디어 성공했어!”
헌터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감격한 나는 샤레니안의 양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네 방법이 먹혀들었다고! 첫 주문부터 완판이야!”
기쁨에 벅차오른 나를 샤레니안은 알 수 없는 눈길로 바라보다 이내 옅게 미소 지었다.
이 와중에도 스마트폰은 쉴 새 없이 울렸다.
“잠깐, 이럴 때가 아니야. 빨리 돈가스도 만들어야 하고 오리들도 불러야지! 샤레니안, 그럼 나중에 보자!”
‘온천표 돈가스 만드는 거 도와줄 해령 구함!’
기합을 힘껏 넣으며 부엌 쪽으로 돌아서는데 빨간색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탑의 주인’이 “내가 도와줄 건 없는 건가”라며 작은 손을 꾸물거립니다.]
순간 갈기갈기 찢어진 달걀 요리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베카에게 요리를 맡기는 건 곤란해!
그렇다고 일감을 하나도 주지 않으면 베카가 크게 실망하겠지?
그 찹쌀떡같이 귀여운 얼굴이 젖은 물만두처럼 축 처지는 건 보고 싶지 않은데.
고민하던 찰나에 베카에게 딱 맞는 일거리가 떠올랐다.
‘베카, 넌 오리들을 불러줄래? 돈가스를 배달해야 하거든!’
[‘탑의 주인’이 “내가 오리 인형들을 불러오겠다”며 들뜬 걸음으로 온천탕으로 달려갑니다.]
나를 돕겠다는 일념으로 작은 몸을 쏜살같이 움직여 오리 인형들에게 한달음에 달려갔을 베카를 생각하니 너무 기특해서 보상으로 사탕이나 초콜릿을 한아름 안겨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진짜 사랑스럽다니까.”
“누가?”
“악!”
오리 인형들과 베카가 나란히 몰려올 것을 상상하며 흐뭇하게 웃고 있는데 내 바로 옆에서 해령의 목소리가 들렸다.
“놀랐잖아!”
귀를 감싸며 고개를 돌리자 어딘가 불만스러운 듯한 얼굴을 한 해령이 보였다.
“네 SOS 요청에 응한 건 난데 내가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내 눈높이에 맞게 상체를 낮춘 해령이 고개를 비스듬히 틀며 나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런 말은.”
[성좌 ‘저승의 염라’가 성좌 ‘온천의 지배자’에게 “사랑스럽다”고 말합니다.]
“……지금 내가 뭘 본 거지?”
해령이 못 볼 것을 봤다는 듯이 참혹한 표정을 지었다.
[성좌 ‘저승의 염라’가 성좌 ‘온천의 지배자’에게 “듣고 싶으면 내가 얼마든지 해주겠다. 그런 말”이라며 살벌한 미소를 짓습니다.]
“네게는 절대로, 전혀, 눈곱만큼도 원한 적 없다. 그런 말.”
보기만 해도 꺼림칙하다는 듯 해령이 부채를 들어 시스템창을 쳐냈다.
그러고 보면 온천에서 나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건 해령이었는데 제대로 그를 칭찬한 적은 없었다.
‘내가 그동안 너무 해령에게 야박하긴 했어.’
하지만 베카나 영계면 모를까 해령에게는 어떻게 칭찬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니까 베카한테 하듯이 해달라는 거지?”
“뭐, 그렇지.”
그렇다면 어렵지 않지!
나는 손을 뻗어 해령의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쓸었다.
“착하다.”
날 향한 해령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내 그는 한숨을 쉬며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정말 갈수록 어디로 튈지 모르겠군.”
“이거 아니야?”
혼잣말하던 해령이 내게서 돌아섰다.
그의 바다색 도포가 잘 어울리는 넓은 등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던 나는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됐다. 서둘러라.”
내가 영문 모르는 표정을 짓자 앞으로 나아가던 해령이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봤다.
“빨리 돈가스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맞다, 돈가스!”
뒤늦게 돈가스 주문을 떠올린 나는 순식간에 해령을 추월해 부엌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주 잠깐이지만 스쳐 지나가면서 본 해령의 얼굴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잊히지가 않았다.
까칠하기 그지없던 그의 얼굴에 햇살같이 포근한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으니까.
* * *
음습한 구름이 드리운 염라의 집무실은 수온에게 준 홍옥 열매 건으로 상소문을 올리기 위해 몰려온 대신들로 가득했다.
“그런 이유로 이곳에 있는 대신들은 한마음으로 염라대왕님께 청하옵니다. 부디 홍옥 열매를 가져간 인간 박수온을 저승으로 불러들여 다시 대가를 치르ㄷ…….”
콰직―
대신들의 선두에 선 흑두루미 판관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무언가 으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반으로 쪼개져서 바닥을 나뒹구는 것은 염라의 손에 들려 있던 담뱃대였다.
“착하다.”
굳은 표정의 염라는 해령의 머리를 쓸어주며 다정하게 미소 짓는 수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라고 했지?”
염라의 검붉은색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날이 서 있었다.
“아……, 그러니까 이번 홍옥 열매 건은 그냥 넘어가는 게 좋겠다는 말이었습니다. 하하하……. 인간 박수온은 저승에서 공을 쌓은 전적도 있으니까 말이지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흑두루미 판관이 황급히 말을 바꾸자 대신들이 웅성거렸다.
집무실을 채운 소란스러움에 염라의 미간이 좁혀졌다.
“용건이 끝났으면…….”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염라는 눈을 내리감았다.
눈꺼풀 아래로 다시금 드러난 그의 눈빛은 서릿발처럼 서늘했다.
“물러가라.”
얼음장 같은 염라의 음성에 얼어붙어 있던 대신들이 허둥지둥 자리를 벗어났다.
“화, 황송합니다.”
흑두루미 판관을 마지막으로 집무실에는 염라만이 남았다.
잠시 사색에 빠져 있던 그는 겉옷을 챙겨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왕님, 아직 처리하셔야 할 일이 많이 남았습니다.”
새로운 일감을 가져오던 강림차사가 염라를 멈춰 세웠다.
“일감을 챙겨서 따라와라.”
“이 일감들을 가지고 어디를 가시려고요?”
강림차사의 물음에 염라의 눈길이 수온이 잠들었던 자리로 향했다.
빈 자리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일순간 공허해졌다.
수온과의 기억을 떠올린 염라의 입술이 홀린 듯 열렸다.
“저 자리의 주인을 되찾으러.”
* * *
“자, 첫 번째 도시락은 배달 준비 끝났습니다.”
난 고급스러워 보이는 황금색 보자기로 도시락을 싸서 오리 인형의 등에 실었다.
베카는 오리 인형의 등에 탄 채로 도시락을 올렸다.
“여기도 준비가 끝났다.”
일곱 번째 도시락을 실은 베카가 오리 인형의 등에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우리 덕택이들, 다들 준비됐어?”
덕택은 ‘오리 택배’를 줄여서 지은 배달원들의 공식 명칭이었다.
“꽈악!”
덕택이들이 일제히 긍정의 신호를 보냈다.
“그럼 덕택! 첫 배달 시작합니다!”
“꽈악!”
내 신호에 맞춰 덕택이들은 미친 속도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엄청 빠르다!’
감탄을 금하지 못하고 있는 그때였다.
일곱 번째 덕택이를 본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 잠깐만!!!”
미처 신경 쓰지 못한 문제를 떠올린 내가 다급히 일곱 번째 덕택이를 불렀지만 빛과 같은 속도로 달려 나간 덕택이는 이미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마탑의 최종 보스 베카를 등에 태운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