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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 (120)화 (120/190)

120화

보지 마

부엌으로 들어온 나는 본격적으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 결과물을 먹어본 사람들이라면 믿을 수 없겠지만 몇 번 만들어봤다고 무영의 레시피를 떠올리지 않고도 온천 돈가스 두 접시를 뚝딱 만들어냈다.

나는 소스를 따로 종지에 담아 운수와 오리 인형에게 온천표 돈가스를 담은 접시를 내어줬다.

“꽈아아악!”

그때였다.

접시에 담긴 음식을 본 오리 인형의 마빡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식탁에 머리를 냅다 찍었다.

“오, 오리야! 갑자기 왜 그래?”

이번마저도 뭔가 잘못된 게 있나 싶어지는 무렵 오리 인형이 소스가 담긴 그릇을 보며 씩씩거렸다.

[‘장난감 오리 인형(S) 1’ : 사장 언니, 오리 대장은 실망이 크다. 돈가스는 부먹인 거 몰라?]

그게 문제였어?

아니, 무슨 오리 인형까지 찍먹 부먹을 가려?

뭐, 나도 박시우와 탕수육을 시킬 때마다 싸우는 주제이긴 했다.

“탕수육은 당연히 찍먹이지!”

“돈돈아, 뭘 모르네. 탕수육은 부먹이야. 소스가 듬뿍 스며든 그 식감을 모른다니 가슴이 아프다.”

“박시우, 난 널 보면 안구에 공격이 들어와서 눈이 아파.”

“지금 말 다 했냐?”

거의 매번 탕수육을 앞에 두고 불꽃 튀는 소스 쟁탈전이 벌어지고는 했지.

박시우는 지옥에서 온 부먹파였고, 지호와 나는 모태 찍먹파여서 늘 머릿수로 눌러버리긴 했다.

하지만 이 주제가 오리 인형에도 중요한 사안인지는 몰랐다.

[‘장난감 오리 인형(S)’의 화남에 교감합니다. 화남 (1/1)]

황당해하는 중에 또 하나의 감정이 차올랐다.

[튜토리얼 ‘장난감 오리 인형(S)과 교감하기’를 완료합니다.]

[튜토리얼 완료 보상으로 ‘장난감 오리 인형(S)’에 번역 기능이 추가됩니다.]

“오리야, 그래도 찍먹이 진리 아니야? 소스를 적당하게 찍어 먹으면 돈가스의 바삭한 식감이 살아나…….”

번역 기능이 살아난 것도 확인할 겸 찍먹의 묘미를 알려주려는데 오리 인형이 다시 한 번 식탁에 이마를 쿵 박았다.

어찌나 세게 박았는지 식탁 중앙이 내려앉아 있었다.

잠시 잊고 있었다.

장난감 오리 인형이라 해도 엄연히 S급 몬스터라는 것을.

“꽈악꽈악!”

[‘장난감 오리 인형(S) 1’ : 사장 언니, 언니가 예쁜 건 알지만 난 뼛속 깊이 부먹파야! 이런 식으로 취향 강요하면 나 같이 일 못해!]

부먹의 매력은 몰라도 번역 기능이 매우 잘 적용되고 있다는 건 알겠다.

‘오히려 너무 번역 퀄리티가 높아서 문제인 것 같기도 하고…….’

“오리, 이 녀석……!”

그때 낮게 깔린 운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그는 오리 인형이 식탁에서 소란을 부린 것에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는 몹시 가라앉은 얼굴로 오리 인형을 향해 팔을 뻗었다.

‘오리를 지켜야 해!’

비록 취향은 달랐지만 내가 나서지 않으면 또 운수의 부채에 맞아 나가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리 인형의 앞을 막아서는 순간이었다.

팔을 뻗은 운수는 오리 인형을 향해 부채 대신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

“……뭘 좀 아는 녀석이었구나?”

[‘장난감 오리 인형(S) 1’ : 설마…… 당신도?]

비장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던 오리 인형과 운수가 허공에서 날개와 손을 맞부딪쳤다.

눈가리개를 하고 있어도 그 순간의 운수는 무척 즐거워 보였다.

‘아주 그냥 죽이 척척 맞네…….’

“모처럼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났으니 내가 손수 소스를 부어 주도록 하지.”

운수는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서 소스가 담긴 종지를 들어 오리 인형의 돈가스에 부어 주었다. 방금만 해도 온천에서 그들을 쫓아내라고 길길이 날뛰었다고는 믿기지 않는 모습이었다.

“꽉!”

그의 배려에 신이 난 오리 인형이 의자에 올라서서 소스에 잠기는 먹음직스러운 돈가스를 보며 통통한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이제 맛을 보도록 할까?”

바삭한 돈가스에 소스를 듬뿍 부은 운수가 젓가락을 들었다.

큼지막하게 잘린 돈가스 조각을 한입에 넣은 그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동시에 운수의 뒤에서 꼭두각시로 보이는 종이 인형들이 커다란 용의 형상과 함께 ‘맛있다!’는 글씨를 만들어냈다.

‘맛 표현이 요란한 걸 보니까 돈가스가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야.’

돈가스 맛이 무척 마음에 든 건지 즐거워진 듯한 운수의 볼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런대로 먹을 만하군.”

정작 본인은 자신의 뒤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알지 못하는지 아무렇지 않은 척 담담하게 감상을 말했다.

“네 뒤의 인형들이 너보다 더 솔직한 것 같은데?”

내 말에 뒤늦게 종이 인형들이 벌인 일을 알아차린 운수가 헛기침하며 손을 까딱이자 그의 소매 안쪽으로 용의 형상과 글자가 사라졌다.

“뭐, 믿기 어렵긴 해도 이 요리에서 온천 할아범이 만든 돈가스와 거의 흡사한 맛이 난다는 건 인정한다.”

옷소매로 입을 가린 운수는 그제야 조곤조곤 솔직한 감상을 털어놨다.

[5번 오더를 성공적으로 완료합니다.]

[5번 오더 완료 보상으로 500만 골드를 획득합니다.]

운수가 내 돈가스를 인정함과 동시에 나무판이 오더 완료를 알렸다.

[5번 오더 완료 특수 보상(오더 의뢰자 : 운수를 믿으십니까?)을 획득합니다.]

[!!온천 꽃밭의 열쇠를 획득합니다!!]

알림창과 동시에 운수의 황금빛 도포 안에서 꽃장식 열쇠가 스르륵 빠져나와 내 온천 마스터키와 하나로 합쳐졌다.

[온천 마스터키(EX)에 온천 꽃밭 입장 권한이 부여됩니다.]

“온천 꽃밭이라고?”

놀란 나와 달리 운수는 그 광경을 차분하게 지켜보았다.

‘지난번에 운수가 보여줬던 꽃밭을 말하는 건가?’

“아니다. 그건 내 개인 꽃밭이고 온천 꽃밭은 따로 있다.”

온천에도 꽃밭이? 처음 안 사실이었다.

“여태껏 본 적이 없는데?”

“그야 전용 열쇠로만 들어갈 수 있는, 그 방법 외에는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니까.”

확실히 오랜 단골인 운수가 나보다 온천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 보였다.

어떻게 보면 내게는 잘된 일이었다.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됐으니까.

“거긴 뭘 하는 곳인데?”

“온천의 꽃밭은 항료 재료가 되는 꽃들을 키우는 곳이지. 온천 할아범이 떠나기 전에 내게 열쇠를 맡기고 갔다. 새로운 온천 사장이 나타나게 되면 자연히 주인을 찾아갈 거라고 하면서 말이야.”

“근데 말야, 내가 온천 사장이 된 지가 언제인데 이제야 날 찾아와?”

“그 열쇠는 이제야 네가 제대로 온천 사장 노릇을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지.”

생긋 웃는 운수가 한껏 더 얄미워 보였지만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라 반박하기 어려웠다.

사실 오늘에서야 온천의 요리를 제대로 만들게 되었으니까.

“그런데 선대 온천 사장님은 왜 너한테 이 열쇠를 맡긴 거야? 온천의 지배자는 해령이잖아.”

선대 온천 사장이 굳이 해령을 두고 손님인 운수에게 열쇠를 맡긴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온천 할아범이 있을 때도 온천의 꽃밭을 관리하는 건 나였어. 꽃을 기르는 걸 좋아해서.”

여우 귀와 꼬리를 단 운수가 정성껏 꽃에 물을 주고 가꿀 것을 상상하니 제법 귀여웠다.

“하지만 이제 온천 사장이 바뀌었으니 네가 맡아도 좋다.”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말하면서도 운수의 낯빛에 아쉬움이 떠올랐다.

그것만 봐도 온천의 꽃밭에 대한 그의 애정이 남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운수야, 너만 괜찮다면 계속해서 네가 꽃밭을 관리해줄 수 있을까?”

“그래도 되겠나?”

꽃밭을 계속해서 맡아줄 것을 제안하자 가라앉아 있던 운수의 여우 귀가 다시금 솟아올랐다.

‘귀여워……. 진짜 딱 한 번만 만져보고 싶다.’

그때 머릿속에서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대신 조건이 있어!”

“그게 뭐냐?”

질문과 함께 운수가 귀를 쫑긋 세웠다.

“그 귀 만지게 해줘! 딱 한 번이면 돼!”

“내, 내 귀를?”

내 제안에 운수는 적지 않게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솔직히 단번에 싫다고 할 줄 알았는데 곤란하다는 얼굴을 하고도 고민하는 걸 보니 운수에게 있어서 온천의 꽃밭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큰 의미인 것 같았다.

‘솔직히 부탁하는 건 난데 내가 조건을 거는 것도 이상하지.’

농담이었다고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좋다!”

결심한 듯 비장한 표정의 운수가 귀를 한껏 세운 채 나를 올려다봤다.

“대신 딱 한 번만이다!”

‘진짜 허락해줄 줄은 몰랐는데, 이게 웬 떡이야?’

나는 연예인 사인회에 온 팬처럼 두 손을 공손하게 모았다.

“응!”

“자!”

두 눈을 질끈 감은 운수가 내게 자신의 머리를 가까이했다.

가까이에서 본 운수의 귀는 더 희고 구름처럼 보송해 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귀에 손을 가져갔다.

‘생각보다 더 푹신해! 마시멜로 같아!’

보이는 것만큼이나 앙증맞은 감촉에 잔뜩 심취해 있는데 갑자기 운수가 나의 두 손을 덥석 포개어 잡았다.

“……거기까지.”

집중하고 있어서 몰랐는데 운수의 새하얀 얼굴이 어느새 홍당무처럼 새빨갛게 익어 있었다.

“꽈악꽉!”

[‘장난감 오리 인형(S) 1’ : 당신, 얼굴이 빨개졌다!]

돈가스를 오물오물 먹고 있던 오리 인형이 딸기색이 된 운수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다시 운수를 바라보려고 하자 그가 큼지막한 손을 뻗어 내 눈을 가렸다.

“……보지 마.”

수줍음에 손바닥까지 붉어진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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