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믿게 해줄게, 나를
……운수의 꼬리를 물었어?
“당장 부리를 치우지 못할까? 아프단 말이다!”
꼬리를 물린 운수가 손에 든 둥근 부채로 오리 인형의 부리를 내리쳤다.
“꽈아악!”
정통으로 맞은 오리 인형이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오리야, 괜찮아?”
나는 둥근 몸 때문에 쓰러진 채로 바둥거리고 있는 오리 인형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꾸악…….”
[‘장난감 오리 인형(S) 1’ : 구석에 혼자 있길래 같이 놀자고 말하고 싶었을 뿐인데…….]
오리 인형은 운수가 자신의 마음을 오해한 것이 슬펐는지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장난감 오리 인형(S)’의 슬픔에 교감합니다. 슬픔 (1/1)]
퀘스트의 항목을 또 하나 채우긴 했는데 기뻐할 만한 상황이 못 됐다.
“해령, 넌 이 상황에 대해서 할 말이 없는 거냐? 어쨌든 네가 이 온천의 지배자잖아!”
운수가 오리 인형들로 북적거리는 온천을 보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난 아무것도 못 봤다.”
하지만 해령은 부채를 타악 접으며 휑하니 다른 곳으로 자리를 피해버렸다.
“샤레니안, 너도 이 온천의 손님으로서 할 말이 없는 거냐?”
“야, 근데 오리 인형들 가만 보면 꽤 귀엽지 않나? 조용한 온천에 활기도 도는 것 같고 나는 좋기만 한…….”
태평하게 웃으며 오리 인형들을 바라보던 샤레니안이 운수의 살벌한 표정에 말끝을 흐렸다.
“아 참, 내 정신 좀 봐! 해령과 할 이야기가 남아서 이만……!”
위기를 감지한 샤레니안도 달아나듯 걸음을 옮겼다.
“내 꼬리…….”
홀로 남은 운수가 오리 인형에게 물려 빨개진 자신의 꼬리를 보며 앓는 소리를 냈다.
눈가리개를 하고 있어서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그의 솜사탕 같은 귀가 축 늘어져 있는 것을 보니 물린 곳이 꽤 아픈 모양이었다.
‘오리가 꼬리를 세게 물긴 했지.’
“운수야, 오리가 널 아프게 만든 건 정말 미안해.”
마음 같아서는 오리 인형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운수와의 오해를 풀게 하고 싶었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다 보니 급한 대로 내가 대신 사과를 건넸다.
“꽤액…….”
그런데 오리 인형이 먼저 운수와 꼬리를 번갈아 보며 사죄하듯이 고개를 푹 숙였다.
운수가 아파하는 걸 보고 오리 인형도 자신의 표현 방법이 잘못되었음을 안 것 같았다.
“오리도 네 꼬리를 문 걸 사과하고 싶은가 봐.”
내 말에 빨개진 꼬리를 바라보고 있던 운수가 고개를 숙인 오리 인형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사실은 네가 혼자 있는 게 신경 쓰여서 같이 놀고 싶었던 거래.”
“……같이 놀아?”
같이 놀고 싶었다는 말에 운수의 축 처진 귀가 쫑긋 솟아올랐다.
“꽈악!”
운수의 물음에 수긍하듯 오리 인형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순진무구하기 그지없는 오리 인형의 얼굴을 바라보던 그가 새침하게 등을 돌렸다.
“꽤액…….”
그 모습을 보고 여전히 운수의 화가 풀리지 않았다고 느낀 건지 오리 인형이 시무룩해지는 그때였다.
“뭐, 같이 놀고 싶었던 거라면 너그러운 내가 이해해주도록 하지. 대신 또 꼬리를 문다면 그때는 나도 네 꼬리를 가만두지 않을 거다.”
조금 사나운 구석이 있긴 해도 운수의 목소리가 한결 누그러진 것이 느껴졌다.
온천의 성좌 중에서 제일 속을 알 수 없는 운수지만 이번만큼은 운수가 오리 인형에게 호의적이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운수의 꼬리, 왠지 기분이 좋아 보여!’
오리 인형의 진심을 알고 난 뒤로부터 운수의 희고 복슬복슬한 꼬리가 들뜬 것처럼 살랑거리고 있었다.
“꽉!”
기분이 좋아진 오리 인형이 운수와 꼬리를 맞대며 뒤뚱뒤뚱 엉덩이춤을 췄다.
‘오해가 잘 풀린 것 같아서 다행이야.’
안도하던 나는 문득 새로운 궁금증이 생겼다.
“그런데 운수는 왜 거기 숨어 있었던 거야?”
“숨다니……! 난 그저 맛있는 냄새가 나길래 밖으로 나와봤을 뿐이다.”
나는 부자연스럽게 나와 있는 운수의 한쪽 귀와 탐스러운 꼬리를 떠올렸다.
‘누가 봐도 숨어 있는 것 같았는데…….’
내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운수를 바라보자 그가 내 시선을 의식한 듯 둥근 부채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그래서 말인데…… 네 요리가 먹어보고 싶어졌다.”
“솔직히 말해. 너 운수 아니지?”
운수가 스스로 내가 만든 음식이 먹고 싶다고 말하다니 내 귀로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
“내가 아는 운수라면 내 손이 닿은 요리를 먹고 싶어 할 리가 없는데?”
“다른 자라면 몰라도 해령이 온천 할아범의 손맛을 언급할 때에는 그럴 만한 이유와 자신이 있는 거겠지. 절대 널 믿는다는 건 아니다!”
운수의 말을 들어보니 그도 해령이 온천 할아범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제까지 괴물급 쑥 라테만 만들어왔으니까 믿음을 바라는 건 무리가 있지.’
그런 부분에서 운수는 맺고 끊음이 확실해서 좋았다.
즉, 친하다거나 정이 있다고 해서 성에 안 차는 걸 좋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말이지.
앞으로의 내 사업에 대해서 냉정하게 평가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운수의 역할이 무척 중요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 좋아! 부엌으로 가자!”
나는 자신감에 차서 운수를 돌아봤다.
“믿게 해줄게, 나를.”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당당하게 운수의 눈가리개를 바라보자 그의 꼬리가 일순간 굳은 듯이 멈췄다.
“그러시든가. 대신 맛이 없으면 값은 치르지 않을 테니 그렇게 알아라!”
[5번 오더가 들어왔습니다. (……자세히 보기)]
운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오더를 알리는 나무판이 떠올랐다.
[5번 오더 의뢰자 정보: 운수를 믿으십니까?/오더 장소 : 부엌]
[오더 내용 : 온천표 돈가스 1개 (0/1)]
[5번 오더를 수락하시겠습니까? 수락/거절 (거절 시 사유를 작성하세요. 단, 사유가 타당하지 않은 경우 자동 수락 됩니다.)]
망설임 없이 수락을 누른 나는 뒤늦게 오더 완료 보상을 확인하고 눈을 크게 떴다.
[오더 완료 시 보상 : 500만 골드, 특수 보상(오더 의뢰자의 만족도에 따라 차등 지급)]
“어엉? 무슨 돈가스 하나가 500만 골드나 해?”
“요리의 맛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는 건 당연한 게 아닌가? 어디까지나 온천 할아범의 손맛을 구현해냈을 때의 값이지만.”
운수는 제대로 된 온천표 돈가스에 큰돈을 지불하는 것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하긴 온천표 돈가스의 맛이라면 500만 골드가 아깝지 않을지도?’
내 생각에도 온천표 돈가스는 천상계의 맛을 가지고 있었다.
“오케이. 걱정 마. 난 이제 예전의 똥손이 아니니까.”
“그래도 자신이 똥손인 걸 알고 있었다니 그거 하난 기특하군.”
‘하여간 좋은 말은 절대 안 나오지…….’
“그래도…….”
부엌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던 운수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봤다.
“한번 기대해보도록 하지, 새로운 온천 사장의 손맛을.”
아주 잠깐이지만 운수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어라……?
운수의 미소를 본 순간, 데자뷰처럼 그 얼굴 위로 희미하게 누군가의 미소가 겹쳤다.
내가 전에도 운수가 웃는 걸 본 적이 있었나?
“꽉!”
생각에 빠진 중에 운수의 꼬리를 물었던 오리 인형이 부리로 내 옷깃을 물어 당겼다.
“아, 너희들도 같이 가고 싶어? 원한다면 돈가스를 만들어줄게. 아니면 온천을 하면서 쉬어도 괜찮고.”
할 수 있는 몸짓을 다 동원해서 열심히 설명하자 오리 인형들은 대부분 잘 알아듣고는 베카의 온천탕으로 떠났다.
“꽉!”
딱 한 마리, 장난감 오리 인형(S) 1만 빼고.
* * *
먼저 부엌 앞에 도달한 운수가 걸음을 멈추어 섰다.
“믿게 해줄게, 나를.”
‘눈가리개를 하고 있어서 내 눈이 보이지 않았을 텐데…….’
짧은 순간이지만 수온이 정확하게 운수의 눈을 마주 봤다.
정작 수온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운수는 지금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수온과 서로 눈길을 나누었던 적이 있다.
호수 같은 푸른 눈동자에 신비로운 은발.
“……괜찮아. 운수야.”
무너지는 하늘과 함께 내가 죽음의 문턱에 서던 그날, 차게 식은 나를 감싸던 따뜻한 손길.
운수를 위로하던 청아한 목소리.
성좌가 되고 난 이후에도 어제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어차피 지금은 나 혼자만의 기억일 테지만…….’
오리 인형들을 보며 즐거워하던 수온의 얼굴을 떠올린 운수가 가을바람처럼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뭐…… 그걸로 됐나?”
‘어쨌든 다시 만났으니까.’
지금에 만족한다는 듯 슬프게 웃던 운수가 부엌으로 들어섰다.
“저기가 부엌이야!”
“꽉꽉!”
때마침 복도에서 수온과 오리 인형이 내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무심한 척 식탁에 자리하고 앉은 운수가 둥근 부채로 잠시나마 드러난 감정을 가렸다.
수온의 목소리가 들리는 편으로 귀를 쫑긋 세우고 포슬포슬한 여우 꼬리를 살랑이면서.