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나 똑바로 봐
와…… 진짜 새빨개졌잖아?
내 눈을 가린 기다란 손가락 사이로 비친 운수를 보자 새삼 염라가 나를 토마토라고 놀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저렇게 빨개지니 왠지 놀리고 싶은 기분이 들기는 해.
“운수야,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부끄러워?”
“부끄럽긴! 그럴 리 없다!”
“그런데 왜 얼굴이 이렇게나 새빨개지셨을까?”
나는 내 시야를 가린 운수의 손을 잡아 내리며 장난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건…….”
사람은 참 간사한 동물이라니까.
내가 당했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놀리는 입장이 되니까 이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귀는 조금 민감한 부분이라서……. 그래서 그런 거다!”
내 물음에 운수는 자신의 귀 한쪽을 만지작거리며 붉어진 얼굴을 부채 뒤에 숨겼다.
그걸 보는 순간 앞발로 자기 눈을 가리고 자신이 보이지 않는다고 착각하는 강아지 일화가 떠올라서 절로 웃음이 났다.
“어쨌든 귀를 만지게 해줬으니 꽃밭 관리는 계속해서 내가 맡는 것으로 알겠다.”
“좋아, 운수라면 믿고 맡길 수 있지. 앞으로도 꽃밭을 잘 부탁해.”
앞으로도 잘해보자는 뜻으로 손을 내밀었는데 운수는 부채 너머로 내 손을 지켜볼 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직 악수는 이르다는 건가? 뭐…… 뜻만 잘 전해졌으면 된 거지.’
마음을 여는 속도는 서로 다를 수 있으니까 존중해주기로 하며 손을 거둬들이려는 순간, 운수가 내 손을 감아쥐었다.
서서히 본래의 색을 되찾아가던 하얀 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불에 덴 것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이제 요리값도 치렀고 용건도 끝났으니 귀찮게 굴지 마라! 식사에 집중하고 싶으니까.”
황급히 내게서 손을 빼낸 운수가 식탁을 돌아보고 앉았다.
“하긴 돈가스는 뜨거울 때 먹어야 제맛! 난 나가 있을 테니까 맛있게들 먹어!”
‘따로 해야 할 일도 있고.’
“꽉!”
돈가스의 맛에 흠뻑 빠진 듯한 오리 인형의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마지막으로 나는 부엌을 벗어났다.
* * *
“꽥꽥! 꽤액!”
[‘장난감 오리 인형(S) 1’ : 정답! 앵두!]
수온이 부엌을 빠져나간 뒤, 쉽사리 열기가 가라앉지 않는 새빨간 얼굴의 운수를 보며 오리 인형이 신중한 표정으로 정답을 외쳤다.
“꽥? 꽤액…… 꽥꽥!”
[‘장난감 오리 인형(S) 1’ : 아닌가? 그렇다면…… 자두!]
“뭐라는 거냐?”
“꽥꽥. 꽈악.”
[‘장난감 오리 인형(S) 1’ : 당신 얼굴 말이야. 앵두나 자두처럼 엄청 빨갛거든.]
“더, 더워서 그렇다.”
당황한 운수가 부채를 들어 자신의 얼굴을 향해 바람을 일으키며 다른 손으로 물컵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꽈악, 꽉?”
[‘장난감 오리 인형(S) 1’ : 사장 언니 좋아하지?]
“푸학!”
급하게 물을 들이켜던 운수가 오리 인형의 돌직구에 마시던 것을 뿜어냈다.
“좋아하긴 무슨…… 헛소리 마라!”
의도하지 않게 물 폭탄을 맞게 된 오리 인형이 머리를 흔들어 물기를 털어냈다.
“꽥, 꽈악꽉.”
[‘장난감 오리 인형(S) 1’ : 알았다, 입덕 부정기로구만.]
운수의 격한 반응을 지켜본 오리 인형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입덕 부정기가 뭔데?”
“꽈악꽥꽤액꽉!”
[‘장난감 오리 인형(S) 1’ : 좋아하는데 자각을 하지 못하는 것을 입덕 부정기라고 하지.]
“글쎄, 그런 게 아니라니까! 경고하는데, 자꾸 헛소리하면 오리탕을 만들어버리겠다.”
“꽈악꽉? 꽈악!”
운수의 위협에 오리 인형은 도리어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장난감 오리 인형(S) 1’ : 오리탕? 그건 오리들만 이용하는 전용탕인가? 완전 좋아!]
“됐다……. 말을 말지.”
오리 인형과의 대화를 포기한 운수가 돈가스로 눈길을 돌렸다.
“꽉, 꽉? 꽉!”
[‘장난감 오리 인형(S) 1’ : 근데 좋아하는 마음을 굳이 부정할 필요가 있나? 사장 언니 정도면 예쁘잖아! 솔직히 좋아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고…….]
그 말을 마친 오리 인형은 다시 돈가스를 흡입하는 데에 집중했다.
운수는 가까운 거리에서 자신의 귀에 집중하며 즐거워하는 수온의 얼굴을 떠올렸다.
돈가스를 집었다 놓기를 반복하던 그의 선홍빛 입술이 무심결에 열렸다.
“예쁘긴…… 하지.”
좀처럼 자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운수였다.
* * *
“하아…….”
온천의 응접실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나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바로 반응이 올 줄 알았는데…….”
온천표 돈가스를 만드는 데에도 능숙해졌겠다, 배달원들도 고용했겠다.
이제는 홍보만 남았다는 생각에 기세 좋게 익명 헌터 게시판에 글을 올렸는데 결과는 참담했다.
<온천 사장이 만든 천상계의 맛! 온천표 돈가스 팝니다.>
* * *
안녕하세요. 온천 사장입니다. 저의 EX급 온천에서만 판매하는 온천표 돈가스를 시범 삼아 한정 수량 판매하려고 합니다.
[온천표 돈가스 사진]
먹는 순간 체력이 Max로 회복되는 온천표 돈가스를 단돈 100만 골드에 판매합니다. 지금부터 선착순 20분만 받음.
* * *
└익명 1 : 와, 옆집에서는 온천 사장으로 온천 가운 장사 하던데 온천 돈가스 장사도 하네.
└익명 2 : 어그로 좀 작작 끌어라;;;
└익명 3 : 누가 돈가스를 100만 골드 주고 사먹냐?
└ㄴ익명 4 : 내 말이 글쓴이 능지 수준.
└익명 5 : 체력이 Max로 차오르는 물약이면 200만 골드 주고도 삼.
└익명 6 : 진짜 누가 좀 안 만드냐? 물약값 너무 비싸다. 체력 회복 물약이 하나에 1000만 골드 하는 거 실화냐?
└익명 3 : ㅇㅇ, 돈 없는 헌터는 죽으라는 말인 듯.
└익명 7 : 사 먹어보신 흑우 분 계시면 후기 좀 ㅋㅋㅋ
└익명 8 : 있겠냐? ㅋㅋㅋ
시중에 나와 있는 회복 물약은 최상급이라고 해도 기껏해야 전체 체력의 반 정도만 회복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1000만 골드이길래 너무 비싼감이 있어서 과감하게 0을 하나 뺀 건데, 어그로꾼 취급이나 당하다니…….’
댓글 반응을 보니 온천 사장인 내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유명해지자 나를 사칭하는 사업들이 많이 생겨난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글을 올린 게 진짜 온천 사장이라는 걸 믿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 중에 내 뒤로 누군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이걸로는 부족하다.”
내 바로 옆으로 나타난 얼굴은 샤레니안이었다.
그는 휴대폰 화면에 뜨는 게시글을 바라보며 가망이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뭔가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
“직방으로 먹힐 방법 있다고 하면 해볼 텐가?”
샤레니안이 살며시 고개를 돌리며 나를 돌아봤다.
상대가 샤레니안이라는 게 좀 못 미덥긴 하지만 그는 제법 자신 있어 보였다.
‘지금으로서는 다른 수가 없으니까 속는 셈치고 해볼까?’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데?”
“일단 그거.”
샤레니안이 미소와 함께 손을 내밀며 내가 들고 있는 휴대폰으로 눈짓을 보냈다.
‘달라는 건가?’
휴대폰을 건네자 샤레니안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세워 내 맞은편에 섰다.
“종이랑 펜은 서랍장에 있고……. 이제 남은 건.”
응접실에 놓인 탁상을 바라보던 샤레니안이 내게 시선을 옮기며 의미심장하게 미소 지었다.
“넌가?”
* * *
“이런 방법이 있었구나!”
잠시 뒤, 샤레니안에게서 휴대폰을 받아든 수온은 한결 홀가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휴대폰 화면 속에는 ‘온천표 돈가스 인증’이라고 쓰인 종이를 들고 있는 온천 사장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정확히는 해령의 각인을 사용한 수온이지만.
“스트리밍으로 얼굴을 알리기도 했으니까 이 사진을 같이 올리면 다들 믿어줄 거야. 샤레니안, 너 다시 보인다?”
각인한 상태의 수온이 은발을 휘날리며 예쁘게 웃었다.
“……그동안 날 뭐라고 생각했던 거야.”
평소라면 칭찬을 들은 것만으로 강아지처럼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을 샤레니안인데 지금의 그는 가라앉은 표정으로 수온의 눈을 집요할 만큼 바라보고 있었다.
“일단 나, 게시글 수정부터 할게!”
수온은 응접실의 방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휴대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샤레니안의 시선이 그녀를 따라 움직였다.
‘아무리 봐도 파란색이 맞다. 그런데…….’
수온의 사진을 찍는 찰나에, 그녀의 눈동자가 적색으로 물드는 걸 샤레니안은 똑똑히 본 것이다.
은발에 적색 눈동자의 수온을 마주하는 순간 샤레니안의 심장은 누군가 움켜쥔 것처럼 뜨거워져서 숨을 쉴 수 없었다.
‘내가 왜 이러는 거지?’
그 뒤로 수온을 보는 것이 전처럼 편하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을 보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을 것처럼 가슴이 미어졌다.
“좋아, 올렸다!”
게시글 수정을 마친 수온이 탁상에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안 되겠어. 이렇게 답답한 상태로 있는 건 나답지 않다.’
죄 없는 가슴팍만 움켜쥐던 샤레니안이 수온에게로 몸을 낮추어 앉았다.
“박수온.”
샤레니안의 또렷한 먹물색 눈동자가 수온을 담았다.
힘줄이 드러난 그의 다부진 손이 그녀의 뺨을 감싸 자신에게로 향하게 만들었다.
수온에게로 내려앉은 눈길과 함께 그의 입술이 열리며 다소 거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 똑바로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